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대문시장
강 문 석
좌파정부 들어 경제가 쪼그라들면서 나라가 망해간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남대문시장은 딴판이었다. 달라도 너무 달라 혹시 내 눈이 잘못되었나 하고 끔벅거려 보았다. 이미 해가 설핏 기우는 저녁무렵에 가까운데도 시장을 찾은 사람들은 상상을 초월했다. 며칠 전 목격한 부산 국제시장의 파리를 날리던 골목과는 대조적인 풍경이었다.
남산을 오를까하고 회현역에서 전철을 내렸다. 하지만 남산을 올랐다간 광화문광장 행사에 도착하는 시각이 늦을 것 같아 남대문시장을 관통하게 되었다. 남대문시장이 이렇게 활기를 띄는 것은 주변에 위치한 서울역과 한국은행 화폐박물관 그리고 덕수궁과 같은 고궁도 한몫을 했을 터이니 시장 상인들에겐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는가.
근년에 개통된 서울역 공중고가도로인 ‘서울로’가 시장과 직접 연결되어 인구밀도가 높은 역 뒤 만리동 주민들이 걸어서 장을 볼 수 있게 된 것도 남대문시장에는 큰 도움이 되었으리라. 바리톤 김동규는 해외에 나가면 그 나라의 전통시장을 주로 찾는다고 했다. 시장에선 밑바닥 인생들의 삶과 사람냄새까지 맡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
오늘 남대문시장을 찾은 사람들도 외견상 서양인들과 동남아 중동 등 외국인들이 많았다. 밖으로 우리와 구분이 잘 안 되는 일본 중국 홍콩 대만까지 합치면 외국인 숫자는 훨씬 더 늘어날 터이다. 이들 외국인들이 남대문시장을 찾은 것은 한국인들의 문화나 삶을 만나러 왔다기보다 다른 백화점이나 시장에 비해 물건 값이 싸기 때문이지 싶다.
나도 현직 때인 20여 년 전부터 남대문시장을 자주 찾았다. 그러면서 싼맛에 홀려 당장 필요하지도 않은 카메라가방이나 삼각대 그리고 이미 가지고 있는 버너나 배낭 등 등산장비까지 욕심을 내어 여벌로 사들였다. 자신의 허욕을 다스리지 못하여 벌어진 일로 쌓인 물건들은 친척이나 친지들에게 나눠주고도 짐으로 남아 처분을 기다리고 있다.
남대문시장은 섬유제품과 주방용품 가전용품 민예품 토산품 일회용품 수입상품까지 거의 모든 물건을 취급하지만 주류상품은 의류였다. “어르신들 표현대로라면 남대문시장엔 처녀 불알 빼고 다 있어요.”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젊은이들은 노인들의 허풍을 이렇게 꼬집었다. 수입과자 코너엔 일반 수입상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까지 갖추고 있다고 자랑했다.
남대문시장은 액세서리로도 유명하다. 자체적으로 디자인해서 손으로 직접 만드는데 국내 도매는 물론 해외로까지 수출하고 있단다. 이곳에서 만든 독특하고 예쁜 목걸이와 귀고리 휴대폰 액세서리 등이 세계시장에서도 인기를 끌고 있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그런 물품을 시중가의 절반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니 왜 사람들이 몰리지 않겠는가.
남대문시장에는 맛집들도 밀집해 있다. 갈치조림만을 메뉴로 내는 식당들이 골목을 차지하고 길게 늘어섰다. 원래 한식식당가였는데 1988년 일부 식당이 갈치조림을 메인 메뉴로 바꾸면서 잘 팔리기 시작하자 다른 식당들도 합세하여 갈치조림골목이 되었단다. 미세먼지와는 또 다른 갈치냄새가 얼마나 진동하는지 코를 막고서 골목을 지나야만 했다.
시골장터에서나 볼 수 있는 투박한 맛집들도 있다. 자주 듣는 말로 '조미료보다는 훈훈한 인심'을 넣어 음식을 만드는 왁자지껄한 식당들이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는 바로 그곳. 홀 안 테이블엔 외국인 관광객들도 보였다. 그들은 비록 골목은 복잡하고 허름하지만 깔끔하고 정갈한 식당에서 맛볼 수 없는 넉넉한 인심을 느끼고 있는지 모른다.
남대문시장에는 대형 화재도 자주 발생했다. 1968년 대화재로 중심부가 전소되어 큰 피해를 입었고 그로부터 7년 후에 다시 화재가 일어나 손해가 막심했다. 그런데도 기록엔 건물이 오래되면서 전기설비도 낡아 누전이나 합선이 많았기 때문이라 적고 끝냈다. 화재가 발생할 때마다 ‘전기화재’로 몰아붙이는 것은 참으로 민망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러면 사람들은 왜 죄 없는 전기를 이처럼 화재원인으로 자주 써먹는가. 우선 화재발생 현장에 전기배선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보니 그렇다. 그러고 손해보험 처리까지 전기로 하면 뒤탈이 없다니 서로 짝짜꿍으로 맞추는 측면도 있어 보인다. 실제 보호차단장치가 설치된 전기배선 가까이에 인화성 물질을 두고 화재가 일어나는지 실험해보라.
배선을 누전이나 단락(합선) 시켜도 불을 일으키긴 쉽지 않다. 0.01초나 0.03초 안에 차단기가 동작하기 때문이다. 잿더미로 변한 현장에서의 원인을 찾아야하는 감식은 어렵다. 그렇다고 원인불명을 전부 전기로 모는 건 바뀌어야 한다. 화재발생 개연성은 점포마다 사용하는 석유난로나 제대로 불을 안 끈 채 버리는 담배꽁초가 오히려 더 높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