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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찰 강응황(姜應璜) 자(字) 위서
교리‧부수찬‧함경도어사 강린(姜繗)...자(字) 극수(克修), 1558년생
강응문(姜應文) 생년 계해(癸亥) 1563년(명종 18)...자 군망(君望)....정경운 1556년생이므로 해당 없음.
강응주(姜應周) 생년 기사(己巳) 1569년(선조 2)... 자 군망(君望).... 상동
......................................................................목사 강군망,강희망 형제
......................................................................강경정(姜景靜)
......................................................................강좌수
강첨(姜籤)...홍문관부제학,대사헌, 경상도관찰사, 이조참판(吏曹參判)
의간공(毅簡公) 강신(姜紳)...평난공신(平難功臣)
.......................................................................강경성
.......................................................................강원보, 강찬보
.......................................................................강협
.......................................................................강치손
.......................................................................강충
사헌부지평, 제용감정, 충원현감(忠原縣監) 강익문(姜翼文)
1592년(선조25, 임진)
6월 적과 맞서기 위해 의병을 모으고 군량과 무기를 갖추다
9일. 모든 지경의 선비들이 모여서 의논했는데, 거사하기로 결정했다.
노사예와 노사상을 도유사로 삼고 서기,군기,군량,군사,군마 모으기, 군량운반등에 유사를 두었다.
나(정경운)와 강극수는 기록하는 일을 주관하며, 박공간과 정현경은 활과 화살을 맡아 살피고, 정사고와 노경승은 군자금을 모으고 먹을 것을 공급하기로 했다.
그 밖의 고향 벗들도 각자 일을 맡아 처리하게 돼 여력이 없었다. 강군망(姜君望) 형은 무기를 책임지고 맡아서 힘써 주선하기로 했다. 또 모인 선비들은 각자 활이나 창 가운데 하나를 쓰도록 했다...37 - 38쪽
8월 초유사 김성일이 경상좌도 감사로 가는 것을 만류하다
11일. 상소문 만드는 일때문에 인근 유생들이 우리 군 향교에 모두 모였다.
진사 정유명을 소두로, 성팽년과 노사상을 장의로, 노주와 강린(姜繗)을 유사로 삼았다. 박여량(자 공간)이 상소문을 짓고, 나와 박여량이 함께 상소문을 썼다...67 - 68쪽
11월 경기순찰사 심대와 진주목사 김시민이 전사하다
6일. 정대장, 김대장, 정랑 박성이 곡식을 모으기 위해 통문을 냈다. 여러 고을에서 각기 유사를 정했는데 함양에선 박공간, 노지부와 나를 포함한 다섯 사람이 일을 맡았다.
나는 피란할 계획으로 이자반과 백운산에 들어가서 흙집을 쌓았다. 강좌수, 황 참봉, 노회덕이 와서 살펴보았다...87
26일. 노사예, 조광립, 박여량, 박선, 노사상, 노사소, 강린(姜繗)과 나를 포함한 여덟 명이 김대장 집에 찾아가서 뵙고 거창에서 묵었다...89쪽
27일. 박경실(박선), 박공간, 강극수와 함께 해인사에서 내암 정대장(정인홍)을 조문했다. 선생께선 60 여세에 아들 상을 당해 오랫동안 오열하고 계셨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복이 온다는 말은 막연하고 그 징조가 없구나!
28일. 박공간, 강극수와 함께 가야산을 넘어가서 성주 증산촌에서 묵었다...89쪽
1393년(선조26, 계사)
1월 관리들은 정신을 못차리고 백성들은 떠돌며 굶어죽다
7일. 순찰사가 우리 군에 전령하기를 '의병유사 등의 공로를 검토하고 부지런함과 게으름을 기록해서 순찰사에게 보고하라. 그리하면 행재소에 천거하려 하니 유사 등의 성명을 책으로 만들어서 관에 보고하라'했다.
문병하러 온 강경정(姜景靜)을 만났다.
3월. 송암 김면께서 돌아가시고 김준민이 의병대장이 되다.
1일. 임금께선 정주에 계신다. 노 원장, 노지부, 정사고가 편지로 문병해왔다. 강군망, 강희망(姜姬望) 두분 형도 역시 글을 보내 문병해왔다.
10일. 정사고가 문병하는 편지와 함께 약재 두봉을 보내왔다. 박경실 형, 노지부, 강위서(姜渭瑞)도 편지를 보내 문병해왔다. 이들이 참으로 정이 도탑지않았다면, 아, 어찌 이같이 정중하겠는가?
5월 명나라 군사가 고개를 넘어 남하하고 권율이 도착하다
22일. 강씨 어르신께서 위문하는 편지를 보내 주셨다. 또 김응구가 '명나라 군사모습을 직접보니 위엄이 대단하고 장관이었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내왔다.
7월 왜적이 진주 일원에 가득차서 피란길에 나서다
26일. 백운산에 가서 참봉 방극지를 만났다. 방극지는 처음에 도탄 의병장으로서 군사를 거느리고 함안으로 나아갔다. 그러고는 자신을 대신할 장수로 강희보(姜姬甫) 등을 정해서 진주를 지키게 한 뒤, 자신은 호남에서 군량 마련을 독려했다.
10월 임금과 세자가 한양으로 돌아오다
6일. 노 원장, 노지부, 정사고, 정현경, 노경승, 진군술, 노빈부, 조수보, 이자반, 하자명, 강위서 등과 함께 의병소의 군기와 군량 등에 관한 일을 의논하려고 향교의 정자에 모였다...149쪽
20일. 정사고, 노경승, 진군술, 강위서, 하자명과 함께 이야기하고 어사를 만나보았다.
11월 도망친 종을 잡으로 남원에 가다
29일. 노 원장, 노지부, 박공간, 정사고, 노경소, 강극수, 노여임과 향교에서 함께 잤다.
1394년(선조27,갑오)
3월 거창에 곡식을 얻으로 가다
14일. 북쪽으로 길을 나서 아림에 갔다. 강희망 형과 말고삐를 나란히 해 신현을 거쳐 장발촌에 도착하니 비오는 기세가 매우 심해졌다. 무척 괴롭고 힘들었지만 겨우 현내에 이르렀다. 이성식이 사는 곳을 찾아가서 유숙했다.
성식은 자가 건명이고 향청에서 일을 맡고 있었다.
15일. 밤새도록 가랑비가 내렸다. 이른 아침에 도사 정공(정사신)이 거창에서 묵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강형(강희망)과 함께 거창수령을 찾아가서 만났다. 그 때문에 도사를 만났다. 박백번도 마침 한 자리에 있어서 여러 시간 환담을 나눴다. 거창수령에게 '흉황으로 힘들어 우리 스스로 어려움을 헤쳐 나갈 수 없으니 모름지기 도와주십시오'하고 간곡히 부탁했다.
오후에 비오는 기세가 조금 누그러져서 도사는 화양으로 갔다...
16일. 강형과 함게 부장 윤을신을 만났다. 울신은 전부터 익히 알던 사이여서 우리에게 음식을 대접해 줬다...
17일. 새벽에 강형과 함께 출발해서 오후에 집에 도착했다. (정) 사고가 향교에 와서 무기를 살펴봤다는 소식을 듣고 함께 잤다.
4월. 백성들이 굶주리고 종자가 없어 농사를 짓지 못하다.
1일. 생기가 차츰 돌아와서 혼자서 그저 기뻐했다. 정사고, 강주서(姜周瑞), 강위서가 편지를 보내 문병했다.
5월. 농사는 망치고 물가는 올라 백성들이 살기 힘들다
2일. 길에서 강경정을 만나 여러 시간 동안 담화했다.
5일. 비가 오다가 오후에 갰다. 단오절이지만 한창 병마에 시달리는 중이라 부모님 영전에 술 한잔도 올리지 못했다. 비감한 생각을 어찌할 수 없었다. 강씨 어르신의 부음을 들었다. 어르신은 일생 운수가 사납고 복이 없었는데 염질로 돌아가셨으니 불쌍하구나
16일 하늘이 흐려지고 어둡더니 오후에 잠깐 비가 왔다.
길에서 강군망 형과 황준장을 만나서 여러 시간 동안 담화했다.
6월 고을 수령이 파직돼 위로하다
6일. 정사고와 함께 성주가 파직된 것을 위문했다. 그리고 장군을 계속해서 도울 일을 의논하려고 향교에 모였다.
저녁 무렵에 노 원장 형제와 강군망, 노지부가 향교에 와서 여러 시간 이야기 했다.
7일. 노충보와 강극수가 향교에 와서 함께 대화했다.겸관으로 온 덕응 어르신이 향교에서 걱정스러운 소란을 이야기 했다.
1595년(선조28, 을미)
4월 심유경이 왜적과 화의를 논의하러 오다
9일. 강극수와 이자반이 찾아와서 담화했다. 노빈부 또한 왔다.
5월 명나라 장수들이 고을수령과 백성들을 구타하다
8일. 정사고와 작별했다. 오후에 노경승과 강극수가 부르기에 가서 만났다....254쪽
1596년(선조29, 병신)
1월. 호남으로 가서 종들을 두루 방문하다.
10일. 강경정이 와서 대화했다. 오후에 정사고가 모친을 위한 잔치를 베풀어서 찾아갔다.
2월 호랑이가 집에 들어오다
10일 노 참봉, 경승, 경안, 이복을 두루 만나 잠깐 대화하고 작별했다.
15일. 성주를 만났다. 서원에 가서 문묘를 배알하고, 지부, 군술, 강위서와 대화한 뒤 헤어졌다. 또 서평에서 김찰방을 만났다.
4월 명나라 사신 이종성이 왜영에서 도망치다
13일. 체찰사 종사관 강첨(姜籤)이 군에 왔다.
6월 성주가 금부나장에게 잡혀가다
5일. 약속된 모임에 가기위해 강위서와 정사고를 만났더니 모두 '사자같은 명령'이 내려질까 두려워 감히 모임에 가지 못했다. 강위서가 정사고를 만류해서 모임에 가지않았다. 그래서 나 혼자 말을 채찍질해서 군술을 찾아가니, 군술은 이미 모임에 가버렸다...
