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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를 빕니다!
이 게시물은 페이스북 그룹 대한성공회 서대구교회 애은성당 West Daegu Anglican Church에서 인용해온 것입니다. 한성규 신부님 은퇴 성찬례(+부산교구 2023 신년하례회와 윷놀이) 게시물은 지금으로부터 시간이 다소 지났지만, 이곳 다음카페에서도 페이스북 그룹에 게시된 것과 동일한 내용을 볼 수 있게 작업을 하고 있으니 널리 양해를 구합니다.
원문 출처: 대한성공회 서대구교회 애은성당 West Daegu Anglican Church | 부산교구 신년하례회와 윷놀이^^ | Facebook
원문 게시물 작성자: 박용성 바르나바 신부님
(위 링크를 클릭하시면 페이스북에서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부산교구 신년하례회와 윷놀이^^
거제 한성규 신부님의 은퇴성찬례가 있었습니다.
설교 말씀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어 나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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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마르코 10:35-45
2023년 1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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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고 존경하는 주교님을 비롯하여 후배 성직자들 앞에 설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세월이 화살같이 빠르게 지나간다더니, 어느덧 부산 교구 거제 교회에 온지 5년 4개월이 지났습니다. 1월 13일에 만 72세가 되어 미국 성공회에서는 은퇴할 나이가 되어 여러분들의 사랑 가운데 은퇴를 앞두고 있어 감사를 드립니다.
사실 미국 선교사 타이틀을 갖고 한국에 올 때는 내 인생에 나머지 열정을 불사르겠다는 그런 열정은 없었습니다. 심지어 우리집 사람은 일주일에 3일 놀고 4일 일하겠다는 말도 하였어요. 선교사는 선교지에서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일을 보고, 그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들과 협력하여 일해야 한다는 말씀만을 가슴에 새기었습니다. 역시 하느님은 거제에서 역사하셨고, 저는 그 일을 따라가기 벅찼습니다. 이제는 지역 주민과 또 우리 후배 성직자들과 친구가 되었으니, 무엇보다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저만 친구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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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이 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 구절은 저의 신학교 졸업 논문제목 이기도 했고, 제 삶의 명제가 된 구절이기도 합니다. 승부욕이 잠재된 제 내면에는 으뜸이 되고자 하지만, 죄인을 섬긴 예수님을 바라보면 종이 되어야 하는데, 언제나 으뜸이 된다는 것과 종이 되는 것 사이에 갈등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제 첫 목회지는 상주인데, 상주는 천주교와 성공회가 한 집 사이를 두고 나란히 있습니다. 주일날, 큰 길에 사람들이 무리지어 들어오다가 극소수만이 성공회로 들어오고 큰 무리는 천주교로 들어갑니다. 이것을 목격하고 숫자에서 오는 열등감이 밀려오는데, 종이 되라는 이 명제는 참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성공회는 숫자의 열세에 벗어나지 못하여 우리 신부님들은 숙명적으로 숫자로 크기를 재는 세상에 맞서고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성경 빌립보서에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였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본질이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종의 신분을 취하셨습니다. 예를 들어 인도에 제일 하급의 신분인 불가촉 천민이 종으로 사는 것과 브라만 최상 귀족이 종으로 사는 것과는 다르지 않습니까? 저의 성직 초창기에 기도로 씨름하였던 것은 나는 누구인가? 성공회 사제로서 나는 세상에 어떤 존재의 무게(영광)를 갖고 있는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상주와 서면 교회를 섬기면서 교회가 활발하게 성장하는 것을 보면서 어느정도 자만이 들어올 무렵, 하느님은 저를 미국 워싱톤 교회로 옮기셨습니다. 미국은 교회 분위기가 상당히 달랐습니다. 성직은 그저 먹고 살기 위한 한 방편이고, 교회는 일주일 내내 일하는 자신들의 상처와 분노를 달래는 곳이라고 인식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공항 픽업, 직장 알선, 아파트 소개등 발벗고 나서야 했습니다. 심지어 친구 목사는 교우들 집 앞에 눈을 치워주었더니, 눈 오는 날 교우가 당당히 눈을 치워 달라고 요구하는 것을 듣고 목사직을 그만 두었다고 하였습니다. 미국 목회가 아니었다면 저 역시 그저 목에 힘을 주는 사제가 되었을 거라고 종종 생각합니다. 목회 43년을 지나면서 하느님이 택하신 사제로서, 하느님이 불러주신 종으로서 어떻게 섬기는 삶이 되었나 반추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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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느님께서 택하신 왕의 사제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선택된 민족이고 왕의 사제(왕같은 제사장, 왕가의 제사장, a royal priesthood)들이며 거룩한 겨레이고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라고 베드로 전서 2:9절에 우리 신분을 명백하게 정의합니다. 하느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택하셨습니다. 실수가 없으신 분께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택하셨습니다. 우리를 왕의 사제로, 왕같은 제사장으로 택하셨습니다. 알파와 오메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영원을 지배하시는 왕의 사제입니다. 어떤 직업과 비교할 수 없는 영화로운 위치로 높여주셨습니다.
