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불교 문화유산
금동 보살입상 / 청도, 통일신라 8세기.
금동 보살좌상 / 예천 와룡동, 고려 말 ~ 조선 초 14~15세기
통일신라시대 때 대승불교가 전래되면서 보살이 등장. 보살은 온전한 깨달음을 얻은 것에 그치지 않고 자비를 실천.
보살상은 보관, 목걸이, 팔찌 등으로 화려하게 꾸며졌다.
금동 관음보살좌상 / 상주, 고려 말~조선 초 14~15세기
관음보살은 부처의 자비심을 나타내며 관세음보살의 줄임말이다.
삼국시대엔 주로 화불(化佛,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모습을 바꾸어 나타난 부처)로 보관을 쓰고 정병을 든 모습.
고려시대엔 중국 원나라와 티베트 불상 양식의 영향을 받아 화려한 모습이다.
금동 불입상 / (좌) 칠곡, 통일신라 8세기 (중) 김천, 통일신라 8세기
금동 약사불입상 (우) / 대구 도동, 통일신라 8세기
목조 아미타불좌상 / 칠곡 천주사, 조선 1482년
1910년 조사 때 칠곡 가산성 천주사에 있었다고 한다. 1912년 4월 이왕가박물관이 일본인에게 구입하여 보관.
복장 기록(전해지지 않음)에 따르면 1482년(조선 성종 13) 다밀지의 정수사에서 삼존(아미타.관음,지장)으로 만듦.
1729년(영조 5) 칠곡 팔공산 대장사 운수암에서 고쳤고, 어느 때인가 칠곡 천주사로 옮겨짐.
나무로 만들고 표면은 옻칠과 금박을 함.
얼굴과 손 크기에 비하여 몸이 날씬하다. 날씬한 몸매를 가진 부처상을 만났다.
석조 비로자나불입상 / 영양, 통일신라 9~10세기
소조 나한상(?)
나한상 / 김천, 고려
금동 반가사유상 / 안동 옥동, 신라 7세기
고구려와 백제 반가사유상에 비해 모양이 조금 다르고 단순한 모습이다. 구리 79%, 주석 9%, 납 9%
금형틀을 만들었나? 내 생각엔 이런 모습으로 동으로 주조한 후 조각한 것 같다.
금동 반가사유상 / 김천 양천동, 신라 7세기
반가사유상은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 태자의 모습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중국에서 하나의 보살 형식으로 확립, 우리나라에서는 6~7세기에 유행하였다.
이 상은 얼굴에 표정이 없고, 몸체에 비해 머리와 보관이 큰 편. 옷주름은 도식적이며 사유의 자세가 조금 어색하다.
구리 82%, 주석 7%, 납 7% 등.
금동 불좌상 / 문경, 통일신라 7세기
범종
보암사명 범종 / 서울 진관내동, 고려
청동 범종 / 포항 영일, 고려
기축명 청동 범종 / 예천 선리, 고려
고려 청동 범종 / 안동 신세동, 고려
향완
금동 당간용두 / 보물, 영주 풍기, 통일신라 9세기
국립대구박물관 입구에 높은 당간이 서 있다. 그 지주 끝이 이 용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