21일. 도사를 만나러 갔더니 아직 오지않았다...
이전에 성주가 '비는 개고 길은 멀지않은데 어찌 관아 안에만 앉아 있는가?'라고 접대도감 김명원과 강신(姜紳)등에게 말한 적이 있다.
그런데 명원이 이 말을 명나라 벼슬아치를 원망하고 업신여긴 것으로 여겨서 경위를 갖춰 보고하니, '죄인을 잡아다가 국문하라'는 영이 내려졌다. 슬프다. 큰길이 지나는 마을의 관리로 와서 마음을 다해 다스렸는데 오히려 뜻밖의 액을 당하니 세상일이 탄식할 만하구나.
8월 흉년이 들어 살아갈 길이 걱정이다
27일. 한양사는 생원 이욱 등이 지난번에 하도에 글을 보내 '성균관을 고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될 수 있도록 각기 재물을 보태달라'고 했다...
저물어서 귀가했다. 강경정이 왔기에 함께 잤다.
10월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워하다
10일. 강경성의 장례에 가서 신주에 글자를 써 줬다. 노지부와 대화하고 오는 길에 강위서를 만났다.
29일. 비가 많이 왔다. 노지부, 정사고, 강극수, 경실 및 강경정이 서원에서 모였다.
11월 도망쳐 숨는 것이 나라를 위한 계책이다
3일. 소문을 들으니 '임금께서 전교를 내려서 '임금의 뜻을 거스르고 제멋대로 행동하는 곽재우에게 병권을 주어서는 안된다'하셨다. 또 체찰사에게 '곽재우의 속마음을 정탐해서 보고하라명하셨다.'한다.
아, 슬프다. 어찌 밝은 세상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인가! 곽공은 어지어워진 세상을 개탄해 벼슬없는 선비로서 일어나 뛰어난 공적을 여러번 세웠다. 그래서 주위일대를 지켰으니 마치 장성과 같은 공이 있다고 할 것이다.
만약 임금의 뜻이 이와같다면 과연 나라를 중흥시킬 계책인가?
27일. 강군망 형과 정사고가 불러서 함께 대화했다.
도원수 관문이 온 것을 보니, 임금께서 내리신 전지에 '정월 초열흘 안에 마을을 모두 깨끗이 비우고 변란에 대비해 각각 유사를 정하라'라고 명을 내렸다. 또 '도망쳐 숨는 것이 나라를 위한 계책이다'했다.
어쩌다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는가?
30일 서원에 가서 강위서와 정첨지를 만났다. 땅거미 질때 서원에 갔더니, 노지부와 강경정이 와서 만나 정답게 이야기했다.
12월.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재침략을 준비하다.
15일. 정사고와 함께 안음에 갔다. 노지부는 먼저 현재로 갔다. 한효중과 경장 및 강극수도 모였다. 곽양정 형, 찰방 김지화 어르신과 함께 자면서 정답게 이야기했다.
1597년(선조30, 정유)
1월 가파르고 험한 산성을 둘러보다
2일. 동면에 가서 숙모님과 당형을 뵙고, 강경정을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30일. 서원에 가서 지부, 경실, 경정,위서 등과 함께 잤다.
2월 의병 군량을 모으는데 항의를 받다
12일. 서원에 갔다. 조간보 형, 공간, 지부, 위서와 만나서 의병 군량일을 의논했다. 날 저물 무렵에 귀가했다.
24일. 진안수령 오익승이 열 고을 군사를 거느리고 군에 도착했다. 가서 만나고 이야기를 나눈 뒤 동헌으로 갔다.
오후에 노지부, 강극수, 우중평, 정사고, 최규보, 노이복이 와서 만났다.
3월 군에 온 심유경이 세객노릇만 하다
18일. 소문을 들으니 '강극수가 정시(庭試)를 보러갔다'한다...
4월. 정사고, 강원보,강위서와 더불어 시냇가에서 회를 처먹었다.
5월 무사들을 산성으로 모으다.
1일 비가 와서 문묘에 배알하지 못했다. 오후에 비가 갰다. 공간과 경정이 와서 함께 잤다.
2일 공간, 경정과 더불어 사근에 있는 김지화 어르신을 방문했다.
10일 비가 왔다. 도원수가 호서로 갔다.
진사 정주신이 와서 대화했다. 서원에 갔다가 저물어서 공간 집에 가서 경정과 함께 잤다. 거창사는 유창룡도 함께 묵었다.
7월 통제사 원균이 크게 패하고 배설은 도망치다.
15일 노지부가 서원에 와서 문묘에 배알하고 원장과 함께 유숙했다. 강경정도 왔다.
17일. 모간에 가서 수보의 대상을 보았다. 그러고 나서 강군망 형, 박경실 형, 박공간과 자실 집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8월 산골까지 쳐들어온 왜적의 칼날에 큰딸이 죽다.
3일. 강군망 형, 강극수와 더불어 산에서 내려와 곽천에 도착했다. 물이 깊어서 겨우 건넌 뒤 유옥을 만나서 조용히 대화했다.
9월. 왜적이 곳곳에 진을 치고, 많은 사람들이 해를 입다.
10일. 동면에 가서 강위서를 만났다. 위서가 노친을 모시고 평안한 것을 보니 어찌나 위로가 되는지. 선영에 참배하고 신주묻은 곳을 살펴보았다...
강경정은 아들을 잃었고, 자실은 처자를 모두 잃었다.
25일. 가물창에 도착해서 묵었다. 강군망 형과 대화했다.
26일. 강군망 형과 함께 거계에 가서 살 만한 땅을 살펴보았다. 샘물은 달고, 땅은 기름졌다.
27일. 오후에 다동에 가서 전유옥, 강위서와 대화한 뒤 스님의 움막에서 편안하게 쉬었다.
10월 왜적이 여러 고을을 약탈해 가족과 함께 피란하다.
13일 아침 무렵에 날이 갰다. 전유옥과 더불어 노지부를 만난 뒤 노 참봉, 강 목사, 노경소, 경승, 강위서, 강극수를 방문했다.
27일. 날 샐 무렵 길을 나서서 육십령에 도착해 아침을 먹었다. 강군망 형, 희망, 극수와 잠깐 대화했다.
11월 왜적을 피해 백성들이 이곳저곳 도망다니다
16일 '남촌에 들어온 흉적이 바로 군내로 침입했다. 대수와 병곡에서 집을 불태우고 재물을 빼앗았다. 또 백성 강원보를 노략질하고 겁탈했다'한다.
1598년(선조31,무술)
1월 명나라 군대가 울산에서 왜적과 크게 싸우다
18일. 날 샐 무렵에 길을 떠나니 피란하는 사람이 온 길에 가득했다. 애달프고 한탄스러웠다. 길에서 강군망 형을 만나서 대화하며 10리를 갔다. 신록에서 노여일과 나란히 숙박했다...335쩍
2월 왜적들이 곳곳에서 노략질하고 백성들을 죽이다
6일. 조카와 함께 함양에 갔다. 저녁에 옥산창에 가서 전유옥의 모부인을 뵈었다.
길에서 강극수(강린姜繗), 한효상 및 한효삼을 만나 대화했다.
15일. 소문을 들으니 '적도들이 안음 우락동에 들어왔다가 돌아갔다'했다. 오후에 박영, 박돈, 강희망 형 및 노경소와 대화했다. 경소가 상처했다고 하니 불쌍하구나!
21일. 강원보가 면천에서 왔다. 상도 소식을 들으니 기쁘고 유쾌한 느낌이 죽은사람을 다시 만나는 것 같았다.
5월. 소금장사에 나서다.
9일. 강협이 은진에서 와서 만났다. '석성에 있는 박공간이 편안하고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해줬다.
6월 하나뿐이 아들이 병으로 죽다
25일 낮에 진안을 지나며 익승을 잠깐 만났다. 저물어 가정자에 가서 강치손의 가게에서 잤다.
8월 제사상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니 비참하기 짝이 없다
18일. 식후에 길을 나섰다. 비가 쏟아붓듯이 내려서 옷이 모두 젖었다. 말현을 넘다가 길에서 강충을 만나 잠깐 대화했다. 저녁에 오원역에서 잤다.
10월 사로병진 작진으로 왜적을 공격했으나 실패하다
26일. 강충과 대화했다. 또 박언남을 만나 악수하고 잠깐 대화했다.
11월. 이순신이 전사하고 왜적은 물러가다.
19일.적장 고니시 유키나가가 도망쳤다. 숭정대부 전라좌수사겸통제사 이순신이 전사했다...
아비의 죽음을 본 아들 아무개가 눈물을 가리고, 울음소리 나지않게 소리를 삼켜 억누르고 말하기를 '내가 마땅히 아비의 원수를 갚을 것이오...'
1599년(선조32, 기해)
1월. 추위를 무릅쓰고 고등어를 팔러 다니다.
3일. 오후에 비가 갰다. 곧 길을 나서서 밀양 촌집에서 진주사는 강우황과 함께 잤다.
2월. 달아난 배설이 붙잡히다.
4일. 진안현에 도착해서 성주 오익승과 대화했다. 진사 이자거와 강경정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다...
4월 배설이 사형됐다는 소문을 듣다.
1일. 이화숙, 하위재, 강희망 형과 소고대에서 이야기했다.
22일. 가조에 가서 종조할아버지 묘소에 절한 뒤 합천에 가서 선생(정인홍)을 뵈었다. 선생께서는 쇠하지도 늙지도 않으셔서 참으로 다행하기 짝이 없었다. 하성원, 오융보, 이수이도 와서 선생을 뵈었다. 강익문(姜翼文)도 와서 이야기 했다...
27일. 강위서와 대화했다. 박공간이 평안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윤4월. 호환과 가혹한 정사가 겹치니 백성들이 불쌍하다.
1일. 강위서와 작별하고 오후에 움막으로 돌아왔다. 강위서가 당나귀를 빌려줘서 걸어오는 것을 면하게 되니 얼마나 다행인지.
