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1-7
거할 처소(성전)를 확장하는 사람들!-1 / 지태일 목사
오늘 본 본문 전 장인 열왕기하 5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나아만 장군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 나아만이 문둥병이 걸렸다가 요단강에 가서 7번씩 씻는 순종속에 문등병이 낫는 이야기입니다. 그 과정에서,
1) 첫째로, 중요한 요소는 먼저 한 여자 아이의 아름다운 충고입니다.
아람나라 군대장관의 집에 노예로 잡혀와 수종들던 한 이스라엘 소녀의 아름다운 충고가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깨끗이 낫게 하는 기적을 일으킨 것입니다. 장군이 낙심하지 말고 자기네 나라에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가 있으니 그 분에게 찾아가 한번 아뢸 것을 간곡히 요청합니다.(5: 22) 그 때 나아만 장군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음으로 그 말을 듣고 병이 낫는다 하니 당당 이스라엘을 향하여 엘리사 선지를 찾아 갑니다.
여러분! 작은 사람, 한 아이의 충고라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요 뜻이요 은혜의 방편으로 다가오거든 믿고 순종할 때 큰 역사가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위로하며 권면하는 주의 종들을 통해 주시는 말씀을 깊이 청종한다면 귀한 은혜와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
2) 둘째로, 나아만 장군의 문둥병을 낫게 하는데 함께 한 그의 종들입니다.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를 찾아갔을 때 그래도 한 나라의 장군이 찾아왔는데 나와 쳐다보지도 않고 대접도 안 해주고 사람 하나시켜 요단강물에 7번이나 씻으며 네 살이 여전히 깨끗하리라고 말할 때 나아만 장군은 분을 내며 자기네 아람 나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 최소한 나와서 영접해 주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 상처 위에다가 손을 얻고 안수 기도라도 해줄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니고, 좋고 깨끗한 강이 아람나라에도 얼마나 많은데 작고 별로 깨끗지 못한 요단강에 가서 그것도 한번이 아닌 7번 씻으라고 하니까 분을 내면서 고향 아람 나라로 돌아가려 했습니다(5: 11).
그때 나아만 장군의 종들은 말합니다. “내 아버지여 선지자가 더 큰 명령을 내려도 순종하여 병이 나아야 되는데 뭐 이 정도의 말이나 대접을 가지고 분을 내고 떠나려 합니까? 병이 낫기 위해서는 그대로 시키는대로 하는 것이 대단히 좋을 것이라”고 지혜로운 충고를 합니다. 그 때 나아만 장군은 마음을 고쳐먹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말대로 요단강에 내려가 7번 몸을 잠그고 나니까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과 같이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고 순종하는 자들에게 큰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3) 세 번째로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은 게하시입니다.
그 당시 선지 학교를 운영하던 엘리사 선지에게는 심부름하며 돕는 사환 게하시가 있었는데 사실 엘리사는 나아만 장군으로부터 선물이나 답례를 요구하지도 않았고 받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사환 게하시는 나아만의 선물이 탐나 엘리사 선지는 아무 선물도 받지 않겠다고 하는데도 거짓말 해가면서 은 두달란트와 옷 두벌을 얻습니다. 그러다가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와 그 자손들에게 벌로 내리는 말씀이 나옵니다(5: 27).
나아만 장군이 엘리사 선지의 말에 믿음으로 순종하여 병고침을 받는 기적이 일어났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악한 영의 좋지 못한 역사도 일어나는 법입니다. 자기의 위치나 역할, 또는 신분이나 주어진 특권을 남용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서 부와 사치를 명예를 누리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지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이 게하시 자기 욕심으로 거짓말을 만들어 퍼뜨리기도 하고 또 그런 사람의 말이나 행동은 언젠가 다 드러나게 되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한 때는 좋은 일군의 한 사람이었지만 욕심에 이끌려 타락하고 범죄하고 그 죄의 대가로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 발하고 그 후손까지 벌을 받는 것을 보면서 이런 부분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하나님앞에서 잘 해가지고 자신과 자녀손들이 천대까지 복을 받아야지, 저주를 받거나 망한다면 큰 손실입니다.
바로 게하시같은 사람이나 이런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나면 당시의 선지학교가 폐교되거나 아니면 오늘날로 말한다면 교회가 흔들리거나 시험에 빠져야 하지만 하나님의 역사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충성스러웠던 게하시 한 사람없는 것은 굉장한 손실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와중에도 하나님의 선지 학교는 날로 성장해 갔습니다. 그 사실이 본문 6: 1절에 잘 나옵니다.
1. 우리의 장소가 좁으니 하는 마음과 자세의 축복입니다(1절).
