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꽃미남' 열풍이 불더니 '꽃중년'을 거쳐 이제는 '꽃할배'의 인기가 폭발적이다. 노년 배우 네 명의 배낭여행을 다룬 한 예능 프로그램은 남녀노소를 아우르는 즐거움의 아이콘이 되었다.
몇 십 년 시간을 되돌리지 않더라도 우리네 할아버지의 모습은 동네 어귀에서 장기를 두든가, 집에서 손주를 돌보든가, 누워서 TV를 보는 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을 보면 일흔이 훌쩍 넘은 연기자가 막내 취급을 받으며 커피를 타 오고, 무거운 짐을 옮기며, 때론 여든인 연기자 앞에서 어리광까지 부리며 더운 여름의 유럽을 누빈다.
이런 모습은 우리가 이제 고령화 시대를 넘어 그야말로 '백세 시대'에 살고 있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기대 수명은 2011년 기준 남자 77.6세, 여자는 84.5세로 여자의 경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6위를 기록했다. 1970년과 비교하면 20년 정도 수명이 늘었다고 볼 수 있고, 2030년에는 90세를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오래 산다고 좋은 것일까. 산다는 것에 별다른 의미도 찾지 못하고 자리에 누워 하늘나라로 올라갈 때만 기다리는 노년기는 생각만 해도 끔직하다. 최근 미국에서 국가별 장애 보정 수명을 발표했는데, 한국인은 2010년 기준 기대 수명 79.7세에 반해 장애 보정 수명은 70.3세로 나타났다.
장애 보정 수명이란 질병에 걸리지 않고 건강하게 사는 기간이란 의미로 일반적으로 '건강 수명'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한국인은 평균 10년 정도 병치레를 하다가 죽음을 맞게 된다는 뜻이다. 많은 노인들은 '9988234'을 원한다고 한다. 99세까지 팔팔(88)하게 살다 2~3일 앓고 죽는다는 우스갯소리다. 그렇다면 어떻게 99세까지 팔팔하게 살 수 있을까.
|
ⓒcjenm.com |
이탈리아 연안에서 200킬로미터 떨어진 사르데냐 섬. 이 섬에서도 특히 누오로 지역은 세계에서 남성 기대 수명이 가장 높고, 전체 인구당 100세 인구가 미국의 약 10배에 달하는 장수 마을이다. 100세가 넘는 할아버지가 오토바이를 타고 일을 나서며, 도끼로 나무장작을 패는 일을 한다.
이 지역은 척박한 지역이라 청동기 시대부터 매일 가파른 산을 오르내리며 가축을 키우는 목동이 살았다. 이들의 일상생활은 '규칙적인 저강도 신체 활동' 그 자체라 볼 수 있다. 주식으로 이스트 없는 옥수수 빵과 통밀 빵을 먹고, 잔디를 먹여 키운 가축에서 얻은 치즈를 먹는다. 사료를 먹여 키운 가축의 치즈에 비해 이곳의 치즈에는 오메가3가 상당히 풍부하다. 또 다른 곳의 와인보다 폴리페놀이 무려 3배나 많이 함유된 칸노나우 와인을 즐겨 마신다.
누오로 지역 사회의 특징 중 주목할 만한 것은 노인을 대우하는 전통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전통은 후세대가 노인의 지혜를 배워서 계승할 수 있도록 돕는다. 또 이렇게 공동체로부터 존중 받는 노인은 그 자체로 심신의 건강이 고양된 삶을 살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전통은 노인의 기대 수명을 약 4~6년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중국 전체 100세 인구의 약 4분의 1이 거주하는 실크로드의 출발지 신장성은 어떤가? 신장성은 '과일의 고향'으로 불린다. 일교차가 심하고 햇빛이 좋아 과일의 색이 진하고 당도가 높기 때문이다. 신장성의 위구르 사람은 과일과 함께 요구르트를 많이 먹으며, 저녁을 일찍 먹고 충분이 소화된 후에 잠자리에 들고 음주와 흡연 경험이 거의 없다.
위구르 사람 중에는 게으른 이도 없다. 100세가 되어서도 매일 일하고, 사냥과 투견을 즐기며, 세상만사를 낙천적으로 생각한다. 또 매일 평균 2시간 30분 이상 절하는 이슬람 예배를 올리는데, 이것은 숨찰 정도의 유산소 운동이 될 뿐만 아니라 근육을 강화시키는 근지구력 운동을 병행하는 효과도 가져 온다.
돌궐 유목민의 전통이 전해지는 위구르 족에서는 연장자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과 존경이 다른 어느 민족보다 강하다. 위구르 사람의 이러한 식습관과 문화는 곧 장수로 이어졌다.
이들이 건강하게 장수하는 이유는 각종 매스컴과 전문가들이 추천하는 방식과 대부분 일치한다. 식이 섬유가 풍부한 정제되지 않은 곡식류, 칼슘과 질 좋은 오메가3 지방산이 풍부한 치즈 그리고 항산화식품으로 각광받는 폴리페놀이 다량 함유된 와인을 즐겨 먹고, 매일 등산과 산책을 일삼는 누오로 노인들. 철저한 이슬람 문화 속에서 신선한 과일과 요구르트를 많이 먹고, 노동을 신성시하며 하루 종일 몸을 움직이는 위구르 노인들.
기대 수명 이야기를 다시해보면, 우리나라 남성 기대 수명은 OECD 국가 순위에서 20위권 밖이다. 여성과의 격차가 매우 크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 과도한 음주와 흡연 그리고 운동하지 않는 습관 등 이유는 여러 가지다. 그러나 그보다도 50~60세면 떠나야하는 직장과 함께 가장으로서의 존재 이유가 사라져버리는 것이 더 큰 이유가 아닐까.
한국의 노년들이 <꽃보다 할배> 출연자를 부러워하는 것은 은퇴 후 버려지는 삶이 아니라 나이가 들어도 계속 목표를 가지고 활동하는 모습 때문이다. 누오로와 위구르 노인의 공통점도 내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이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여 그 일을 멋지게 해내고 있으며 자손들에게 전통의 생활습관을 물려주고 있다는 것이다.
건강하지 못하면 몸을 움직일 수 없고 일을 할 수 없다. 즉 노년에도 일을 하려면 꾸준히 몸을 움직여 건강해야 한다. 그래야 은퇴 후에도 신성한 노동의 가치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 피자나 햄버거 대신 구수한 뚝배기와 싱그러운 산나물의 참 맛을 자식들에게 전수할 수 있을 것이다.
꽃할배로 100세까지 멋지게 살려면 우리도 누오로와 위구르 할배들 흉내를 조금이나마 내며 살아야 하지 않을까.
/우진희 동아대학교 교수
자료원:pressi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