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김춘리
들판의 지표면이 자라는 철
유목의 봄, 민들레가 피었다
민들레의 다른 말은 유목
들판을 옮겨 다니다 툭, 터진 꽃씨는
허공을 떠돌다 바람 잠잠한 곳에 천막을 친다
아주 가벼운 것들의 이름이 뭉쳐있는 어느 代
날아오르는 초록을 단단히 잡고 있는 한 채의 게르
꿈이 잠을 다독거린다
떠도는 혈통들은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어느 종족의 소통 방
식 같은 천막과 작은 구릉의 여우소리를 데려와 아이를 달래는 밤
끓는 수태차의 온기는 어느 후각을 대접하고 있다
들판의 화로(火爐)다
노란 한 철을 천천히 태워 흰 꽃대를 만들고 한 몸에서 몇 개의
계절을 섞을 수 있는 경지
지난가을 날아간 불씨들이
들판 여기저기에서 살아나고 있다
천막의 종족들은 가끔 빗줄기를 말려 국수를 말아 먹기도 한다
바닥에 귀 기울이면 땅속 깊숙이 모래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초
원의 목마름이란 자기 소리를 감추는 속성이 있어 깊은 말굽 소리
를 받아 낸 자리마다 바람이 귀를 접고 쉰다
이른 가을 천막을 걷어 어느 허공의 들판으로 날아갈 봄.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등단작
김춘리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바람의 겹에 본적을 둔다』, 『모자 속의 말』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