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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 앞에 가족대책위 천막이 있습니다. 아침에 공장을 바라보고 앉아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회의를 하고, 같이 밥을 먹고, 아이들을 돌보고, 그리고 저녁 늦게 촛불 집회를 하고 집으로 다시 돌아들 갑니다.
그곳에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남편들 얼굴조차 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남편들이 도장반 옥상에 올라옵니다. 망원경을 들고 있으니 천막 옆에 서라 그러면 망원경으로 보겠다. 이렇게 해서 저희 가족들이 천막 앞으로 나와 서면, 남편들이 옥상에서 망원경으로 저희들 얼굴을 보고, 핸드폰으로 통화를 가끔씩 하고, 그리고 손을 흔들어 줍니다. 옥상에서 손을 흔드는 남편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입니다.
월요일부터 경찰 헬기가 하루 종일 평택 공장을 날아다니고 있습니다.
경찰 헬기는 그 전부터 많이 보아 왔던 것이라 그저 그러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좀 이상했습니다. 뭔가 하얀 액체를 뿌리는 것 같았습니다. ‘왜 물을 뿌릴까? 안에 또 타이어를 태웠나? 조합원들이 항의하다가 또 타이어를 태운 것인가?’
그런데 조금 지나자 눈이 따갑고, 목이 따갑고, 얼굴이 따갑고 좀 이상했습니다. 냄새도 나고. ‘아, 이게 최루액이라는 거구나’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엄마들이 부랴부랴 안산에 있는 공설 운동장을 찾아가 봤습니다. 헬기가 내려서 있을 곳이 그곳 밖에 없다는 생각에 따라가 봤더니, 역시 아니나 다를까 그곳에서 경찰 헬기가 최루액을 만들어서 실어 나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울부짖었습니다. 미친 것 아니냐고. 하지만 그들은 쳐다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고 지금까지 4일째입니다.
어제 저는 테이저건이라는 것을 처음 들었습니다. 그런 게 있는 것조차 몰랐습니다. 테이저건을 경찰이 진압무기로 소지하고 들어가서 조합원들에게 쏘아댔다고 합니다. 그래서 얼굴에 허벅지에 그 총을 맞고 사람들이 쓰러졌습니다. 당장 병원으로 이송해서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사측은 우리를 들여보내 주지 않았습니다. 경찰들도 그저 수수방관이었습니다. 몇 시간을 항의한 끝에, 결국 신분증 확인을 아주 철저히 한 뒤에 의사 한 분이 공장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다친 조합원 분들이 나올 수가 없어서 나오면 바로 경찰에 연행되기 때문에 나오실 수가 없는 관계로 그 안에서 살을 찢고 응급처치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지금 60일이 넘었습니다. 제 남편 얼굴을 못 본 지는 지금 글쎄 기억도 안 나는데, 지금 어떻게 됐을지, 수염은 얼마나 길었을지, 살은 또 얼마나 새까맣게 탔을지. 제가 자꾸 남편 얘기만 하면 눈물이 나서. 예, 지금 그런 상황입니다.
제 남편의 이름은 고동민이라고 합니다. 제가 굳이 이 자리에서 남편 이름을 밝히는 것은 저는 제 남편이 너무나도 자랑스럽기 때문입니다.(청중 박수)
처음에 쌍용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고 나서 남편이 “회사 상태가 너무 안 좋다. 정리해고가 될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할 때까지만 해도 저는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다른 일자리를 찾으면 되겠지, 젊은 우리 둘 같이 힘 합쳐서 살면 이 아이들 못 키우면서 살겠느냐’ 그런 안일한 생각이었습니다. ‘남편이 이제 7년차밖에 되지 않았는데, 설마 자르겠느냐’ 그런 생각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정말 바보 같은 생각이었습니다.
남편과 함께 이 파업에 동참하면서 저는 많은 것을 깨달았습니다. 파업은 노동자의 학교라는 말을 합니다. 처음에는 그 의미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하지만 파업을 같이 하면서 동지라는 말이 무엇인지, 연대라는 말이 얼마나 뜨겁고 절절한 단어인지 이제 알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참을 하고 연대하러 오시는지, 왜 모두가 쌍용차 문제가 쌍용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의 모든 노동자들의 문제라고 얘기를 하시는지 이제는 그 의미를 알 것 같습니다.
