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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에서 - 4 - 동학천도 태평천국의 사상적 연원과 그 대중적 바탕은 천부경 - 그 천부경은 우파니샤드(힌두교의 원시경전)와 참전계경이다. - 4
夏商 이후에 周漢 1800년을 서북방 무인세력이 중앙 권력을 장악했다가, 다시 고려 조선의 1000년을 서북방 무인세력이 중앙권력을 장악하는데 이 지배세력은 스키타이의 原 佛敎의 바다에 떠 있는 지극히 현실주의적이고, 권력지향적이고, 개인과 가문중심의 (특히 조선 중기 이후에는)서인, 노론, 소론의 섬이었다. 이 지배집단이 현실대처 능력이 부족한 것에 대한 천하의 인식이 남학과 남인들의 존립기반과 근거가 된다.
영정조시대의 탕평책이라는 것이 이 지배집단(노론)일색의 조정이 너무 비현실적이라는 것에 대한 반성과 그 대책이다. 南이란 말은 남쪽도 되지만, 지배층이 아닌 나머지 사람이란 뜻도 다분히 들어 있다. 夏商이후에 주변세력으로 전락한 스키타이의 리더십을 끌고 나가는 세력이다. 지배층 너희들이 다 해쳐 먹지만, 조선의 주인은 나머지 우리다. 위기상황에 우리가 지킨다. 관군은 도망가도 우리가 지킨다. 이것이 조선義兵의 뿌리가 된다.
동경대전 수덕문의 일절을 인용해 보자. ‘余出自東方 無了度日 僅保家聲 未免寒士 先祖之忠義節 有餘於龍山 吾王之盛德 歲復回於任丙 / 나는 동방에서 태어나 무료하게 세월이나 보냈으니, 겨우 가문의 명예나 보존했을 뿐이요 가난한 선비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선조들의 충성과 의리와 절개는 용산에 남음이 있고 우리 임금이 큰 공덕을 끼쳐 주신 해는 임진년과 병자년마다 다시 돌아 온다(임진란과 병자란에 공을 세운 선조를 기념하여 제사와 제물을 챙겨 준 것에 대해).’ 이것이 남인의 일반적 분위기다.
이제 임진란정도가 아닌 어마어마한 서세가 동점해 온다. 이 서구열강과 대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전체를 결집할 중심고리가 필요하다는 문제의식이 성호학파로부터 제기되고, 천주실의의 이벽(李檗)에 의해 거의 완성이 된다. 정약용이 자기 큰형의 처남이 되는 이벽과 교분을 쌓으면서, 사상적 영향을 받았는데, 결국은 운남으로 귀양을 가서 이 중심고리의 문제의식을 완성해 내는 것이 다산경학이다. 다산의 상제학의 완성은 남학에서 동학으로 이행하는 준비를 마친 것이다.
그리고 다산은 유유히 귀양에서 돌아와 인생을 마감하는 1836년에 자기연고지(외가, 처가)이며 유배지인 운남에서 그 제자 홍수전에 의해 상제회가 조직되는 것이다. 본격적으로 서세의 동점에 대응하는 동학의 씨앗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 것이다. 동학은 천도다. 천주도이기도 하지만, 천하도이기도 하다.
변방의 서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지만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포함하여 천하를 지키고 그 질서를 회복하겠다는, 갑자기 막강한 무장력을 가지게 되어 천하를 점점 장악해 오는 서세에 대항하겠다는 천하의 가르침(天道, 東學)이지, 결단코 극동의 맨동쪽 경주에서 발생한 동학이 아니다.
동학천도의 가르침은 誠敬信이다. 천도는 치앤도, 시앤도 즉 仙道다. 어떤 이론이나 철학이나 사상의 체계가 아니다. 동학천도는 그냥 하늘 우주 자연 인간 그 자체가 살아 있도록, 혹은 그 자체를 되살려 내도록, 그래서 하늘과 사람이 하나로 일체가 되도록 - 天人合一하도록, 그래서 德慧力(우주적 에너지와 지혜와 능력)이 유출(流出)되도록 수련(닦음)을 하는 道法이다. 어떤 이론이나 사상이나 철학에 대한 執과 着을 털어 내고, 비우고, 놓아버리는 心法이다.
동경대전, 용담유사에 있는 몇구절을 인용해보자.
