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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12 12:08:02, 조회 : 542, 추천 : 184 |
부처님은 인도의 라즈기르(Rajghir)에 있는 영취산(靈鷲山, Vulture`s peak)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다. 만일 텔레비전을 통해 부처님이 영취산에 다시 나타셔서 대중들과 햠께 행선(行禪,walking meditation)을 하실 것이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는데, 인도로 가는 비행기표는 예약이 모두 끝나버렸다고 하면, 우리는 낙담하게 될지도 모른다. 우리도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설령 운 좋게 그 비행기에 좌석을 하나 얻었다 해도, 어쩌면 부처님 곁에서 제대로 행선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기에 모여든 사람들이 무척 많을 것인데, 그 대부분은 걸으면서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며 숨을 쉬는 수행법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그 곳에 가본들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자신의 의도를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우리는 나중에 부처님과 함께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서 지구를 반 바퀴나 돌아 인도로 가고자 하는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바로 그것이다. 그들은 성지에 도착해도 지금 이 순간에 있지 못한다. 몇 분동안 한 곳을 둘러보고는 서둘러 다른 곳으로 향한다. 그들은 자기가 그곳에 갔다는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사진을 찍고는 어서 집으로 돌아가 친구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꿀뚝같다. "나 거기에 갔었어. 여기 증거가 있지. 부처님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야." 그곳에 가고자 하는 사람들 대부분의 바람은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들은 부처님과 함께 걸었다고 할 수 없다. 그들은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다만 이런 말이 하고 싶었을 따름이다."나는 거기에 있었어. 부처님 옆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나란 말이야." 그러나 그것은 틀린 소리다. 그들은 그곳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람은 부처님이 아니다. '거기에 있음'은 하나의 개념이고, 그들이 만났다고 하는 부처님은 그저 환영에 불과한 존재일 따름이다. 설령 아무리 좋은 고급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 해도 진짜 부처님을 사진으로 찍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인도로 가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면, 집에서 행선을 수행하면 된다. 그러면 그렇게 하는 사이 진짜로 부처님의 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평화롭게 행복하게 그저 걷기만 하라. 그러면 우리는 부처님과 함께 있게 된다. 그분은 언제든지 만날 수 있다. 그분의 손을 잡고 행선을 수행해 보라. 궁극적 차원을 접할 수 있다면, 우리는 부처님과 함께 걷고 있는 것이다.
*(The Heart of Buddha`s Teaching :국내에서는 <틱낫한 스님의 아! 붓다>라는 제목으로 번역되었다)에서 발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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