지금 큰 딸 아이는 친구 집에 있습니다. 둘째 꼬맹이는 유치원을 잘 다니던 아이인데, 제가 매일 경찰과 관리자들과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다 보니 엄마가 잠시라도 안보이면 경찰한테 붙잡혀간 줄 압니다. 그래서 지금 제가 없으면 너무나도 불안해합니다.
제가 서른여섯 살 먹을 동안 저는 한 번도 종교를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그 모든 신들을 끌어내서 저는 간절히 기도해 봅니다.
아이들이 아빠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남편이 옆집 아저씨처럼 아침에 출근을 하고 저녁에 돌아와서 제가 차려놓은 밥을 맛있게 먹고 따뜻한 물에 샤워를 하고 제 옆에 곤히 잠든 얼굴을 볼 수 있기를, 아이들이 커서 이룰 세상은 좀더 자유롭기를, 비정규직이며, 정리해고며, 고용불안이며 이런 말도 안 돼는 이런 노동자들을 고통 받게 만드는 이런 개 같은 말들이 없어지기를 저는 정말 간절히 빌어봅니다.
쌍용자동차 법정관리인 이유일, 박영태입니다. 그 인간들 강남구에 있는 아주 엄청 비싼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들 합니다. 그 인간들이 타고 있는 체어맨 가장 최고급 사양 누가 만들었습니까? 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그 으리으리한 아파트, 그 돌맹이 하나, 그 시멘트 하나, 벽지 하나, 도대체 누가 만든 것입니까? 그런데 도대체 이 땅의 이 자본가들이란 놈들은, 이 정권은 왜 노동자들을 이렇게 홀대하는 것입니까?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이 최소한 인간에 대한 예의라도 있는 것들이라면, 우리에게 이러지는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참을 수가 없고 이 싸움을 멈출 수가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좀더 자유로운 세상에서 꿈을 꿀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반드시 이 싸움을 꼭 이겨내서 저는 이 땅을 바꿔나가는 데 제가 조그만 힘이 된다면, 여기 서울이 아니더라도 그 어느 곳이라도 찾아갈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정당한 싸움이, 정말로 남편의 공장 점거파업, 남편뿐만 아닌 모든 노동자들의 파업이 저는 정말 정당하다고 믿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거라고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저희 쌍용차 노동자들, 그리고 이 땅의 모든 고통 받는 노동자들이 반드시 주인 되는 세상이 와서 저희 모두 좀 사람답게 살아봤으면 좋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반드시 이겨서 당당히 걸어 나가겠습니다”
“연대 투쟁과 파업을 반드시 확대해 주십시오”
지금 공장 안은 전쟁터입니다. 8일째 공중에서 최루액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경찰은 산불에 소화가루를 퍼붓듯이 최루액을 뿌려댑니다. 독한 성분의 최루액 때문에 눈도 못 뜰 정도입니다.
어제 파란색 최루액을 발뒤꿈치에 맞았는데, 살 위로 기포가 생겨서 막 올라옵니다. 바닥이나 설비는 아예 손으로 잡지 못할 정도입니다. 잘못 손을 댔다가 그 손으로 눈이라도 비비면 따가워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지상에서는 용역깡패와 구사대, 경찰 들이 합동작전을 벌이고 있습니다. 경찰이 방패로 지켜주고, 용역깡패들은 그 뒤에서 새총을 쏩니다. 업체에 의뢰해 만들었다는 이 새총은 그야말로 살상무기입니다. 그것에 맞아 팔이 부러진 조합원이 있습니다. 만약 머리에 맞는다면… 정말 끔찍합니다.
테이저건에 맞은 조합원은 경찰이 겨우 2미터 전방에서 얼굴에 테이저건을 쐈습니다. 항쟁제도 없이 바늘만 빼놓은 상태여서, 살이 썩을 수도 있답니다. 방패에 맞아 무릎 인대가 늘어나고, 곤봉에 맞아 어깨가 탈골된 사람도 있습니다. 전경들에 둘러싸여 짓밟힌 조합원은 온몸에 타박상을 입었습니다. 내 친구는 용역깡패 진입 소식에 달려 나가다 넘어져 왼쪽 손목 동맥이 끊어졌습니다. 정말 참을 수가 없습니다. 시너를 온몸에 뿌리고 정문 앞에 서서 불을 질러볼까도 생각했습니다. 진저리치다 못해 욕지기가 났습니다.
