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티비를 보다가 ‘채널A’에서 보도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황무성 사장의 사표를 강요하는 녹취록을 보았습니다.
이 녹취록을 보다보니, 예전에 전두환 보안사사령관이 최규하 대통령을 찾아가서 정승화 계엄사령관 체포를 승인해달라는 협박, 그리고 최규하 대통령의 사퇴를 강요했다는 김정렬 전 대통령 비서실장의 모습 등이 드라마의 한 장면으로 떠올랐습니다.
요즘 이 녹취록이 여러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녹취록”은 ‘후에 재생할 목적으로 취해 둔 음성이나 화상 따위를 법정에 내거나 자료로 보관하기 위하여 문서화한 것’이라고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보통은 억울하다는 사람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증거하기 위해 녹취록을 만들 것입니다. 지금 대장동게이트의 녹취록이 세 번째 등장했는데 과연 이것이 어떤 역할을 할지는 더 두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2015년 성남도시개발공사(이하 공사) 황무성 전 사장의 사퇴를 압박한 녹음 파일 속에 등장하는 유한기 현 포천도시공사 사장(당시 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의 발언 배경에 대한 의문이 커지고 있다. 유씨는 당시 정진상 당시 성남시 정책실장 등을 언급하며 황 전 사장에게 사직서를 내라고 했다.
“지휘부 전전긍긍”…사표 압박 미스터리
25일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녹음 파일에 따르면 2015년 2월 6일 당시 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었던 유씨는 황 전 사장 집무실을 찾아 당일 사표 제출을 강요했다. “사장님이나 저나 뭔 빽이 있습니까. 유동규가 앉혀놓은 것 아닙니까”라면서다.
거부 의사를 밝히는 황 전 사장에게 유씨는 “이렇게 버틸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황 전 사장이 “누가”라고 묻자 유씨는 “지휘부가 그러죠”라고 답했다. 유씨는 “사장님은 너무 순진하다”며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황 전 사장이 답답하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황 전 사장은 “당신이 엄청난 역할을 맡았구나. 정 실장이나 유동규가 직접 말은 못하겠고…”라고도 했다.
이 녹음 파일에서 유씨는 “시장님 명을 받아서 한 일” “시장님 얘기입니다” 등의 말도 했다. 당시 성남시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다. 그러나, 언급된 ‘명’이 무엇인지, 발언의 맥락이 무엇인지는 나오지 않는다.
공사 안팎에서는 황 전 사장과 유동규 전 본부장이 업무 문제로 자주 부딪혔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공사 관계자는 “유 전 본부장이 공사를 자기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면서 개발 사업 등을 잘 알았던 황 전 사장과 마찰이 잦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시장실이 2층에 있다는 이유로 ‘2층 사장’이라고 불렸는데, 유 전 본부장이 2층 사장에게 말해서 황 전 사장을 내쫓아도 된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말하고 다녔다”고 주장했다.
성남도개공 2인자에서 포천도시공사 사장으로
공사에서 유 전 본부장은 ‘유원’으로, 유한기씨는 ‘유투’라고 불렸다는 게 공사 관계자들 전언이다. 각각 공사의 일인자·이인자라는 뜻이다. 유 전 본부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유한기씨는 2011년 성남시설관리공단에서 유 전 본부장이 위례신도시·대장동 개발을 추진했던 기술지원TF단의 단장을 지냈다. 개발사업본부장을 거쳐 공사 퇴직 후에는 포천시시설관리공단 이사장과 포천도시공사 사장을 차례로 맡았다.
그는 공사 개발사업본부장이던 2015년 3월 화천대유자산관리(화천대유)가 자산관리사(AMC)로 포함된 컨소시엄을 우선협상대상자로 공사가 선정할 때 1차 절대평가에 정민용 당시 전략사업실 투자사업팀장과 김문기 개발사업1처장과 함께 들어가기도 했다. 이현철 공사 개발사업2처장은 지난 6일 성남시의회에서 “‘플러스 알파(초과 이익)’를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을 수기로 써서 개발본부장(유한기)에게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최종 지침서에는 민간 개발자에게 과도한 이익이 쏠리는 걸 방지하는 ‘초과 이익 환수 조항’이 빠졌다.
유씨는 이날 포천도시공사로 출근하지 않았다. 최근 일주일간 회사에 한 번도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포천도시공사 관계자는 “사장님은 공사 내 사업소 순찰을 나갔다”며 “최근 한 달 동안 연차 몇번을 썼던 것을 빼고는 정상 출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와 근무 경험이 있는 공사 관계자는 “황 전 사장과 유한기씨는 한신공영 출신으로 과거 같은 회사에서 근무했다. 유씨 추천으로 황 전 사장이 공사 사장으로 왔다”며 “황 전 사장 때문에 대장동 사업이 뜻대로 진행되지 않을 것 같자 ‘네가 추천했으니까 네 손으로 걷어와’라는 뜻에서 유씨에게 사직서를 받아오게 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이 후보, “황 전 사장 그만둘 때 아쉬웠던 기억”
검찰은 지난 24일 황 전 사장을 불러 사퇴 압박을 받은 구체적인 경위 등을 물어봤다고 한다. 황 전 사장은 2015년 3월 3년 임기의 절반 정도를 남긴 채 물러났다. 이후 대장동 개발 사업은 유 전 본부장이 사장 직무대리 자격으로 이끌었다.
이재명 후보는 이날 지사 사퇴 기자회견 후 기자간담회에서 정 전 실장이 사퇴 종용 배후로 거론된 것에 대해 “대부분 전혀 사실이 아닌 것 같다”며 “황 전 사장이 그만둘 당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앞서 정 전 실장은 전날(24일) 중앙일보에 보낸 문자메시지를 통해 “누구와도 황 사장 거취문제를 의논하지 않았고, 성남시 실·국들 10여개의 산하기관의 공약 사업에 관여하지만, 세부적 내용에는 개입하지 않는다”며 관련 의혹을 부인했다.>중앙일보, 채혜선, 박건 기자
우리 사회에서 쓰는 말 중에 ‘바지사장’은 ‘회사의 경영에 참여하지 않고, 운영하는 데 필요한 명의만 빌려주고 실제는 운영자가 아닌 사장’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실권이 없는 이름만의 사장을 뜻하는 것입니다.
바지사장의 어원은 크게 두 가지 설로 나뉘는데, 총알을 대신 받아준다는 의미에서 총알받이(받이 → 바지) 설과 어리석고 만만한 사람이라는 의미의 핫바지(→ 바지) 설이 있다고 합니다. 무동력선을 뜻하는 영단어 Barge(바지+선)에서 유래됐다는 설도 있는데 무동력선처럼 실권은 없이 예인선을 따라간다는 뜻에서 온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지사장을 물러나게 만드는 그 아랫사람의 협박을 보면서 예전 전두환 시절 드라마가 떠올라 참 씁쓸합니다.
時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