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말씀읽기 본문은 시편 51편 14-19절인데
지난번에 시편을 통째로 올려서
오늘은 교회전체 말씀읽기 본문인 느헤미야 7장을 정리해서 올려 보겠습니다.
성벽이 다 건축되고 문짝을 달았습니다.
느헤미야는 성문을 지킬 ‘문지기’를 세웁니다.
느헤미야 13:22절을 보면 레위사람들로 하여금 몸을 정결하게 하고 성문을 지키게 합니다.
‘레위인이 성문을 지킨다’는 것은 에스라 느헤미야 전체의 주제를 봐야 합니다.
에스라 느헤미야서에서 ‘하나님의 집’은 ‘성전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공동체와
예루살렘 성벽까지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입니다.
이제 예루살렘 성벽이 재건되어 하나님의 집이 완공되었다면,
‘확장된 성전의 개념’으로서 예루살렘 성벽을 레위인이 문지기로 지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요한복음 10:1~6절.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그들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가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여기서 문지기가 나옵니다. 문지기가 목자입니다.
양들은 그 문지기의 음성을 알아듣고 따라 갑니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잘 알아듣는다고 합니다.
이어지는 말씀을 보면 예수님이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하십니다(7).
예수님이 문지기정도가 아니라 아예 문이시기에
그로 인하여 구원을 얻고, 생명의 풍성함을 얻습니다(10).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립니다(11).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도 주님께서 인도하신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을 것입니다(16).
이 일을 위하여 예수님께서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버릴 권세도 있고 얻을 권세도 있습니다.
그 목숨을 자기 양들에게로 버림으로,
양들을 짊어지시고, 자기에게로 이끌어 들이신 분이
참으로 충성된 문지기이며 양의 문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귀신들려 미쳤다고 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양들은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양들은 늘 그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영원한 문으로 들어갑니다(시24:7~10).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자가 없는 분이십니다(계3:7).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명단은 에스라 2장에 나옵니다.
그곳의 명단과 오늘 본문(느헤미야 7장)의 명단이 대동소이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다시 명단을 기록하게 하는 이유는
성벽과 성문의 건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성전 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백성들의 명단은
바벨론에 사로잡혀 갔던 자들 중에 놓임을 받고
예루살렘과 유다에 돌아온 자들입니다.
이렇게 돌아온 자들은 자신들이 범죄함으로 인하여 망하였다가 돌아오는 자들입니다.
이들이 남은 자들이며, 이들이 하나님의 집이 될 사람들입니다.
신약의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허물과 죄로 죽은 자임을 아는 자들이 주께서 돌이켜 주신 자들입니다.
이들이 하나님이 거하실 성전이며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애굽과 바벨론이라는 세상에서 어린 양의 피로 구속받은 자가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양의 문이시며
문지기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오늘도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져 가는 하루가 되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열심이 이를 온전히 이루실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