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와 연출에 대한 나의 감상
영화 블루아워
우선 이게 도대체 왜 12세 연령가인지 이해가 안되었다. 은유적 내용과 여기서 내포하는 내용들이 12세 연령으로 하기엔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우선 들었다. 다음으로 15세나 내 마음 같아선 19세로 설정하고 좀 더 직설적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정리하고 나니 좀 더 영화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장치들을 고민해 보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어느새 잊어가고 소홀해지는 본인에 대해 다시금 주의를 기울이게 해주는 그런 영화다. 일본영화 특이한 보는 이들을 좀 낯설게 하는 감성이 묻어나오지만 다 보고 찬찬히 곱씹어 본다면 은은한 본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연출>
영화 전반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음향적인 효과나 그걸 통해 감독의 의도가 무엇인가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어떤 대사를 하거나 과거를 회상하거나 주인공에게 깊이 박히는 말들이나 이런 것들이 표현될 때는 주변 소리가 무음 처리가 된다. 때로는 주인공이 갖게 되는 소통의 차단 또는 심리적 적막함은 오히려 물속에 있는 듯한 음향효과 또는 과거의 본인의 목소리가 겹치면서 이루어진다.
화면의 영상적 측면의 연출은 흔한 3자의 시점의 정상적인 화질의 촬영과 기요우라 또는 인위적 캠코더의 약간은 뭉개진 화면의 전환등을 통해 처음엔 기요우라가 스나다를 보는 3인칭의 시점에서 점점 스나다의 시점으로 바뀐다. 그러다가 결국엔 요양원에서의 할머니의 촬영으로 온전히 스나다의 시점으로 바뀐다.
영화 내내 오묘함이 크게 두 개 있다.
1. 스나다 가족 구성원들의 말과 행동
고향에 감과 동시에 스나다가 가족을 피해오거나 멀리해온 티가 바로 난다. 무신경함이 느껴진다.
1) 아빠 : 골동품 = 아빠 전형적인 가부장
골동품을 모으기 시작 대략 500백만엔을 썼다고 한다. 오빠의 말로. 동물 박제들과 일본도 진검을 가지고 휘두르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상 아빠의 등장은 여기가 98%다. 그 뒤로 나온 모습을 봤을 때 이미 집에서 골동품과 같은 존재다. 그 어느 가족들과의 큰 소통은 없고 전형적인 가부장의 모습을 보인다. 크게 집안일과 농장일을 엄마에게 맡기고 정은 크게 없다. 생과 사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옛날 스나다의 고양이를 죽이기도 하고 할머니의 안부를 이야기 할때도 “아직도 안 죽고 뭐 하는 거냐, 아직도 살아있냐?”라고 할 정도이다.
2) 엄마 = 주방 : 쓸쓸한 집의 핵심
엄마의 모습은 다소 충격적이었다. 첫인상은 그냥 시골의 드센 엄마의 느낌이었다. 하지만 스나다가 맥주를 가질러 주방으로 들어가려 할 때 엄마의 말소리가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통화하는 듯한 일방정인 맥락 없는 말들의 나열이다. 가까이 가니 엄마는 주방 창틀의 작은 티비를 보며 컵라면을 먹고 있었다. 그리고 나오는 장면과 배우에 대해 큰 소리로 혼자말을 하고 있었다. 대화가 아니었고 그 모습은 이미 그런 행동, 생활이 익숙한 느낌인데 고독에 익숙해져서 고독함에 발버둥 치는 느낌이었다. 엄마는 매일 저녁은 혼자 컵라면을 먹는다 한다. 아빠와 오빠가 밥을 차려줘도 먹지 않은지 오래라 하였고 냉장고에 삼각김밥이 있으니 먹으라 한다. 충격받은 스나다, 그리고 냉장고를 열지만 가정의 냉장고라 하기 어려울 정도의 너저분한 생태고 가운데에는 삼각김밥이 경주를 포기한 마처럼 늘어져 있었다. 생기라고는 찾아 볼 수 없는 냉장고 모습이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지만 할머니를 보러 갔을 때 짧은 캠코더 속에서 수줍어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 소녀의 모습이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우리 엄마의 모습이었다.
마지막 스나다 일행이 떠날 때 너무 아쉬워하는 표정과 끝내 마지막 마중에서 여운과 아쉬움처럼 사라진다.
