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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유하게, 면면이 유장하게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의 아침} 시세계
주경림(시인)
1. 들어가며
작년 여름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인류 진화 700만년을 돌아보는 「호모사피엔스」 특별전을 관람했다. 들소, 말, 새, 사냥꾼, 주술사 등이 그려진 프랑스 라스코 동굴 벽화를 재현한 영상 코너에서 사슴 다섯 마리가 떼를 지어 강물을 건너는 장면이 가장 인상 깊었다. 라스코 동굴 깊숙한 곳, 튀어나온 바위에 붉은 사슴 다섯 마리의 머리들만 그려져 있었다. 사슴 목 부위로 석회암 특유의 물결무늬가 보였다. 암벽의 울퉁불퉁한 자연 형태의 질감을 이용해 강물을 건너는 사슴 떼의 모습을 실감나게 표현한 것이다. 뿔이 아름다운 선한 눈매의 사슴들이 줄지어 저 언덕으로 건너가고 있다. 1만7000년 전 그림에서 “참방, 참방”, 어둠을 뚫고 바위 주름 물결 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 시기는 호모 사피엔스와 네안데르탈인 사이의 경쟁이 치열하게 벌어진 때였다. 동굴 벽화를 그리며 바위 주름을 강물로 보는 상상력을 갖추고 언어와 상징을 이용한 의사소통과 협업할 줄 알았던 호모사피엔스가 체력적으로 우세했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78억 명인 지구인은 지혜로운 인간, 호모 사피엔스라는 단일종으로 진화했다. 동굴벽화가 대표적인 증거로 인류학자들은 호모 사피엔스의 생존 능력 중 하나로 예술을 꼽는다.
문학, 역시 보이지 않는 것, 들리지 않는 것도 보고 들을 수 있는 상상력에 기초한다. 특별히 시의 세계는 상상력과 상징으로 빚어내는 언어의 축제 한마당이라 할 수 있다. 〈유유〉 동인의 시에서도 인류의 진화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었던 상상력의 DNA가 면면이 발현되고 있다. 지면상으로 〈유유〉 동인들의 시축제에 시를 아끼고 사랑하는 호모 사피엔스, 여러분들을 초대한다. 기꺼이 함께 어울려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2. 「나팔꽃 아침」 과 바다 속 장서관
김현지 시인은 지리산 자락, 경호강이 내려다보이는 산청에 제2의 삶의 터를 마련했다. 풍광이 수려하고 공기가 청정한 지역에서 그의 시도 더욱 맑고 향기롭게 피어나고 있다.
비가 내려도 바람이 불어도 내 이름은 아침입니다
구름, 바람 차곡차곡 가슴에 쟁이며
움튼다는 것, 싹 튼다는 것,
모두 가만히 움켜쥐고 견뎌온 이야기
숨죽이고 가만가만 살아 낸 이야기들
오늘 아침 당신에게 모두 들려드릴게요
빨강, 보라, 하양, 분홍……
그대 가슴 속 환히 밝히고 싶어
날마다 피어나는 내 이름은 아침입니다
아침이란 이름의 연보랏빛 희망입니다
-김현지 「나팔꽃 아침」 전문
“내 이름은 아침”인 나팔꽃 시인은 꽃대궐에 살면서 시시때때로 꽃사진 영상을 올려 우리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오늘 아침에도 수선화, 할미꽃, 홍매화, 산다화, 돌단풍, 박태기 꽃사진을 한아름 보내왔다. 눈뿐만 아니라 마스크를 쓰고 은둔의 생활에 지친 우리에게 “그대 가슴 속 환히 밝히고 싶”다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구름, 바람 차곡차곡 가슴에 쟁이며” 움켜쥐고 견뎌온, 숨죽이고 살아낸 이야기를 움 틔우고 싹 틔운다는 것이 우리네 삶의 모습 그대로이기에 날마다 피어나는 아침의 감동이 그대로 전해진다. 필자가 혓바닥에 좁쌀처럼 작은 혓바늘꽃이 돋아 물 한 모금에도 눈물이 찔끔 나던 날, 세상의 모든 꽃들이 통점으로 보였다. 뿌리까지 앓으며 견뎌온 통점이 터져야 “연보랏빛 희망”이라는 이미지로 날아오를 수 있다. 고통이나 슬픔 등의 부정적인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나팔꽃이 아침의 메신저가 되기까지의 곡진한 사연을 조근 조근 들려주는 시작법에서 연륜의 안정감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어느 봄밤의 간이역」 「초여름 소묘 1」 「초여름 소묘 2」에서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절절이 배어나온다. “어머니가 베틀 위에 앉아 베를 짭니다”로 시작하는 길쌈의 과정이 치밀하고 리듬감 있게 묘사되어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를 보는 것 같다. 한 올 두 올 베가 짜지면서 어머니의 한숨, 눈물의 인생도 엮여진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완벽하게 재현하다니 놀랍기만 하다.