12일. 당형과 만나서 오랬동안 소식이 없던 궁금함을 풀었다. 조태항은 합천으로 갔고, 나는 조카와 함께 돌아와서 강위서를 방문했다...
15일. 강위서와 함께 누워 조용히 담화하다가 한밤이 돼 잠이 들었다. 노예산과 박공간에게 편지를 보내 안부를 물었다.
22일. 낮에 비가 왔다. 오후에 비가 갠 뒤 강희망 형, 한양사는 김익과 대화했다.
5월 곡물을 심었지만 파종이 늦어 결실을 걱정하다
21일. 강극수가 보낸 편지가 와서 읽어보니, 마치 오랜만에 모습을 대하는 듯해 감회가 그지없었다. 서로 만나고 싶은 마음은 간절했지만 여러 날 계속되는 궂은비가 말썽이구나!
24일. 대야곡에 가서 강군망 형을 만나 오랜 시간 대화했다. 강극수는 백토에 가서 만나지 못했다. 이른바 그대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하고 그저 허탕치고 돌아오는 격이로다.
28일. 강극수가 보낸 편지가 왔다.
1600년(선조33. 경자)
5월 향회를 열어서 죄지은 사람을 벌주다
14일. 아침을 먹고나니 날이 갰다. 오후에 전유옥과 더불어 강위서 집에 갔다. 노충보도 와서 함께 숙박했다.
15일. 아침에 남계를 건너 군슬과 더불어 서원에 갔다. 양치숙, 형언, 이정회, 강경정이 모두 와서 만났다.
27일. 날이 저물었기에 조카와 더불어 강위서 집에서 잤다.
6월 일본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에게서 왜놈 소식을 듣다
10일. 강경정이 찾아와서 함께 잤다. 또 우정보가 방문했기에 잠깐 대화했다.
11일. 강경정과 작별했다.
15일. 서원에 가서 문묘를 배알했다. 강군망 형과 강경정, 군술, 치숙 등이 모두 와서 만났다. 날 저물어 돌아왔다.
19일. 강위서가 와서 이야기를 나눴다. 함께 정담을 주고받으니 감개가 어찌나 무량한지!
28일. 대수에 가서 향회에 참석했다. 나는 유사에서 물러나고 강위서로 대신하게 했다.
30일. 강경정이 와서 함께 잤다. 소문을 들으니, '문자선이 정언이 돼 돌아왔다'한다.
7월. 명나라 군사가 모두 돌아가다.
1일. 강경정과 헤어졌다. 강위서가 찾아와서 함께 우항으로 갔다.
4일. 강군망, 강희망 형, 허중관, 임극선 등과 여러시간 대화했다.
6일. 명나라의 수륙 군사가 모두 돌아갔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물자와 힘이 고갈되어 명나라 군사 접대를 감당하지 못했다.
19일. 향교에 가서 정여개, 노경소, 강위서, 하자명등을 만나고 네 면에 글을 보냈다. 장차 책판, 쌀, 베 등을 거두려 하기 때문이다.
21일. 서원에 갔다. 원장과 노경소, 강경정이 모두 와서 이야기했다.
22일. 원장과 헤어졌다. 강위서와 함께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오는 길에 용성에서 오는 노예산을 만났다.
23일. 위서와 더불어 선생을 찾아가 뵙기로 하였다. 그런데 마침 조카가 병이 나서 출발이 늦어져 저녁에 이화언집에서 묵었다. 강경정도 왔다.
10월. 타작을 끝냈는데 소출이 적어 걱정하다.
1일. 서원에 가서 문묘에 배알했다. 노원장, 노예산, 경승, 경후, 위재가 모두 와서 함께 대화했다.
10일 소문을 들으니 '강위서가 매 한마리를 잃어버리고 다른 한마리는 병들었다'했다. 강위서가 부모를 위해 새들을 놓아먹였는데, 이렇게 잘못돼버렸으니 탄식이 나오는구나!
11월 명나라 도망병들이 행패를 부리다가 체포되다
12일. 강경정이 와서 대화했다. 식후에 나촌에 가서 서원 옮겨 지을 곳을 둘러보았다. 산천이 산뜻하고 아름다워, 도를 수습하고 닦을 장소로 알맞은 곳이었다.
20일. 강위서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다. 길에서 하대수를 만나 선생 소식을 들었다.
29일. 강경정, 강위서, 양치숙, 양형언 등 여러사람이 조문해왔다.(막내딸의 사망으로)
12월. 죽은 막내딸의 장사를 지내다
8일. 강극수가 한양에서 부모님을 뵈러 와서 관아에서 만났다. 여러 해 헤어졌다가 다시 만난 기쁨이 어떠했을까!
10일 숙질 양형언과 강경정이 나를 만나러 왔다. 박윤경도 와서 밤에 형언 집에서 묵었다.
20일. 박순명이 붙들려서 옥에 갇혔다. 정사연과 함께 가서 만났다. 또 강위서와 대화했다.
21일. 노예산이 천변에 도착했다. 가서 여러시간 동안 대화했다. 하위재, 자순, 강위서 또한 만났다.
26일. 강경정이 찾아왔다.
1601년(선조34, 신축)
1월 쉰 가까운 나이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과거에 응시하다
2일. 서원에 가서 문묘에 인사드리고, 여러 벗과 대화했다. 노경승과 정극승도 왔다. 황혼이 돼 강위서 집에 가서 함께 잤다.
3일. 강 목사와 벗 10여명이 찾아왔다. 오후에는 고을 수령에게 인사드렸다.
12일. 양형언, 강경정과 대화한 뒤 경정과 함께 강위서를 방문했다. 진주에서 온 황언시와 만나서 오랫동안 대화했다. 저물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18일. 이경광과 헤어진 뒤 강목사(강군망)와 강극수를 방문하고 돌아왔다.
2월 과거에 떨어지고 계집종을 잃어버리다
8일. 강경정과 양충원이 찾아왔다.
10일. 강희망 형과 강경정이 찾아왔다.
16일. 아침에 강경정과 박윤경이 찾아왔다. 오후에는 강위서와 정사연을 두루 방문했다.
17일. 비가 왔다. 정사연 집에 머물렀다. 강원보를 만나서 술마시며 즐겼다.
22일. 강극수가 찾아왔다. 극수가 동당 6인에 합격했고, 익승은 차석, 송원기는 수석을 차지했다.
26일. 강위서, 정사연 등과 만나서 대화했다. 집안 일은 잊고서 밤에 술마시며 매우 즐거워하다가 자리를 마쳤다.
27일. 개평사는 노참봉을 방문해서 한나절 대화했다. 노경승등과 이야기했다. 그리고나서 강위서와 함께 돌아왔다.
3월 좌의정 이헌국이 어진이를 훼방놓고 나라를 병들게 한다
9일. 서원에 가서 노원장,경승,경소 및 양형언, 강경정, 양충원 등과 대화했다.
14일. 대수에 가서 강위서를 찾아보고 잇따라 최규보를 방문했다...
비가 왔다. 술마시고 취해서 서원에는 못가고 강위서와 함께 정문원 집에서 잤다.
15일. 위서와 더불어 서원에 가서 경소, 형언, 충언 등을 불러서 대화했다. 오후에 척서에 가서 원장과 함께 송림과 관어대를 두루 살펴보았다. 노예산을 방문한 뒤 저물 무렵에 귀가했다.
27일. 소문을 들으니 '강극수가 사마시에 급제했다'한다. 나도 모르게 기뻐서 뛰었다. 극수는 나와 절친할 뿐 아니라 현인군자인데 과거에 통과했으니 더욱 기뻤다. 권집, 정대방, 박효선 등도 급제했다고 한다.
29일. 강위서가 천변에 도착해서 오랫동안 대화했다.
4월 벗들과 함께 월암정에서 즐기다
11일. 정여계를 조문하고는 남촌에서 강위서와 잠깐 대화했다. 날 저물어 귀가했다.
24일. 목사 강군망 형이 계변에 도착해서 여러 시간 동안 대화했다.
25일. 대수촌에 있는 강위서를 방문했다. 강원보, 여수, 상경과 더불어 술마시고 크게 취해 정자에 가 촌집에서 잤다.
26일. 위서와 말고삐를 나란히 새서 노 원장을 방문했다. 북면의 벗들이 모두 모여 대화했다. 원장이 신복 개울가에 계단을 쌓고 정자를 만들었다. 또 물을 막아 못을 만들었는데 물고기 수십마리가 활발하게 노닐었다. 한가하고 그윽한 정취가 사람을 즐겁게 했다. 정자의 이름은 '만수(晩修)'다.
5월. 부음정에 가서 내암 선생을 뵙다.
8일. 노예산, 강위서와 약속하고 함께 합천에 갔다. 오후에 진목정에서 말먹이를 주고, 저물어서 이화언집에 묵었다.
9일. 김응구를 방문했다. 오후에 부음정에서 선생을 뵈오니 도체가 아주 평안하셔서 얼마나 기쁜지, 선생께서 강위서와 함께 계셨기에 해인사에서 묵었다. 최덕구는 노예산을 만난 뒤 성주로 돌아갔다.
6월 정권잡은 자가 사사로이 한푸는 일을 일삼다
13일. 노 원장을 만났다. 이어서 강 목사, 노예산, 강극수, 노경승, 면재, 여임 등과 대화했다.
27일. 돌아가신 왕비(의인왕후 박씨)의 첫 기일이므로 온나라 선비와 백성이 모두 검은 옷을 입었다.
7월 제주에서 역적모의를 하던 길운절이 스스로 고변하다
4일. 강위서와 임극신이 찾아와서 나를 초대해 대수촌에서 함께 술을 마셨다. 날이 저물어 강위서집에서 잤다.
7일. 병이 깊어진 머슴이 죽었다. 종들을 시켜서 매장했다. 신분이 비록 종은 아니지만 매우 섭섭하고 서운했다.
25일. 강극수의 경사스러운 잔칫날이다. 사정이 생겨서 가지 못해 한이되니 어찌할꼬?