저들은 밤에도 옥상에서 라이트를 비추고 새벽까지 선무방송을 해댑니다. 잠을 잘 수가 없게, 지치게 만드는 겁니다. ‘민주노총ㆍ금속노조에 이용당하는 너희들이 불쌍하다’나요. ‘바보처럼 속지 말고 투항하라’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투항할 것 같았으면 우리는 지금까지 싸우지도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바보가 아닙니다.
지금 가장 큰 문제는 물이 아주 부족하다는 겁니다. 최루액을 뒤집어쓰고도 이걸 씻어낼 수가 없습니다. 8일째 샤워도 못했습니다. 땀과 최루액이 범벅이 된 채 씻지 못하니까 밤마다 모기들이 엉겨 붙어 전쟁을 치릅니다. 물을 내리지 못해 화장실에선 악취가 진동합니다.
양치질한 물을 모았다가 변기 물을 내리곤 합니다. 삼시 세끼 주먹밥에 고추장을 발라 먹는데, 너무 맹숭맹숭하지만 그나마도 아끼고 또 아낍니다. 밥그릇을 씻을 물이 없으니까 입에 물을 넣고 헹군 다음 밥그릇에 뱉어서 흔들고는 휴지로 닦습니다. 그게 설거지입니다.
우리의 정신은 녹일 수 없다
모두들 비만 오길 바라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모두 옥상에 가서 발가벗고 샤워하기로 했습니다. 언제 침탈할지 모르는 긴장 속에 있으니까, 잠도 제대로 잘 수 없습니다. 전투를 치르다가 틈틈이 한두 시간씩 잡니다.
긴장해서인지 자다가 소리질러 욕을 하면서 잠꼬대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우울증 증세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굴하지 않고 싸우고 있습니다. 다치고 찢어지고 멍이 들었지만, 겁먹지 않습니다. 아마 경찰과 사측도 징그럽다고 생각할 겁니다. 아무리 스티로폼이 녹아내린다고 해도, 설사 내 살이 녹아내린다 해도, 우리의 정신은 녹일 수가 없습니다.
68일 동안 함께 싸운 동료들을 보면 자신감이 솟구칩니다. 우리는 한몸처럼 싸우고 있습니다. 쟤네들은 싸우다가 동료고 뭐고 없이 뿔뿔이 도망가기 일쑤입니다. 우리는 절대 그러지 않습니다. 살수차 앞에서도 서로 부등켜 안고 함께 싸웁니다. 동료가 잡혀 있으면 구출하려고 타격을 나갑니다. 이런 걸 보고 있으면, 눈물이 나고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그리고 이 안에 있는 내 자신이 뿌듯해집니다. 점점 더 반드시 이기겠다는 오기가 생깁니다.
이익 앞에서는 생명의 존엄성조차 따지지 않는 자본에게 무릎을 꿇을 수 없습니다. 저들은 우리를 지게 만들려고, 비굴하게 만들려고 기를 씁니다. 그러나 우리는 지지 않을 것입니다. 반드시 이겨서 당당하게 정문으로 걸어 나갈 것입니다. 우리는 테러집단도 아니고, 불법 폭력배들도 아닙니다.
법은 역시 힘 있고 돈 있는 사람들 편입니다. 정부도 가진 사람들만 편듭니다. 이명박은 생색내기 식으로만 “서민” 얘기하지만 수십만 리터의 시너통 위에 있는 우리들이 죽든 말든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용산에서도 그렇게 끔찍하게 사람들을 죽인 겁니다.
내 청춘을 다 바쳐 일했는데, 하루아침에 쫓겨났습니다. 구만리 같은 내 자식 새끼들 공부도 시켜야 하는데, 어디 가서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 누구 말처럼, 우리는 마루타처럼 생체실험을 당하고 있습니다. 쌍용차에서 해고를 시작해서, 전국으로 확대하겠다는 겁니다. 미디어법이 통과될 때 보니까, 정말 가관입디다. 정부는 가진 자들, 부자들만 살리려고 안달이 났습니다.
한국에는 지금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라는 두 인종이 있습니다. 인종차별은 극심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움츠려 들면 안 됩니다. 전국에 있는 노동자들이 겁내지 말고, 움츠러들지 말고 당당했으면 좋겠습니다.