「숫눈길」은 눈이 와서 쌓인 뒤에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길을 말한다. 창 바깥쪽의 겨울 숲속 숫눈길과 창 안쪽 방안의 책장이 유리창에 겹쳐 보이는 지점에서 시 「숫눈길」이 탄생했다. “푸른 성채 같은 책들이 죽죽 뻗은/ 자작나무 겨울 숲으로 걸어”와 詩 書 畵 빼곡한 숲을 이루었다. 「숫눈길」은 아무도 지나가지 않은 눈 쌓인 곳에 새롭게 길을 내고가야 할 시의 길이라 짐작해 본다.
“詩는 곧 나의 삶이다, 어쩌면 아픔 같기도 한, 그것은 바로 가끔 굿풀이를 해야만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무당의 굿 같은 詩병인 것이다.”
동화 작가이기도 한 「박분필 시인의 말」(『시와 소금』2021년 겨울호)이다. 박분필 시인은 자연에서 시적 대상을 찾지만 사생(寫生)을 넘어 자신의 심경(心境)과 지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주관적 해석으로 고유한 시의 세계를 펼쳐나간다.
단행본들을 부챗살로 펼쳐놓은 바다 속 장서관
파도는 낡아가는 책을 보수하는 유능한 사서다
표면의 광택을 파고 든 인간의 기억, 희망, 사랑을
담았다 쏟아내고 쏟았다 담아내기를 수 십 만년
몇 초가 영원처럼 흐르는 저 떨림, 저 무늬들,
회색과 초록색이 뒤섞인 파도의 갈피 속에 미처
해석되지도 기록되지도 못한 역사까지 껴안은 채
물의 필체와 물의 언어만을 고집해 온 고서들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뭉치고 엉키는 시간과 공간
잿빛갈매기들 조용히 날아내려 고서를 뒤적인다
-박분필 「양남 주상절리」 전문
주상절리는 주로 현무암과 같은 화산암에서 형성된 육각기둥 모양의 돌기둥을 말한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경주시 양남 주상절리군에는 부채꼴 주상절리, 누워있는 주상절리, 기울어진 주상절리, 위로 솟은 주상절리 등 다양한 모양을 가지는 주상절리들이 모여 있다. 시인은 그 중에서 부채꼴 주상절리를 시적 대상으로 삼았다.
