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여름 학생들은 방학기간 이었을 때 였습니다.
저는 야간 당직이어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저녁 11시가 넘은 시간에
전화 한 통화가 와서 받아 보니까 늦은 시간인데 어느 병원앞에 학생이 쪼
그리고 앉아 있다는 내용이었고 걱정이 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 학생이 있던 장소에 자전거를 타고 가서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 보
니까 시내에서 약 15km 떨어진 곳에 사는 시골 중학교 2학년 남학생이 방
학기간 동안에 시내에 있는 학원을 다니는데 자기 엄마가 이빨이 아파 약을
사오라고 3천원을 줬었는데 학원수업을 마치고 나서 그 무렵에 학생들한테
아주 인기가 좋았던 오락실에 가서 오락을 하고 그 돈을 모두 써버려서 집에
를 가지 못하고 있다고 하더군요.
저는 그 학생을 사무실로 데리고 와서 집에 전화를 하여 학생의 어머니 한
테 설명하자 학원에 간다고 오후에 나간 아들이 오지 않아서 잠도 안자고 꼬
박꼬박 기다리고 있다고 하기에 저녁에 데리러 오시겠냐고 물어보자 버스도
다 끊어지고 갈수가 없으니 다음날 아침에 온다고 자연스럽게 말씀 하시는
말을 듣고 저는 지금처럼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많은 시절도 아니고 해서 태
워다 줄 교통수단도 없고 하여 그 학생을 이상없이 다음날 아침까지 아무일
없이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심적 부담도 있고 하여 너무 하시는 것 아닌가 하
는 생각도 들었지만 교통수단이 없는 것은 나하고 같은 처지여서 그런것이라
고 생각하니 충분히 이해가 되어 " 아드님을 숙직실에 재울테니 내일 아침에
오세요" 하고 전화를 끊고 잠자리에 들게 해주었습니다.
다음날 아침 6시 40분쯤 되었는데 어떤 아주머니 한분이 사무실로 들어 오시
는 것을 보니까 학생의 어머니였는데 고맙다고 여러차례 말씀 하시면서 아침
일찍 어디서 구입을 하셨는지 포장도 하지 않은 채 500원짜리 청솔담배 한 갑을
가지고 오셔서 저한테 건네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어린 아들한테 약 사오라고 주었던 돈을 철부지 아들이 써버려서 치통때
문에 밤사이에 잠도 제대로 못 주무셨을 것 같은 그 아주머니를 생각하면서 받
지 않으려고 하자 조그만 성의라고 말씀 하시며 기어이 저한테 주셔서 어쩔 수
없이 받았습니다.
왜 그렇게 미안하기도 하고 큰 선물을 받은 것보다 더 고맙게 생각 되었는지
지금도 그 아주머니를 생각하면 늘 가슴이 따뜻해져 오는 것 같습니다.
깊어가는 가을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바라보면서 마음이 다뜻하고 점잖으신
그 아주머니도 건강하시게 잘 살고 계실 것으로 생각하며 엄마의 약값을 소비
해 버리고 양심때문에 집에 가지 못하고 있는 그 학생은 지금은 의젓한 30대 초
반의 남아로 더 착하게 생활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첫댓글 주위에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모처럼 듣는 담배이름이 무지 생소하네요. 오래전에 고집스럽던 오빠가 태우던 진한담배(거북선?)이 정겨운것같은데, 대충 도라지, 아리랑, 솔, 이런것들이 담배이름이었지싶어요.
삶에서 보람을 찾는 한 부분입니다.모두가 그런 마음으로 산다면 청소년 탈선이 없을텐데...
빈지게님의 기억속엔 늘 따뜻한 이야기들이...^^ 시골의 소박한 정감이 느껴져요^^* 화이팅~!
회원님들의 따뜻한 댓글 감사합니다. 정말 그 아주머니는 넉넉하게 살지도 못하신 분이어서 약소 하나마 성의로 담배 한갑을 구입해서 들고 오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더 고마웠고 잊을 수 없고 기억에 남는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