7월 25일 전국노동자대회 때 옥상에서 정문 앞에 모인 연대 대오들을 봤습니다. 경찰 떼들에게 동지들이 쫓겨가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이 났습니다. 모두들 얘기합니다. 우리가 큰 빚을 졌다고. 우리도 끝나면 투쟁하는 곳에 달려가 연대하겠노라고. 전국 곳곳에서 사람들이 와 주면 그게 정말 큰 힘이 됩니다. 우리가 지쳐서는 안 된다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사측은 선무방송에서 ‘민주노총이 혼비백산해서 도망가는 것을 보라’고 말합니다. KT가 민주노총을 탈퇴하고 성폭력 문제에도 휘말린 것을 보라고 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화가 납니다. 민주노총이 저들에게 약점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금속노조도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하지만,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저들의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서라도, 연대 투쟁과 파업을 반드시 확대해야 합니다. 우리 파업이 꼭 승리해서 승리의 불씨를 만들어야 합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강력한 힘이 결집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노동자들이 뭉치면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강한지 저들에게 보여 줬으면 좋겠습니다.
70일을 넘긴 쌍용차 점거 파업
쌍용차 ‘살인 해고’를 중단하고 고용을 보장하라
7월 30일 저녁 현재 쌍용차에서는 ‘끝장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이 교섭 자리는 ‘노조가 점거 파업을 풀지 않는 한 교섭은 없다’는 태도를 고수하던 사측이 27일 저녁에 먼저 노조 측에 만나자고 연락하면서 시작됐다. 사측의 뒤에 있는 “보이지 않는 힘”은 물론 청와대였다. 노동유연성이 “국정 최대 과제”라는 이명박은 쌍용차 정리해고를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쌍용차 노동자들의 놀라운 투지가 저들을 결국 교섭 자리로 나오게 한 것이다. 사실 70일 넘게 지속된 점거 파업 기간에 정부와 사측은 거듭 노동자들의 투지에 밀려 애초의 무자비한 비타협적 태도를 유지할 수 없었다. 현재 사측이 제시하고 있다는 교섭안도 애초 쌍용차 생산직 노동자 2명 중 1명을 해고하겠다던 계획과 비교하면 후퇴한 안이다.
물론 여전히 노동자들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70일간 싸워 온 노동자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 ‘끝장 교섭’은 쉽게 타결되기 힘들 듯하다.
아직 최종적인 타결을 봐야 하지만, 70일 넘게 진행된 쌍용차 파업은 이미 우리에게 많은 것을 보여 줬다. 무엇보다 쌍용차의 투사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 성공적으로 저항할 수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했다.
고통전가
쌍용차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 올해 초 법정관리가 상태가 됐다. 위기의 주범은 2004년에 쌍용차를 매각한 정부와 쌍용차 인수 후 기술유출만 한 ‘먹튀 자본’ 상하이차였다. 그러나 저들은 위기에 아무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전가했다. 임금 삭감과 복지 축소 속에 쌍용차 조합원들은 그야말로 뼈를 깎는 고통을 겪었다. 나아가 저들은 2천6백여 명 대량해고와 1인당 생산대수를 3배나 늘리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것이 “좋은 회사로 가는 과정”(사측 유인물)이라고 했다.
대량해고와 구조조정을 통해 쌍용차를 투기자본과 재벌들이 먹기 좋게 만들어 매각하려는 거였다. 무엇보다 정부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고 투쟁 경험이 적은 쌍용차 노조를 ‘노동유연화의 생체 실험’ 대상으로 삼으려 했다. 노중기 교수의 지적처럼 “쌍용차를 통해 대규모 정리해고의 선례를 남겨 현대차 등 강성노조를 길들이겠다는 게 진짜 목표”였던 것이다.
처음에 저들은 매우 단호했다. 쌍용차 법정관리인 이유일은 4월 말 인터뷰에서 “절대 물러서지 않겠다. 정리해고 명단이 통보되면 노조가 두 분파(남은 자와 떠날 사람)로 나뉠 것”이라고 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해고 대상자와 비대상자를 이간질해 노조를 약화시키고 파괴하겠다는 것이 저들의 계획이었다. 실제로 저들은 제일 먼저 비정규직을 해고했다.
또 저들은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파산ㆍ청산밖에 없다’는 협박을 통해 노동자들을 위축시키려 했다. 하지만 연관업체와 금융기관이 거미줄처럼 얽혀 있고 관련업체까지 20만여 명의 고용에 영향을 미칠 파산은 처음부터 쉽지 않은 일이었다. 더구나 청산보다 회생 가치가 3천억 원이나 더 많다고 회계 결과가 나온 상황에서 저들이 손해볼 일을 할 리는 없었다.
