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속에 그려진 내삶이여 (상)
호롱불 아래서 두루말이 만화 그림의 서유기를 보았다
아마도 열한살 무렵으로 기억이 되지만
작가의 이름은 기억을 못한다
그당시 만화가들은
"박기당 김종래 산호 정한기 박기정 엄희자 박부성
오명천 손의성 조원기 고우영 경인" 등 으로 기억 되며
족자식 만화의 그림은 실제본 이였다
작가가 귀한분이오면
선물로 주는 그런 아주귀한 만화 책이였다
잉크와 자연물감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나오고
호롱불아래서 긴족자
만화를가지고 정신을 집중하여 단숨에 읽어 버렸다.
우리나라 60년대 초반의 삶이란것은
육이오의 쓰라린 포화속에서
복구시대에 처절한 비참함이 이시절에 있었다
우리같은 아이들은 항상 배가 고프고
놀이 문화란 것이
고작~ 자치기 땅따먹기 여자 아이들은 고무줄 놀이
공기 놀이가 모두 였을때
대본소만화 일일만화가 시작 되어 그 만화속으로
파묻혀 가곤 했었던 그야말로 만화 최초 세대가
나부터였다고 생각을 해본다,
1957 <서울총판> 설립
(우리나라 최초의 총판 - 당시 서울시내 만화방은 200여개소)
1958 박기준의 [두동이] 시리즈 발간
1958 김원빈 [주먹대장] 발간
1958. 6 디즈니 만화영화 <피터팬> 개봉
1959 이시기를 전후로 총판이 본격적으로 설립,
만화방이 폭발적인
증가추세 - 전국 약 2000개소 였다
1959 김산호 [라이파이] 발표
1959 이즈음 유명한 만화책 : 김경언 - [칠성이 시리즈],
신동우 - [날쌘돌이], 이종진 - [철인 28호] 등 이였다
그당시
아버님은 만화 총판을 하셨고 난 글과 그림을
만화로부터 시작을 하여 줄곳 머리속에 만화가 주축이 되었고,
삶의 시작이며 생활이 되었다,온집안에 벽장 창고 방방마다
만화로 둘러싸여 있었다.
6세7세 시절이 였으니깐
만화로 글을 익혀 유치원에 다녔고 대구비산1동
비산 성당 유치원 1기,~~ㅋㅋㅋ
집안 한 쪽 구석에 자리한 다드미돌이
책상이었다~~ ㅎ
여기까지 상편 입니다.
만화속에 그려진 내삶이여 (하)
60년대 후반무렵 학교수업시간에
노트의 뒷면에는 온통 만화그림으로 가득 그려져 있었고 방과후
특별활동 시간에, 미술부에 들어서 정식 선생님으로 부터 지도를 받았었다
뎃상과 구성 그리고 미술의 이론에 관하여 정말 꿈이 부풀었던 시절 이였다
이렇게 중학시절을 마치고
고교에 다닐 무렵엔 우리집의 대본소에 책을 공급하여주는
아저씨들이 꽤 많이 근무하셨는데 그날 그날마다 수금하여 오는 돈들이
엄청히 많아서 그땐 일원지폐와 오원짜리 지폐를 호마이카 판위에
돈을 얹어놓고 한 장씩 다람질하는 모습을 방과 후에 늘 보았다
그래서 코묻은 돈이라고 하는가,~~~ ㅎ
하여간
밀가루 푸대에 한 푸대 이상이였다
성인만화의 홍수가 왔다,
일본판 해적물이 거리를 잠식 할 무렵에 대본소용
아동만화 일일만화 의 작가시리즈가 출판되어 그당시 {임창} 땡이 시리즈가
대본소에 휩쓸고 있을때였다
손의성의 44계단과 혁,
김종래 원작 도망자 를 즐겨보며, 참 ,, 박기당의 주유천하도 있었다
어느 작가의 책인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데 아마
박기정의 레슬러 인가
하는책이 엄청나게 힛트였다
만화책을 보면
그 시절의 새대적인 배경이 늘 있었다
50년도엔 해방전후 에 관한 광복 이야기와 일본의 식민지
독립에 대한 피끓는 만화가 대부분이였고
60년도 부터는 반공 방첩에 관하여 공산주의 배금사상에 긴 회오리가
연결되어, 권웅의 전쟁물들이 많이 쏟아져 나왔다
이 시절엔 영화도 반공에 대한 줄거리가 상영되었고
성인극화중에는 시라소니가 힛트였다,
70년도 부터는 합동출판사 와 소년한국일보가 나란히 업계에 등장하여
합동출판사 이영래 회장과 한국일보의 장강재 사장이 투합되어
합동출판사 의 20년 독점시대가 종말을 고하여서
우리집에는 독점권이 무너지고 있었다,~~
이시대의 작가들을 기억해보면
이상무, 배금택, 하고명, 하청, 강철수, 고우영, 손의성, 송순희, 편무옥, 권웅,
이상호, 고행석, 이재학, 박봉성, 조명훈, 이현세, 등등 무수한 작가들이
많은 활동을 펼칠때
이현세 "대지의 권법자" 가 두각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독고탁을 아시나요?
