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떠나기는 쉽지 않다. 카톡방에서 거제도 드라이브를 떠나자며 가이드를 자처하는 선생님의 제안에 다섯 선생님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집에만 머무는 선생님들도, 많이 갑갑하고 답답했나 보다.
거가대교를 지나 거제도에 접어들었다. 성포항과 이어지는 연륙교를 지난다. 도착한 작은 섬이 ‘가조도’란다. 마치 바다와 푸른 숲이 어우러지는 작은 섬이 잘 그려진 액자 속 그림 같다. 처음 본 가조도 이름이 살푼 기억에서 아물거린다. 옛날에는 가지미라 불렀던 것 같다. 친척 숙모가 아마도 이 섬에서 시집을 왔던 모양이다. 동네 어른들은 숙모를 가지미 댁이라 불렀던 기억이 난다.
선생님들은 나에게 이것저것 궁금한 것을 물어온다. 하지만 고향이 거제도라지만 태어난 곳과 정 반대 위치에 있는 어촌이기도 하고, 어릴 적 떠난 고향이다. 난생처음 와본 이곳을 간혹 다녀간다는 오늘의 가이드 선생님보다 생소하다. 그런 나를 같이한 선생님들은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눈치에 그저 민망스럽기만 하다.
가조도 높은 위치 전망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끝자락 냉기에 온몸이 시려온다. 사방으로 트인 바다를 바라본다. 세월 따라 섬사람들의 삶도 달라졌다. 바다 위에 띄워 놓은 흰 부표들로 바다는 온통 양식장을 이루고 있다. 섬사람들의 밭인 셈이다. 옛날 생선을 잡아 생을 이어가던 가난했던 어촌이 아니다. 우선 눈에 보이는 별장 같은 멋진 집들과 전망 좋은 곳마다 이색지게 꾸며진 카페들이 눈길을 끈다. 카페 주차장마다 고급 승용차들이 즐비하다. 어느 도시에 있는 항구와 견주어 본다 해도 뒤지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이곳에 사람들의 풍족한 현 삶이 보인다.
우리의 가이드는 통영 바다를 가리키며 임진왜란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거제도의 역사까지 열강하신다. 세계 최고의 조선소들로 거제도가 발전한 현재의, 상황까지 설명하기 바쁘다. 생소하고 이색진 풍경도 보인다. 육지에 잘 지어진 펜션 못잖은 근사한 집들이 바다 한가운데 떠 있다. 낚시를 즐기는 사람들이나 바다를 찾아온 관광객을 위한 새로운 펜션 업종인가 보다. 잔잔한 바다 위에 아늑히 떠 있는 집이 마음을 당긴다. 저 집 데스크에 앉아 단 하루만이라도 고향 바다에 젖어보고 싶다. 이렇게 고향의 옛 모습은 어느 한 곳도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다. 삶의 환경과 풍경은 많이도 변하고 달라도 너무 달라졌다.
다시 차를 몰아 연륙교를 건너 성포 항 바닷가에 주차했다. 종종 오면 들른다는 가이드 선생님의 단골 횟집이다. 미리 예약해둔 식탁에는 여러 종류의 해산물들이 조리된 것과 손질된 날것들로 한가득하다. 특별하게 정성스럽게 차렸다는 주인 말은 귓전으로 흘리고 주체할 수 없는 내 식욕이 목에서 요동친다. 전복회와 데쳐 썰어놓은 쫄깃한 군수도 올려졌다. 어릴 적 바닷가 돌 틈에서 잡았던 맵싸리 고동과 생선구이, 문어와 꽃게찜 등 도다리 회까지다. 미처 가짓수를 셀 수 없을 지경이다. 이것저것을 집어 입으로 나르느라 젓가락질로 바쁘다. 싱싱함이 살아있는 도다리회는 탄력 있고 씹는 식감은 부산에서 느껴보지 못한 옛 그대로의 맛이다. 어느것 한 가지라도 거부되지 않는 모처럼 먹어보는 음식 맛에 감동하고 감탄한다. 정신없이 먹다 보니 그릇들은 비워졌다. 다 사라졌다고 생각했던 음식에서 고향을 느껴본 것이다.
생전의 엄마도 고향 바다에서 건져 올린 해물 맛을 잊지 못했다. 거제 바다에서 잡은 해물 맛은 특별하다 했다. 부산만큼 해물이 풍부한 도시도 드물 테다. 자갈치나 부산 어느 시장을 가더라도 먹고 싶은 싱싱하고 펄떡이는 해산물은 널려있다. 엄마는 어느 것 한 가지라도 고향 바다에서 잡은 생선 맛이 아니라고 했다. 선주였던 아버지의 능력으로 세끼 밥상에는 늘 갓 잡은 생선이 올려졌을 것이다. 남쪽 바다 깨끗한 청정지역에서 잡아 올린 생선이니 별 양념을 하지 않아도 그 맛이야 백번 짐작을 하게 된다. 더구나 그 시절 젊은 남편의 모습을 담아 더 그리워한 듯하다. 애먼 부산 바다에서 잡은 생선이란 탓만 했었다.
그릇을 다 비웠을 즘 식당 주인은 바로 가까이 있는 위판장을 가리킨다. 식사하는 동안 경매 시간이 지나 볼 만한 장면을 놓쳤다고 아쉬워하신다. 쉬 볼 수 없는 특이한 구경은 못 했지만 위판장에는 갓 잡은 여러가지 해물이 싸단다. “먹어보면 확실하게 맛을 알낍니다.”라며 가는 길에 필요한 만큼 사서 가란다. 사장님의 투박하고 억센 듯한 고향 사투리까지도 정겹다. 친절한 사장님의 배웅을 받으며 위판장에 들렀다.
해물들이 넓은 대야마다 한가득이다. 활어들도 수족관에서 활기차다. 제일 먼저 눈길을 끌었던 것은 털게다. 다른 게들과 감히 비교할 수 없는 먹어본 옛 맛을 기억한다. 개조개도 그릇 넘치게 담아준다. 부산에서 자주 가는 단골 시장 몇 배는 족히 싸다. 좋아하는 해삼도 샀다. 바쁜 부모를 돕는 것인지 대학생 같은 젊은 청년은 덤으로 넣어주고 또 몇 개를 더 집어준다. 야박해 졌다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고향 인심이다. 차를 돌려 부산을 향한다. 고개를 돌려 보니 거제도가 아득해진다.
세상에서 입맛에 맞는 음식을 먹었을 때만큼 더 행복할 수 있을까 싶다. 개조개 살은 한번 먹을 양만큼 냉동실에 저장해 두고 오래 먹을 것이다. 털게는 쩌 먹어도 좋고 게장을 끓여도 좋겠다. 늘 적은 양에 아쉬워하던 해삼을 오는 저녁에는 아들과 소주를 곁들여 넉넉하게 먹으며 옛 고향 얘기를 들려줘야겠다.
양손에 들려진 검은 비닐봉지에 출렁이는 고향 바다가 따라오는 듯하다. 오늘 나는 바다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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