8월 서원 옮길 터를 척서정으로 정하다
1일. 강극수가 편지를 보내 작별했다. '사는 지역에 전염병 기미가 있어서 급히 올라간다'했다.
27일. 강위서의 화답을 받고 평안함을 알고나니 얼마나 기쁜지!
9월 조정에 왜와 강화하려는 의논이 있다.
2일. 대수촌에 있는 강위서를 방문해서 경치를 즐기며 술을 마셨다. 그러고나니 사연 집에서 잤다.
3일. 서원에 가서 강경정과 대화했다. 박윤경이 호서에서 왔다.
4일. 개평에 가다가 길에서 목사 강군망을 만나 잠시 이야기를 나눴다.
22일. 강위서가 말을 보내 나를 초청했다,. 참봉 노예산, 채 찰방과 함께 술마시다가 날 저물 무렵에 마쳤다.
10월 기축옥사를 일으킨 사람들 벌주기를 청하다
15일 노예산,경승, 강위서와 함께 와서 원장을 방문하고 저녁무렵에 귀가했다.
11월 강화가 이뤄지지않으면 왜적이 다시 침입한다는 소문이 돌다
9일. 개평에 가서 노원장을 방문했다. 노경승과 강극수도 왔다. 극수, 여시회, 임중, 이복과 함께 잤다.
10일. 아침에 서원에 가서 강경정, 조계수와 대화했다. 오후에 강위서를 방문하니 하자의도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26일.개평에 가서 원장을 방문했다. 서원에 가서 강경정과 함께 자면서 정담을 나눴다. 집옮기는 일을 많이 의논했다.
27일. 동짓날이다. 문묘에 가서 배알했다. 강목사와 강극수를 방문한 뒤 원장을 찾아보고 돌아왔다.
28일. 향교에 가서 공무에 참여했다. 경승과 면재가 맡은 직분에서 물러나고 자순과 극신이 새로 뽑혔다.
12월 이귀가 상소해 내암 선생을 공박하다
4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에서 가소로운 일이 있다고 하니 탄식할 만하다.
19일. 박여수가 와서 대화했다. 향우들이 향교에 모여 장의를 다시 뽑아는데 강위서가 뽑혔다고 한다.
1602년(선조35, 임인)
1월 임금께서 최영경의 억울한 죽음에 대해 말씀하시다
4일. 고을 수령을 만났다.강목사, 강극수와 오랫동안 대화했다.
18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고 평안함을 알았다.
윤2월 내암 선생께서 임금의 부름을 받고 상경하시다
14일. 시 천총과 함께 개평에 가서 노원장을 만난 뒤 강목사, 강극수와 대화했다. 서원에서 잤다.
28일. 노경승, 경후, 강위서, 최국경, 국로, 조수일 등 여러 사람이 고대에 모여 술취해서 매우 즐겁게 놀았다.
3월 가뭄이 매우 심해 백성들이 탄식하다
7일. 조카와 더불어 백토에 가서 동고례를 했다. 강군망, 강희망, 정덕옹, 노경소,경후, 임인중, 강위서, 노면재, 노빈부,여임이 와서 모였다. 당형 또한 빈객으로 참여했다. 날 저물어 비가 오다가 밤중에 갰다. 빈부 집에서 잤다.
8일. 강위서와 더불어 새벽에 길을 나서서 강극수를 방문했다. 노임중 집에서 아침을 먹고 오후에 귀가했다.
11일. 돌아와서 서원 건물을 샅샅이 살펴보니, 많이 무너져 내려서 안타까웠다. 오후에 강위서가 찾아와서 최규보와 함께 대화했다. 날 저물어 귀가했다.
14일. 하자순, 강희망, 노경승, 최국경, 국로 등 여러 사람이 찾아왔다.
5월 내암선생께서 사직하시고 고향으로 돌아오시다
13일 최국로가 찾아왔다. 오후에 소낙비가 크게 내렸다. 강경정이 한쪽 눈이 보이지않는다고 하니 가련하구나!
15일. 할아버지 기제사를 지냈다. 제사지낸 뒤 덕옹에게 가서 만나고 강극수를 방문했다.
22일. 향교에 가서 노경승, 강위서, 임극신과 함께 잤다.
6월 내암 선생께서 사퇴하시자 소인배들이 기뻐하시다
17일. 강극수가 찾아와서 대화했다.
28일. 아침에 권준, 박문영 등과 만나서 잠깐 대화했다. 두 사람은 곧 별거를 보러간다고 했다. 낮에는 강위서를 만나 보았다.
7월 선조와 인목왕후의 가례날이 정해지다
10일. 진주와 삼가의 여러 사람이 회문을 내어 '흉악한 이가가 선생을 모함한 죄를 따지고자 했다'
나와 강극수가 소두가 됐다.
22일. 강위서가 나를 부르면서 말을 보냈다. 그래서 취한정으로 가서 온종일 대화했다.
30일. 대수에 가서 강위서와 대화하면서 선생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들었다. 땅거미가 질 때 서원에 가서 잤다.
8월 남계서원 이전 공사를 시작하다
1일. 강경정, 양치숙과 더불어 문묘에 배알하고 원장을 만나 보았다. 땅거미질 때 귀가했다.
6일. 재계하기 위해 향교에 가서 경소, 강위서와 횡당에서 함께 잤다. 조용히 친밀하게 이야기했다.
16일. 강경정이 찾아와서 같이 잤다. 아파서 대화할 수가 없었다.
9월 내암선생께 대사헌에 임명되자 소인배들이 헐뜯다
12일 대수촌에 가서 강위서를 만났다. 선생께 편지를 올리고 강척, 초부와 대화했다.
10월. 서원공사를 보살피다.
22일. 강위서를 방문했다. 강위서가 정제룡에게 욕을 당했다고 한다. 정제룡의 사람 됨됨이가 한양 성문 앞에서 사람을 막아서는 것과 무엇이 다르랴!
11월 서원 이전으로 인한 갈등이 시작되다
8일. 개평에 가서 강목사 형제. 강극수, 경승,경소 등 여러 사람과 모여서 서원 옮기는 의논을 마무리 지었다.
9일. 나촌에 가서 서원터의 지세를 살펴보았다. 가시를 베어내고 더러운 흙을 끌어낸 뒤 터닦기하는 것을 신께 아뢰었다. 강극수가 헌관이 됐다.
11일. 나촌에 가서 여러 벗들과 모였다.
'유세차 임인년 11월 무오 무진일에 아무개는 발산의 신령님께 고합니다.
우리 고장에 서원을 세운 것은 아득한 옛날이었으나 경영이 마땅치않았고 여론에 맞지않음이 많았기에 다시 손질해 고치기 위해 터를 잡고자 합니다.
나촌 발안 서쪽 기슭을 살펴보니 냇물 한줄기가 아름답게 흘러가고 뭇 산봉우리는 서로 뽐내며 뛰어났습니다. 고대는 호랑이가 떡버티고 앉은 듯하고 갈게 뻗은 수풀은 교룡이 춤추는 듯합니다. 바람과 구름이 빙둘러 휘감아도는데 뛰어난 경치는 저마다 쭉 늘어서 있습니다. 묵은 것을 버리고 새로 지으려는 사람들 생각에 확실히 부합합니다.
여러 해동안 하늘이 도와서 오늘이 잇도록 정해 주셨으니 이에 좋은 날을 잡아 공사를 시작합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존령께서는 놀라지 마시고 은혜로 도와주시옵소서. 학푸이 다시 떨치게 하시고, 받들어 숭상하는 제사를 바꾸지 않게 해주시옵소서. 문운을 길이 도와주셔서 도동이 수를 누리게 해주십시오.'
강극수가 지었다.
21일. 나촌에 가서 공사를 감독했다. 강목사와 강위서가 찾아와서 대화했다. 땅거미질 때 귀가했다.
27일. 원장을 찾아가서 만났다. 공간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과연 뒤쫓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강경정이 찾아왔고 강위서도 왔다.
12월
2일. 바람과 눈이 크게 일었다. 강목사 형이 불러서 촌집에서 함께 대화했다. 노경승도 와서 대화했다.
6일. 강위서, 노임중과 더불어 성주가 자리에 없었을 때 말한 내용을 진술해 주려고 성주를 만나려 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13일. 노경승과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다. 양형언, 강경정도 와서 대화했다.
1603년(선조36, 계묘)
1월 합천에 가서 내암선생께 새해인사를 드리다
12일. 합천에 가서 강위서, 노임중을 만났다. 중로에 비를 만나 옷이 모두 젖었다.
20일. 개평에 가서 노참봉과 대화했다. 저물어서 강극수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양형언이 와서 대화했다.
2월 주변 권유로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다
18일. 양형언, 양충원과 대화했다. 나촌에 갔더니 강목사와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다.
22일. 강위서를 방문해서 대화했다. 정사연도 왔다.
3월 변고가 일어났다는 소문이 잇따르니 나랏일이 걱정이다
6일. 새터에 가서 서원짓는 공사를 감독했다. 강경정과 노충보가 와서 대화했다. 박안행의 정문에 쓰인 글을 고쳐썼다.
16일. 강위서를 찾아가서 만났더니 볼이 아파서 안색이 좋지않았다. 그러나 원기는 오히려 씩씩하니 어찌 걱정만하랴!
18일. 강군망 형을 찾아가서 만나 보았다. 강극수가 과거에 낙방해 위로하고 대화했다.
24일. 잠깐 비가 오다가 오후에 갰다. 양형언과 강경정이 와서 대화했다. 저녁에 전어회를 먹었는데 강동의 봄흥취가 이보다 더할 수 없었다.
4월 서원의 두 사당 지붕덮기를 끝내다.
1일. 진시에 일식으로 해가 반 이상 가렸다. 하늘의 변고가 여기까지 이르니 사람일을 가히 알겠다.
상(喪)때문에 머물렀다. 이화언과 강위서가 와서 만나보았다.
6일. 강희망 형이 와서 대화했다.
