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여행은 벌써 지난해 여름부터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쁜 여름이라 그냥 지나가고 겨울방학에 다시 뭉쳤는데
여행의 목적지는 전주입니다.
전주에 본가가 있고, 지금도 전주에 사시는 우리 담당교수님댁에 가는 것이 여행의 목적입니다.
멤버는 함께 공부하는 성인학습자 세명, 정옥언니, 현영씨 그리고 저 이렇게 입니다.
교수님댁에 가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남편은 배재해 두었었지요.
그런데 전날 교수님을 만난 자리에서 무슨소리냐고 당연히 아무렴님이 가셔야지 해서
남편도 같이 가게 되었습니다.
사진에 잘 안 나왔지만 남편이 같이 가게 된데에는 위에 순대국이 한 몫 했습니다.
이곳은 안양의 중앙시장에 있는 순대국집인데 교수님이 이곳에서 한약국을 하시는 교수님에게
부모님드릴 약을 지으시느라 들려서 가기로 했는데 이곳의 순대국이 워낙 유명하다고
남편을 꼬셨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어디 외식가서 뭐 먹을까 물어 볼 필요도 없이 선택사항 1위는 항상 순대국입니다.
그런데 저는 반대로 정말 먹을 것이 없을때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순대국이라
남편이 항상 저 때문에 밀리지요.
그렇게 좋아하는 순대국을 뚝배기에 뿌듯하게 넣어 주고 거기다가 맛도 좋으며
선택해서 먹을 수 있다고 자랑을 하자 남편은 그만
꼴까닥 침을 삼키며 우리의 여행에 따라 나섰습니다.
과연 소문데로 얼마나 고기가 많이 나오는지 밥을 안 먹고 이 순대국만 먹어도
오케이 입니다.
남편과 교수님이 어찌나 뿌듯해 하시는지 가끔 이 것을 먹으러 와야 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거기다가 주인어르신이 교수님이 모시고 온 손님이라고 머리고기를 한접시나
써비스로 내 주셔서 정말 내장고기로 배를 채우고......
약국을 비울 수 없어 함께 따라 나서지 못하는 임교수님께 미안해 하면서
우리는 전주로 여행을 시작합니다.
여행경비를 절약한다고 우리차는 원주에 세워놓고 어차피 집으로 가시는 교수님차에
옹기종기 탔습니다.
서울에 사는 정옥언니는 홍대에서 안양까지 와서 합류하구요.
고속도로를 달려 멋진 일몰을 감상하면서 가다 보니 어느새 전주에 도착했는데
벌써 주위는 어둑어둑해 졌습니다.
오늘 여행의 첫번째 목적지는 이교수님의 부모님댁을 가 보는 것입니다.
1학년학기초에 서로를 잘 모르던 어느 강의시간 우리교수님께서 눈시울을 붉히며
가족이야기며 어릴적 성장기의 이야기를 해 주신적이 있습니다.
별 무리없이 자라고 박사학위를 받고 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엄청나게 힘든 어린시절을 지내셨더군요.
사진에 참 미남형이시고 키도 크신 아버님께서는 어려서부터 선천적인 청각장애셨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말도 못 하시구요.
지금도 장애를 가지신 분들이 어렵고 힘든 삶을 사시지만 30-40년전에야 말해 무엇하리
였을 것입니다.
주변에 멸시천대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말을 못해 불이익을 당한 일도 말로 다
못할 일일 것입니다.
이웃은 물론이고 형제자매들에게서조차 멸시와 천대를 받았다는 교수님의 어린시절~
본인도 어쩔 수 없는 벙어리자식 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라면서
한창 예민하던 사춘기시절에는 엇나가서 경찰서를 들락거릴 정도로 사고를
치고 다녔고, 세상에 복수하겠다는 일념으로 독을 품고 살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어느날 정신을 차리고 죽기살기로 공부해서 오늘날 우리의 교수님이 되셨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얼마나 속으로 울었었는지요.
지금은 우리교수님 가문에서 가장 잘 풀린 사람으로 우뚝 서 있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교수님의 부모님을 한번 뵙고 싶었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지만 그 고통의 세월을 보내시고 지금은 자랑스런 효자 아들로
잘 사는 교수님의 늠름한 모습
그리고 제자를 거느리고 부모님을 찾아 뵙는 교수님의 모습을 부모님께
보여 드리고 싶었지요.