1절 말씀을 보면, “보소서 우리가 당신과 함께 거한 곳이 우리에게는 좁으니”
여기서 좁다는 말은 선지 생도들이 거처하기에는 장소가 너무나 협소하여 불편함으로 고통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장소는 협소한데 사람들이 너무 많이 몰려와서 잘 들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엘리사 선지가
어디에 주재하든, 그가 있는 곳에는 그의 교훈과 고견과 기도 때문에 많은 생도들이 모여 들었습니다. 누구나 휼륭한 엘리사 선지와 함께 또는 가까이 지내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선생이 되고자 하는 자들은 남들이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실력이나 인격이나 교양이 있어서 자신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그래야만이 배우는 사람도 늘어 나는 것입니다. 선지 학생의 수가 늘어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로 인해 선지 생도들의 거처가 좁아진 것입니다.
필경 엘리사의 기적이 사람을 많이 끌었을 것입니다. 그를 통한 하나님의 기적을 보앗던 사람들, 그 기적의 소식을 들었던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4:1-7절을 보면 가난한 선지 생도가 빚을 남긴채 죽습니다. 그의 아내는 이제 어찌할바를 모름니다. 그 때 엘리사 선지는 빈 그릇을 많이 빌려와 기름을 기적으로 채워 그것을 팔아 빚도 갚고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없도록 도우시는 그런 역사가 나옵니다. 4:32-34절을 보면 수넴 여인의 죽은 아들을 엘리사 선지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려 냅니다. 4:42-44절을 보면 20개의 보리떡과 자루에 담은 채소로 100명을 먹게 한 기적이 나옵니다.
이러한 기적으로 많은 선지 생도들이 선지학교로 모인 것입니다.
2) 그래서 선지 생도들은 선지자 엘리사와 함께 넓은 거처를 마련하기 위해 요단강 계곡으로 벌목을 하러 간 것입니다.
2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요단으로 가서 거기서 각각 한 재목을 취하여 그곳에 우리의 거할 처소를 세우사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라면 응당 이런 마음의 자세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거나 거처할 숙소를 넓히고자 제의를 했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성장하고 부흥했나를 보여줍니다.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성장을 해서 이렇게 좁으니 넓혀 가자는 음성을 들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이나 직장이나 사업도 성장하고 부흥해서 좀 넓은 대로 가고자하는 그런 마음, 자세가 있어져 합니다.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작지만 내 집으로, 내 건물로, 5평 10평에서 10평 20평 30평으로, 혼자 일하다가 겨우 부부가 같이 하다가 이제는 직원도 좀 둘만하고 수익도 점점 늘어나고 점점 커지는 역사 우리의 지경이 점점 더 넓어지는 것(야베스의 기도)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그래서 먼저 가시적인 건물을 넓히기에 앞서 우리들의 믿음의 마음들을 좀 넓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마음들이 먼저 넓게 열려질 때 주님의 교회는 따라서 자연히 넓어질 줄 믿습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넓어지는 만큼 교회도 넓게 성장할 줄 믿습니다.
현재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서 활동하시기에 너무 협소하다고 느끼지 않습니까? 내가 내 마음을 너무 많이 차지하고 있기에 주님께서 쓰셔야할 공간이 협소한 것은 아닙니까?
세상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의 눈, 하나님을 보는 우리들의 마음의 눈, 내 섬기는 교회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의 눈, 내 형제를 보는 우리들의 마음의 눈이 작다고 생각되지 않습니까?
선지 생도들은 엘리사와 함께 거하기에 너무나 협소해서 좀 넓은 거처를 마련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와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도 이런 역사가 일어나게 하나님이 역사하시고 시작하게 하셨으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름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돌립시다. 이러한 사역에로 저와 여러분들을 부르신 그 거룩한 부르심을 감사합시다. 우리 하나님의 집을, 거처를 성전을 확장하는 일로 인하여 시험에 들거나 낙심하거나 의기소침할 일이 아닌줄 믿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그러한 축복의 교회, 믿음의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를 위하여 마음이 넓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현실을 직시하고 하나님앞에 아뢸 수 있는 그러한 믿음의 축복이 근본 기회(성전 건축)을 통하여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엘리사의 선지 생도들의 처소를 넓히고자 하는 이유를, 변화된 마음의 자세를 회복해야 합니다. 늘 부정적이고 관심도 섬김도 없이 지내는 안일한 마음이 아닙니다.
은혜의 역사들이 불같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영적 부흥의 불길로 인하여 우리의 처소를 넓히는, 건축 이전하는 이 역사가 축복의 역사가 되기를 바람니다. 우리의 일생중 가장 소중한 고백으로 하나님앞에 올려 지는 성도들로, 가정으로,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