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친코; 역사는 우리를 버렸지만 상관 없었다.
막무가내인 한국 여자
by온기철 James Ohn5시간전
rottentomato
애플티브이 프러스에서 방영중인 드라마 파친코는 한국인 이민자에 관 한 이야기이다. 원작 소설 파친코는 한국계 미국인 이민진의 작품이고 드라마는 한국계 미국인 Soo Hugh 가 만들었다. 둘다 여성이다. 드라마의 출연진은 한국계 미국인이거나 한국 배우들이다. 내용은 1910년 부터 1989년 까지 살아온 선자라는 여성의 일생을 묘사 했다. 그의 아들과 손자도 등장 한다. 한국, 일본 그리고 미국이 무대이다. 대사는 모두 한국말이고 자막이 영어로 나온다.
그렇다고 한국 사람들만이 보는 연속극이 아니다. 한국뿐만아니라 전세계를 떠들썩 하게 만들고 있다. 아마도 모든 이민자들이 공감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이민자들은 고국에서의 아픈 경험을 가지고 있다. 살기가 힘든 고국을 떠나 낫설은 나라에 오면 차별이 기다리고 있다. 한국인들이 높은 창의력을 발휘해서 이민자들의 애환을 소설과 드라마로 표현하여 온 세상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한시대를 살다가 죽는다. 사는 동안에 자식을 낳고 기른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떻게 했느 냐는 개개인의 인생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자식부양은 부모면 누구나 느끼는 책임이다.
그러나 한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곧잘 망각하는 책임이 있다. 동 시대를 한나라에서 같이 살아가는 사람들이 가지는 공동체로서의 책임이다. 나는 그것을 시대적 사명감이라고 하고 싶다. 다음 시대에 살 사람들에 대한 책임을 의미 한다. 그 책임을 다 하지 못 하면 자손이 살기 어려운 세상을 물려 주게 된다.
민초들에게 시대적 사명감을 요구 하는 것은 무리이다. 목구멍에 풀칠하고 자식 잘 키우면 그뿐이다. 그렇지만 나라의 주인은 민초들이다. 그러면 누가 민초들이 시대적 사명을 다하게 할 수 있을 까?
시대적 감각이 있는 지도자 이다. 한 나라의 장래는 현명한 지도자와 열심히 일하는 민초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민족은 정말 부지런하고 영악한 사람들이었다. 지금도 그렇다.
그러나 불행히도 조선에는 시대를 이해하는 지도자가 없었다. 조선의왕과 조정 그리고 양반계급은 시대를 전혀 제대로 볼줄 모르는 까막눈 이었다.
그결과가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와 아들 그리고 손자가 산 시대였다. 그 시대는 이들의 인생을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파친코의 저자 이민진은 "역사는 우리를 버렸지만 상관 없었다(History failed us, but no matter)" 고 첫마디를 띄우며 이야기를 시작 했다. 파친코의 주인공 선자는 살기 어려운 세상에 굴하지 않고 용기 있게 살았다.
The story of a nation; The New Koreans 의 저자 Michael Breen 은 오늘날 한국의 기적같은 성장은 한국인이 자지고 있는 기질 즉 "defiance"때문이라고 지적 하고 있다. 선자는 나쁜 토양에서도 잘 자라는 미나리 처럼 가난과 전쟁을 이등 국민으로 차별받는 일본에서 남자보다 사람대접을 못 받는 여자의 몸으로 꿋꿋이 살았다. 파킨코는 한국여자의 특성을말해 주고 있다. 나는 defiance를 "막무가내"라고 번역 하고 싶다. 한국
여자는 안된다고 아무리 말려도 도전하고 결국은 해내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파친코는 펄벅의 "대지"를 연상하게 하는 대작이다. 이민진이 파친코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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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기철 James Ohn은퇴 의사
온기철의 브런치입니다. 역사를 주제로 한 수필을 쓰고 있습니다. 본직은 의사이고 취미는 골프와 역사 공부입니다. 지루한 역사를 재미있게 이해시키기위한 글을 쓰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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