ㄱ]’座箴’ 吾道博而約 不用多言義 別無他道理 誠敬信三字/우리 도는 넓지만 간략하다. 많은 말과 뜻을 사용하지 않는다. 별도의 다른 도의 이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誠敬信 석자뿐이다.
ㄴ]布德文 ’誠之又誠 至爲天主者 每每有中....此非受人之誠敬耶?’/(마음을 두고 하는 일에 대해서)정성을 들이고 또 정성을 들이어, 지극히 상제님(하날님)을 위하는 사람은 매번 하는 일마다 딱딱 들어맞고.... 이것은 사람의 정성과 공경을 받는 것이 아니겠는가?
ㄷ]교훈가 ’誠之又誠 恭敬해서 正心修身 하였어라....대저세상 사람중에 精誠있는 그사람은 어진사람 분명하니 작심으로 본을 보고 精誠恭敬 없단말가.’
ㄹ]도수사 ’어질고 어진 벗은 매몰한 이내사람 부디부디 갋지말고 誠敬二字 지켜내어 차차차차 닦아내면 無極大道 아닐런가.’
ㅁ]권학가 ’日日時時 먹는 음식 誠敬二字 지켜내어 하날님을 공경하면 *自兒時 있던 身病 **勿藥自效 아닐런가.’ *어릴 때 부터 **약 없이 절로 나음.
東學天道(동경대전 論學問 ’道雖天道 學則東學')는 誠敬信의 道다. 남들같이 잘나지 못하고 어리석고 말도 잘 못하던 나에게 天道는 하나밖에 없는 희망이었다. 그런데 그 정성이 백일 이백일 삼백일 깊어 가자, 無極大道(이 보다 더 크고 더 깊고 더 간절하고 더 바른 다른 길이 없는 무한 무궁 무극의 대도)로 체험되어졌다. 그래서 지난 25년을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읍니다.’(한용운, 님의 침묵)는 구절의 심경으로 살아 왔다.
어리석어서인지 나는 님을 보내지도 못했고, 님은 침묵을 지키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무극대도의 천도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사상적 연원도 없고, 그 사상을 받아 들여줄 대중의 문화적 배경도 없고, 그냥 오똑 한 천재가 발명해 내서 한 사람 한 사람 포접 조직을 만들어 나가서 그 사상을 대중화시켰다는 거짓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 비밀을 풀고 싶었다. 그 중심의 진정한 뜻과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미친 듯이 너무도 간절하게 기도하듯이, 아니 너무나 사무치게 치열하게 100일 기도를 하면서, 1000일 기도를 하면서, 그 비밀을 찾고 있었다. 1997년 여름 내가 운영하던 떡집에서 참전계경을 보고 있었다. 그냥 다리를 꼬고 비스듬히 그야말로 건방지게 보고 있었는데, 그 뜻이 너무나 사무쳐 와서 정자세를 하고 앉았다가, 그야말로 두 손을 마주잡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도록 혼신의 집중을 하면서 눈에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보고 있는데,
한 20페이지 째 쯤 그렇게 보고 있는데, 양 손바닥 사이에서 펑-하는 폭발음이 일어나서 커다란 감전 사고를 당한 줄 알았다. 온몸이 쩌릿쩌릿 아프고 얼얼한 게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이게 무슨 일인가? 너무나 기절초풍할 사태에 한동안 그 충격에서 벗어 날 수가 없었다. 조금 정신을 수습해서 몸을 푸는 체조동작을 하는데,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몸이 반공중에 뜬 듯이 가볍고 시원하고 나도 모르게 몸의 뻐적찌근한 부분을 풀어주는 몸동작이 절로 나와 다시 또 놀라게 했다. 그때까지 한 30년간 끝없는 집중으로 등이 상당히 굽어서 제법 꺼꾸정한 내 등이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절로 풀리는 게 아닌가? 그로부터 한주일쯤 백팔 배 절을 한 뒤에는 몸을 흔들어 주면 그때마다 우두둑 우두둑 소리를 내면서 막힌 혈과 굳은 뼈들을 풀어 주는데,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은 드디어 내가 의식과 무의식사이를 자유롭게 드나들고 내 의식과 생각과 감정의 흐름에서 벗어나서 나를 텅 비우는 일이 가능해졌다. 드디어 벗어나 버린 것을 알았다. 드디어 경계가 터져버린 것을 알게 되었다. 아하! 천인합일의 일단을 체험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다. 참전계경을 보고 보고 또 보고 살피고 살폈다. 국내에서 구할 수 있는 참전계경은 다 구했다.
