먼저 간단히 카르타고와 로마간의 전쟁이었던 포에니 전쟁에 대해서 알아보자...
3번의 포에니 전쟁으로 결국에는 로마에 의해 멸망한 무역 대국 카르타고
기원전 264년 카르타고는 하밀카르 바르카 장군의 지휘로 제 1차 포에니 전쟁에 나간다...
하지만 그들이 가장 자신있게 생각하던 이케이티즈 제도 앞바다 해전에서
결정적으로 패해 23년동안 계속된 전쟁은 끝났다.
제 2 차 포에니 전쟁, 이른바 한니발 전쟁으로 알려진 이 전쟁에서
명장 한니발은 기원전 218년도에 코끼리 부대까지 이끌고 로마로 향한다.
그러나 다 이겼다고 생각한 이전쟁에서 카르타고는 전략상 실책으로
로마에 최후의 일격을 가하지 못했다.
기원전 204년도에 대 스키피오가 군대를 이끌고 북아프리카에 상륙하자,
한니발은 본국을 구하기 위해 귀국해야 했다.
기원전 202년에 카르타고 남서쪽에 있는 자마에서 결전이 벌어졌는데,
로마군은 교묘한 전술로 결국 승리하고만다.
패전한지 약 50년후, 카르타고는 놀라운 정도로 부흥해 다시 로마를 위협했다.
기원전 149년 마지막 제 3차 포에니 전쟁이 일어나자 카르타고 시민들은 저항했다.
그러나 기원전 146년에 무역 대국으로 지중해에서 군림하던 카르타고의 운명도 종말을 맞았다.
로마군은 카르타고를 철저하게 파괴해 폐허로 만들고, 땅에는 소금을 뿌렸다.
그만큼 카르타고의 부활은 로마인에게 위협이 되었던 것이다.
카르타고 시기의 유적이 있는 토페테의 성스러운 광장 한구석에 있는 묘석군.
작은 묘석들은 신에게 산 제물로 바쳐진 유아들의 것이었다.
토페테라고 불리던 이장소는 페니키아이의 신 바알함몬과 카르타고의 수호신 타니트를
모시던 성역이었다. 이곳에서 신에게 제물을 바쳤다.
묘석이 새겨 있는 상
지중해가 보이는 드넓은 부지에 건설된 안토니수스 욕장.
이곳에는 몇백 개의 방과 온수탕, 증기탕, 냉탕, 수영장, 식당, 담화실 등
갖가지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고 한다.
대리석을 많이 사용한 이 장대하고 호화로운 건축물은
로마의 강대한 권력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카르타고의 로마시대 모자이크는 그 아름다움과 역사적 중요성 때문에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볼리에르 별장에 있는 '오리를 잡으려는 소녀' 모자이크.
카르타고 국립 박물관 내부
호랑이와 아이
거대한 규모의 모자이크
부엉이
메두사
튀니지의 많은 관광지에는 이렇게 모자이크를 직접 만들어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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