13일. 서원에 머물렀다. 강목사, 강극수, 노경후와 강위서가 와서 대화했다. 날 저물어 귀가했다.
17일. 서원에 머물렀다. 양형언, 강경정과 노임중이 와서 만났다.
24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아직도 병이 다 낫지않았다고 걱정하고 있었다.
5월 양홍주가 내암선생을 헐뜯는 상소를 올리다
9일. 강극서와 대화했다. 박공간집에 도착해서 종매를 문병하고 수족에 침을 놓았다. 서원에 대나무를 심었다.
14일. 백토에 가는 길에 노경승, 임종, 강극수 등 여러 사람을 찾아보았다. 저물어서 빈부와 대화했다.
19일. 강위서를 찾아갔다. 노임중이 오기로 약속했으나 오지않았다. 머물러 있다가 취한정에서 대화했다.
20일. 위서와 함께 머무르며 대화했다. 식후가 되자 비가 와서 앉아서 경치를 감상했다.
6월 잡혀간 사람들이 일본 사신과 함께 돌아오다
24일. 강위서, 정사연, 노여임이 와서 대화했다.
7월 양홍주 벌주기를 청하는 상소를 올리다
2일. 강원보가 찾아왔다. 오후에 소낙비가 내렸다.
15일. 서원에 가서 문묘에 배알했다. 노원장, 강위서, 노면재, 경후, 강극수 등 여러 사람이 와서 만났다.
22일. 소두를 바꿔 강극수를 소두로 삼았다. 성주가 소식을 듣고는 상소에 쓸 종이, 표통과 보자기 등 물품을 갖춰왔다.
24일. 오후에 전패에다 상소문을 바치고 저녁무렵에 여러 벗들과 헤어졌다. 두통이 나고 기운이 지쳤다.
생원 강인(극수) 등이 올린 상소에는 정인홍을 옹호하고 양홍주의 죄악을 열거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임금에게 양홍주의 죄를 물어 머리를 베어서 인심을 바로 잡고 사기를 맑게 하기를 청했다. <선조실록 1603년8월9일>...513쪽
26일. 돌아가신 어머니께 햅쌀을 올려드렸다. 병이 조금 나았으나 두통은 그치지 않았다. 강위서 편지를 받아보니 노익산의 병이 전보다 더 중해졌다한다. 탄식이 나는구나!
28일. 요공이 용성으로 갔다. 강희망 형이 유숙하며 친밀하게 이야기 했다. 마을가운데 있는 배꽃이 활짝 피었는데, 이는 재앙이지 상서로운 일이 아니다.
8월 가을 장마가 잇따라서 양식 떨어질 것을 걱정하다
11일.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다. 식후에 종매를 만나보니 병에 차도가 있어서 기뻤다.
18일. 노면재와 이야기를 나눈 뒤 함께 강목사 형과 극수를 방문했다. 또 허중관을 조문하고 여계를 방문했다.
19일. 노참봉 제문에 '예전 개암 강익(姜翼)께서 학문에 뜻을 일으켜 옛 현인을 추앙해 받드니 많은 사람이 그 품위에 놀랐다.
강익(姜翼 1523-1567) : 본관은 진주, 자는 중보, 호는 개암, 송임, 조식의 문인
1549년 진사가 된 후 벼슬에 뜻을 접고 학문과 실천주의 학문을 주장하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선조 초기 천거로 소격서 참봉을 지냈다. 남계서원에 제향되었다...516쪽
9월 서인들의 행태에 대해 통탄하다
2일. 노참봉(노경안) 장사에 가서 참례했다. 정덕옹과 강위서 등 여러 벗과 더불어 여임의 정자에서 잤다. 조계수가 딸을 잃었다고 한다.
16일. 서원에 가서 공사하는 것을 살핀 뒤 빈부, 면재와 함께 잤다. 노회덕과 강목사도 왔다.
18일. 대수촌에 가서 강위서를 방문했다. 들으니 '선생께서 병환때문에 덕산서원에 조남영 선생 위패를 봉안하는 데 가시지 못했다'한다.
25일. 서원에 가서 강목사, 양형언, 노빈부, 조계수와 대화했다.
10월 흉악한 자의 죄악을 알리고자 온 도에 통문하다
10일. 양형언, 강목사(군망), 강희망이 와서 대화했다. 한양사는 이익빈이 방문했다.
15일. 선달 강찬보, 최극함과 대화했다. 오후에 정사연도 왔다.
18일. 강원보와 최훈이 찾아왔다. 꿈에 영공 이여함을 만나 보았다.
26일. 개평살던 종매의 상을 조문한 뒤 내처 박공간에게 가서 잠깐 대화했다. 저물어서 강극수와 함께 서원에서 잤다.
27일. 날 샐 무렵에 비가 오다가 식후에 갰다. 강극수와 헤어지고 다시 개평으로 가서 노원장을 문병한 뒤 저물어서야 돌아왔다.
11월 10년동안 맡은 유사 자리에서 물러나다
1일. 정여계를 방문해서 잠깐 대화했다. 또 강경정, 노면재와 대화했다.
6일. 강위서가 송천에 가는 편에 선생께 문안편지를 올렸다. 한강선생께서 고향으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11일. 복통은 조금 나았지만 두통이 그치지 않는다.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13일. 강극수, 노경소, 경후, 정덕옹 등 여러 사람이 문병왔다.
18일. 저물어서 향교에 갔다. 경소,경후, 강극수와 함께 자면서 친밀히 대화했다.
12월 임해군의 반역행위가 발각되었지만 포도대장이 일당을 죽여 입을 막다
1604년(선조37, 갑진)
1월 북쪽 오랑캐가 침범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다
16일. 박공간을 찾아가서 만나 보았다. 또 서원에 모여 노경승이 맡았던 직임을 강극수에게 대신하게 했다. 경승이 성주에게 곤욕을 당했기 때문이다. 들으니 '정홍서가 찰방 오희길에게 노참봉을 계획적으로 모략했다. 그러자 오희길은 성주에게 참소했고, 성주가 이 때문에 노했다'한다. 얼마나 괴이한가!
21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26일. 위서 편지를 받아보았다.
2월 향인 대회를 열어 죄지은 자들을 벌주다
24일. 박순명이 찾아왔다. 소문을 들으니 '노경후, 정상경, 강경정, 박여수 등이 모두 삭적됐다'한다. 한스러웠다.
3월 왜적과 무역을 재개한 소식을 듣고 분개하다
14일. 판관 박공간과 강위서가 찾아왔다. 들으니 '강극수가 고을수령에게 곤욕을 당했다'했다.
15일. 공간 집에 머물렀다. 어른과 아이들이 많이 모였다. 슬픈 생각이 많이 들었다. 강극수도 왔다.
18일. 왜놈들이 부산에서 시장을 열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놈들은 백세대가 지난다한들 잊을 수 없는 원수인데 화친을 허락하고 무역을 시작하다니, 조정대신들은 도대체 무슨 생각일까?
30일. 강위서를 방문했다.
4월 영의정 이덕형이 임해군의 비행을 직언했다가 파직당하다.
3일. 송천으로 가고자 작정하고 저물어서 강위서 집에 가서 잤다. 위서는 어른께서 편찮아서 함께 가지 못했다.
12일. 위서와 함께 합천에 가기로 했으나 병때문에 못가서 한스러웠다.
14일. 송원기와 손처눌 등이 도내에 통문을 내 '회재의 억울함을 풀기위해 이달 25일 대구에서 제회를 연다'했다. 함양에서는 강극수와 노여임이 유사가 됐다.
19일. 강위서를 방문했다.
24일. 노경후가 와서 대화했다. 대구 소회에 강극수만 참석했다고 하니 부끄러운 일이었다.
5월 유일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비통해하다
2일. 강극수가 와서 말하길 '소회가 이달 15자로 연기돼 선산에서 모인다'했다. 나와 극수가 유사를 맡았다.
3일. 운고에 가서 극수와 위서를 만났다. 상소하러 갈 유생을 의논해서 결정했다.
7일. 뇌계정에 가서 놀았다. 하첨지 생일 잔치날이라서 강위서와 함께 참석했다.
10일 향교에 갔다. 임극신, 강군망과 더불어 상소하러 갈 유생을 의논해서 정했다. 오후에 서원에 갔다. 조계수, 강극수와 함께 갔다.
14일. 서원에 가서 강극수와 함께 잤다.
16일. 소문을 들으니 '거창 상산에서 땅이 갈라지고 불덩어리가 날아올랐는데 모양이 큰입과 같았고, 가조쪽으로 가다가 떨어졌다'한다. 괴변이다, 괴변!
24일. 강극수 편지를 받아보니 비용마련해서 보내는 어려움을 많이 걱정했다. 또 향인들이 기가 빠져서 머리를 쭉 빼고 늘어뜨리고 있음을 깊이 한탄했다.
27일. 향교에 모여 상소올리는데 함께 갈 유생을 뽑고, 보낼 물건을 의논했다. 강극수와 강위서도 함께했다.
6월 통제사 이경준이 왜적 배를 포획해 왜놈들을 생포하다
7월 명나라 장수가 와서 무명을 바치라고 요구하다
7일. 익승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서 아침에 개평에 가서 만나 보았다. 그러고 나서 노경승,경소, 강극수와 서원에서 함께 잤다.
9일. 익승, 강위서, 하자명 등과 하루 종일 대화했다. 저녁무렵에 귀가했다.
11일. 개평에 가서 노문보를 호상했다. 강위서와 함께 노임중 집에서 잤다.
12일. 성복한 후에 강위서와 더불어 돌아오니 이미 황혼이 지났다.
15일. 오늘은 중원(7월보름)이다. 그런데도 여염에서는 곤궁이 심하니 한탄스럽다. 강목사 형이 도감(임시관아)에서 괴로움을 당했다고 한다.
8월 전주 선비들이 회재의 억울함을 풀고자 상소하다
9일. 노경소, 강위서, 박여수가 와서 대화했다. 병이 조금 나았다.
