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성은 야곱이나 손은 에서로다
(창세기 27장 15-24절)리브가가 집 안 자기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또 염소 새끼의 가죽을 그의 손과 목의 매끈매끈한 곳에 입히고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야곱이 그 아버지 이삭에게 가까이 가니 이삭이 만지며 이르되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에서는 좌편에 있는 염소(율법)를 상징하고, 야곱은 우편의 양(그리스도)을 상징한다. 야곱은 속이는 자이지만, 리브가는 저주를 위로 돌리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리브가의 말대로 저주를 받으셨다. 하나님이 야곱이 온전하지도 못하는데, 온전한 것으로 속아주시는 것이다. 이러한 진리는 창세 전에 이미 결정된 것이다. 이 내용이 바로 야곱이 염소를 취하여 어미에게 가져가니, 그 어미가 아비의 즐기는 별미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별미를 먹는 의미는 성막 안에 있는 자들을 취하신다는 것이다. 성막 안에 있는 자는 하나님 자신이다. 하나님이 자신을 제물로 희생하여 드시는 것이다.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는 자가 된다. 이삭은 속는 아버지가 된다. 속일 때는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 야곱은 철저히 에서처럼 보이게 한다. 아버지(이삭)와 어머니(리브가)와 아들(야곱)과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이 보여주시는 의도가 있는 것이다.
『리브가가 집(바이트) 안 자기(에트)에게 있는 그의 맏아들 에서의 좋은 의복을 가져다가 그의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바이트는 율법이 있는 성전을 의미한다. 에서가 가져야 할 좋은 것을 리브가가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 리브가가 야곱에게 준다. 『좋다』는 말은 기뻐하고 갈망하는 의복이라는 의미다. 의복은 베게드(반역, 반대의)다. 베게르는 좋은 의미로 사용될 때는 하나님이 죄를 덮어주시는 덮개라는 말로 사용되지만, 반대로 나쁜 의미에서는 사탄의 반역으로 생각될 수 있다. 리브가가 그 의복을 야곱에게 입힌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옷을 상징하고, 하나님과 성령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의미하는 의복이다. 이 의복은 모든 에서의 상징인 이방인들이 입게 될 좋은 의복인데, 야곱이 먼저 입는 것이다. 야곱은 에서처럼 보여주게 하기 위해 철저히 옷을 입히는 일을 꾸민다.
『자기가 만든 별미와 떡을 자기 아들 야곱의 손에 주니』
별미는 마트하미라고 하며, 율법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가운데, 감추어진 생명나무의 열매인 것이다. 하나님이 드시는 별미는 생명나무의 열매이지만, 사람은 생명나무를 발견하지 못하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된다. 그래서 인간은 하나님께 대하여 죽어야 할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잠언 23장 1절에서『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 생각하며』23장 6절에서는『악한 자의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 진찬을 탐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하나님이 드시는 음식이 별미인 것이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이 드실만한 별미가 없다는 것이다. 별미는 그래서 자기 자신을 드리는 것이다. 이 별미를 야곱에게 주었다.
『야곱이 아버지에게 나아가서 내 아버지여 하고 부르니 이르되 내가 여기 있노라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이게 된다.『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맏아들이라는 의미는 아버지의 복을 받을 자입니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장자권을 에서로부터 샀으므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야곱 안에 있는 자들은 모두 장자권(초태생)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에서는 육으로 장자이고, 야곱은 영적으로 장자를 의미한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
이 의미가 내포되고 있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자들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그 고기(예수 그리스도)를 취하고, 그와 함께 먹으므로 성도가 하나님 나라로 복귀할 수 있도록 복을 내려 달라는 것이다. 그 축복은 주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영적 복을 의미한다.
『이삭이 그의 아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
어떻게 이렇게 빨리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었는냐 라는 말이다. 이삭의 질문은 에서가 사냥을 이렇게 빨리 끝내고 돌아왔는가 라는 표면적인 질문이지만, 이면적으로는 세상이 끝나기도 전에 육적 죽음이 오기도 전에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이렇게 빨리 깨달았느냐 라고 말하는 것이다.
야곱은『그가 이르되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판임:하나님의 면전)로 순조롭게 만나게 하셨음이니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이렇게 되었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성도의 마음에는 육적인 지꺼기가 남아 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죄에 대해서 눈을 감아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속아주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인 것이다.
『이삭이 야곱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
율법 시대에서 인간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성전으로 들어간다. 신약시대는 성령께서 찾아오신다. 하나님이 백성들에게 성전 안에 들어오라고 하므로 들어간 것이다. 에서인지 야곱인지 구분하시겠다는 것이다. 만져본다는 말은 하나님이 그리스도로 인해서 속을 준비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 하며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활을 쏘는 자,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자들도 야곱의 음성을 내는 자들이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야곱의 음성은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 안에서 분리되는 말씀으로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것이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 즉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고 믿는 자가 자기의 일을 하는 것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소리를 내는 것이다. 생명 나무의 열매를 먹는 것은 예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이다. 야곱의 소리를 내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을 만날 수 없는 것이다. 태중에 야곱이 에서의 발목을 잡은 것은 야곱 안에서 에서 같은 자를 다 하나님 나라로 데려가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들도 함께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는 것을 나타낸다.
이스라엘이 1년에 한번씩 대속죄 날에 드리는 제사를 보면, 구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레위기 16장 7-10절에서 언급하고 있다. 두 염소가 있다. 한 염소는 여호와를 위하고, 하나는 아사셀을 위한 것이다. 속죄를 위해 드린 염소는 불에 태워져 하나님이 드신 것이다. 염소가 양이 되는 것이다. 아사셀(실패한 염소)은 야곱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분리해서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는 자를 상징한다. 그대로 염소인 것이다. 염소는 활을 쏘고 털이 있는 자다. 자기의 의를 이루려고 하는 자를 상징한다. 문자 그대로 아사셀 염소는 유대인들이 민족의 죄를 상징하여 광야 보내어서 죽게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아사셀은 구원받지 못하는 사탄의 지배를 받는 자를 나타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