1972 이상무 [독고탁] 등장
(70년대 이후 10여년간 [독고탁 시리즈] 발표)
오뚝한 콧날의 탁이가 귀여운 동생이였고, 작가 이상무 만화는
선풍적인 인기속에 우리들의 가슴깊이 각인된 한 시절의 독고탁이 되었다,
그때 이상무는 몰랐어도 독고탁은 알았다
만화를 보던 안보던 상관없이 탁이는 대단한 인기였다, 그후에
1972.1 일간스포츠, 고우영 [임꺽정] 연재가 되어서 그야말로 일간 스포츠는
지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게 되었고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임꺽정의 일대기를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1972.2 <소년한국일보사> 출판등록 (이후 합동과 함께 독과점 체제 구축)
이후 작가 인기 작가 김민은 합동에서 소년한국일보로 이적하여
시대 활극물 검객을 발표하여 만화의 심리묘사에 깊은
장르를 일께워주었고
일본의 오하라 오장 묘사에 일본의 간악함을 묘사한 김민작품의 세계는
갈수록 독자층의 두터움을 몰아 갔었다,
1973 김민 [불나비] 발표
60년대 후반부터 부산에서 살고 있으면서 고교 졸업후
대학입시 준비를 하고 있을때 난 그림에 무척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이때,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 안에서 아버님의 가게이름이
합동서점으로 있었고 지금도 아마 합동서점 이라고
되어 있을것 같다,
"합동출판사"와 "소년한국일보" 간의 치열한 태클이 시작되었다
때문에 작가들의 이동을 낳았고, 원고료의 상승요인을 불어 넣어
판이 갈라지기 시작 하였어도 대본업소의 물결은 더욱 많아지게
되었다
합동출판사의
간판 작가는 이현세/하고명/배금택/박원빈/이재학 /오영식
등이였고
소년한국일보의
간판작가는 이상무/강철수/고행석/조명훈/박봉성/허영만
등이 였으며
작가 출판시리즈 대표가 많이 있었다
고우영 /하승남 / 이상무 /임창 /방학기 등,,,,으로 기억한다.
1974 박수동 <선데이 서울>에 [고인돌] 연재
1974 방학기 [바리떼기] <선데이 서울> 연재.
날씨가 이젠 제법 추워지네요,
지나간 만화와 함께 살아온 옛추억을 그려보며
제 글에 오시는 분들께 혹시라도 잘못된 점이 있드래도
양해 하여주시길 바랍니다. ~~끝~~
첫댓글 어릴적 만화방의 추억이 떠오르네요.
집에는 가야할텐데
무슨 만화인지 기역은 안나지만
만화에 빠져 늦게 들어가 혼난적이...ㅎㅎ
마니 추어지는 날들이네요.
건강 지키시면서 따스하게 좋은 한주 보내시고요.
만화의 추억이 가득합니다,~ ㅎㅎㅎ
결국엔
만화 때문에 그림쟁이가 되었네요~~ ㅎㅎㅎ
지금은 농삿일에 전념하지만
미대 시절이 가끔 떠나질 않네요~~^^ ㅋㅋ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단비님,~^^
야설록 과 천마는 공통분모지요~~ ㅎㅎㅎ
아하! 그랬습니까,~
저는 도서대여점
께비책방 나오기 전부터
책이야기 라는 타이틀로 대여점 신설을 많이 하였지요,
무협소설이
무척 주를 이루던 시절입니다,
그 당시에 만화 문화정보 라는
신문도 만들고 했었습니다,~
모든 게 새롭네요~
정말 많이 반갑습니다,~~^^
@단비
야설록 잘 압니다,~ 사마달도 알지요~~ ㅎㅎ
무협 만화 작가들도
많이 히트 치던 시절이였지요~~^^
저는 촌에 살아 만화방은 없어서 못 갔구요.
고무줄놀이 공기놀이 그리고 핀따먹기가 있었습니다.
고무줄놀이
시절이 다시 돌아온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오늘 아침은
조금 추위가 덜하네요~~^^
그시절 유치원두 다니시궁..
저도 만화는 거의 접하지 못했어요.
지금 기억나는건 이렇다할게 없어요.
비슷한 또래인데도 딴세상에 사신분같단 생각으로 잘 봤습니다.
유인님,~~^^
그때 그 시절은 우리의 부모님들
모두가 만화책 보지말라고 하셨지요~~^^ ㅎ
이제는 먼먼날의 기억입니다,~~^^
ㅎ 비슷한 추억을 가진분이 많아서 반갑네요.
만화를 너무 좋아해서 반화가게에서 매일 살다시피 했습니다.
만화가게 할아버지가 내 까까머리를 쓰다듬으며..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야~" 칭찬해준 기억은 지금도 또렷합니다.
박부성님의 '요술지팡이', 작가미상 '고추' 는 지금도 줄거리가 기억이 납니다.
거의60년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