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시: 2024년6월7일 / 14시 즈음
장소: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경내
부석사를 가려 했던 것은 아닌데, 지나 가는 길에 부석사라는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날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오는 길에
부석사를 일부러 들렸다.
천년의 고찰 부석사 경내로 들어갔다.
이번 명상수업과 템플스테이를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지는 못했을 것 같다.
불교에 관심은 있지만, 불교 신자도 아니므로
예전의 나는 평범한 등산객처럼 항상 대웅전 출입문 밖에서 안에 들여다 보고만 왔었다.
부석사를 찾아온 많은 관람객 중에는 부석사 무량수전으로 들어가 절을 하고 기도를 하는 분들이 일부 있었다.
나 또한 무량수전으로 들어가 절을 하였는데, 절을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108배로 이어졌다.
108배 후 더워진 몸을 식히고 마음도 잠시 추스릴 겸
명상을 하기로 하였다.
우선 관람객들이 주로 들어와서 절하는 중앙을 피해, 안쪽 옆으로 자리를 잡고 명상을 시작하였다.
주변 관람객들이 발소리, 절하는 소리
부모와 같이온 꼬마의 부산함이 오롯이 들려왔다.
호흡에 집중하며,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며 내 주변에 머물다 가는구나... 인지하고 다시 나의 호흡으로 돌아온다
때론 내가 잠시 선잠이 든듯 약간 또렷한 의식에서 무의식으로 들어가는 듯 하기도 했다.
잠이 드는 것을 알아차리기 위해 엄지와 검지가 풀렸는지도 명상 중간에 알아차려 본다.
시간이 아니 가는듯 하기도 하고, 한 15~20분쯤 됐겠다고 느낌이 드는 순간
명상을 마쳤다.
손목 시계를 보니 예상과 다르게 40분이나 지나 있었다.
이제는 등산이나 여행을 간다면
절들을 밖에서만 구경해보는 것이 아닌
경내로 들어가 108배도 하고 명상도 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해보려 한다.
[출처-위키백과 ]
봉황산 중턱에 있는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왕명을 받들어 화엄의 큰 가르침을 펴던 곳이다. 무량수전 뒤에는 ‘부석(浮石)’이라고 새겨져 있는 바위가 있는데, 『삼국유사』에 있는 설화를 보면, 의상대사가 당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할 때 그를 흠모한 여인 선묘가 용으로 변해 이곳까지 따라와서 줄곧 의상대사를 보호하면서 절을 지을 수 있게 도왔다고 한다. 이곳에 숨어 있던 도적떼를 선묘가 바위로 변해 날려 물리친 후 무량수전 뒤에 내려 앉았다고 전한다. 무량수전은 부석사의 중심건물로 극락정토를 상징하는 아미타여래불상을 모시고 있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짓고 고려 현종(재위 1009∼1031) 때 고쳐 지었으나, 공민왕 7년(1358)에 불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은 고려 우왕 2년(1376)에 다시 짓고 광해군 때 새로 단청한 것으로, 1916년에 해체·수리 공사를 하였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한 구조를 간결한 형태로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 양식이다. 특히 세부 수법이 후세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장식적인 요소가 적어 주심포 양식의 기본 수법을 가장 잘 남기고 있는 대표적인 건물로 평가 받고 있다. 건물 안에는 다른 불전과 달리 불전의 옆면에 불상을 모시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무량수전은 한국에 남아 있는 목조 건물 중 안동 봉정사 극락전(국보 제15호)과 더불어 오래된 건물로서 고대 사찰건축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매우 중요한 건물이 되고 있다.
첫댓글 좋은 경험이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