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가 말씀하길 일일 유삼선이면 삼년 천심강지복이라고 했다. 하루에 세 번씩 선을 쌓으면 반드시 하늘에서 삼년 안에 그에게 복을 내린다는 뜻이다. 복만 받는 것이 아니고 덕도 같이 쌓아 선인의 길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서양에서는 7 이라는 숫자가 행운의 숫자라는데 우리나라가 반도 삼천리이어서 그런 것인지 우리는 유독 3 이라는 숫자와 인연이 많은 것 같다. 제주도는 삼도 삼무라고 해서 돌, 여자, 바람의 섬이고 거지, 대문, 도둑이 없다고 했고 삼일절 날 대한독립만세를 부를 때도 만세 삼창을 한다. 하루에 삼시 세끼를 먹어야 산다고 해서 삼시세끼라는 프로그램도 있다. 옥황상제가 명을 내려서 아이를 낳게 한 할멈도 삼신할멈이고 탯줄을 세 번 돌려서 자른다고 해서 삼 줄이라고 한다. 정성을 빌 때도 밥 세 그릇. 국 세 그릇, 정화수도 세 그릇을 올리고 제사지낼 때도 삼배를 한다. 그리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삼칠일간 금기를 하여 액을 물리친다고 했다. 그뿐이 아니다 화투를 칠 때도 청단, 홍단 ,구사단 해서 삼단이 있고 고도리도 삼 점을 나야 이긴다. 또 남자는 평생 세 번 운다고 했고 여자는 평생 세 번 실망하는 데 남자가 바람필 때 사위가 바람필 때 비아그라 먹고도 듣지않을 때라는 우스개 소리까지 한다.
하기야 중국에서도 동방삭이가 삼천갑자를 살았다고 했다. 맹자 왈 재산 모으는데만 전념하고 자기 처자만 사랑하고 부모에게 불효하는 것을 삼불행이라고 했고 정직하고 진실하고 학식이 많은 벗을 익자삼우라고 했다. 그리고 후한서에 보면 술과 여자 재물에 빠지는 것을 삼불혹이라고도 했다. 이렇듯 3이라는 숫자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양에서는 상서롭던 아니든 생활 깊숙하게 파고 들어있는 숫자이다.
겨울인데도 날씨가 화창하여 모처럼 가벼운 걸음걸이로 나섰다. 이미 지천명도 지나고 천지만물의 이치에 통달한다는 이순이 지난지도 오래다. 그렇다면 노자 말씀대로 일일 삼선만 행한다면 가히 성인의 길이 보이든지 아니면 입도 할 수도 있을 것 아닌가.
지하철을 타러 들어가는데 등이 굽은 할머니가 행인들에게 전단지를 나누어주고 있었다. 제법 차려입은 중년여인에게 전단지 한 장을 내밀자 에이 귀찮아 죽젰네 하면서 홱 뿌리치는 모습을 보고 굳이 앞으로 가서 전단지 두 장을 받았다. 할머니가 고맙다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전철에 올랐다.
연말연시라 그런지 전철 안에는 물건을 팔려고 돌아다니는 행상들이 많이 보였다. 목적지가 가까워질 무렵 머리가 약간 벗겨진 오십대 남자 행상이 들어왔다. 잠깐만 실례하겠다는 인사를 하고 나서 구두약통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 남자는 실실 웃으며
“허 참, 이 구두약은 신기하게도 한번만 쓰윽 문지르면 반짝 반짝 광이 납니다.” 고 하면서 “아내는 남편에게 자식은 부모에게 특히 명절날 손님들이 많이 오시면 한번 씩만 문질러 주시면 모두들 기분 좋게 돌아가십니다, 가격도 단 돈 천 원만 받습니다.” 고 하는 것이다. 구두약통 안을 보니까 스펀지가 있는데 아마도 그 속에서 휘발성액체가 나오는 것 같았다. 남자는 앉은 사람들의 신발들을 슬쩍 보면서 신사화는 물론 등산화와 여자 부츠까지 어떤 신발이든 십초밖에 안 걸린다고 너스레를 떤다. 요즘 천 원으로는 살만한 것도 없다는 그의 언변이 구수했지만 워낙 불경기라 그런지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난감한 표정으로 차안을 몇 번이나 오갔지만 불량품이란 불신이 팽배해서 그런지 아무도 거들떠보지를 않았다. 딱한 생각이 들어서 천 원짜리를 내밀었더니 고마운 표정으로 구두약을 주고 가는 것이었다.
그 순간 한번만 더 착한 짓을 하면 오늘 삼선을 행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구두약 파는 사람이 내린 다음에 목적지가 가까워질 무렵 어린애를 앞세우고 다리를 다쳐 절룩거리는 맹인이 등장하였다. 아이와 함께 먹고 살아야하는데 노동능력이 없어 구걸생활을 하고 있다고 했다. 한 사람 두 사람씩 천 원짜리를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주머니 속에서 천 원짜리를 찾으려 했으나 없었고 오천 원짜리 한 장이 있었다. 한번 만 더 선을 행하면 삼선을 행하는 것이라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갈등이 생겼다.
천 원짜리라면 주저 없이 내주었을 텐데 오천 원은 너무 큰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아마 앵벌이일 거야. 저런 모습으로 구걸하는 것은 틀림없이 연기일거야 ” 하는 의심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아이의 천진한 모습이 마음에 걸렸고 의심하지 말고 믿어라. 의심하는 것만큼 불행한 것이 없다는 성경말씀까지 떠올랐다.
어떻게 할까, 자선냄비에 돈도 넣는 연말인데 그냥 줄까. 참을까, 한번 크게 마음을 먹어 볼까하고 갈등이 심했다. 그러나 선뜻 손이 나오지를 않았다. 결국 돈을 쥐고 있던 손을 끝내 밖으로 빼내지 못한 채 열린 문으로 내려 버리고 말았다. 후회가 밀려 왔다. 아까운 생각에 선행을 주저한 것도 그렇고 의심을 먼저하며 자신을 합리화 하려했던 자화상을 그려보면서 무슨 지천명이고 또한 선인의 길로 입도하려는 꿈을 꾼다는 것인지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첫댓글 그 오천원짜리 지폐의 갈등 때문에 어렵싸리 2선을 마치고 드디어 삼선을 달성하는 목전에 포기하고 말았구나. 앞으로 늘 천원짜리를 몇개씩은 주머니에 넣고 다녀서 진철이처럼 목전에 보기하는 아쉬움이 없겠네 라고 생각이 든다.
언제나 정겨운 기호야 금년에 마무리 잘하고 새해에도 복많이 받으시오
전철형! 아니 진철형! 사실은 삼선을 행했겠지~ 읽는 사람이 재미있으라고 그런 거 아닌감?
우리 나라에 3이란 숫자 중에 天, 地, 人을 3才라 하지요?
白牛선생! 병신년 새해에 보세~
창희형 3이라는 숫자가 참 많아 항상 박식한 창희형으로부터
새해에도 많은 가르침을 주시길. 송구영신하고 건강하시오
@정진철 그런데 白牛선생! 우리나라에서 白牛는 하나 밖에 못 보았소~
동남아에 가보니 널려 있는게 白牛입니다~
@chahlley 원래 이게 돌연 변이라고 하던데..나를 두고 한 소리같아서..
차라리 10,000원 짜리를 주지 그러셨나...
내가 그릇이 그것밖에 안되어서 덩치값도 못해유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