9월 새로 집지을 터를 살펴보다
5일. 날 샐 무렵 서원에 가서 강목사 형제, 조계수와 대화했다.
6일. 서원에 머물면서 공사를 보살폈다. 저물면서 돌아오다 길에서 정사연과 강위서를 만났다.
12일. 위서와 더불어 산으로 놀러가기로 약속하고 서계에서 만났다. 그런데 임중 등 여러사람이 오지않아서 중도에 그만두었다. 한탄이 나왔다.
18일. 강극수와 함께 박공간 집에서 잤다.
20일. 귀가했다. 붙들러 간 사람들을 위해서 소고대에서 술을 마시고 노래부르며 위로했다. 그런데 성주가 이 이야기를 듣고서 크게 노해서 최함정에게 곤장을 때리고 정덕옹을 꾸짖었다. 나와 강위서 등이 성주에게 그 곡절을 변명했는데, 이른바 '관뚜껑을 덮고나서야 일생의 일이 마침내 끝난다'는 것이로구나.
22일. 강위서, 조카와 더불어 우평에 갔다. 땅을 살펴보기 위해 지남철을 띄워보니까 신좌을향에 동남쪽이 무너지는 형상이다.
26일. 강위서와 새터에 가서 살펴보고 날 저물무렵에 박공간을 방문해서 함께 잤다. 문상 또한 왔다.
27일. 서원에 갔더니 박공간이 왔다. 강극수 부자와 노충보도 함께 대화했다.
28일. 서원에 머물렀다. 공간을 불러서 냇가에서 회를 쳐서 먹었다. 공간, 극수와 더불어 서원에서 잤다.
9월 전라병영 이전 관련 뇌물사건이 터지다
1일. 대수촌에 가서 강위서를 만나보았다.
2일. 동면에 가서 한양으로 부임하는 박공간을 전별했다. 밤에 강극수와 더불어 서원에서 잤다. 순찰사 이시언이 지경에 도착했다.
4일. 이른 아침에 용유담으로 갔다. 오익승, 노경소, 강위서, 우혜보, 손관부 등 여러사람을 엄천에서 만나 서로 말고삐를 나란히 하고 시냇물을 따라 올라갔다.
오후에 용담에 도착해서 용당에 모여서 숙박했다. 여러사람이 술을 가져와 매우 즐기다가 마쳤다. 그런데 술마시는 도중 박군수가 익승에게 거슬리는 말을 많이 했는데 편협한 허물을 차마 볼 수 없었다.
5일. 식사 후에 경치를 둘러보고 저녁에 집으로 돌아왔다. 익승에게 새로 정한 집터를 함께 둘러보자고 청했으나 거절하고 가버렸다. 강위서와 함께 저물어서야 귀가했다.
14일. 서원에 가보니 장인(匠人)들이 죄다 흩어졌다. 강극수만 만나보고 날 저물무렵에 귀가했다.
18일. 노문보 모친의 장례를 가서 보고 강목사를 방문했다.
19일. 익승과 더불어 새 터에 가서 살펴본 뒤 강위서 집에서 함께 잤다.
25일. 강위서, 고몽삼과 더불어 서원짓는 새 터를 살펴보았다. 저녁에 새 서원에서 잤다.
26일. 강극수와 대화했다. 아픈 어깨가 차츰 나아지니 어찌 이리 기쁜지!
10월 임금의 병이 낫지않는다니 걱정이다
8일. 한양으로 가는 강극수를 전별하기 위해 잤다.
9일. 새 터에 도착해서 강위서, 치숙, 빈부와 대화했다. 안음사는 신영이 찾아왔다.
12일. 호상(노익상)하기 위해 가서 경소, 강위서와 함께 잤다.
11월 순찰사가 탐학이 심한 창녕수령을 꾸짖어 내쫓다.
3일. 오후에 무지개가 나타나고 비가 갰다.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5일. 강위서가 찾아와서 반나절 동안 이야기했다.
13일. 강목사 형과 강경정, 하자열이 와서 대화했다.
15일. 도사 박공간과 강극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18일. 공간과 극수의 답장을 받아보았다.
20일. 강론시험보는 조카들을 살펴보기 위해 조계수와 더불어 안음에 갔다. 함양에서는 강론에서 떨어진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어찌나 기쁘고 다행인지! 날 저물어서 강위서, 강희망, 노경후와 더불어 덕옹 집에서 잤다.
22일. 강위서와 함께 노임중,경선을 방문하고 저물어서야 귀가했다.
24일. 대수촌에 가서 강위서와 대화했다. 양치숙과 하자익도 왔다.
12월 아내가 세상을 떠나다
27일 강위서에게 편지를 보냈다. 찰방 박공간이 편지를 보내면서 말안장 등도 보내왔다.
1605년(선조38, 을사)
1월 아내의 장례를 준비하며 여러 사람의 조문을 받다
1일. 친구들에게 부음을 알렸다. 관만들 재료를 유을에게 얻었다. 강위서가 먼저와서 호상하고 오후에 찰방 박공간이 조문해왔다.
4일. 강목사가 조문왔다. 강극수가 다른 사람에게 굴욕을 당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소문을 들으니 강위서가 병을 얻었다고 한다.
5일. 김응구가 작별하고 떠났다. 강위서에게 편지를 내 문병했다.
8일. 조카가 강위서를 문병했다.
11일. 박공간과 서로 작별하고 오는 길에 강위서를 방문했다. 찰방 강언룡(姜彦龍)이 찾아와서 대화했다.
21일. 강목사 형제가 찾아와서 '사간 문자선이 여러 차례 형벌을 받았다'고 한다. 자선이 입은 화를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구나!
23일. 동면에 가서 임인백, 극신을 만나보고 조계수도 만났다. 오는 길에 강위서를 방문했다.
2월 아내를 매장하고 제사를 지내다
16일. 닭이 두번 울고 발인해서 진시에 산소에 도착해 하관했다. 관위에 회를 한자쯤 폈다. 오후에 강위서가 제주를 썼다. 유시에 신주를 모시고 집으로 돌아와서 우제를 지냈다.
19일. 노경승, 경소, 면재, 여임, 강경의, 강경정, 양형언이 찾아왔다.
30일 강목사 형제, 노경승, 강위서, 노임증이 함께 모여 일을 의논했다.
3월 새 서원으로 세 선현의 신주를 옮겨모시다
15일. 최규보, 강찬보, 강위서가 와서 대화했다.
22일. 강극수가 귀가했다. 그런데 극수집에 불이 나서 책이 거의 다 탔다고 한다. 탄식이 나오는구나!
25일. 강위서와 양형언이 와서 대화했다. 소문을 들으니 '승냥이와 호랑이 일곱여덟마리가 중국에서 우리 국경안으로 들어와서 대낮에 사람을 잡아먹었다'한다. 깜짝놀랄 일이다.
29일. 강극수가 와서 조문했다., 소문을 들으니 '좌도에서 흰꿩이 태어났다'한다. 상서로운 일인가? 재앙인가?
4월 지금까지 살아온 생애를 돌아보다
3일. 최국경 형제와 더불어 개심사에 놀러갔다. 양치숙과 강위서가 절로 가는길을 찾기 위해서 오랜시간 대화했다.
5일. 덕봉에 가서 계모임 일을 돌보았다. 노경승, 임중, 경소, 강위서와 함께 잤다.
6일. 경승, 임중은 개평으로 가고, 나는 경소, 위서와 함께 돌아왔다.
7일. 나는 ...일찍이 제멋대로 함부로 하는 잘못은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현인이 되기를 희망했으니 옛 서적에서 스스로 깨친바가 조금 있었다. 박공간, 박경실, 노지부, 정현경, 강극수 등과 서로 친하게 지냈다.
경자년(1600)에 초야의 높은 선비 노씨 어르신께서 원장이 돼 서원옮기는 논의를 함께 내고 좋은 땅을 찾아 일을 시작했다...내가 하던 일을 강극수에게 맡겼다.
갑진년(1604)에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는 예법을 여쭤 장례를 치러서 아내 잃은 그르침을 면할 수 있었다.
사생을 함께하는 벗 강위서와는 우산언덕에 함께 묻히기로 정해 두었으니 정이 한가지요, 뜻이 한가지요, 스승과 벗이 한가지요, 궤안이 한가지요, 방훼가 한가지로다....
상을 당한 뒤 을사년(1605)에는 사람 일에 뜻을 잃었으나, 그저 '세 선현을 모신 사당'이 풀숲에 파묻힐까 걱정됐다. 그렇지만 일을 맡은 강극수가 성균에 들어가 돌아오지 않으니 언제 신주를 봉안해 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가만히 엿보고 있다가 잘못될 경우 함정에 빠뜨리려 하기도 했다. 그래서 강위서, 강극수와 더불어 비방하고 헐뜯는 말이 함께 들어왔는데 그 끝이 없구나! 이는 외로운 학은 무리가 적고 올빼미와 까마귀는 무리가 많은 것과 같다. 이로부터 인사를 사절하고 문을 닫아 걸고서 허물을 살피려한다.
허물이 있다면 고칠 것이오, 없다면 웃고 살피지 않음과 같구나!
19일. 강목사, 강희망 형, 하자순, 노빈부, 조수일, 노덕조가 와서 대화했다.
5월 북쪽 오랑캐가 함경도 종성부를 점령하다
22일. 강위서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28일. 정덕옹의 사위가 일본에서 돌아왔다고 한다. 강극수가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6월 북쪽 오랑캐를 막기위해 남쪽에서 정병을 뽑다
2일. 강희망 형이 찾아왔다. 유인무도 왔다.
12일. 강위서가 보낸 하인을 만나보았다. 위서는 평안하게 지낸다고 한다.
15일. 죽은 아내의 망제를 지냈다. 강위서 편지를 받아보고 그가 평안함을 알았다.
25일. 조수일과 강위서가 찾아왔다.
7월 좌도에 큰물이 져서 집이 떠내려가고 사람이 많이 죽다
8일. 개평에 가서 노문보의 초기를 보았다. 강위서, 임중 등과 더불어 여임 집에서 숙박했다.
