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E는 1987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공랭식 열교환기를 생산하기 시작해, 현재는 세계 시장 1위
로 올라선 중견기업이다. KHE의 기술력은 국내외에서 인정받고 있다. 있는데 지난해 매출액
1,300억 원 가운데 80%에 달하는 1,000억 달러를 수출로 일궈냈다. 세계 3대 석유 메이저 회
사 중 한 곳과 장기 공급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을 정도다.
기본 설계 디자인이 가능한 회사
열교환기는 고온 액체와 저온 액체 2개의 유체 사이에서 열을 이동시키는 장치를 말한다. 특
히 플랜트에서는 제품을 생산할 때 중간 단계 물질이나 원료를 원하는 온도만큼 떨어뜨려 후
속 화학반응이 가능하도록 만든다. 정유플랜트, 석유화학플랜트, 가스플랜트 등 석유화학 공장
에 반드시 필요한 장비다. 현재 미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선진국 일부 국가만이 자체 기술력
으로 세계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KHE는 다양한 열교환기 가운데서도 공랭식을 전문으로 제작하는 기업이다. 물 대신 공기를
사용하는 방식으로, 용수 공급 부담이 없어 특히 중동 등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송희종 대표
는 “전 세계를 모두 합쳐도 공랭식 열교환기를 생산하는 업체는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이며,
그만큼 생산하기 어려운 아이템”이라면서 “하지만 저희 회사는 일반적인 디테일 설계뿐 아니라
베이식 설계까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예를 들어 어떤 유체를 어느 정도 온도로 만들고 싶어 하는 고객사가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볼
까요. 그러면 저희는 그 고객사가 보유한 공장에 맞춰 기본 설계 디자인부터 시작하는 겁니다.
이 공장에는 공랭식 몇 대를, 어떻게 배치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지요.” 기본 설계에 이어 자
재를 매입, 제작까지 완료한 이후에도 열교환기에 대한 품질, 성능 등을 모두 KHE가 책임지는
방식이다. 이 정도의 경쟁력을 가진 회사는 전 세계에서도 몇 개 안 된다는 것
“좀 더 자세히 설명 드릴까요. 저희 공랭식 열교환기는 바람을 이용합니
다. 모터가 샤프트를 통해 팬을 돌려 바람을 만들고, 이를 번들(bundle)
에 통풍시키면 번들 안으로 유체나 가스가 지나가면서 열을 식히는 원리
입니다. 저희는 열교환기를 설계할 때 어떤 크기의 팬을 사용할 것인가
부터 계산해냅니다. 일종의 패키지 플랜트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지요.”
모든 공정은 군산 공장에서 해결특히 KHE는 모든 공정을 군산 공장 한
곳에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가장 큰 강점으로 꼽는다. 본체를 지지하
는 철 구조물도 자체 생산하고, 녹이 슬지 않게 도금하거나 페인팅을 하
는 것도 군산 공장 안에서 이뤄진다. 군산 공장이 몇 만 평에 달하는 이
유를 알 것 같았다.
모든 공정을 한곳에서 해결하는 이유는 바로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
다. 외주를 주면 그만큼 가격이 불리해지는 까닭에 자체적으로 해결해
야 한다는 것이 송 대표의 지론이다. 콤팩트한 기본 설계와 일관된 프로
세스라야 최고의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는 논리다.
실제로 KHE의 기본 설계 디자인팀은 9명이나 되고 설계 인원을 모두
합치면 50여 명에 달한다. 전체 직원이 300여 명인 것을 감안할 때 설계
에 그만큼 비중을 둔다는 방증이다.
품질은 말할 것도 없다. QC 전담 직원이 19명이나 된다. 되기 때문에 품
질 관리는 말할 것도 없다. 따라서 모든 공정을 직접 관리하며 최종 품
질을 체크하고 있다. 송 대표는 “오늘도 품질과 관련해 상의할 것이 있
어서 공장장과 비를 맞아가며 논의한 끝에 곧바로 조치해 문제를 해결
했다”고 말했다.
한편 자체 설계한 13m 길이의 도금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길다. 도금
해야 하는 제품을 단 한 번에 담글 수 있어 주위의 대기업들도 KHE의
도금로를 자주 이용할 정도다.
“대부분 회사의 도금로는 6~8m, 이보다 길다고 해도 10m짜리가 최대
입니다. 그런데 저희 회사의 도금로 길이가 왜 13m인지 아십니까? 철강
회사에서 들여오는 열교환기의 사이드 프레임 최장 길이가 12m입니다.
