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의 유대인 제국
-조너선 카우프만 지음/최파일 옮김/생각의힘 2023년판
역사를 즐기는 한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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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고 흥미진진한 놀라운 역사책으로, 이렇게 재미있게 읽어본, 그리고 잠시잠깐이긴 하지만 잔잔하고도 깊은 영감을 준 역사책은 처음이다. 20세기 전후 격랑의 세계사적 순간들을 헤쳐 온 어느 유대인 두 가문의 영욕을 상세하게 그린 논픽션이지만, 약 2백 년(1830~2013)에 걸친 시간과 서양과 동양을 아우르는 세계사적 공간이 엮어내는, 역사의 수레바퀴적 다큐멘터리가 주는 아우라가 마치 오랜 인간사의 수없이 많이 진행되어 온 반복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인간의 욕망이자 꿈의 실현을 위한 몸부림일 것이다. 그 실현 앞에서는 어떤 종교도, 이념도, 민족도, 국가도 한 순간에 무색해질 수 있다는 깨달음을 주고 있다. 우리가 역사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지는 순간이자 미래를 알 수 없는 인간의 최대 약점을 뛰어넘는 감동을 안겨주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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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미국의 저널리스트이자 2015년 퓰리처상 수상자인 ‘조너선 카우프만’이 쓴 논픽션으로, 책 후미에 밝힌 그의 지난했던 저술과정을 읽어보면 수많은 시간 작가가 들였던 공로에 그만 숙연해지고 만다.
자료 수집을 위해 방문한 나라와 지역, 그리고 인터뷰한 수많은 사람들은 이 책에서 다루는 시간과 공간의 영역만큼이나 방대했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매순간 그 자료의 역사성으로 말미암아 정확성에 기울였을 작가의 세심함과 그 모든 자료를 모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낼 때의 집중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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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유명한 문학 작품만큼이나 많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다. 4대에 걸친 가문의 유업 계승과 가족 간의 끈끈한 유대감, 2백 년의 역사적 기록물이 주는 시간적 거리를 가뿐히 뛰어넘어 바라보는 역사적 연대감, 어떤 특정한 주제로 역사적 시공간을 재구성하고 편집해내는 경이로움, 시대와 공간을 넘어서도 변함없이 이어지며 재현되는 인간들의 소소한 욕망들(화려한 주거와 편의 시설, 훌륭한 성찬과 파티, 남녀간의 사랑, 어린이들을 위한 교육, 고유 종교를 지켜내며 이역만리 타국에서도 이어가는 문화 그리고 부정부패들)이 비추는 역설적 안온함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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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와 봄베이, 상하이를 거쳐 홍콩, 호주, 유럽 등 전 세계에 걸쳐 굴지의 재산을 일군, 서순과 커두리 두 유대인 가문의 세계 근대사와 함께한 이야기를 다룬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은 역사를 들여다 볼 때마다 느끼지만, 인간들의 허망한 꿈을 보듯, 마치 아스라한 꿈을 꾸는 것 같게 만든다.
그 안에는 어떤 필연도, 의지도 개입할 수 없는, 과거 수많은 시간 속에서 끊임없이 해왔듯 역사의 도도한 물결만이 인간 세상을 휩쓴 채 소용돌이치며, 흔적을 지워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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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은 지난 일로 묻어둡시다.
(이 책 《상하이의 유대인 제국》의 마지막 부분에서, <2002년 영국과 중국의 재무부 경제회담에서 중국 측 관계자가 한 말>)
이 책의 마지막 말미에 나오는 묘한 여운의 이 말을 끝으로 책을 덮지만 허망함에 대한 아쉬움이 살짝 묻어나오는 것은 숨길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