’삼백육십사(三百六十事)’라는 제목의 책도 있었다. 8조(기자의 8조법금)로 나누어지고 더 세목을 나누어 366사(삼국유사의 한웅천왕의 360여사)로 되어 있는데, 8조가 誠 信 哀 濟 禍 福 報 應이다. 제1조 誠조의 제1장이 敬장이다.그리고 제2조가 信조가 아닌가? 대경실색! 참으로 혼이 얼반 나갈 지경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동학천도의 誠敬信이 한웅할버님이 가르친 천부경(참전계경)의 천부도의 誠敬信이 아닌가?
참전계경이 무언가? 바로 기자의 ’8조법금’이다. 상나라의 정통을 들고 온 기자님의 8조라면, 상나라에서 넘어온 것이란 말이다. 한단고기에서는 한웅할버님의 가르침을 천부경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동학천도는 천부경의 가르침이라는 말이다. 그러면, 그 러 면 , 하나라 상나라는 한웅 할버님의 가르침을 따르던 조선이었다는 말이다.
그 렇 다 면, 1800년대 중후반까지 천부경, 참전계경이 천하에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고, 지배층의 자기유지 혹은 신분상승의 과거급제를 준비하는 사람의 고시공부가 사서삼경의 유학이지, 나머지 조선천지 전체가 이 천부경, 참전계경의 불학이고 부도학이고 밝도학이고, 박달학이고, 하날님학이고, 상제학이고, 천주학이고, 제석학이고, 불천님의 불교천지였다는 말이다.(하날님은 아래아자를 써서 하ㄴ.ㄹ님으로 표기해야 맞는데, 아래아 표기가 불가능해서 하날님으로 썼다. 동학가사에는 하ㄴ.ㄹ님으로 표기되어 있다.)
아하! 이 무극대도의 천도가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사상적 연원도 없고, 그 사상을 받아 들여줄 대중의 문화적 배경도 없고, 그냥 오똑 한 천재가 발명해 내서 한 사람 한 사람 포접 조직을 만들어 나가서 그 사상을 대중화시킨 것이 아니라, 그 연원과 그 배경에서 일어난 것이었구나.
이제 또 다른 천부경을 하나 살펴보자.
BC1122년에 남쪽 남천축(마하친-진나라)으로 내려간 이들이 남긴 것이 우파니샤드(Upanishad)이다. 고전 산스크맅인 실담어의 발음규칙으로는 ’우 파 니 사 하 따’다. ’우파’(훈민정음으로는 ’알ㅍ+.[아래아] 현대어는 앞, 영어는 UP. 앞, 위, 전이라는 말) + ’니사하다’(입으로 조용히 발음해보라. 니사-따가 되는가? 훈민정음의 ’니삿다’이다. 이었다는 말)다. ’그 앞을 이었다’는 말이다.
우리의 영상에 선명히 남아 있는 주몽이 유리에게 칼을 符節로 삼아 부러뜨려서 그 뒷쪽 부절을 주고, 나중에 유리가 주몽을 찾아 와서 ’그 앞쪽을 이었던’ 符節의 이야기가 있다. - 이 부절은 유리가 고난 끝에 자기 혈통(천손)을 확인하여 자기 정체를 확인하는 수단이기도 하지만, 우리 모두가 자기 정체를 확인할 수 있는 천부경을 상징한다고도 할 수 있겠다. -
’그 앞을 이은 것’(우파니사하따)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고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분명히 우리 모두의 ‘앞에(위에, 안에, 중심에, 함께) 있는’ 하늘과 德慧力(우주적 에너지와 지혜와 능력)과 우리 인간과의 사이를 연결해 주는 天符經을 말하고 있다. 우파니샤드의 내용을 분석 비교하면 천부경(참전계경)과 동경대전과 얼마나 잘 합치하는지가 선명히 보일 것이다. 일단 우파니샤드의 1장 2장 3장의 제목 이야기만 하고 넘어가자.