최저 시급에 해당하는 생활비에도 자발적으로 기쁘게 주님의 길을 따르는 우리 부산교구 성직자들을 마음을 다해 존경하고 사랑합니다. 교회 주보부터 청소까지, 예전과 교육, 교인들의 자잘한 일도 내일 처럼 여기고 돌보는 수퍼 사제로 요구 받지만 기꺼이 그에 부응하는 우리 후배 동료 성직자들을 꼭 껴안아주고 싶습니다.
우리는 작고 연약합니다. 우리는 부서지기 쉽고 넘어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계신 하느님은 강합니다. 능력의 주님입니다. 온전한 사랑의 주님입니다. 이 분이 우리 안에 계시는 한 우리는 더이상 작지 않습니다. 작고 연약해 보이는 부산교구도 주님이 우리 안에 있는 한 거룩하고 아름다운 교구입니다.
지난 6년을 여러분 곁에서 생활하며 보고 알게된 부산 교구는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상,하의 질서보다는 서로 존중하고 섬기며, 먼저 하느님 나라를 구하고, 주님을 따르라는 분부에 순종하면서 서로 친구가 되어 함께 일하는 모습 M.H.(맨땅에 헤딩) 공법을 목격했습니다. 주교님과 사제들이, 선배와 후배가 서로 편가르지 않고 권위를 행사하지 않으며 복음을 사는 모습은 참으로 거룩하고 자랑스럽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우리는 ‘하느님께서 택하신 왕의 제사장’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의 근원은 왕의 능력과 왕의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낮아질 수 있습니다. 숫자로 평가하는 이 자본이 주인인 세상 한 가운데에서 어깨를 펴고 당당한 모습으로 기쁘게 섬기며 희생하며 살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료 성직자 수도자 여러분, 왕의 제사장으로서 주님의 길을 따르는 여러분이 옆에 있어 너무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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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뜸이 되고자 하는 종의 사명
왕의 제사장으로서 섬기는 종이 우리의 신분이라면, 주님이 주신 지상 명령인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모든 사람에게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28:19)는 말씀은 성직자의 본분이며 중심 사역임을 말해 줍니다.
하느님을 만나고 나서 이 말씀에 집중하였습니다. “가라”. “제자 삼아라” ‘‘세례를 주어라.” “가르쳐라.” 주님이 주신 지상명령입니다. 한번은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라는 찬송을 하면서 과연 열악한 환경에 복음들고 갈 수 있을까? 대접받는 곳, 나의 위치를 높여주는 곳, 그런 곳에 길들여져 있는 건 아닐까? 되돌아 보았습니다. 일부러 아골골짝을 찾아 떠날 필요는 없겠습니다. 매일 길을 나서는 곳, 만나는 사람들에게 살아계신 주님을 전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또 일꾼이 된다면 그것만큼 기쁜 일이 어디있겠습니까?
상주에서 8년, 서면에서 6년, 워싱톤에서 25년을 목회하고 66세에 버지니아 교구에서 은퇴를 하였습니다. 공교롭게도 담임한 교회들 모두 몇년간 사제를 모시지 못한 어려움에 처해 있는 교회였습니다. 버지니아 소속의 사제로 은퇴를 하자, 하느님은 한국에서 사역할 기회를 주어서 기쁘게 섬겼습니다. 거제 교회에서의 사역은 사제로서의 삶의 보너스이자 은총이었습니다.
