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cafe.naver.com/godnjf12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dkdehd63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http://cafe.daum.net/guriever. 해월(海月) 황여일(黃 汝一)선생의 해월유록(海月遺錄)
Å日月眞人 明 선생님Ω
♧마지막 구세주(救世主) 황발(黃髮: 明 선생님)♧
【인천(仁川) 중앙동(中央洞) 자유공원 작은 정자 옆에 있는 큰 정자(大亭:석정루石汀樓) 黃宮 】
【 鄭道令 (明 선생님)은 1946년 병술년(丙戌年)(음력 12월 대한민국 수도 서울 용산(龍山)에서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 후손(後孫)으로 강림(降臨)하셨다 】
【Ω】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16장 74편 1수
(得見豚允書中有詩 是夕無寐遂於枕上疊和 二首 回寄允兒 以爲林泉 卜築之南針云)
득견돈윤서중유시 시석무매수어침상첩화 이수 회기윤아 이위림천 복축지남침운
우룡사하립암간(牛龍寺下立巖間) 몽매평생기왕환(夢寐平生幾往還)
곡호임천원득직(谷號林泉爰得直) 옹칭해월숙쟁한(翁稱海月孰爭閒) ***
청류굴곡엄릉뢰(淸流屈曲嚴陵瀨) 열수참치사조산(列岫參差謝眺山)
처세처향구매책(處世處鄕俱昧策) 휴가종차노운관(携家從此老雲關)
제목-장남인 중윤(中允)의 글 중에 시(詩)를 보고서, 저녁 침상에서 잠 못 들며 첩화시(疊和詩) 두 수를 지어, 돌아와 윤아(允兒: 中允)에게 주며 임천(林泉)에서 터를 가려 집을 짓는데 정남향으로 하라고 이름.
우룡사(牛龍寺) 아래에는 조용한 석굴이 있으니, 평소 잠도 자며 꿈도 꾸며 자주 갔다 돌아오는 곳이다.
곡(谷)을 일러 임천(林泉)이라 하는데, 이 곳에서 만나 알게 되었으니, 해월(海月)을 부르며 누군가가 당겨 맞이하는데 한 노인이구나.
맑게 흐르는 물이 이리저리 굽고 꺾이며 차가운데 더하여 물살은 빠르고, 물러나 멀리 산을 바라보니 봉우리가 연이어 있구나.
이 세상과 고향에서 살아나가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일인지라, 집을 떠나서 이 노인을 쫓아,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도다.
2수
풍진분주무문간(風塵奔走武文間) 모경방지권조환(暮境方知倦鳥還)
자한오향편벽애(自恨吾鄕偏僻隘) 인언차토략관한(人言此土略寬閒) ***
소청현시호중계(小靑縣是壺中界) 태백지위획리산(太白支爲畵裏山) ***
시식건곤간비의(始識乾坤慳秘意) 시문수설주의관(柴門雖設晝宜關) ***
속세(風塵)의 문관과 무관사이(文武間)를 분주(奔走)히 지내다가, 나이가 들어서야 바야흐로, 고달픈 새는 돌아온다(鳥還)는 것을 알겠구나.
스스로 한(恨)하는 것은, 내 고향 마을이 외져 막혀 있는데, 사람들이 말하길, 이 곳은 대체로 넓고 한가하며,
작지만 맑고 고요한 고을로, 이 곳이 호중계(壺中界)라 하는구나. 태백(太白)산의 한 가지로 나누어진, 모태(母胎)가 되는 산으로,
처음으로 건곤(乾坤)이 굳게 감춰 둔, 신(神)의 뜻을 알게 되었다. 비록 사립문(柴門)을 설치한다 하더라도, 낮에는 마땅히 관통시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 시(詩)는 1618(광해10, 戊午)년 8월에 동래부사(東萊府使)로 있다 관직을 물러나, 고향집으로 돌아와서는
해월헌(海月軒)을 만귀헌(晩歸軒)으로 고쳐 현판을 걸었으며, 그 이후 지은 시(詩)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우룡사(牛龍寺) 아래에 바위 석굴이 있는데, 이 곳을 임천(林川)이라 하고 이 곳에서 한 노인을 만나서 모시게 되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 노인이 어떠한 사람이라는 것을 밝힌 구절은 없는 것이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라고 질문하자 한 사람이 말하였다
“그 글 내용으로 보면 이 세상과 고향 마을에서 잘 살고자 꾀하는 일은 부질 없는 일이라고 하여, 이 노인을 따라 구름이 낀 산속으로 들어간다고 하였으니, 분명히 신선(神仙)이 아니겠습니까?” 라고 하자
명산 선생님(明 선생니)께서 시인(是認)도 부인(否認)도 하지 않으시고 하던 이야기를 계속하셨다.