첫 행, “단행본들을 부챗살로 펼쳐놓은 바다 속 장서관”에서 필자는 대형서점의 가판대를 떠올렸다. 이어, 파도를 낡아가는 책을 보수하는 유능한 사서라고 의인화한 둘째 행은 전혀 예측치 못한 전개였기에 호기심과 흥미가 발동했다. 동(動)적인 파도의 움직임이 정(靜)적인 돌기둥에 생명 에너지를 불어넣어주어 시가 전환의 국면을 맞이했다. 이제, 육각기둥 모양의 돌기둥들은 책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인간의 기억, 희망, 사랑”, “해석되지도 기록되지도 못한 역사까지” 심화된 내용까지 갖추었다. 가판대가 아닌 “바다 속 장서관”의 진면목이 드러났다. 자연의 질서와 변화가 만들어낸 풍경을 시인은 “신비로운 힘에 이끌려 뭉치고 엉키는 시간과 공간”이라고 정리했다. 필자가 무정물과 유정물, 시간과 공간까지 동원해서 빚어내는 장서관의 모습에 푹 빠질 만큼 박분필 시인의 연출력은 노련했다. 잿빛갈매기들이 주상절리에 날아 내리는 자연 풍경으로 돌아가 끝맺음하는 마지막 연도 돋보였다.
3년 째 계속되고 있는 코로나19 팬데믹은 전세계로 퍼져서 우리의 삶을 통째로 바꿔 놓았다. 많은 전문가들은 감기나 독감처럼 주기적으로 발생하는 계절성 질환인 풍토병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을 예견하고 있다. 박분필 시인도 「나를 들쳐 업고」에서 오미크론으로 두 친구를 잃는 슬픔을 겪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슬픔으로 시인의 안에는 침묵이 자리 잡았고 마음을 추스르기 위해 눈 덮인 바라산에 올랐다. 겨울 산에서 푸른 잎 다 떨구고 기둥처럼 서 있는 은사시나무 편백나무들로부터 “너 자신을 뛰어 넘어라, 경계를 넘어라”는 전언(傳言)을 듣는다. 겨울 숲에서 “스스로 몸을 끌어안고 냉기를 밀어내고 있는” 아기고라니, “생명을 품고 얼어있는 흙들”에서 “그 생명의 굼틀거림이 거대한 물결의 길을 만들어 낼 것”이라는 희망의 메세지를 확인한다. 코로나19 팬데믹과 산불재앙이라는 현실적인 어려움 속에서 자연의 끈질긴 생명성으로 위로받고 치유되는 시, 「수樹수水카페 옆에는 청보리가 피고 있었다」, 「산불 현장에서 탈출한 아기다람쥐」 등이 우리에게 희망을 놓지 말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던 깜깜한 시간도 가다보면 닿게 마련”이라는 위로를 건넨다, 필자는 오늘, 최악의 산불이 휩쓸어간 울진 산불 현장의 땅에 피어난 노랑제비꽃 사진을 신문에서 보았다.
3. 「네모의 세계 속으로」와 미안한 순례길
이보숙 시인의 내면세계에서 음악과 미술이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여 예향(藝香) 그윽한 시가 탄생한다. 훈데르트바서의 물방울속의 푸른 멍이며 소용돌이가 멋진 그림을 완성했듯이 가족의 죽음으로 인한 슬픔과 상처가 삶의 향기 가득한 시로 숙성되어 나온다.
몬드리안의 붉은 네모를 들여다본다
한참을 뚫어져라 보다가 네모를 열고 들어간다
아니 들어가는 게 아니고 나간다고 생각한다
그 네모의 바깥은 또는 그 안엔
텅 비어있는 공간이 연달아 열려있다
오랫동안 누군가가 열어주기를 기다린 듯,
그곳에서 다시 만나는 네모,
네모는 계속 네모를 낳고 또 네모를 낳고
그곳엔 친구가 없다, 아무도 없다
텅 빈 네모,
몬드리안의 여러 가지 네모들은 이 세상 모든 것의
기본 구상을 갖추고 있다, 보이는 것이 없을 뿐,
오늘 그 네모 중의 하나에 들어가 보니
네모난 외로움이 하나 덩그러니 앉아있다
그 속엔 웃음도 슬픔도 희망도 절망도 없다
오직 네모만 있을 뿐,
푸른 네모 노란 네모 붉은 네모, 오직 색깔이 있을 뿐,
색색깔의 옷을 입어본다
아무런 감흥 없이 나는 그저 네모일 뿐
이 지구상에 혼자 있다는 느낌,
그의 기하학적인 네모 속 나도 기하학적인 인간으로 산다
거기서 나는 아무런 사랑을 만나지 못한다
나의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사랑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일까?