협박과 이간질을 하는 한편, 저들은 노조의 파업에 대비해 미리 28억 원을 주고 용역깡패 제공 업체와 계약을 해 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어차피 당신은 정리해고 명단에 포함돼 있으니 빨리 희망퇴직하라’는 대대적인 협박과 강요를 시작했다. 있지도 않은 명단에 속아 불안에 떨며 ‘희망퇴직’을 신청한 사람이 1천여 명에 이르면서 이런 시도는 성공하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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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굶겨 죽이기ㆍ말려 죽이기 작전에 맞서 의연하게 저항하는 쌍용차 노동자들 ⓒ사진 이윤선
그러나 쌍용차 노동자들이 5월 22일부터 “해고는 살인”이라고 외치며 단호하게 점거 파업에 돌입하면서 상황은 바뀌기 시작했다. 저들의 고통전가 시도는 점거 파업이라는 강력한 벽에 부딪혔다. 1930년대 미국 GM 파업이나 1998년 현대차 파업에서도 입증됐듯이 점거 파업은 생산에 타격을 가하면서 노동자들의 사기와 단결을 높이고 자신들의 지도부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전술이었다.
점거 파업
쌍용차 점거 파업의 시작은 당시 화물연대의 박종태 열사 투쟁과 더불어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구실도 했다. <연합뉴스>는 “올해[하투]는 산하조직이 앞장서고 총연맹이 뒤따르는 방식”이라며 “등 떠밀리는 민노총”이라고 했다. 이것은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 이후 심각한 정치적 위기로 내몰리던 이명박에게 곤혹스러운 일이었다.
나아가 쌍용차노조는 서울 시청광장에 10만 명이 결집한 6월 10일 범국민대회에 참가해 자신들의 투쟁을 알리고 지지를 호소했다. 민주 수호를 위한 투쟁과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의 결합을 시도한 이 모범적 시도는 두 투쟁 모두를 고무했다. 경제 위기 시기에 노동자투쟁이 정치적 쟁점과 투쟁으로 발전할 필요성을 보여 준 것이다.
쌍용차 파업은 단호한 점거 파업이 투쟁의 정당성을 선전하며 연대의 결집점을 제공하는 효과적 방법이라는 것도 보여 줬다. 지지 방문과 연대 집회가 이어졌고 6월 중순 한길리서치 여론 조사에서는 63퍼센트가 쌍용차 정리해고에 반대했고 79퍼센트가 경찰력 투입에 반대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와 사측은 ‘살인 해고’를 중단하려 하지 않았다. 노조가 입수한 사측 임원의 수첩에 적혀 있었던 “타협 X. My Way”가 저들의 기조였다. 저들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야비하고 악랄한 방법을 동원했다. 정리해고에서 제외된 노동자들을 협박하고 강제 출근시켜 구사대 노릇을 강요했다. ‘산 자’에게 쇠파이프를 쥐어주고 ‘죽은 자’의 뒤통수를 치라고 강요했다. 서로 마주 노려보는 ‘산 자’와 ‘죽은 자’ 모두의 가슴에 피눈물이 흘렀다. ‘산 자’든 ‘죽은 자’든 노동자에게 모든 고통이 전가됐다.
나아가 저들은 6천여 명의 경찰과 용역깡패, 경찰 헬기, 온갖 중장비까지 동원해 쌍용차 평택공장을 전쟁터ㆍ생지옥으로 만들어 갔다. 나중에는 물, 음식물, 의약품을 차단하고 살인적 고사 작전을 추진했다. 살갗이 벗겨지는 최루액을 종일 비처럼 쏟아 붓고, 5만 볼트의 전류가 흐르는 테이저건을 쏘기도 했다. 잠도 못자게 하루 종일 음악과 선무방송을 해댔다. 이미 정리해고와 구사대 동원 등이 낳은 압박으로 뇌출혈, 심근경색, 자살 등으로 6명이 죽은 상황에서 “심리적 압박감 배가”를 추진한 것이다. 이 모든 것들은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와 그 지배자들이 얼마나 잔인하고 야만적일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하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제대로 물도 밥도 못 먹고 잠도 못 자고 씻지도 못 하는 이런 생지옥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노동자들의 투지와 용기였다. 이런 투지에 밀려 지난 6월 26일 파업 침탈을 시도했던 용역깡패와 구사대 3천여 명은 꽁무니를 빼며 도망쳤다. 법정관리인 박영태는 “우리 2천 명이 민노총 등 30명의 조직적 싸움을 못 당해내더라”며 혀를 찼다.