9일. 강극수를 방문했다.
30일. 최규보등 여러사람과 더불어 강위서를 방문했다.
8월 순찰사(이시언)가 파직되니 사람들이 통쾌하게 여기다
3일. 강극수가 찾아와서 대화했다.
12일. 과거급제 방이 붙었는데, 진사에는 영해사는 남경훈이 급제했다. 생원에는 단성사는 이유열, 함양사는 김득용, 이공한, 강위수(?) 등이 합격했다.
9월 일본에 잡혀간 친구가 돌아온다는 소문을 듣다
1일. 죽은 아내의 삭제를 지냈다. 노면재, 강위서와 고대에서 대화했다.
25일. 강극수가 와서는 '노경승이 의병일으킨 일에 대해 다른 의견을 말한다'하니 한탄스럽다.
10월 장원급제한 사람이 상중에 고기를 먹어 사판에서 삭제되다
3일. 오후에 강위서를 방문한 뒤 날 저물어 서원에서 강극수와 자면서 친밀히 이야기를 나눴다.
4일. 극수와 헤어지고 강목사를 방문한 뒤 돌아왔다.
8일.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는데 곧 한양으로 올라간다고 했다.
9일. 오후에 개평에 가서 노익산의 소상을 보았다. 강극수가 별거를 보기위해 한양으로 갔다.
11일. '정사고가 돌아온다'는 소문을 들었기 때문에 축하해주려고 대수에 가서 최규보, 정사연, 강찬보와 대화했다.
11월 정병을 뽑는 공문이 도달하니 인심이 두려워하다
3일. 새 집터에 가서 흙집을 지었다. 강위서와 정담을 나눴다.
4일. 강찬보와 잠깐 대화했다. 박공간이 보낸 편지를 받아보았다.
12월 가솔들이 새로 지은 초막집으로 옮기다
5일. 강위서 편지를 받아보았는데 권청이 죽었다는 소식이다. 진실하고 정이 두터운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죽다니 슬프구나!
7일. 오익승과 강극수가 별거에 응시했다고 한다. 정운수와 조정립 형제도 참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14일. 강경정이 찾아왔다.
17일. 새 집터에 가서 온돌을 만들고, 강위서와 함께 잤다. 방항진과 잠깐 대화했다.
1606년(선조39, 병오)
1월 선비사회의 갈등이 심해지다
4일 종매의 대상을 지낸 뒤, 형언, 차숙, 강경정을 두루 방문하다.
12일. 강위서가 송천에 갔다. 선생께 편지를 올리고 박공간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13일. 강목사가 찾아가서 방문했다.
18일. 조계수가 와서 대화했고, 강경정도 찾아왔다.
30일. 강경정이 찾아와서 대화했다.
2월 새집을 짓기 시작하다
5일. 강극수 편지도 왔다.
16일. 강위서가 부모님 장수를 비는 잔치를 열어서 밤새도록 크게 즐겼다.
17일. 동면에 가서 야동에서 벌목하는 것을 살폈다. 찰방 강언룡, 하자순, 자명과 함께 술을 마셨다.
18일. 강극수와 대화헸다.
24일. 강위서가 진주에 갔다. 저녁에 비가와서 나무를 심었다.
3월 새로지은 집에 입주하다
15일. 강위서와 함께 대고대에 가서 구경했다. 조카와 강극신도 왔다.
4월 중전이 대군을 낳으니 세자가 물러나겠다고 상소하다
1일 강위서와 더불어 취한정에 가서 놀았다.
3일. 강경정이 와서 대화했다.
20일. 날이 저물어 분우로 돌아왔다. 강경정이 와서 대화했다.
22일. 혈계에 가서 놀았다. 강위서, 규보, 사연, 경소, 인백과 함께 만났다.
5월 탐학하는 관리가 파직되다
13일. 강위서가 진주에 갔다.
14일. 강목사가 찾아왔다.
19일. 박공간과 강극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6월 고을수령이 고과에서 하를 받아서 위로해주다
11일. 박공간과 강극수가 보낸 편지가 왔다.
23일. 강위서와 더불어 개평에 가서 호상을 맡았다. 길에서 정덕옹을 만나 잠깐 대화했다.
7월 선현들 위차 문제로 갈등이 심화되다
16일. 소문을 들으니 '성균관이 텅 비어 사람 그림자도 없이 적적하다'한다. 강극수가 몸을 붙여사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없어서 걱정이다.
17일. 당곡에 가서 당형을 만나보았다. 강목사 형이 찾아왔다.
21일. 새집으로 돌아왔다. 선수희가 대수촌에 왔다고 해서 강위서와 함께 만나보고 조용히 담화했다.
26일. 임극신과 강경정이 와서 대화했다.
8월 새 고을 수령이 부임해 선정을 베풀다
18일. 강목사를 방문했다.
22일. 강극수가 '먹물만 마시고 돌아왔다'고 하니 탄식이 나는구나!
9월 내암 선생을 만나러 덕산서원에 갔으나 헛걸음하다
1일 강극수가 찾아와서 많은 이야기를 해줬다. 임극신도 왔다.
11일. 선생께서 곧 덕산서원에 오신다는 소문을 듣고, 강위서, 강극수와 더불어 덕산서원으로 출발했다. 산응향교에서 함께 잤다.
16일. 서원에 머무는데 이 원장이 서원에 도착했다. 함께 자면서 오래 만나지 못한 회포를 풀고 평강함을 위로했다. 위서와 경소는 먼저 돌아갔다.
17일. 소문을 들으니 '선생께서 향천에 당도해서 사흘동안 머무셨다. 그러나 거리끼는 일이 있어서 서원에는 오시지 않는다'했다. 그래서 강극수, 조카와 더불어 돌아왔다.
20일 고대 집에 가서 강극수와 이야기를 나눴다. 들으니 '노빈부가 아들을 잃었다'한다. 불쌍하구나!
26일 고대 집에 갔다. 덕산서원에서 강극수에게 통문을 보내왔다.
10월 임금이 임해군 일로 대신들을 나무라다
6일. 종형을 찾아가서 조문했다. 하예산께서 보내신 답서를 보니 강위서, 정휘원, 강극수, 오덕홍 등이 유사가 됐다고 한다.
7일. 불량한 향인들이 이름을 숨기고 괴이한 이야기를 지어낸 강극수를 헐뜯었다.
15일. 강찬보가 와서 대화했다.
17일. 강극수에게 편지를 보냈다.
23일. 우산으로 돌아와서 최규보, 강찬보와 대화했다.
24일. 타작하다가 눈이 와서 중단했다. 강극수가 찾아왔다.
11월 산음에 가서 한강선생을 만나다
4일. 창녕 사는 박경무와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다.
8일. 날이 따뜻해서 굴뚝을 만들었다.
들으니 '증광시에 최현과 강익문이 급제하고, 식년 사마에 박문영, 정온, 성효균, 우순 등 여러사람이 급제했다'한다.
12일. 강위서와 더불어 산음 도사헌에 가서 한강선생을 뵈었다. 얼굴뵙지 못한지 이제 12년이 됐는데, 형용이 윤택해 조금도 쇠한 모습이 없으시니 어찌 후학에게 다행이 아니겠는가?
다음 날 서원터를 둘러본 뒤 저물어서 공손히 인사드리고 돌아왔다. 박방부 형집에서 숙박했는데 강경정, 강극수, 임중과 함께 잤다.
24일. 고대에 갔다. 좌도로 가는 강위서 편에 선생께 안부여쭙는 편지를 올렸다.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다.
12월 나를 헐띁는 근거없는 말이 전라도에까지 전해지다
26일. 새 집으로 돌아왔다. 들으니 '향인들이 나와 강위서, 강극수의 죄를 꾸짓기위해 근거없는 말을 억지로 꿰어맞췄다. 이말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으니 전라도에까지 이르렀다. 개평 사람들이 말을 만들었고 유사 하, 정 두사람이 서명했다. 노충보가 남원향교에도 전했다'했다.
1607년(선조40, 정미)
1월 이름을 숨긴 통문이 돌아다니다
4일 강목사와 강극수를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12일. 강희망 형이 찾아와서 대화했다. 박제중도 왔다.
16일. 이정보가 찾아왔다. 하자열, 하명서, 강극수도 와서 대화했다.
2월 딸의 혼례를 치르다
4일.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다. 황덕장이 와서 묵었다.
15일. 정사연을 방문했으나 만나지 못했다. 강위서가 생일잔치를 했다.
26일. 딸의 혼례를 치렀다. 강극수와 박덕중이 와서 보았다.
29일. 내 생일이라, 유영순을 위해서 술과 음식을 간략하게 차렸다. 저녁에 임인중, 노면재, 임극신, 강극수 등 여러사람이 와서 모였다.
3월 도사행차에 바라지하는 행렬이 줄을 잇다
14일. 강극수를 찾아가서 만나고 날이 저물어 돌아왔다.
18일. 강희망 형이 찾아와서 함께 잤다.
19일. 취한정에 가서 정사연, 강위서 등과 대화했다.
4월 북쪽 오랑캐를 대비해서 군사를 뽑다
7일. 강위서와 더불어 냇가 에 놀러갔다가 비가 와서 돌아왔다.
8일. 고령사는 박주가 찾아왔다. 박주는 강위서의 조카다.
5월 임금께서 건강이 좋지않으시다고 해서 걱정이다
19일. 임인백을 조문하고 강목사를 방문했다. 강극수를 만나보고 강위서와 동행해서 돌아왔다.
20일. 인부 여덟이 둑을 쌓았다.
오후에 위서 집에 실수로 불이 나서 모두 타고 남은 것이 없었다. 액운이 여기까지 이르니 친구로서 개탄스러움을 견딜수가 없다.
28일. 위서와 함께 혈계에 가서 회를 쳐서 먹었다. 하자순, 노경소, 경후 등 여러사람이 모였다.
6월 가뭄으로 백성들이 걱정하다
12일. 동면에 가서 양치숙을 문상한 뒤 강경정 등과 이야기했다.