-이보숙 「네모의 세계 속으로」 전문
이보숙 시인이 검정색 수직선과 수평선으로 구획을 나눈 단순한 구성에 빨강, 노랑, 파랑 등, 색의 삼원색만을 사용한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들여다보고 쓴 시이다. 특별히 붉은 네모에 집중하는데, 들여다본다, 열고 들어간다, 나간다고 생각한다, 연달아 열려있다, 로 네모와의 관계가 점진적으로 깊어진다. 네모는 계속 네모를 낳지만 시인이 결국 발견한 것은 친구도 아무도 없는 “텅 빈 네모”일 뿐이다. “네모난 외로움이 하나 덩그러니 앉아있다”는 자신과의 만남이다. 시의 초점이 중반부를 지나면서 “몬드리안의 붉은 네모”에서 “나는 그저 네모일 뿐”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 지구상에 혼자 있다는 느낌”에 필자도 충분히 공감하며 “기하학적 인간”으로 산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거기서 나는 아무런 사랑을 만나지 못한다”는 깊은 통찰에 이르며 결국 사랑은 만나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자신의 삶, 자신의 가족을 떠나서 사랑이 어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 독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한다.
「등대」 「뜸부기」 「추억에서 만난 모란 공원」 「나팔꽃 노래」 등에서는 하늘로 떠난 가족, 어머니, 아버지, 오라비, 언니, 고모가 보고 싶다는 시인의 절절한 그리움이 그대로 배어나왔다. 필자도 꿈속에서라도 엄마를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으로 콧등이 시큰해졌다. 모래사장에 밀려오는 파도를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는 소리에 비유한 「피아노 치는 바다」는 음악, 인간, 자연의 어울림으로 빚어진 풍경이다. “흰구름 드레스”, “산과 들, 나무들, 햇빛들이 모두모두 박수를 친다”는 동심어린 표현에서 이보숙 시인의 순진무구한 시심(詩心)을 엿 볼 수 있다.
“맑은 마음으로 시를 쓰는 것이 즐겁다. 꼭꼭 숨어서 보여주지 않는 시의 틈새를 찾아내는 일 또한 가슴 두근거리는 설렘이다. 여덟 권 째 시집을 상재하면서, 내 시의 골격이 되어준 모두에게 감사한다”(「시인의 말」, 시집 『낙타에게 미안해』)고 인사를 전한 이섬 시인의 시를 읽어본다.
새벽녘, 달빛도 숨어버린 캄캄한 밤이었어
쌍봉낙타의 등에 앉아서
이집트의 시내 산을 오르는 길이었지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없는 돌산 길,
행여 떨어질세라 손이 저리도록
낙타 등에 달린 2개의 봉우리를 움켜쥐었지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하는 새벽녘
나는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어
지그재그로 이어진 가파른 돌계단을 오를 때,
바르르 떨고 있는 가녀린 낙타의 다리
덕지덕지 군살 돋아 갈라터진 무릎
그렁그렁 눈물가득한 눈망울,
방향을 조종하는 채찍소리
낙타의 등에 앉아 조금 더 편하게 산을 오르려는
무심한 나는,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었어
생각할수록 미안한 순례의 길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워지지 않는
실루엣
낙타에게 미안하다
-이섬 「낙타에게 미안해」 전문
‘시내 산’은 3,500년 전 출애굽 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여호와 하나님을 처음 만난 곳으로 기독교인이라면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성지이다. 아마 통상, 순례자들이 그랬듯이 시인도 험하고 가파른 시내 산을 조금 더 편하게 오르려고 낙타의 등에 올라탔을 것이다. 무심코 지나갔어도 그만인 것을, 시인은 “덕지덕지 군살 돋아 갈라터진 무릎/그렁그렁 눈물가득한 눈망울, 방향을 조종하는 채찍소리”를 보고 들었다. “나는 못 볼 것을 보고야 말았어”라는 시인의 고백으로 시 「낙타에게 미안해」가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 시인의 순례길이 낙타에게는 무거운 짐을 지워주고 고통과 희생을 강요하는 고행의 길이었던 셈이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아가는 순례의 길”이었기에 낙타의 고통이 “생각할수록 미안한” 시너지 효과를 가져 온다. 인간의 편리를 위하여 고통 받는 낙타에 대한 미안함이 시인의 진정성 있는 고백으로 읽는 이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시인의 미안한 마음에 공감하다가 현재는 관광지로 유명한 폴란드의 비엘리치카 소금광산의 망아지가 떠올랐다. 16세기에는 소금 채굴과 운반을 위해 끌려온 망아지들이 평생 햇빛을 못 봐서 눈이 멀어 일만 하다 죽어갔다고 한다. 「낙타에게 미안해」는 인간의 이기심을 반성하고 모든 생명의 귀중함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준다.