1장 이사 우파니샤드(Isa Upanishad)이다. 이사(=이어서)는 단절된 내 에고를 하날님 상제님과 이어서 하나로 연결 통일 신인합일 천인합일한다는 말이고, 그것은 조상님의 지혜를 잘 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2장 깨나 우파니샤드(Kena Upanishad)이다. 참으로 험난한 현실 속에서 헤쳐나가느라 에고 속에 빠져서 잠들어 있던 神性과 智慧와 그 傳統이 깨어나는 것을 말하고 혹은 깨어나야 한다는 말이다. 3장 깨따 우파니샤드(Katha Upanishad)이다. 깨어나서 연결 통일 신인합일 천인합일을 이루었다. 어떻게? 또 깨어나면 어떻게?라는 말이다.
어떤가? 우파니샤드를 공부해야 할 것 아닌가?
인도 지역이 이러하다면, 아랄해와 아무다리아 지방은 어땠을까?
아랄해와 아무다리아 중심의 케시(카시)와 호라산(부도성)도 그 지명이 케시(카시, 夏市)와 호라산(부도성)이라면, 마찬가지로 誠敬信의 전통을 이어서 살고 있었을 수밖에 없다, 19세기 중후반의 러시아의 침공 때까지. -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 지역에 대한 자료와 정보는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불행하게도 러시아화가 되면서 전통은 다 파괴되고 사라져 버렸다.
정약용의 經學은 비교적 조작을 피할 수 있었다. 강역고와 대동수경,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를 중심으로 대륙 동부로 조선을 옮기는 2차 조선사 조작의 가장 중요한 수단 방편으로 이용되었기 때문에, 경학은 그 신뢰성의 기반으로 살려 놓아야 했던 것이다. 다산의 경학은 상제학 즉 천주학을 밝히고 있는데, 그 역사를 간단히 살펴보자.
즉 실학 즉 남학은 인도와 중앙아시아와 동남아시아와 동아시아 즉 통털어서 ’천하’의 백성이 가지고 있던 성경신의 기본적 삶의 관점과 자세를 어떻게 이해하고 정리하고 그 에너지를 살려내고 결집시켜서, 그 중세적 한계를 돌파하면서, 소위 임진란부터 눈에 띄게 드러나는 서세동점의 거친 물결을 극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연구했던 것이다. 지배층이 그것을 가만 둘 리가 없다. 성호좌파에 대한 탄압을 하고 신유사옥을 벌인다.
그것이 조작세력에게 간파되어서 이 실학자 혹은 상제학자 혹은 천주학자들이 서학의 이단자로 몰려서 처형당하고, 유배당하고, 탄압받는다는 조작극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정약용의 자형인 이승훈은 카톨릭신부로 꾸며지고 정약용의 형인 정약종과 함께 처형당한다. 성호의 종손이고 이승훈의 삼촌인 이가환과 성호학파의 좌장 권철신은 곤장을 맞아 죽고, 형 정약전과 정약용은 유배된다.
지금 한국의 기독교사에 이승훈은 위대한 순교자 신부님으로, 이 모든 분들이 기독교의 초기 순교자로 받들어 모셔지고 있다. 이 누명을 어이 할꼬? 처형당하고, 맞아 주고, 19년씩이나 유배가고 유배중 병사한 것도 억울한데, 그 서학으로부터 조선을 지키고자 그 모든 모진 고난을 감당했건만 자신이 서학자로 누명을 쓰고 있으니 죽어서도 눈이 감길까? 하물며 저 머나먼 반도땅까지 엉터리 미사로나 젯밥을 찾아 드실려면, 오죽하실까?
이 실학 남학 상제학이 활동하는 바탕이 지배층의 나머지 조선천지 전체의 이 천부경, 참전계경의 불학이고 부도학이고 밝도학이고, 박달학이고, 하날님학이고, 상제학이고, 천주학이고, 제석학이고, 불천님의 불교천지였던 것이다. 바로 19세기 중반까지는 간혹 조금 아주 조금 이슬람화된 부분이 없지 않다 하더라도, 아시아 천하는 이 誠敬信의 한웅 할버님의 가르침을 굳세게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홍수전선생의 사상적 깨달음을 받아 들여 줄 대 중 적 문 화 의 바 탕 이었던 것이다.