만약 도금로가 이보다 짧으면 한 번에 도금을 할 수가 없게 되는 거죠.
품질 등에서 자칫 문제가 생길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겁니다.”
고객 대부분이 글로벌 대기업
경쟁력이 뛰어난 만큼 대규모 프로젝트 수주에서도 눈에 띄는 실적을
거두고 있다. KHE는 현재 현대건설, LG건설, 삼성엔지니어링 등 국내
엔지니어링 사를 비롯해 스남프로게티(이탈리아), 페트로팩 인터내셔
널(영국), 파슨스(영국), 켈로그(영국), 크배너(네덜란드), 테크 닙(프랑
스), 핼리버튼(미국)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엔지니어링 건설회사의 공
사들을 많이 따 냈다.
송 대표는 최근 들어 가장 규모가 컸던 수주로 UAE 아랍
에미리트 프로젝트를 꼽았다. 공랭식 열교환기가 800대 정
도 들어가는 대규모 프로젝트로, 수주액만도 7,000만 달러
(763억 원)에 달했다. 총 13개월에 걸쳐 이뤄진 UAE 아랍
에미리트 프로젝트는 지난해 10월에 마무리되어 1억 달러
수출 달성에 큰 역할을 했다.
대형 프로젝트 이외에도 KHE의 기술력을 시험하는 다양
한 상황에 종종 맞닥뜨린다. 예를 들어 러시아나 극동지방
은 평상시 기온이 영하 50도까지 떨어진다. 그런 극한 상
황에 설치되는 열교환기는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자재를 사
용해야 한다. 이렇듯 세계 각국을 다니다보면 어려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로 극복해나가
고 있다. “파푸아뉴기니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저희가 그
나라에도 열교환기를 수출했는데 가장 큰 문제가 육로 운
송이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제품을 다 만들어 여러
조각으로 나눈 다음 컨테이너에 실어서 헬기로 운송했습니
다. 그리고 현장에 도착해 저희 기술자들이 다시 재조립을
했어요. 기술력이 없으면 하기 힘든 공사였습니다.” KHE
는 1969년 보일러용 범용 열교환기 제조 메이커에서 출발,
1983년부터 제철소, 발전소, 석유화학플랜트용 특수교환
기 제조회사로 탈바꿈했다. 사업 초기만 해도 기본 설계와
관련한 노하우가 많지 않았다. 다행히 미국국방연구원에서
일하는 기술자의 도움을 받아 하나하나 기술을 습득해나가
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견적의뢰서를 받으면 미국에서
기본 설계도를 만들어 와야 할 정도였지만 불과 몇 년 만에
빠른 속도로 기술력이 성장했다.
1987년에는 일본의 미쓰비시중공업과 기술 제휴로 제휴를
함으로써 공랭식 열교환기 개발을 시작했다. 송 대표는 “공
랭식 열교환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GS칼텍스로부터 기술
도입과 자금 조달 등 많은 지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KHE
는 GS칼텍스의 협력회사가 아니라 열교환기 생산부서”라
고 말할 정도다.
KHE가 자체 설계 능력을 확보해 100% 국내 기술로 제품
을 탄생시킨 것은 1993년.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시장
개척에 나서 차근차근 해외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2011년 원스톱 프로세스로 정비
송 대표가 열교환기와 인연을 맺은 것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에 입사하면서부터다. 3개월 만에 해외수주팀 사원
으로 인도네시아에 따라가게 된 것. 불과 며칠간의 해외 출
장길에서 34만 달러의 티타늄 열교환기를 수주할 수 있었
다. “햇병아리에 불과했지만 수주를 따냈을 때의 짜릿한 느
낌은 아직도 생생합니다. 해외 영업이 주는 쾌감에 맛을 들
이게 된 거죠. 그 이후로도 그런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
고 20년이 넘게 흘렀네요. 허허….” 그는 IMF 때 대기업에
서 KHE로 자리를 옮겼다. 직급은 올랐지만 연봉이 1,000
만 원이나 깎이는 조건이어서 고민이 컸다. 그랬지만 “중소
기업이지만 미래가 밝은 회사”라는 지인의 말을 믿고 결단
을 내렸다. 1년 만에 영업부장으로 승진했고 회사도 안정
적으로 성장해나갔다.
그랬던 KHE의 성장 날개가 꺾인 것은 2008년. 700억 원에
달하는 키코(KIKO, Knock-In Knock-Out) 손실 때문이
었다. 800억 원대의 매출과 12% 수준의 영업이익에도 불구
하고 KHE는 금융기관 공동관리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KIKO에 가입한 것을 사전에 알았다면 제가 결사적으로
말렸을 겁니다. 영업에만 몰두하다보니 사태가 터지고 나
서야 통보를 받았습니다.”