「존재를 향한 온화한 눈길」이라고 제목 붙인 박수빈 평론가의 해설 그대로 이섬 시인은 「뻐꾸기와 놀다」 「존재에 대하여」 등에서도 모든 생명을 사랑으로 대하는 마음을 엿볼 수 있다. 시인은 텃밭 가에서 잡초를 뽑다가 “문득 이 땅에 잡초는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존재에 대하여」) 단지, 인간이 쓰임새를 확인하지 못한 것일 뿐이라는 것이다. “밟히면 웅크리고 넘어지면 일어나야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춘 “너,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이렇게, 시인의 순례길은 일상에서 시의 길로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4. 「흘린 술이 반이다」와 「벌레 미인」, 영축산의 고래들
“내 속에서의 나를 만나려고 무한대의 시간과 공간 속을 헤매다 보면 나 밖의 나와도 하나가 되고 세상 만유가 모두 가슴을 열고 하나가 되는 경계지우기와 차별 넘어서기----자신의 열망을 넘어서서 사회 속에서, 타자 속에서 또 다른 자아를 자각하고 사랑과 화해로 나아가는 사회적 울림과 감동을 주는 시를 쓰기 위해 애를 써왔다,” (「웃음세상을 위하여」)
이혜선 시인의 시선집 『흘린 술이 반이다』의 말미에 실린 산문에서 일부 발췌하여 시인의 작품 경향을 먼저 살펴보았다.
그 인사동 포장마차 술자리의 화두는
‘흘린 술이 반이다’
책 읽으며 연속극 보며 훌쩍이는 내 눈, 턱 밑에 와서
“우리 애기 또 우네” 일삼아 놀리던 젊은 그이
요즘 들어 누가 슬픈 얘기만 해도 눈물 그렁그렁
오늘도 퇴근길에 라디오 들으며 울다가 서둘러 달려왔노라고,
새끼제비 날아간 저녁밥상, 마주 앉은 희끗한 머리칼
서로 측은히 건네다 본다
흘린 술이 반이기 때문일까
함께 마셔야 할 술이 아직은
반쯤 남았다고 믿고 싶은 눈짓일까
속을 알 수 없는 생명의 술병 속에,
-이혜선 「흘린 술이 반이다」 전문
「흘린 술이 반이다」라는 시제부터 관심을 끌만큼 매력적이다. ‘흘린 술이 반이다’라는 인사동 포장마차 술자리 화두를 불쑥 꺼내 던져놓고 드라마의 한 장면을 보여주는 것처럼 희끗한 머리칼 부부의 밥상머리 이야기로 시를 전개해나간다.