두번째 시(詩)를 보면, 해월(海月) 선생이 속세(俗世)에서 무관(武官)과 문관(文官)으로 분주히 살아오다, 나이가 들어서야 비로소 고달픈 새는 돌아 온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이 크게 한(恨)하는 것은, 고향 마을이 도회지와는 멀리 떨어진 외진 곳으로 꽉 막혀서, 이 곳 사람들은 좋은 스승을 만날 수도 없고, 아무리 똑똑해도 배경이 없으니, 중앙(中央)에 나아가 출세(出世)할 수도 없는 울진 사람들을 보고 매우 가슴이 아프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곳 고향 마을은 비록 작지만, 맑고 고요한 마을로 이 곳은 호중계(壺中界)라 한다고 하였다.
이 곳은 태백산(太白山)의 한 가지로 나누어진 모태(母胎)가 되는 산이며, 이 곳은 하늘이 비밀(秘密)에 부쳐둔 숨겨 둔 곳인데, 해월(海月) 선생도 늦게서야 그 신(神)의 비밀(秘密)을 알게 되었다고 한 것이다."
그러나 이 곳은 신성(神聖)한 곳으로, 아무나 출입(出入)시켜서는 안되는 곳이라, 속이 탄다고 하였다.
차라리 외부(外部)와의 교제(交際)를 끊고, 문을 만들어 닫아 걸어서 출입(出入)을 막고 싶은데, 그러나 어찌 대낮까지 사람들을 드나들 수 없게 할 수야 있겠느냐고 하였다.
그러나 만일에 그렇게 했다가는 오히려 사람들이 이상스럽게 생각하여, 신(神)이 숨기는 뜻을 사람들이 알아차리기 쉬우니, 답답한 심정(心情)을 시(詩)로써 남긴 것이다.“ 라고 설명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호중계(壺中界)란 말이 무슨 의미인지 자세히 설명하여 주십시오.”라고 질문하자,
“호중계(壺中界)란, 별천지(別天地), 비인간(非人間), 선경(仙境), 술그릇속, 바가지속이라는 말로, 한 마디로
신선(神仙)이 머무는 곳이란 말이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세계(理想世界)라고 이제껏 알아왔지만, 사실은 이 시(詩)에서는 호중계(壺中界)가 바로 해월(海月) 선생 자신의 고향(故鄕), 즉 해월(海月) 선생 자신의 집이 호중계(壺中界)라 한 것이다.
토정(土亭) 선생의 조카인 아계(鵝溪) 이 산해(李山海) 선생은, 이를 꿰뚫어보고 사동기(沙銅記)를 남긴 것이다.
바로 여기가 태백산(太白山)의 한 가지로서 모태(母胎)가 되는 곳이라는 것이다.
즉 금강산(金剛山) 태백산(太白山)의 정기(精氣)가 모여 있는 정혈처(正穴處)인 곳이다.
하늘이 천지만물(天地萬物)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는 우주(宇宙)를 개벽(開闢)하여야 하는데, 개벽(開闢)의 주인공인 건곤(乾坤) 즉 하나님의 아들을 태어나게 하기 위해서, 정기(精氣)를 축척해 감추어 둔 곳이 바로 이 곳이니, 어느 누구도 출입(出入)시켜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성지(聖地)라는 것이다.
그러나 밤에는 사립문을 걸어서 닫으면 되겠지만, 낮에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통과시킬 수 밖에 없지 않느냐는 내용이다.
라고 하자 한 사람이 질문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의 생가(生家)를 호중계(壺中界)라 하고 신선(神仙)이 머무는 곳이라고 하였는데, 좀 더 자세히 설명하여 주십시오.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2권 12장 51편에,
차이청강 해월헌운(次李淸江 海月軒韻)
소헌탄진일창명(小軒呑盡一滄溟) 량월장풍진차정(凉月長風盡此亭) ***
불유적선유일구(不有謫仙留逸句) 좌래안득상금령(坐來安得爽襟靈) ***
조그만 정자(小軒)이나, 창해(滄海)를 한 번에, 마셔 없앨 수 있고, 맑고 깨끗한 달(凉月)과 장풍(長風)이, 이 정자에서 그치는데,
천상에서 귀양온 신선(謫仙)이, (남의) 훌륭한 구절을 엿보겠는가? 앉아서 찾은즉, 밝고 빛나는 옷을 입은 신(爽襟靈)이, 이르는도다.