과연 말은 못 하시지만 어찌나 마음 뿌듯해 하시는지 그 뿌듯함이 저에게도 전해 졌습니다.
둘만이 통하는 수화로 가르치는 제자라고 소개를 하자
아버님이 알아 들으시고 고개를 끄덕이십니다.
우리 교수님은 거의 매주 주말이면 부모님을 찾아 뵙는다고 합니다.
특별히 농사하는 부모님의 일을 거들지 않더라도 자랑스런 아드님이 결혼하여 잘 사는 모습
그리고 손주들의 재롱을 항상 보게 해 드리는 것이지요.
우리가 잘 하는 일이라고 효자시라고 말씀 드리면
손사레를 치면서 수줍게 이야기 하시죠.
일은 안 도와 드리고 부모님댁에 가셔서 일주일의 피로를 풀고 푹 자고 오는 것이 다라고
하지만 저는 압니다.
아버님께서 말로써 아들과 나누지 못하는 대화를 그렇게 얼굴을 보여 드리는 것으로
효도를 다하고 있으심을요.
어머님께서는 손님접대에 정신이 없으셧습니다.
저녁을 먹고 가라고 부엌에서 계속 계셔서
전주에 맛있는 비빔밥을 일부러 먹으러 왔다고 했더니
아드님에게 돈이 있느냐고 돈을 줄까하고 몇번을 물으셨지요.
아버님은 흐믓한 얼굴로 우리들과 함께 하셧습니다.
못 들으시지만 교수님이 어머니께 남편과 제가 부부라고 말씀을 드리자
아버님은 손짓으로 부부냐고 다시 물으시며 또 흐믓한 미소를 지으십니다.
갑자기 와서 무엇도 줄게 없다고 애타 하시기에 기르시는 콩나물을 달라고 말씀 드렸습니다.
콩나물 뿐만이 아니라 콩나물콩도 싸 주셨지요.
교수님의 부모님을 뵙고 나니 교수님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더 깊이 들었습니다.
늘 어려운 분들의 어려운 상황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때로는 불이익을 당하기도 하고 혼자 욕을 다 먹기도 하는 일들이
안타까왔는데, 그도 왜 그러는지 이해가 됩니다.
부모님과 작별을 하고 교수님이 우리를 데려간곳은 전주에서 유명한 전주비빔밥집입니다.
여러가지 반찬도 맛깔스러웠지만 비빔밥이 특별한 것은 ,
사진이 제대로 안 나왔지만 이 야채들 아래에 이미 1차 비빈밥이 들어 있었지요.
아주 맛있어서 모두 한그릇씩 뚝딱 했습니다.
먼곳까지 여행을 왔는데 그냥 들어가 자는 것은 여행지에 대한 예의가 아니겠지요.
밥 먹자마자 다시 간곳은 숙소근처에 있는 막걸리집입니다.
전주에 가면 막걸리를 먹어야 한다고들 했는데 이유가 있었습니다.
이곳에는 한주전자 막걸리를 시키면 안주종류가 이렇게나 많이 나옵니다.
밥을 괜히 먹었다싶은 밑반찬이 열 몇가지에 이번에는 김치누름적이 나왔습니다.
거기다가 동태탕도 한냄비 나왔지요.
두부김치며 다른 것들도 많이 나와서 얼마나 푸짐한지요.
제가 교수님께 막걸리 한잔 따라 드렸습니다.
존경의 잔이에요.
어릴적에 할아버지께서 제게 함부로 술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고 가르치셨어요.
부모님, 그리고 남편, 한 사람은 모르지만 그것이 스승님이 아니었을까요.
그래서 술을 잘 안따르는 편인데 오늘은 아무튼지 마음 먹었습니다.
전주 막걸리에 건배~
또 따르고 건배~
그렇게 전주의 밤이 깊어 갑니다.
처음 음식상을 볼 때에 누가 다 먹느냐고 혀를 내둘렀는데 돌아 올 때쯤에는 모든 접시가
다 빈접시가 되었다니 참으로 먹는 것은 대단합니다.
그렇게 전주의 밤은 깊어가고 오늘이 지나기전에 모텔로 와서 하루를 마감합니다.
내일의 일정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