누가 슬픈 얘기만 해도 눈물 그렁그렁해지는 다정다감한 성품이지만 장성한 자식들을 떠나보내고 둘이 서로 측은히 건네다 보는 쓸쓸한 밥상이다. 마지막 연에서 서로 측은히 건네다 보는 이유가 “흘린 술이 반이기 때문일까”, “함께 마셔야 할 술이 아직은/ 반쯤 남았다고 믿고 싶은 눈짓일까” 물으며 슬그머니 “속을 알 수 없는 생명의 술병 속에”로 독자의 관심을 돌리게 유도한다. 살다보면 흘린 술처럼 시간을 헛되이 보낸 것이 아닐까 하는 회한이 들 때가 있다. 하지만 삶이란 “속을 알 수 없는 생명의 술병”처럼 예측할 수 없기에 더 귀하고 소중하게 하루하루를 보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타인능해(他人能解)’는 전남 구례에 있는 운조루의 쌀뒤주 마개에 새겨진 글자로 아무나 열 수 있다는 뜻이다. 쌀 두 가마니 반이 들어가는 커다란 뒤주를 사랑채 옆 부엌에 놓아두고 끼니가 없는 마을 사람들이 쌀을 가져가 굶주림을 면할 수 있게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렇다면 「타인능해 소나무」란 어떤 사연을 간직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6.25 전쟁 때 잿더미가 된 집터를 닦기 위해 아름드리 소나무가 잘려나가 “우리 산의 소나무 모두 동네사람들 기둥 되고 서까래 되었다”고 한다. “아버지는 짐짓 못들은 척/ 보아도 못 본 척 알아도 모르는 척”하는 아버지의 묵인으로 아무나 베어다 집을 지을 수 있었다. “타인능해쌀보다 타인능해소나무가 더 급한, 따스한 둥지가 되었다”는 사연이었다. 어려움을 나누었던 실제상황이 그대로 시가 되어 감동을 전해준다.
“나는 먼먼 은하계로부터의 방문객인가? 운석에서 온 물과 성분들이 내 몸에 들어있다면.”
정복선 「시인의 말」 이다. 시인은 고향인 “은하(銀河)의 뜰”에 “찰나의 투망(投網)”을 던져 활어처럼 싱싱한 시어(詩語)들을 건져 올린다. 우주로부터 시가 쏟아져 내리는 행운을 만나기도 하는 시인이 부럽다.
우주의 품에 안겨 숨 쉬는 찻잎, 에 안겨 붙어
사각사각 신명을 따라 읽다가 쓰다가
벌레들이 열공 중이다
파헤치고 배산임수의 터를 차지하는가 하면
나비와 벌새들의 날갯짓, 혹은
매미들의 한 철 울음을 미리 휘갈겨 놓는다
하, 별로 세상에 기여한 게 없다, 그럼에도
못자란 찻잎으로 만든 ‘동방미인(東方美人)’ *,
초록애매미가 숭숭 불러들인 살바람이나 별빛 입술로
찻잎에 음송하고 있는 천일야화, 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 게으른 이가 차농사를 망쳐 벌레 먹은 찻잎으로 만들게 된 백호오룡차에 붙여진 새 이름. 초록애매미가 줄기의 진액을 빨아먹어 자라지 못한 찻잎에서 오히려 상큼하고 향기로운 과일향이 생긴다고 함.
-정복선 「벌레미인」 전문
‘벌레미인’은 찻잎을 갉아먹고 줄기의 진액을 빨아먹고 사는 초록애매미에게 정복선 시인이 붙여준 이름이다. 찻잎에 손상을 입히는 해충을 ‘미인’이라고 부르다니, 분명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첫 행에서는 “우주의 품에 안겨 숨 쉬는 찻잎, 에 안겨 붙어”로 차츰 좁혀가며 벌레들의 위치를 알려준다. 전체 시의 2/3 정도까지는 찻잎에서의 생존을 위한 벌레들의 활약상으로 이어진다. 신명을 따라 읽다가 쓰다가 하는 흥겨운 모습, 파헤치고 배산임수의 터를 차지하는 경쟁적인 모습, 등이 우리네 삶과 다르지 않아 재미있게 읽힌다. 차나무는 진액이 다 빨려 죽지 않으려고 달콤한 향기로 초록애매미의 천적을 끌어들인다. 그 곤충이 초록애매미를 잡아먹고 사람들은 향기로운 찻잎을 따서 과일향, 꽃향기가 그윽한 매력적인 차를 만든다. 차의 향기에 반한 빅토리아 여왕이 ‘동양에서 온 아름다운 여인’, ‘동방미인’이라는 차 이름을 선사했다고 한다.