23일. 고대에 갔다. 향교에 도착해서 강극수와 함께 잤다.
24일. 조수일, 조계수, 강극수와 더불어 술마시다가 저물어서야 귀가했다.
7월 일본에 간 사신이 잡혀간 사람들과 함께 돌아오다
10일. 강극수와 강경정이 찾아와서 대화했다. 성쌓는 일에 종을 보냈다.
8월 왜적에게 죽은 딸을 그리워하다
1일. 강경정이 찾아왔다.
9월 내암 선생을 찾아뵙고 시 한수를 짓다
12일. 강찬보가 찾아와서 대화했다.
10월 어진 고을수령이 억울하게 파직돼 상소하다
9일. 의논해서 상소를 만들었다. 소장은 극승이 지었다. 강극수, 극승과 함께 잤다.
10일. 군에 머물렀다. 극수, 극승과 함께 잤다. 강경정 또한 함께 했다.
11일. 저물어서야 상소를 올렸는데 다섯사람이 함께 했다. 처음에 정극승이 소두가 됐으나, 한양에 도착해서 소두를 바꿨다고 한다.
12일. 돌아와서 강위서, 최국경과 냇가에서 꿩을 구워먹었다.
18일. 강극수가 와서 대화했다. 상소올리는 날짜를 동짓달 열흘로 미루어 정했다는 통문이 왔다.
11월 조상 묘소를 두루 돌아보다
21일. 새벽에 소남촌을 지나 이청주 어르신을 방문한 뒤 강경림을 찾아갔다. 저물어서 곤양 지소에서 잤다.
1608년(선조41, 무신 광해군 즉위)
1월 내암 선생께서 영의정 유영경을 공박하시다
2일. 당형을 찾아가서 만나보고 강목사도 만났다. 그리고 강극수와 함께 잤다.
3일. 아침 식전에 귀가했다. 강극수가 한양으로 갔다.
24일. 박 첨청을 방문한 뒤 날저물 무렵 귀가했다. 강위서가 돌아와서 선생께서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2월 내암선생께서 귀양길에 오르시고 임금께서 승하하시다
3일. 강위서가 용성으로 간다고 해서 용성수령 성정보에게 편지를 보냈다.
11일. 강위서와 함께 금릉으로 가다가 무촌에 이르렀다. 길가는 사람이 헛소리를 지껄이기에 '참말인지, 거짓말인지' 따지려했다.
20일. 강극수가 상소를 올려 선생의 억울함을 호소했다.
3월 내암선생께서 용서받고 판윤을 제수받으시다
1일. 강위서와 함께 거창 상소모임에 갔다. 문군변과 대화했다.
23일. 강희망 형과 노경소가 찾아왔다.
4월 영창대군을 추대하려던 유영경 일파가 귀양가다
11일. 선생을 뵈러가려고 하자순, 강위서와 함께 강양으로 갔다. 하경위집에서 잤다.
18일. 하자순, 강희망 형, 강위서와 더불어 보국사에 가서 놀았다. 황덕장을 방문해 함께 잤다.
5월 임금께서 내암선생에게 상경하라고 명하시다
10일. '이임중이 청풍현감에 제수됐으나, 유여견은 합천군수에서 파직됐다. 강극수는 참봉 망에 들었으나 몽점하지 못했다'라는 소문을 들었다.
11일. 강극수와 함께 있었다. 하자순이 와서 함께 잤고, 조수일도 왔다.
7월 임금께서 내암선생의 병을 걱정해 뒷바라지를 명하시다
9일. 강극수가 찾아왔다.
29일. 강극수가 평릉찰방 망에 들었으나 몽점하지 못했다. 금오랑 망에 들었으나 역시 몽점하지 못했다.
8월 역모가 드러난 임해군이 서인으로 강등되다
1일 강목사 부자와 대화했다. 그리하여 강극수는 유숙했다.
3일. 강위서와 사근 운사 김백후를 운고에서 만나 대화했다. 노경소도 함께 와서 잤다.
20일. 강극수가 진주에서 약속을 지키고자 왔다. 밤에는 선생을 모시고 잤다.
9월 유영경 일파에게 사약을 내리다
27일. 강위서와 더불어 송천에 가서 운수집에서 잤다.
10월 임금을 속인 무리의 죄를 상소하기로 하다
1일. 강위서, 여수와 더불어 서원에 갔다. 강극수를 만나서 안음에 글을 냈다.
11일. 강경정을 문병했다. 그는 심기가 매우 허해서 가련했다.
22일. 강극수가 찾아와서 함께 잤다.
11월 벗들과 교외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하다
1일. 강위서와 더불어 세마 하성원을 만나보고 해가 진 뒤에 귀가했다.
7일. 강경정이 찾아와서 '박공간이 병조좌랑으로 옮겼다'했다.
9일. 들으니 '강극수가 과거 볼 시기에 맞춰 한양으로 올라가려고 돌아왔다'한다.
13일. 한양에 가는 강극수를 전송했다.
15일. 정사연, 박군수, 강위서, 박여수와 더불어 교외에서 사냥하는 것을 구경했다.
12월 서원에 사액이 내려오다
21일. 선수희가 찾아왔다. 강위서와 대화했다.
25일. 정병사 편지를 받아보고 평안함을 알게 돼 기뻤다. 하자열 부인의 장례를 가서 보았다. 강위서가 백천으로 이사했다.
1609년(광해1. 기유)
1월 당파간 다툼이 심해지다
2일. 강군망. 강희망 형을 찾아가서 만나보았다.
11일 강순이 관례를 행하는데 국상때문에 다만 삼가만 했다. 강목사 형이 찾아왔다.
15일. 당형 초기라서 성곡에 갔다. 강희망, 진군술과 함께 잤다.
2월 내암선생께 상례에 대해 묻다
16일 강목사가 와서 대화했다.
17일 가족을 거느린 강위서가 새로 정한 편안한 곳으로 돌아왔다. '공산의 한 늙은이'와 같구나! 강경정이 와서 하루종일 대화했다.
23일 백천에 가서 강위서와 술마시며 대화했다. 박문구 찾아와서 과게에 한 말을 스스로 사과했다.
26일 강위서가 와서 대화했다.
3월 고을수령의 유임을 청하는 향인대회를 열다
12일 서당에 가서 강위서와 대화했다. 사람들이 고을 수령의 유임을 위해 관문에서 향인대회를 열었다고 한다.
17일. 선생께 문안드리는 글을 올렸다. 강위서가 강양에 갔다.
21일. 현풍수령 권경지가 찾아왔고, 강경정도 내방했다.
4월 간관이 재상들을 비판하다
1일. 조수일과 강위서가 찾아왔다.
4일. 곽재우가 통제사가 됐다.
5일. 정택수, 강위서와 더불어 소고대에서 잠깐 놀았다. 이어서 하첨지와 하자순을 만나보고 잘저물 무렵 돌아왔다.
8일. 노자문, 임중이 달밤에 찾아왔다. 밤에 서당에서 대화하고 다음 날 헤어졌다. 강위서와 여수 또한 함께 했다.
19일 고대에 가서 고을수령에게 인사했다. 돌아오는 길에 조수일과 함께 강위서 집에 가서 술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5월 명나라에서 조제사신이 한양에 오다
21일. 서원 옛터를 살펴보고 오후에 익승을 찾아가 대화했다. 그러고는 강목사 등 10여명과 산음수령을 만나보았다. 그런데 그는 흙으로 만든 허수아비와 같고, 말귀가 통하지 않으니 가소롭다.
6월 명나라 사신이 은을 챙겨가다
11일 강위서가 베푼, 부모님 장수를 비는 잔치에 참석했다.
12일 강극수가 보낸 글을 받아보고 일찍이 약속한 운사를 알게됐다. 즐거움을 이기지 못하겠구나!
22일. 강목사를 방문하고 노지부 부인을 문병했다.
7월 내암선생을 만나고 해인사에서 숙박하다
6일. 강위서 집에 가서 조수일, 박여수와 더불어 개고기를 삶아 먹었다.
11일. 강극수가 왔다고 해서 만나보았다. 관사에서 강목사 형도 만났다.
25일. 하자순, 강위서, 박윤경과 더불어 합천에 갔다.
9월 임금께서 벼슬과 녹봉으로 내암선생을 얽어매려 하시다
7일 경서, 경후, 강위서와 더불어 서원에서 함께 잤다. 박숙빈이 대간이 됐다고 한다.
14일. 강경정이 와서 묵었다. 들으니 '그의 초카 민이 남의 모함에 빠져 관청에 붙잡혀갔다'한다.
10월 이덕형이 영의정이 되니 언론에서 욕하다
26일. 저물어서 박공간과 작별하고 돌아왔다...695쪽
고대일록, 정경운 지음, 문인체,문희구 옮김, 2016년, 서해문집
정경운(鄭慶雲 1556년 - ?) : 본관 : 진양, 자 덕옹, 호 고대(孤臺)
1556.경남 함양 출생,
1581.내암 정인홍 문하에 들어감
1592.함양에서 의병을 일으킴. 초유사 김성일의 소모유사와 의병장 김면의 소모종사관으로 활약
1597.남계서원 복구
1617.남계서원 원장에 임명.
첫댓글 이 책의 인명 중 지은이의 친구 등은 모두 본명이 아니라 자(字)이기 때문에 사전에서 찾기가 쉽지 않다.
이 당시 지은이의 제사 지내는 풍습을 알 수 있다.
1.윤회봉사(형과 본인) 2.처부모(장인, 장모)의 제사도 지냄. 3.기제사뿐만 아니라 돌아가신 조부모, 부모의 생신에도 제사를 지냄.
4.죽은 어린 딸의 제사도 지냄.
종(노비)와 머슴의 지위가 다름.
1. 종은 매매의 대상이 되나, 노비는 계약관계이므로 매매대상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글쓴이의 아호가 바뀌었네요
송훈(松薰)에 대한 해석과 풍산(豊山)으로의 바꾸는 연유와 의미를 부탁드려요
독자로서 최소한 알권리로 말씀드립니다.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