마르코 폴로가 고려의 종교상황을 어떻게 보았는지를 한번 상기해 보자. 한헌석 칼럼 17호에서 “우랄알타이계의 몽골(말갈, 마쟈르, 타타르)이 주도권을 쥠으로써 종교상황에서도 그 쪽 계열(박수계열)이 우위와 주도권을 쥐게 된 것으로 조심스럽게 진단할 수도 있겠다. 스키타이의 중원 내부에서도 박수계열이 있었다 하더라도 주변부의 현상이던 것이 몽골지배로 이 주변현상이 세를 얻음으로써 중심적 위치를 점하게 된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중심적 위치를 점하고 있다가 주변현상으로 밀려난 것이 그 다음에 묘사하고 있는 SENSIN(선인)일 것이다. 스키타이(고려) 시스템의 기간부대가 선인(처섄)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종교상황이 유교 불교 도교의 공식으로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다. 이 공식은 20세기에 들어서서 조작세력이 조작해낸 그 결과물인 것이다. 유교는 조작된 정주(程朱)의 유교로, 노장의 도교로, 고타마 싯달타의 석가모니 불교로 말끔히 정리되었다.
P216 ‘또 다른 부류의 종교인들이 있는데, 센신(SENSIN)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자기 나름의 고유한 관습에 따라 매우 금욕적이어서, 다음과 같이 매우 고된 생활을 해나간다. 여러분은 그들이 밀을 벗기면 나오는 껍질, 즉 밀기울만을 먹고 평생을 살아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센신에 대한 주 6)에서 ‘선생을 옮긴 말로, 당시 도교의 도사를 지칭하는 말이다.’고 나와 있다. - 과연 그럴까? 도교가 아니고 선교(仙敎, 天敎)가 아닐까? SENSIN을 선인이라고 읽어야 하지 않을까? 밀기울 이야기는 천부경 참전계경(선인)의 이야기인데?”
이제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한번 보자. ‘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說敎之源 備詳仙史 實內包含三敎/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또한 풍류도라고 한다. 그 가르침(敎)의 근원이 ‘仙史’에 상세히 설해져 있다. 실로 이는 그 안에 삼교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고 그 뒤에 儒道佛 삼교를 언급하고 있다. - 이 말은 원래 선교밖에 없는데, 삼교를 조작해 냈다는 강력한 암시다.
- 이 선교의 전통이 19세기 중반까지 맥맥히 살아 있고, 또한 그 주류를 형성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는 바로 고려의 주류의 토착적인 종교가 선인(SENSIN)들의 선교(仙敎)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바로 이것이 동학이 요원의 불길같이 번져간 그 대 중 적 문 화 의 바 탕 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동경대전중의 탄도유심급(歎道儒心急/우리 도우들이 너무 마음이 급한 것을 한탄하노라)에서 ’山河大運 盡歸此道 其源極深 其理甚遠/ 천하의 큰 운(흐름)이 모두 다 이 길(道)로 돌아온다. 그 근원은 지극하게 깊고 그 이치는 심히 멀게도 뻗쳐 있구나.’라고 노래하고 있다. 그런 바탕 위에서 천하의 백성들과 함께 正中에 서서 호호양양한 대세의 흐름의 정당성과 그 위세를 당당하고 호탕하게 그 반만년의 인류사적 차원의 연면함과 전 세계사적 규모의 광범위함을 한껏 자랑할 수 있는 것 아니겠는가?
율곡사상의 핵심이 誠이고, 퇴계의 핵심은 敬이라면, 다산의 핵심은 誡愼恐懼다. 다산은 상제님(천주)을 靈明主宰라고도 부른다. 정약용의 상제사상/경인문화사,김영일 P99 주11 ’전서’ 2, 3/5b ’天之靈明 直通人心/상제님의 영명은 바로 사람의 마음과 통한다.’ P97 주5 ’전서’ 2, 36/24a 上帝者何 是於天地神人之*外 造化天地神人萬物之類 而宰制安養之者也./상제님이란 무엇인가? 천지신인의 *밖에서 天地神人萬物類를 짓고 화생시키고, 주재하여 컨트롤하고 편안케하고 기르는 분이다.’