“하, 별로 세상에 기여한 게 없다,”는 구절은 벌레들이 찻잎에 어떤 유익함도 끼치지 못했다는 뜻인 듯하다. 하지만 초록애매미야말로 향기로운 ‘동방미인’을 만든 1등 공신이기에 시인이 ‘벌레미인’이라 부르는 것 아닐까.
정복선 시인은 우주의 질서를 「인력과 중력의 유희」로 노래한다. 지구의 위성인 달에 대하여 “달은 지구를 향해서만 울음 우는 한 마리의 새”라니, 시인의 기발한 상상력이 어디로 튈지 다음 행을 읽어본다. “지구는 홀로 사유하면서 동시에 태양을 사유하는 탁월한 니체” 라는 시인의 고유한 언어를 번역하면 지구는 자전하면서 동시에 태양을 공전한다는 이치일 것이다. 읽는 이도 상상력의 날개를 달고 우주의 질서를 언어의 유희로 즐겨보기를 권한다.
필자는 작년 4월에 「전국문학인꽃축제」가 열리고 있는 통도사 서운암 장경각을 방문했다. 줄맞춰 서있는 장독대를 지나 진홍빛 꽃잎이 조롱조롱 아름다운 금낭화 어우러진 언덕길을 지나 장경각 앞마당에 올랐다. 서운암 장경각 정면으로 건너보이는 영축산은 장엄했다. 독수리가, 아니 규모로 보면 붕새가 양쪽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오르는 모습이다. 탁 트인 이곳에 서있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시원해지고 눈이 맑아졌다.
그런데 장경각 앞마당 얕은 수조 안에 울긋불긋한 고래들이 놀고 있으니 이게 웬일일까,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2022년 조계종 15대 종정으로 추대되신 성파스님께서 장경각 앞마당 수조에 7000년 전 우리 조상들이 새겼다는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들을 풀어놓으신 것이다. 나전칠기 공법으로 제작한 옻칠 민화였다. 두꺼운 삼베에 8번의 옻칠을 해 겹겹이 쌓아 만든 옻칠판에 얇게 간 조개껍데기를 암각화의 문양대로 박아 넣었다. 수조 앞에 서니 내 그림자도 어룽어룽 비치어 고래들과 어울려 놀고 있다. 영축산 기슭에 고래들을 뛰어놀게 한 발상부터 신선했다. 아득하게 먼 과거에 영축산도 바다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시공을 초월하는 성파스님의 예술혼에 매료되었다. 놀라움의 경지를 넘어 감탄사를 연발하게 되었다. 바위에 새겨져 바위에 갇혔던 동물들을 물속에 풀어주어 새 생명을 얻게 한 방생이었다. 주경림의 시 「영축산 기슭의 고래들」을 읽어본다.
