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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성호 차장대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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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정연주(鄭淵珠) 사장은 원래 대타(代打)로 출발했다. 노무현 정권 출범 직후 그 자리의 첫 임자는 서동구(徐東九)씨였다. 그는 지난해 4월 KBS 사장에 선임됐으나 11일 만에 초단명으로 물러났다. 무심코 사석에서 지인에게 내뱉은 말이 화근이 됐다. 그는 “(내가 대통령에게) 조·중·동의 공세가 대부분 여론을 잘못 끌고 있다면 방송이 왜곡된 여론에 바른 물꼬를 터줘야 개혁의 단초가 잡히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이 나에게) ‘방송쪽을 맡아달라’고 말하더라”고 말했다가 물의를 빚었다. 편파성·당파성 이미지를 심게 한 이 발언들로 인해서 그는 KBS를 떠나야 했다.
그런데 후임 정연주 사장은 아예 사석이 아닌 공석에서 공영방송 리더로선 부적절한 발언들을 해왔음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정 사장은 8월 19일 시청자위원회에서 “최근 1라디오 시사 프로그램에서 반개혁적인 경향이 늘고 있다는 부분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지적해달라”고 주문했고, KBS 라디오본부장은 “그런 진행자는 이번 개편에서 전부 교체할 예정” “패널 선정에도 신중을 기하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탄핵 방송 때 편파성 비판이 일자 여론조사를 내세워 변명하던 KBS였건만, 최근 논란 중인 국가보안법은 ‘유지’ 여론이 훨씬 높은데도(TN소프레스 57%:33 %) ‘시사투나잇’이란 프로그램을 통해 ‘국보법 존치’ 판결을 한 대법원을 일방적으로 비판했다. 정권만 쳐다보는 ‘고무줄 원칙’인가.
경영합리화와 관련해서도 ‘문제발언’은 이어진다. 정 사장은 7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에 나와 KBS 정년퇴직 예정자 여행 경비로 1억원을 쓴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 했고, “국민세금을 써도 된다는 뜻이냐”고 물으니 “그렇다”고 답했다. KBS의 방만한 경영을 지적한 감사원 보고서가 공개돼 비판받은 지 석 달여인데, 정 사장은 벌써 이를 잊은 것일까.
정 사장을 견제해야 할 KBS 이사회의 이종수(李鐘秀) 이사장은 지난 6월 23일 이사회에서 한국방송광고공사에 대해 광고를 더 달라고 압력을 넣기 위해 항의 방문을 하자며 “KBS 카메라도 쫓아가서, 일단 방송하고 안 하고는 나중 문제이고, 찍으면서…그것도 하나의 압력수단이니까 그렇게 정책기획센터에서 해주세요”라며 상식 이하 지시를 내렸다고 한다. 임헌영(任軒永) 시청자위원장은 정 사장의 ‘반개혁적 라디오 진행 비판’에 맞장구치고 나설 정도니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공영방송의 공정성·불편부당성을 강조하고, 시청자의 이익을 대변해야 할 사람들이 ‘코드’만 맞추려 하고, 자리 때문인지 공석에서조차 정권을 의식한 듯한 발언들을 해대니, 지금의 KBS를 누가 ‘국민의 방송’으로 인정하려 하겠는가.
정 사장은 최근 일부 신문·잡지와의 인터뷰에서 KBS와 자신을 향한 비판에 대해 ‘병든 사람들이 쏟아내는 병든 언어’라고 독설을 퍼부은 적이 있다. 과거 한겨레 논설주간으로 있을 때도 ‘조폭언론’ ‘불량제품’ 등의 자극적 단어로 다른 주요 신문들을 공격했었다.
정연주 사장은 지금 어떤 이념적 지향을 보일 수 있는 한 민간 신문사의 간부가 아니라, 이 나라 기간 공영방송사의 사장이다. KBS의 비전까지 제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공정성 유지와 경영 합리화 실현을 위해 시늉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