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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말씀/ 디모데후서 23:1-4:22 요절/ 디모데후서 4:2 | 2021. 2. 14 | |
디모데후서 제 3 강 |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우리는 거짓과 가짜가 많은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의 특징은 고통입니다. 우리는 이런 고통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그 해결책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고통 하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구원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알게 해 주고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해 주고, 참 행복을 누리게 해 줍니다.
디모데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말세에 고통 하는 때가 이른다는 것입니다. 말세는 예수님의 초림부터 재림의 때 까지를 가리킵니다. ‘고통 하는 때’는 스트레스가 많고 힘든 시대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과학문명의 발달로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미래를 낙관적으로 보지 않고 비관적으로 전망합니다. 지금의 세상도 고통이 크지만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이 살아갈 세상은 더 고통이 클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인간의 죄악이 더욱 심각해지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국민들에게 복지혜택을 많이 줄지라도 죄가 더 많아진다면 인간은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2-9절은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거짓 교사들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첫째,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합니다. 그들의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그들의 사랑은 이기적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합니다. 돈을 더 사랑합니다. 쾌락을 더 사랑합니다. 첫째 계명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고 돈을 더 사랑하고 쾌락을 더 사랑합니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면 참 행복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간은 하나님보다 다른 것들을 더 사랑할 때 결코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들이 있다면 그것은 우상숭배이며, 하나님이 싫어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 마음 첫 자리에 있어야 참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하나님 없이 사는 인생은 자기를 사랑하고 애인을 사랑하고 돈과 쾌락을 사랑해도 공허하고 만족과 행복이 없습니다. 인간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때 참 만족과 행복이 있습니다.
둘째, 이웃에 대한 태도가 잘못되어 있습니다. 둘째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자랑하며 교만하며 남을 비방합니다.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합니다. 무엇보다 배신합니다. 배신하는 것이야말로 인간관계에서 치명적인 것입니다. 이는 은혜를 원수로 갚는 것이며, 지울 수 없는 상처를 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마지막으로 자기를 사랑할 때 참 행복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중심으로 살아가고 있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경쟁대상으로 여기고 짓밟고 무시합니다. 다른 사람의 호의에 대해 감사할 줄 모르고 당연시 여기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잘못을 하면 참지 못하고 비방하고 미워합니다. 신자라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 유익을 위해서 남을 이용하고 배신합니다. 이웃에 대한 태도가 잘못될 때 공동체성이 무너지고 살기 힘든 세상이 됩니다.
셋째. 신앙과 삶이 일치되지 않습니다. 거짓 그리스도인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합니다. 그들은 겉으로 볼 때 신앙생활을 열심히 합니다. 성경공부도 하고 기도도 하고 주일예배도 드립니다. 하지만 마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열심과 자기 행위를 믿습니다. 그들에게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들은 말과 행동이 다릅니다. 그들은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을 받기 위해서 경건하게 행동하지만 경견의 능력은 없습니다. 그들은 진실된 회개와 참된 믿음을 소유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신앙생활을 하지만 인격과 삶이 변화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말은 유창하게 하지만 말한 대로 살지 않습니다. 그들은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기를 믿고 이기적으로 살아갑니다. 이런 자들은 거짓 그리스도인들이며, 이런 자들 때문에 교회가 욕을 먹고 하나님의 이름이 땅에 떨어집니다.
넷째, 항상 배우나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합니다. 거짓 교사들은 가정을 방문하여 그들의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여인들은 배움의 갈증을 안고 있었기에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이 그들의 가르침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로운 지식에 열광했고 지적 호기심을 채우고자 열심을 냈습니다. 하지만 항상 배우나 끝내 진리에 이르게 하지 못했고 구원을 주지 못했습니다. 당시 거짓 교사들은 얀네와 얌브레가 모세를 대적한 것 같이 복음 진리를 대적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림받은 자들이었습니다. 모세 시대의 두 마술사의 거짓이 드러난 것처럼 거짓 교사들의 어리석음도 드러날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단들은 여러 모임을 만들어 자기들의 교리를 은밀하게 가르칩니다. 매일 두 시간씩 가르칠 정도로 그들의 열정은 대단합니다. 또한 직장을 다니고 가사 일을 하면서 따로 시간을 내서 항상 배우는 사람들의 열정도 대단합니다. 하지만 열심이 많은 사람들이 더 위험합니다. 누구에게 배우는가가 중요합니다. 이 시대에 정말 필요한 사람은 복은 진리를 제대로 가르치는 성경선생입니다.
10-17절에서 바울은 자신의 목자생활을 말하면서 디모데에게 성경의 능력에 대해 가르쳐 줍니다. 디모데는 2차 전도여행 때부터 바울을 따라다니며 그의 가르침을 듣고 그가 어떻게 복음역사를 섬겼는지 보고 배웠습니다. 바울의 가르침과 삶은 거짓 교사들과 완전히 달랐습니다. 바울은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삶을 살았습니다. 바울은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로 복음역사를 섬겼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다. 안디옥에서 유대인들을 선동했다고 쫓겨났습니다. 이고니온에서는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돌에 맞아서 죽을 뻔했습니다. 디모데의 고향 루스드라에서는 돌에 맞아서 기절한 상태로 성 밖에 버려졌습니다. 이런 박해 가운데서 복음을 전했고, 주님은 이런 그를 모든 것 가운데서 건져주셨습니다.