독수리가 양쪽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오르려는
영축산 기슭,
인공수조에서 고래들이 헤엄친다
귀신고래, 범고래, 향고래,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거북이, 사슴, 호랑이, 멧돼지, 사람도 보인다
울산 대곡천의 반구대 암각화를 탁본 뜬
서운암 앞마당 수조에 고래들을 풀어놓았다
삼베에 옻칠을 하고 다시 삼베를 붙이고 다시 칠해
할머니 자개장같이 검고 단단해진 바탕 위에
알록달록한 고래들이 놀고 있다
새끼를 등에 업은 귀신고래는
서운암 장독대에 앉아있던 공작새 깃털빛,
이팝나무 꽃빛 수의를 입은 작살 맞은 고래,
북방긴수염고래 세 마리가 물을 뿜자 수국꽃이 피어난다
황매화빛 일렁거리는 그물 쪽으로 거북이가 기어간다
금낭화빛 물고기들이 조롱조롱,
작약꽃빛, 각시붓꽃 멧돼지 한 쌍이 사랑을 나눈다
새끼를 밴 호랑이는 유채꽃빛,
사슴이 연두 잎 달린 뿔을 흔들며 뛰어간다
바위에 갇혔던 암각화 동물들이 물속에 방생,
스르륵 다시 물속에 비친 하늘로의 왕생,
옻칠자개라는 새 입성으로 극락에 온 것이다
내 그림자도 어룽어룽 고래와 놀고 있으니
나도 극락,
송홧가루가 뿌옇게 은하수로 걸리자
모두 사금파리 별빛으로 반짝인다
-주경림 「영축산 기슭의 고래들」 전문
서운암 올라오는 길에서 만난 금낭화, 연두 이파리, 황매화, 이팝꽃, 작약, 공작새 깃털의 화려한 색까지 동물들의 입성이 되어 수조 안은 꽃밭이었다. 까맣게 칠한 옻칠 바탕은 영락없이 우주의 밤하늘이 펼쳐진 것 같기도 했다. 바람에 날아온 송홧가루로 극락이 잠시 흔들리자 수조 안의 고래와 짐승들은 모두 별빛으로 반짝였다.
5. 글을 맺으며
2020년 8월 8일, 유유 제1집 『깊고 그윽하게』 출판기념회를 위해 동인들은 인사동 한정식집에 모였다. 코로나19 팬데믹과 기상 관측사상 최고의 기록을 갱신한 50일 이상 계속된 장마로 참으로 어렵게 마련한 자리였다. 아침까지도 폭우가 쏟아져 걱정이 많았는데 차차 빗줄기가 가늘어지며 우산을 접을 정도가 되었으니 길일을 잘 잡은 셈이었다.
그날은 구례지역의 폭우로 물난리 속에 축사를 탈출한 10여 마리의 소들이 살기 위해 한 시간 가량을 아스팔트 산길을 따라 해발 531m의 사성암에 오른 날이기도 했다. 빗물에 흠뻑 젖은 소들은 사성암 유리광전 아래쪽 마당에서 풀을 뜯어 입매를 하며 얌전히 쉬었다고 한다. 누구 하나 뛰놀거나 큰 울음소리 내지 않았다.
그날, 우리의 모임도 사성암에 모인 소와 같았다. 코로나19와 폭우를 피해 더 좋은 시를 쓰며 살기 위해 모인 자리였다. 그 이후 ‘거리두기’로 근 1년을 모임을 갖지 못하다가 백신접종을 한 후, 박분필 시인의 초대로 2021년 7월 21일 백운계곡에서 모였다. 첫 회장이었던 이혜선 시인의 뒤를 이어받은 이섬 시인이 다시 정복선 시인에게 자리를 내어주는 이취임식, 그리고 이섬 시인의 시집 『낙타에게 미안해』 출간 축하를 겸하는 자리가 되었다. 2021년 11월 24일에 대학로에서 모여 유유 제2집 출간에 관한 세부사항을 논의하고 마로니에 공원에서 동인지에 실릴 사진촬영도 했다.
이제, 우여곡절 끝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풍토병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예측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유유〉 동인들도 “그대 가슴 속 환히 밝히고 싶어” 유유 제2집 『날마다 피어나는 나팔꽃 아침』을 발간하게 되어 기쁘기 그지없다.
이 자리를 빌려 동인지의 해설을 쓰기에는 여러모로 필자의 식견과 필력이 턱없이 얕았음을 고백한다. 부디 혜량(惠諒)하는 마음으로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시길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