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속의 한국사]
설날
정부 수립 후 제5공화국까지 공식 설날은 1월 1일이었죠
유석재 기자 기획·구성=윤상진 기자 입력 2025.01.02. 00:30 조선일보
2025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그런데 ‘설날’은 오는 29일로 4주 뒤예요. 표준국어대사전은 설날을 ‘정월 초하룻날’로 풀이하고 있습니다. 어? 그런데 정월 초하룻날이면 1월 1일, 그러니까 어제 아니었나요? 그런데 달력을 자세히 보면 이날엔 ‘신정’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신정은 뭐고 설날은 뭔가요? 좀 설명이 필요한 얘깁니다.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제야의 종 타종 행사가 열렸어요. 행사엔 시민 대표 9명과 서울시의 상징 캐릭터 해치가 참여했어요. /뉴스1
양력설 말고 음력설이 또 있다고?
“쟤들은 왜 지금 한복을 입고 다니는 거예요?”
제4공화국(1972~1981) 후반기였던 1979년 1월 말, 이렇게 할머니께 여쭤 본 어린이는 바로 필자였습니다. 국민학교(지금의 초등학교)에 다니던 저는 동네에서 몇몇 아이들이 꼬까옷을 입고 거리를 다니는 걸 보고 고개를 갸우뚱거렸어요. 지금도 보통 그렇지만 그 옷은 설날이나 추석 같은 명절 때만 입는 것으로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뜬금없이 1월 말에? 할머니는 별일 아니라는 표정으로 이렇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응~ 걔들은 집에서 ‘구정’ 쇠는 애들이라 그래.”
구정이 뭐지? 오히려 더 혼란스러워졌습니다. 우리나라에 뭔가 내가 모르고 있었던 다른 세계가 또 존재하는 건가? 그런데 며칠 지나 학교 교무실 옆을 지나다 교장 선생님의 화가 난 목소리가 복도까지 들려왔습니다. “구정이라고 학교에 안 나온 아이들 다 이름 적어 제출하세요!”
1일 제주도 한라산 백록담을 찾은 등산객들이 새해 첫 일출을 바라보고 있어요. /연합뉴스
나름대로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묻고 물어서 알게 된 사실이 있었습니다. 한 해가 시작하는 설날은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명절입니다. 현대 세계의 공식 역법인 양력(陽曆)은 태양력의 일종인 그레고리력이고, 우리나라 전통 역법은 음력(陰曆)입니다. 그러니까 설날도 ‘양력설’과 ‘음력설’이 있는데 음력설을 ‘옛 정월 초하루’란 뜻에서 구정(舊正), 양력설을 ‘새 정월 초하루’란 뜻에서 신정(新正)이라고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양력이 공식 역법이기 때문에 당시 ‘설날’은 양력설인 양력 1월 1일을 말하는 것이었고, 1일부터 3일까지 휴일이었습니다. 반면 음력설인 구정은 달력에 검은색으로 표시된 날짜였어요. 나라에선 ‘음력설은 설이 아니니 모두 양력설을 쇠라’는 분위기였고 관공서나 학교에서도 이를 준수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음력설을 쇠는 집도 적지 않았으니 교장 선생님이 언짢아했던 것이었어요.
1896년 양력 채택 뒤에도 ‘명절은 음력설’
우리나라에서 새해 첫날을 명절로 삼은 것은 매우 오래 전의 일이었습니다. 한국 고대사 내용을 많이 실은 중국 역사서 ‘삼국지’의 위서 동이전을 보면, 기원전 4세기쯤부터 존재했던 나라인 부여에서는 ‘은(殷)나라 역법으로 정월(음력 12월)에 하늘에 제사를 지내 나라 사람들이 크게 모이는데, 날마다 마시고 먹고 노래하고 춤춘다(음식가무·飮食歌舞)’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나라 고대 국가들의 제천(祭天·하늘에 제사를 지냄) 의식 중 하나인 ‘영고(迎鼓)’에 대한 서술입니다.
작년 2월 설 연휴를 앞두고 대전 중구 효문화마을에서 한복을 입은 어린이들이 절을 하고 있어요. /신현종 기자
이후 백제에선 정월에 천지신명과 조상신께 제사를 지냈고, 신라에서도 설날이 되면 나라에서 성대한 연회를 베풀었으며 사람들이 서로 문안 인사를 했다고 해요. 이후 고려와 조선을 거치며 설날은 주요 명절로 정착됐습니다. 물론 음력설이었죠.
그렇다면 오랫동안 음력을 써 오던 우리나라가 양력을 공식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언제였을까요? 1896년부터였습니다. 갑오개혁 다음 해인 1895년 음력 8월 일본 측이 명성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이 일어났습니다. 그 직후 온건 개화파였던 김홍집이 주도한 내각(제4차 김홍집 내각)이 들어서서 ‘을미개혁’을 펼쳤습니다. 이때 양력 사용과 함께 상투를 자르는 단발령(斷髮令)과 종두법 사용, 소학교 설치 등의 개혁이 추진됐습니다.
이때 음력 1895년 11월 17일을 양력 1896년 1월 1일로 삼았던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에서 ‘1895년 12월’은 등장하지 않는 이유가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종 임금이 일본의 압력을 피해 1896년 2월 비밀리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피신한 ‘아관파천’이 일어났고 김홍집 내각은 와해됐습니다. 양력은 공식적으로는 계속 사용됐지만 을미개혁의 주도자들이 ‘역적’으로 몰렸기 때문에, 양력설을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습니다. 민간에서는 오래도록 전통 명절이었던 음력설을 계속 쇠지 않을 이유가 없었어요.
‘구정’ ‘민속의 날’ 거쳐 ‘설날’로 환원된 음력설
앞서 말했듯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공식적인 설날은 오래도록 양력 1월 1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적지 않은 사람이 음력설을 쇠며 성묘와 제사를 지냈고, 사기업에서는 비공식 휴일로 정하기도 했습니다. 정부에선 1976년과 1981년 구정을 공휴일로 지정할 것을 검토하기도 했으나 그때마다 혼란을 이유로 없던 일이 됐습니다. 반면 추석은 계속 음력이었는데, 추석을 ‘양력 8월 15일’로 한다면 한여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014년 1월 8일 서울역 매표소 앞에 귀성길 기차표를 구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있어요. /오종찬 기자
이후 ‘신정은 양력 1월 1일이지만 구정을 명절로 삼는 전통문화는 그것대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1985년 음력설을 ‘민속의 날’로 정하고 하루만 공휴일로 삼았습니다. 사실 여기엔 정통성 논란이 있던 제5공화국(1981. 2~ 1988. 2)이 민심을 잡으려고 했던 요인도 있었어요.
제6공화국이 들어선 뒤인 1989년, 음력설은 공식적으로 ‘설날’이란 이름을 되찾고 공휴일은 3일로 늘어났습니다. 대신 양력설은 ‘신정’으로 불리게 됐고 휴일은 2일로 줄었죠. 이런 상황에서 ‘설을 두 번 쇤다’는 뜻인 ‘이중과세(二重過歲)’라는 말이 유행했습니다. 세금을 두 번 낸다는 이중과세(二重課稅)에서 한자만 다른 말이었죠. 1999년부터 신정은 1월 1일 하루만 쉬게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지금은 보신각 타종과 해돋이 행사는 양력설에, 귀성과 차례는 음력설에 하는 좀 묘한 상황이 됐습니다. 그럼 나이는 언제 한 살 더 먹느냐고요? 2023년 6월 ‘만 나이 통일법’이 시행됐으니 각자 자기 생일에 한 살이 많아지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유석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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