내재하여 있는 영명과 바로 통하는 방법론이 지극정성을 다해 자신의 마음을 비워 상제님과 통하는 誠이고, 외재하여 천명을 주재하는 상제님을 받들어 모셔서 그 실행을 돕는 것은 敬이다. P100 주14 ’전서’ 2, 4/23 ’中庸之戒愼恐懼 豈非昭事之學乎/중용의 계신공구가 어찌 영명(昭)과 주재(事-섬김, 천명의 실행을 도우는 섬김)의 배움이 아니겠는가?’고 하여 상제님과 통하는 誠과, 상제님의 명령(천명)을 실행하고 돕는 敬의 핵심요체가 誡愼恐懼 즉 ’경계하고 삼가서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理氣를 하늘로 삼는다면, 인을 행할 수 없지만, 상제님을 두려워하고 두려워하여 경계하고 삼가하여서 상제님과 밝게 통하고 천명을 모신다면, 인을 행할 수 있다’고 했다. 계신공구의 요체는, 지금까지의 유학의 객관적 관찰과 인식과 조화의 대상으로서의 理氣가 아니라 ’상제님과 통해서 상제님과 하나가 되고 상제님의 명령을 실행하는’(人乃天이다) 주체의 윤리의식이라는 것이다.
역사 속의 인간의 위치가 天에 예속되거나 天과 조화하는 것이 아니라, 天(상제님)의 실행자이면서 협력자로서 즉 주체로서의 인간의 드넓고 드높은 위치를 정립했다는 것이다. 경학의 연구를 통해서 이 관점을 선진고경과 중용에서 찾아내서 확립하여, 기존의 모든 철학사상의 한계를 비판, 돌파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대중들이 가지고 있는 천부경의 성경신과 공구근신의 윤리의식을 모든 지식의 최상위의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는 것이다.
다산의 誡愼恐懼의 철학은 참전계경 제1조 誠의 제5체 至感의 제 40용 ’....恐懼謹愼 不捨於心 則誠意乃至感天/두려워하고 두려워해서, 삼가하고 삼가해서 상제님과 성의를 마음에서 떠나 보내지 않는다면, 그 성의가 상제님을 감동시키기에 이른다.’와 같은 原 불교와 대중의 심성에 바로 가 닿았던 것이다. 바로 천하의 대위기를 구할 대중과 그 심성의 핵심이면서 철학사상사의 핵심인 상제학(上帝學)을 완성했던 것이다. 이것이 동학천도의 사 상 사 적 연 원 이었던 것이다.
*外 - 內를 外로 조작한 것이다. 조선철학사상사의 어느 누구도 氣를 어떤 존재(天地神人萬物類)의 외부에 위치시킨 사람이 없었다. 그런데 그 사상사의 최후의 최고의 완성자인 정약용이 그 氣의 완성태로서의 상제를 외부에 위치시킨다는 말인가?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外로 고치는 순간 정약용은 기독교 신자가 되어 버린다. 기독교의 여호와 하느님은 외부에서 천지창조를 하고 그 천지의 작동을 유지하고 가끔씩은 그 작동에 개입하여 기적과 살륙과 파괴를 자행하기도 한다.
기독교 신학은 유일신을 엄격하게 피조물과 분리한다. 서양사상사와 함께 이 이원론을 분명, 선명하게 결사항전으로 지킨다. 그래서 자연/정신, 신/사람, 내/너 물질/생명, 주체/객체, 천당/지옥, 이승/저승, 선/악, 내/외 등으로 아주 분명하게 선명하게 구분한다. 이리 되면, 신성한 정신은 너무나 고상하고 이상주의적 길을 걷지만, 그 뒷면에서 실제의 행동은 저질의 천박하고 악마적인 대량학살자의 길을 갈 가능성이 아주 아주 높아진다.
아주 정신주의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그러나 웬지 수상한 아더 맥아더의 발언은 그 뒷면의 서세동점의 침략과 파괴와 식민과 대량학살과 전면적 조작과 세뇌, 한마디로 지구역사상 최악의 악마적 행동을 감추거나 미화하는 시체분장술이거나, 피로 범벅된 제국주의자나 그 앞잡이 창녀들의 구역질나는 화장술이다. 한마디로 악마의 꽃이다.