이 시(詩)는 이청강(李淸江) 선생의 시(詩)를 차운(次韻)하여, 해월헌(海月軒)에 대하여 읊은 시(詩)이다.
해월헌(海月軒)이란, 해월(海月) 선생이 선생의 호(號)를 따서, 지은 정자(亭子) 이름이다.
이 해월헌(海月軒)은 해월(海月) 선생이 1588(선조 21, 戊子)년 4월 고향에 돌아와서 해월헌(海月軒)을 지었는데, 현판(懸板)은 영의정(領議政)으로 있던, 아계(鵝溪) 이 산해(李山海) 선생이 썼으며, 백사(白沙) 이 항복(李恒福), 상촌(象村) 신 흠(申欽), 월사(月沙) 이 정구(李廷龜), 약포(藥圃) 정 탁(鄭琢), 지봉(芝峯) 이 수광(李晬光) 선생 등등, 수 많은 인사(人士)들이, 찬양(讚揚)하는 시(詩)와 글(文)을 남겼다.
해월헌(海月軒)은 조그마한 정자(亭子)이지만, 단 한(一) 번에, 넓고 푸른 바다(滄溟)를 마셔버릴 수 있고, 맑고 깨끗한 달(凉月)과 장풍(長風)도, 이 정자에 와서는 머문다고 하였다.
또한 천상(天上)에서 귀양온 신선(神仙)이, 남의 아름다운 구절을 엿보고 흉내내어, 큰소리나 치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즉 해월(海月) 선생이 이 정자에 앉아서 신선(神仙)을 찾은즉, 밝게 빛나는 옷을 입은, 신선(神仙)이 온다고 하였다.
우리는 이 시(詩)에서, 여러 가지 의미(意味)를 시사(示唆)하는 내용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해월(海月) 선생은 자신이 신선(神仙)에 대하여 하는 말은, 이름이 나 있는 문장가(文章家)들이 써 놓은 글이나 보고, 흉내내어 지껄이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이 신선(神仙)을 찾으면, 밝게 빛나는 옷을 입은 신선(神仙)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 남들이 신선(神仙)을 보지도 못하고, 옛날 책이나 남들이 신선(神仙)에 대하여 써 놓은 글을 보고 흉내내어 하는 말이 아니라고 하였다.
해월(海月) 선생이 직접 신선(神仙)을 찾으면, 신선(神仙)이 나타나서, 신선(神仙)과 더불어 같이 지낸다는 말이다.
그러면 신선(神仙)이란 누구를 두고 하는 말인가 자세(仔細)히 알아보자.
우리는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4권 1장 1편을 보면 더욱 확실(確實)하게 ,그 신선(神仙)이 누구인가를 알 수 있는 것이다.
여유소부이(與有巢父耳) 녕위할관롱(寧爲鶡冠聾)
여위기자노(與爲箕子奴) 녕위수옥용(寧爲樹屋傭) ***
불문불수세(不聞不須洗) 불출불수광(不出不須狂)
소이현달인(所以賢達人) 행장순천상(行藏順天常) ***
명관무위초(冥觀無爲初) 즉지유위후(卽知有爲後)
헌앙천지간(軒昻天地間) 독여지도우(獨與至道友) ***
욕형불가형(欲形不可形) 욕명불가명(欲名不可名) ***
왕왕창해수(汪汪滄海水) 난탁역난청(難濁亦難淸) ***
소부(巢父)와 같이 귀를 씻기보다는, 차라리 할관(鶡冠)이나 하고, 귀가 먹겠으며,
기자(箕子)와 같이, 종(奴)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통나무집을 짓고, 품팔이를 하겠다.
듣지 않으니, 모름지기 씻을 필요도 없고, (벼슬길에) 나가지 않으면, 모름지기 미친 듯이 떠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현명하고, 사물에 통달한 사람(賢達人)이라면, 세상에 나아가, 도를 행하는 일과, 물러나 숨는 일(行藏)은, 천명을 따르는 것(順天)이, 상식(常)이다.
어리석게도 처음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보았으나, 다시 말해 나중에는, 할 수가 있슴을 알겠구나.
의기 양양(軒昻)하게, 천지 사이(天地間)에서 내가 홀로(獨) 지극한 도(至道)와 벗(友)하고 있지만,
드러내고 싶어도(欲形), 드러낼 수 없고(不可形), 누구라고, 지칭하고 싶어도(欲名), 지칭할 수 없구나(不可名).
깊고 넓은(汪汪) 푸른 저 바닷물은(滄海水), 탁해지기도 어렵지만(難濁), 역시 맑아지기도 어렵구나(亦難淸).
