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을 살았다.
노인의 나이를 구분할 때 70대를 노령(老齡)이라 하고 80대를 고령(高齡)이라 하고 아흔 살 이상을 초 고령(超 高齡)이라고 하는데 내가 초 고령(超 高齡)이 되었다. 나는 아직 받아들여지지가 않는다. 분명히 노령(老齡) 고령(高齡)을 지나왔는데 노인 행세를 하지도 않았고 노인대접을 받고 살아본 기억도 없다.
내가 풍기에 온 것이 일흔 살인데 산촌에서 나 산촌에서 자랐지만 스무 살에 떠난 산촌은 내 몸에서 완전히 떠나고 새롭게 산촌(山村)생활을 하는 것이라 내 인생의 제2막이 시작된 것이다. 시작(始作)은 언제나 처음 하는 것이라 일흔 살이지만 나이는 의식(意識)하지 않고 살았다. 산촌에 지은 지 오래되지 않은 토담집이라 손볼 것도 많고 내 마음에 들지 않은 것도 많았다. 기술이 필요하지 않고 힘만 들여서 하는 일은 인부를 들이지 않고 전부 내 손으로 하였다. 지금도 길게 쌓은 돌 축대를 보면 내가 한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든다.
90년을 살고 아흔한 살이 되니 완전히 달라진다. 인생의 종착(終着)이 되는지 인생의 제3막이 되는지 기억력은 소멸(消滅)되어 형제 이름도 가물가물하고 돌아서면 절벽(絶壁)이 된다. 방금 들깨 모종을 하고 들어와 내가 무엇을 하고 왔지 하니 듣는 사람이 기절(棄絶)을 한다. 늙은이만 둘이 살고 있는데 방금 한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과 살려면 얼마나 답답하랴! 기억력뿐이 아니고 육체는 더 하다. 작년 말, 아흔 살까지는 3.40분 거리인 풍기까지 걸어서 왕복을 하였는데 지금은 편도(片道)도 불가능하다.
내가 아흔이 넘도록 살고 있는 것이 참으로 기적이고 신기하다. 우리 가계(家系)가 장수(長壽)하는 가계가 아니다. 5형제7남매 중에 내 기억으로는 여든을 넘긴 분이 없는 것 같다. 내 위에 9년 연장(年長)되시는 형님이 말년(末年)에 장병(長病)으로 입원하고 계실 때 가니 “내가 80은 겨우 넘기겠나.”하셨는데 1927년8월5일(음력으로 丁卯 7월8일) 생이니 돌아가신 것이 2006년인지 7년인지 기억이 나지 않고 족보(族譜)도 다 형님이 계실 때 만들어놓은 것이라 기록이 없다.
이 형님이 나의 둘째 형님이신 泰鎬 형님이다. 아버님은 내가 19살에 돌아가시고 맏형님 泰阮 형님도 46세에 돌아가시고 泰鎬 형님은 아래 3형제에게는 아버지 같은 형님이시고, 스승 같은 형님이시고, 선배 같은 형님이셨다. 성품도 강유(剛柔)를 겸하셨다.
자가 문영(文悅). 호가 삼고(三空)이시고 어릴 때 강원도 오대산 월정사에 가서 김탄허대선사(金呑虛大禪師) 문인(門人)으로 불경(佛經)을 수도(修道)하시다가 나와서 영천 용화촌 응도 최석기 문인(應道 崔碩基 門人)으로 한문을 수학(修學)하셨다.
해방이 되고 초등학교 교사시험에 합격하여 죽남국민하고 교사로 봉직하시다가 아버님 돌아가시고 가세가 기우러지자 교사직을 사임하시고 단신으로 상경(上京)하여 지금 삼성생명 전신인 동방생명 창설 멤버로 일을 하시게 되었다. 어머님 맏형님 가족 동생들까지 상경을 하여 우리 온 가족이 다 서울 시민이 되었다. 그 때 나는 육군본부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이다. 1960년대의 일이니 참으로 태고(太古) 때 일이다. 1936년 생으로 가정의 달 부부의 날이 생일이니 90년 40일을 살았다.
5형제7남매에 90년을 살고 있는 것도 나 하나뿐이고 5형제7남매에 하나님 믿는 것도 나 하나뿐이다. 이것이 우연이라고 생각지 않는다.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과 무 신앙인의 평균수명이 조금 차이가 있다는 통계도 있지만 나는 하나님의 은총이라고 믿는다. 아흔이 넘어 내외가 생존하고 두 아들 두 딸. 여섯 내외손자손녀 무탈하게 잘 살고 손자들은 유학을 가는데 내가 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이라 믿는다.
주후2026년 7월 3일 春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