2017년 9월 3일 첫주 박오네시모 교구장 주교님께서 취임 감사성찬례를 드려주셨고, 그 다음 주에 제가 집전하였습니다. 그 다음 날인 9월 11일 월요일 홍수로 성당이 침수되었습니다. 강대상, 성경, 성가가 떠다니는 것을 보고 참담했습니다. 4명의 교우들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리모델링을 하여 주님의 기적의 현장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은퇴를 앞둔 시점에 성당 및 부속 건물들을 수리 보수하였습니다. 페인트칠만 하면 완성될 것으로 믿습니다. 성당 안의 보수 공사로 시작하여 성당 외 보수 공사로 저의 사역을 마무리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성탄에는 선물교환을 하고 신년 주일에는 윷놀이를 하였습니다. 모두 기쁨의 웃음꽃을 피웠습니다. 거제 교회가 생긴 이래 처음이 아닌가 합니다. ‘주님께서 하셨다.’고 고백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시작하셨고, 일일이 개입하셨고, 이루셨습니다. 하느님은 지금 살아서 역사하십니다.
예수님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제자들에게 올바른 방향과 목표를 주십니다. 주님이 주신 사명인 ”가라. 제자 삼아라. 세례를 주어라.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이 목표를 향해 달려가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사랑하는 동료 성직자 여러분, 이 길에 숱한 좌절과 실패와 고난이 함께 하지만, 그만큼 축복도 컸음을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지상명령을 받들어 섬김으로써 주님 앞에 으뜸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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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바람이 부는 징조를 봅니다.
올해 교구 표어가 “하느님을 경험하는 교구’입니다. 너무나 가슴 설레는 표어입니다. 2023년에 하느님께서 어떻게 일하실 지 기대 됩니다.
아합왕때 엘리야는 비가 오지 않도록 기도하자 3년 6개월 가물어 큰 기근이 들었을 때 엘리야는 백성들에게 양다리를 걸치지 말라고 책망하면서, 야훼가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하느님이라면 그를 따르라고 촉구합니다. 그리고 어느편이 참 하느님인지 겨루어, 엘리야가 쌓아놓은 제단에 불길이 내려옴으로 야훼가 참 하느님임을 증명합니다. 그리고 엘리야는 가르멜 산 꼭대기에 올라가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시종에게 서쪽 하늘에 징조가 보이는지 보라고 이릅니다. 일곱번째 바다에서 손바닥만한 구름이 한장 떠오르자, 아합왕에게 ‘비가 쏟아져 길이 막히기 전에 어서 병거를 채비하여 내려가시라고 이릅니다. 잠시 후 손바닥 만한 구름이 하늘을 덮고 바람이 일고 큰 비가 쏟아집니다.
바알을 숭배하는 제사장들이 제단을 돌며 춤을 추고 몸에 상처를 내고 신접한 모습으로 날뛰어도 아무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불과 상극인 제단에 물을 붓고 도랑을 파 물을 채운 다음 하느님께 기도한 엘리야에게 하느님은 불을 내리십니다.
하느님의 일은 하느님의 힘으로 되어집니다. 우리 힘으로 아무리 애써도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힘만 듭니다. 성령의 바람을 기다리고 성령의 바람을 탈 때 독수리처럼 세상을 날 수 있습니다. 세상의 지배를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이기고 뛰어넘은 하느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부산 교구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음을 봅니다. 제가 있는 동안에 포항 교회를 비롯하여 서대구 교회, 구미 교회, 영주 교회, 제주 우정 교회, 동래 교회 등 이 외 여러 교회에서 새바람이 일고 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더이상 양다리를 걸치고 있을 수 없습니다. 바람에 몸을 던지는 독수리처럼, 물에 몸을 던져야 물에 뜰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던집시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우리를 통해 일 하실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동료 성직자, 수도자 여러분,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맡길 때 하느님이 책임져 주십니다. 성령의 바람을 경험하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으뜸이 되는 사람은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 말씀을 되새기며, 왕의 제사장으로서 섬김으로 주님이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합시다. 지상 명령에 순종함으로 주님에게 으뜸으로 기억되시길 바랍니다. 새 생명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부산 교구에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멋진 성직자로서의 삶을 사시기를 다시 한번 축복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