저들이 엄포와 달리 아직도 도장공장을 진압하지 못한 것도 이런 노동자들의 사기와 전투력을 꺾지 못했기 때문이다. 파업 이탈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폐렴 치료 때문에 나왔던 노동자가 다시 진입을 시도할 정도다. 쌍용차지부는 “노동자들에게 백기투항을 원한다면 8백50개 관을 준비하는 게 훨씬 수월할 것”이라고 말한다.
더구나 지금 노동자들이 점거하고 있는 도장공장은 그야말로 “화약고”다. 먼지의 유입을 막기 위해 밀폐돼 있고 내부에 30만 리터의 신나와 페인트가 가득해서 진압 과정의 작은 실수로 화재와 폭발이 일어나면 인명 몰살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중재자가 아니라 투쟁의 지도부가 필요하다
그런데 쌍용차 노동자들 8백여 명의 70일이 넘는 이런 단호한 점거 파업에 대한 연대 투쟁과 연대 파업은 충분하지 못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 지도부는 연대 집회 등을 조직하고 연대 파업을 선언하기도 했지만 실질적인 연대 파업 건설보다는 중재자 구실에 더 치중해 왔다. 쌍용차 한상균 지부장도 “공장을 사수하고 있는 사람들 눈에는 [금속노조] 정[갑득] 위원장이 중재자 역할만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아쉬워했다. 현대차 윤해모 지도부는 투쟁을 회피하려고 사퇴해 버렸고, 기아차 지도부는 기아차 파업과 쌍용차 파업을 연결시키는 데 소극적이다.
물론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현장 조합원들이 이런 지도부를 압박하는 높은 자신감과 투지, 정치 의식을 보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 위기에 다소 위축돼 있는 많은 노동자들은 쌍용차 노동자들을 걱정하면서도 부문의 벽을 넘어 행동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분명히 존재했던 쌍용차 연대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지도부들은 제대로 받아안지 않았다.
하지만 쌍용차 투사들의 초인적인 투쟁이 조금씩 연대를 확대시키고 있다. 진보정당과 종교계 등 각계각층의 지지와 연대가 이어지고 있고, 미국, 영국, 홍콩 등에서도 국제 연대 메시지와 행동이 이어졌다. 여론의 압력에 국가인권위도 긴급 구제 신청을 했고, 2004년에 쌍용차를 상하이차에 매각한 장본인인 민주당조차 정부를 규탄하고 나섰다.
단호한 점거 파업과 이런 여론의 압박 때문에 정부는 7월 24일에는 노사정 대화를 주선했고 7월 30일부터 사측이 노사 교섭에 나온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저들은 ‘일부라도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경제 위기에 아무 책임이 없는 노동자들이 해고를 받아들일 이유는 없다. 부도 기업은 공기업화해서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하는 게 옳다. 이명박이 4대강 살리기에 쓰겠다는 22조 원의 극히 일부만으로도 쌍용차 노동자들의 일자리를 보장할 수 있다.
결국 이런 대안을 현실화시킬 수 있는 것은 투쟁과 연대의 힘에 달려 있다.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노사의 대화를 막고 사태를 파국으로 몰아가려는 보이지 않는 힘”을 지적했다. 쌍용차에서 사측이 물러서면 전국의 수많은 노동자들이 자신감을 얻고 고통전가에 맞서 싸울까 봐 두려운 정부와 주요 기업주들이 양보를 가로막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쌍용차 지도부는 끝까지 파업 노동자들을 올곧게 대변해야 하고, 민주노총ㆍ금속노조 지도부는 협상만 바라보지 말고 끝까지 연대 투쟁과 파업 건설에 노력해야 한다. 활동가들은 현장과 작업장에서 그런 연대 투쟁과 파업을 호소하고 건설하는 데 힘써야 한다.
쌍용차에서 대량해고가 성공하면 다른 부문으로 구조조정이 확산될 것이 분명한 상황에서 모든 노동자들은 자기 일처럼 연대에 나서야 한다. 연대 투쟁의 압박과 손해를 더 버틸 수 없는 정부와 기업주들이 쌍용차 사측에게 양보하라고 요구하게 만들어야 한다.
수만 명이 참가해 경찰력을 뚫고 실제로 물과 식량, 의약품을 전달하는 전국노동자대회 등을 계속 개최해 파업 노동자들의 힘과 사기를 높여야 한다. 그래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투쟁의 가능성과 희망을 보여 준 쌍용차 노동자들의 영웅적인 파업을 분명한 승리로 마무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