+++ 귀가 들리지 않아 계속 큰 소리로 말하는 엄마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가 아닌가 하다. 이미 본인이 소통이 안되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끝까지 소통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엄마의 모습 같이 보였다. 가부장 가정에서 이제서야 목소리를 내는 엄마의 모습 같았다.
3) 할머니 = 결말
할머니의 모습은 마지막에 나온다. 생명의 끝에 있는 모습이다. 최근에 다시 좋아진 것이었고 유일하게 스나다의 안부를 먼저 물었다. 할머니는 어쩌면 마치 옛날의 기요우라가 아닐까 한다. 자신을 제일 가까이에서 봐준 사람 자신을 제일 잘 아는 사람. 그래서 오빠가 기요우라의 정체를 암시하기 전까지 난 할머니의 젊었을 때가 스나다와 함께 있는 것은 아닐까 했다. 하지만 이것도 어찌보면 맞다고 생각한다. 이 영화의 시작과 결말은 할머니이며 또한 기요우라니까.
엄마와 화병을 준비하며 한 이야기 중에는 죽음과 마주하며 본인도 달라졌다고 하며 할머니가 말한 열심히 산다도 다 무엇인지 잃어버렸다는 답을 바로 제시한다. 아니 그냥 살아 있는 것이 열심히 산다는 것 아닌가 라는 암시가 들어온다.
캠코더의 할머니는 생기가 가득한 소녀다.
2. 영화내내 약간은 느껴지는 기묘한 존재 기요우라 - 스나다와 닮은듯 아닌듯 어디가 아픈가 싶기도 한 이상한 저세상 텐션의 인물로 그려졌다. 할머니의 어렸을 때 모습은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다.
기요우라의 첫 등장은 저세상 텐션의 사람이다. 희희낙락하면서도 너무 들뜨지 않고 스나다의 눈치를 보고 맞춰주며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며 가끔은 스나다를 알고 싶다고 하며 측은하게 그리고 다정하게 스나다를 바라보기도 한다. 스나다와 가까운듯 멀고 멀며 가까운 닮은듯 아닌듯 정말 오묘한 거리감을 유지한다. 생각해보면 나이 미상 아랫사람 같지만 정말 크게 정보가 없다. 하지만 결론에서 이런 앞의 내용에 대해 반전을 주는 것이 정말 좋았다.
이런 부분을 정말 잘 살린 심은경 배우를 존경한다.
<소재>
1. 캠코더 진실된 모습을 보는 진실의 렌즈
- 생가가 없었지만 할머니의 옛 소녀때의 모습을 보여주는 본질을 보는 눈, 이는 엄마에게도 해당된다
마지막 가족들의 모습이 담긴 짧음 영상에는 모두가 행복한 얼굴들이 담겨있다.
2. 시골과 촌스러운 것 vs 도시, 도시의 삶, 도시적 분위기의 사람
- 스나다의 고향은 아무것도 없는 깡시골로 표현됨
- 기요우라가 계속 언급한다 스나다씨는 원래 엄청 촌스러워요
- 누가봐도 도시적인 느낌의 기요우라 하지만 스나다만 부인한다. (결국은 스나다 본인)
- 엄마는 말한다 기요우라는 딱봐도 도시사람이라고 너(스나다)는 어디 사람이냐고?
- 결국은 둘 다 본인이다. 다만 촌스러운 것이 더욱 본질적인 스나다이다.
***** 도시에 살면서 그리고 현대인의 삶을 살면서 결국은 우리는 도시적인 것이라는 것에 현대인의 삶이라는 것에 맞춰 살기 급급한 것이 아닌가 본인들을 잊어가면서.
3. 그림 = 스나다 정체성의 한 부분
- 고양이의 슬픔 때문에 고양이를 많이 그렸고
- 참이 이야기가 나왔을 때는 참치 일러스트를 그리는 기요우라가 나옴
4. 고양이 = 스나다에게 있어 상실감
- 어렸을 때 갑자기 아버지가 죽여버림
- 남편이 좋아하지만 스나다는 알레르기가 있고 역 앞에서 술에 취해 구르다 온 스나다와 대비되어 남편이 꼭 끌어안고 자는 고양이 인형
5. 밥 = 소통의 수단 내지 소통의 플랫폼
- 스나다가 와서 밥 자체를 하지 않던 엄마가 밥을 함
- 남편과 식습관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