이 시(詩)는 1617(광해 9, 丁巳)년 12월 62세 때 지은 시(詩)인데, 그 당시 해월(海月) 선생은 동래(東萊) 부사(府使)로 있었다.
이 때 폐비(廢母: 인목대비)의 논(論)이 일어났으며, 또한 조정의 대신들 사이에서는 한 당파(黨派) 속에서 패가 갈리면서, 여러 각료들의 벼슬을 빼앗고, 멀리 내쫓는 일이 벌어졌다는 소문을 듣고, 이 시(詩)를 쓰고, 즉시 사직서(辭職書)를 제출하고는, 고향에 돌아갔다.
조정(朝廷)에서는 계속 근무(勤務)하기를 종용하였으나, 끝내 고사하고는 돌아간 것이었다.
소부(巢父)란 요(堯)임금 때의 고사(高士)로, 요(堯)임금이 천하(天下)를 맡기고자 하였으나, 사양(辭讓)하고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천하(天下)를 맡기고자 한다는 말을 듣고, 귀가 더럽혀졌다 하여, 냇가로 가서 귀를 씻었다고 전해 오는 것이다.
이 글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의기양양(意氣揚揚)하게 한 마디를 하였는데, 이 넓고 넓은 천지(天地) 사이에서, 홀로(獨), 지극한 도(至道)와 벗(友)하고 있다고 하였다.
도(道)와 벗(友)하고 있다는 말은 바로 정도(正道)인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과 더불어 동행(同行)한다는 말인 것이다.
그러니 드러내고 싶어도 드러낼 수가 없고, 누구라고 지칭(指稱)하고 싶어도 지칭(指稱) 할 수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깊고 넓은 저 푸른 바닷물은 탁해지기도 어렵고 또한 맑아지기도 어렵다고 한 것이다.
바로 해월(海月) 선생이 벗(友)하고 있는 지극한 도(道)가, 변하지 않는 진리인 바다(海)라고, 은연중(隱然中)에 밝히는 것이다.
바다(海)란, 진인(眞人) 정도령을 뜻하는 별칭(別稱)이라는 것을, 이미 여러 차례 밝힌 것이다.
우리는 해월(海月) 선생의 시(詩) 속에서, 해월(海月) 선생이 마음속 깊이 숨겨 왔던, 밝히기가 곤란(困難)한 혼자만의 큰 비밀(秘密)을, 마음 크게 다져 먹고 고백(告白)하여, 세상에 드러낸 것을 알 수가 있는 것이다.
또 한 가지를 더 밝힌다면 해월선생문집(海月先生文集) 3권 3장 13편을 보면,
『인종상계사초하(人從上界槎初下)』 ***
사람들은 하나님을 천상의 세계(上界)에 있는 것으로 알고 쫓지만, 울진(仙槎)이, 바로 천상세계에 계신 하나님 또는 신선이 내려와 계신 곳(初下)이라고 하였다.
현재의 울진의 옛 지명(地名)이 선사(仙槎)인 것이며, 시(始)와 초(初)라는 말은, 도(道)를 의미하는 말로 부처님 또는 상제를 의미하는 말이라고, 이미 여러 차례 밝힌 바가 있다.
사람들은 하나님이나 부처님이, 하늘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해월(海月) 선생은 바로 선사(仙槎: 신선의 뗏목), 즉 울진(蔚珍)에 하나님이 내려와 계신다고 밝힌 것이다."
【해월유록(海月遺錄) 말씀中】
【上帝之子斗牛星 西洋結寃離去后 登高望遠察世間 二十世後今時當 東方出現結寃解】
【 선출기인(先出其人) 후강주(後降主) 로 무사탄금(無事彈琴) 천년세(千年歲) 】
【만사이황발(萬事已 黃髮 ) 잔생수백구(殘生隨 白鷗 )】
♧ 청림도사(靑林道士) 明(黃) 선생님 ♧
조선중기 대문장가인 해월(海月) 황 여일(黃 汝一) 선생의 시문이 들어있는 문집 목판본(7권14책)이 현재
고려대학교와 서초동 국립도서관에 있으며 필사본은 영남대학 도서관과 국립중앙도서관에도 또한 있음.
해월헌(海月軒) -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선생의 친필
한석봉(韓石峰)선생의 해월헌(海月軒)의 갈근필병풍(葛根筆屛風 : 무이구곡가)
해월종택(海月軒): 봉황이 알을 품는 형국으로 풍수학상 강릉 이남 최고의 명당(明堂)
경북 울진군 기성면 사동리 433 (해월헌길70번지)
[1시간 연속듣기] 저 장미꽃 위에 이슬 피아노 찬송가 연주/In the ...
첫댓글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