새로운 경영진과는 영업 면세어 면에서 의견이 잘 맞지 않
았다. 상무로 재직하던 그는 다른 회사로 자리를 옮겨야 했
다. 다른 회사에서 보일러 콘덴서 영업으로 잘나가던 그가
‘구원투수’로 다시 돌아온 것은 2011년 5월이었다.
“영업이 아닌 금융 전문가들이 경영을 맡으면서 좀처럼 성
과를 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를 다시 부른 것도 아마그래서일 겁니다. 당시 저는 다른 회사에서 좋은 대우를 받고
있었던 터라 KHE의 경영을 맡아달라는 제의를 여러 차례 거
절했지요.”
그러다 회사를 다시 살려야겠다는 책임감으로 CEO를 맡고 보
니 회사의 사정이 생각보다 심각했다. 불과 1년 만에 ’엉망진
창’(송 대표의 표현)이 되어 있었다. 품질이 떨어진 것은 물론이
고 납기도 못 맞춰서 고객사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정도였다. 송
대표는 우선 내부 직원 다독이기부터 시작했다. 높은 이직률에
서 알 수 있듯이 회사에 맘을 붙이지 못하는 직원들에게 안정감
을 주기 위해 기숙사를 짓기 시작했다. 2011년 9월에 완공한 기
숙사는 1인 1실로 130여 명 입주가 가능해 130명 정도가 입주
할 수 있는 크기라 지금도 이 회사의 자랑거리다.
한편으로는 외주 물량을 모두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만들
고 제작 프로세스를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조정했다. 수만 평의
공장 내부를 헤더 박스(Header Box) 공장, 철골 공장, 조립 공
장, 도장 공장, 도금 공장, 검사부 등 효율적으로 재배치한 것도
송 대표의 작품이다. 공장 내부에서는 지게차 대신 크레인과 직
접 제작한 대차(貸車)를 사용함으로써 경비를 절감했다.
직원과 행복 공유가 최대 꿈
대외적으로는 고객 회사를 찾아다니면서 예전 거래를 회복해
나갔다. 고객사 담당자들에게 비행기 표까지 끊어주면서 다시
한 번 공장을 방문해달라고 사정했다. 이 같은 노력으로 신뢰
가 차츰 회복되기 시작하면서 지난해 매출이 1,300억 원으로
늘어났고 흑자폭도 커졌다. 올해 매출은 1,400억 원 정도로 내
다보고 있으며, 수출 역시 지난해와 같은 비중으로 증가할 것
으로 예상하고 있다.
세계 경기가 나쁘다지만 그는 “세계 경기가 우리와 무슨 상관이
냐”고 말한다. “경기를 탓하지 말고 세계시장을 모두 뒤져서라
도 우리 직원이 먹고 살 수 있도록 수주를 해와야지요. 물론 경
기가 좋으면 좀 더 편하게 물량을 확보할 수 있겠지만, 상황 탓
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가동률을 적정하게 유지
하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합니다.” KHE는 내년 4월까지는 공장
풀가동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수주하는 물량의
생산 예정일은 내년 4월 이후일 정도로 경기의 영향을 그다지
받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일이 곧 취미’라는 송 대표는 대표이
사실에도 소파 대신 회의탁자를 들여놓을 정도로 일을 즐긴다.
집이 서울인 그는 숙소를 얻어 생활하면서 하루 종일 직원들과
머리를 맞댄다. 손님이 왔을 때를 제외하고는 하루 3끼를 모두
회사 식당에서 해결할 정도다. ‘직원들이 불편해 할까봐’ 주로
식사시간이 끝나기 바로 전, 식당에 사람이 드물 때 이용한다.
숙소에도 한번 들어가면 가급적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이 역시
좁은 군산 바닥에서 직원들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혹 그들이 불
편할까봐서란다. 일 외에 다른 취미는 반신욕과 헬스. 헬스라
고 해봐야 숙소에서 7만 원짜리 중고 자전거를 하루에 30분 정
도 타는 것이 전부다. 주말이나 돼야 서울로 돌아와 한강까지
자전거를 타고 나간다.
사무실 한쪽에 ‘진인사 대천명’이라는 글귀를 붙여놓은 송 대표
의 목표는 “직원들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 한 가지다
“열심
히 일해서 좋은 가격을 받아 수익이 남으면 직원들에게 돌려줘
야지요. 저희 직원들이 작업복 가슴에 달린 KHE 로고를 자랑
스러워하도록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