이를 통해 바울이 디모데와 우리에게 전해주고자 하는 진리는 무엇입니까? 12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모든 자는 박해를 받습니다. 의인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은 진리입니다. 여기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고난 받았습니다. 모세도 많은 고난을 받았고, 다윗의 인생도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다니엘과 같은 선지자에게도 고난은 필수 과목이었습니다. 현재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디모데도 외부의 핍박과 내부의 핍박 가운데 있었습니다. 경건과 고난은 필연적인 관계입니다. 박해를 통과하지 않고서는 경건하게 살 수 없습니다. 의인은 반드시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알고 고난에 대한 각오를 해야 합니다. 고난 없는 신앙생활은 꿈에서나 존재하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영광도 없습니다. 결혼생활이 만만치 않듯이 신앙생활도 녹녹치 않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도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눅9:2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악한 사람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악해집니다. 사람들을 속이고 자신도 속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거짓과 가짜가 너무 많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해야 합니다. 디모데는 바울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진리를 배우고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 그의 외조모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로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디모데는 자신이 누구에게 배웠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가 배운 지식이 신뢰할 만한 것인지 분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반드시 배워야 하는 것이지만 누구에게 배웠느냐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성경해석을 잘못한 사람으로부터 배우면 어떻게 될까요? 항상 배워도 구원에 이를 수 없고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잘못된 줄 모르고 계속 배우다가 이단에 빠지고 인생 파탄에 이를 수 있습니다. 좋은 성경선생을 만나고 좋은 멘토를 만난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성경은 어떤 책입니까? 첫째,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디모데는 성경을 배우면서 성경이 진리요 절대적인 삶의 기준이요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체험하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책이 있지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은 성경밖에 없습니다. 성경말씀을 읽고 들을 때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믿음을 선물로 받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고통이 많은 이 시대에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을 배우고 확신하고 그 안에 거해야 합니다.
둘째, 성경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해 줍니다. 16, 17절을 보십시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여기서 ‘모든 성경’은 일차적으로는 구약성경을 가리키지만, 본질적으로는 정경으로 인정된 신구약 66권을 가리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저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약 1600년간 40여명의 저자에 의해서 기록되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통일성이 있으며 내용에 있어서 모순이 없습니다. 그뿐 아나라 성경은 하나님의 성품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인간이 어찌 하나님의 성품을 자세하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 선지자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일을 어떻게 그렇게 분명하게 예언할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이 그에게 계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습니다. 성경만큼 삶의 교훈을 많이 주는 책은 없습니다. 또한 성경은 잘못된 교리나 오류에 빠진 자들을 견책하며 바로 잡는 일을 합니다. 성경은 또한 죄를 깨닫게 하고 책망합니다. 성경은 사람들을 진리와 사랑으로 바로 잡아줍니다. 성경은 사람을 의로 교육하며 의의 길을 가도록 도와줍니다. 성경의 목적은 신자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성경은 신자를 성숙한 사람으로 빚어 주며,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사랑해야 하며 말씀의 뜻을 캐고 삶에 적용하는 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4:1-5은 이 시대 고통 하는 사람들을 치유하기 위해서 우리가 가장 힘써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줍니다. 2절을 보십시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그것은 말씀을 전파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전파하라”는 명령은 바울의 개인적인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과 예수님의 지상명령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이 재림하사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할 것을 믿고 그 주님 앞에서 엄히 명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전파하는 것은 우리의 옵션이 아니라 의무이자 절대적인 사명입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는 것은 기회가 주어지든지 주어지지 않든지, 조건이 좋든지 좋지 않든지 항상 힘쓰라는 것입니다. 이는 환경과 때를 핑계대지 말고 적극적으로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가 끝나면 말씀을 전하고자 하지만 장애물은 항상 있습니다. 그러므로 절박한 심정으로 어떤 상황에서든지 말씀을 전파해야 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한 사람을 꾸준히 섬겨야 합니다. 지혜롭고 신중하게 전도자의 직무를 감당해야 합니다.
6-19절까지는 바울의 간증과 문안 인사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가 체포되어서 죽음을 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이런 그에게는 슬픔이나 후회가 없었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 지금까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믿음의 길을 달리고, 믿음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그는 매순간 파이팅 했고, 예수님의 이름을 높였습니다. 그는 마라톤 선수가 골인점까지 완주한 것처럼 믿음의 경주를 완주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다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는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자신에게 의의 면류관이 준비되어 있다는 것을 확신했습니다.
한때 바울을 따랐던 데마는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렸습니다. 하지만 바울을 끝까지 따랐던 동역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은 누가와 마가와 브리스가와 아굴라와 오네시보로와 에라스도와 드로비모입니다. 바울을 심히 대적한 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들 중 대표적인 사람은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입니다. 바울은 그런 대적자들로 인해 위축되지 않았고, 믿음을 지키고 성경선생의 사명을 충성되게 감당했습니다. 그가 특별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주님께서 그 곁에 서서 힘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고통하는 이 시대에 우리는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까? 성경,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할 뿐 아니라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라게 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아가게 해 주는 지혜의 책입니다. 2021년 새해에 말씀의 능력을 덧입고 구원의 역사, 희망의 역사를 이루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