이제 일원론의 완성자인 정약용의 제자 홍수전의 동경대전 論學問을 인용해보자. 1) ’吾心卽汝心也/내(하날님) 마음이 바로 네(인간) 마음이다.’ 유명한 동학의 인내천(사람이 바로 하늘이다.) 사상의 선포다. 이원적 차이성이 아니라 일원적 동일성이다. 신성과 인성의 동일 통일 연결 교류 교감 공명 - 인성 속에 신성이 꽃피어 남, 흘러 넘쳐 나옴(流出) -천인합일, 신인합일, 지상신선, 불국토, 지상천국, 태평천국을 선포한 것이다.
동경대전 론학문의 侍天主 해설 중에, 2)侍者 內有神靈 外有氣化 一世之人 各知不移者也/(하날님을) 모신다는 것은, 안으로 신령이 있어서 밖으로 氣化(流出, 化出)하는 것인데, 이 세상사람들이 제각각이 이 하날님의 기화(류출, 화출)로부터 옮겨 갈(벗어 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아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가 바로 내 자신인 신령의 流出임을 사무쳐 깨달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을 진정 사무치게 깨달아 안다면, 모든 사람과 사물과 존재가 신령의 流出이기 때문에, 그 모든 존재를 하날님으로 모시지 않을 수 없다, 내 자신을 포함해서. 이 하날님을 모신다면, 우선 내 자신을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고 모든 존재를 꽃피워 내고 내재된 잠재력이 흘러 넘쳐 나올 수 있도록 기르고 자기실현시켜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원론적 대상에 대해서 이원론적 주체가 반항하고 공격하고 파괴하고 지배하고 짜증내고 탓하고 엄마 때문에 아빠 때문에 싫고 못하고 안하는 서구문명식의 유치한 아이가 아니라, 일원론적 대상이면서 동시에 주체로서 포용하고 감사하고 살려내고 책임지고 돌보고 존중하고 이해하고 개성적으로 자기를 실현하되 조화할 줄 알고 통합하고 통합시키는 편안하면서도 깨어서 살아 있는 적극적 긍정적 능동적 주동적인 성숙한 동양의 조선의 아이로 키우려면,
신령의 하날님이 내자신이라는 내 자신 안(內)에 있다는 모심의 일원론적 관점과 자세가 있어야 한다. 먼저 내 속에 신령한 하날님이 있다(內有神靈)는 사무치는 각성이 있어야 한다. 내가 진정한 神童이라는 자각이 있어야 한다. 이 각성으로부터 옮겨지면(벗어나면) 신령의 뿌리에서 옮겨버리면, 부러진 가지가 말라 비틀어져 죽듯이 우리는 말라 죽는다.
용담유사 권학가에 기독교를 비판하는 중에, 3) ’무단히 하날님께 *주소간 비는말이 삼십삼천 옥경대에 나죽거든 가게하소 우습다 저사람은 저의부모 죽은후에 신도없다 이름하고 제사조차 안지내며 오륜에 벗어나서 **유원속사 무삼일고 부모없는 혼령혼백 저는어찌 유독있어 上天하고 무엇하고 어린소리 말았어라. 그말저말 다던지고 하날님을 공경하면...’ *밤낮으로 ** 惟願速死-오로지 빨리 죽어 천당가기 바랍니다.
- 하날님과 천당과 부모와 타인을, 내 안(內)에 있는 같은 일원론의 하날님으로 공경히 모시지 못하고, 밖(外)에 있다고 이원론적으로 분명히 구분하면, 밖(外)의 부모는 신이 없어 제사도 안지내면서, 자신만 유아독존격으로 신이 있어서 천당간다고, 그것도 오륜을 어기고서 ’어서 빨리 천당가기 원한다’는 패륜을 범하게 된다는 너무나 고도의 문명비판을 천하의 모든 대중에게 노래가사로 전하는 이 위대하고도 너무나 원숙한 상제학을 內를 外로 변조하는 조작을 하여 억울한 누명을 씌운단 말인가?
신령한 비밀은 안에 있다. 아무리 밖(外)으로 유학을 가고 멀리 우주까지 가더라도 그 답은 여기 이 안(內)에, 東에, 동학에, 동학천도에, 동학천도의 태평천국에, 내 마음이 네 마음인 상제님 마음에, 내유신령의 천지신명의 사무친 모심에 있다. 어디 감히 밖(外)에 둔다는 말인가?
태평천국의 위계시스템을 보자. 天王 洪秀全, 風伯(聖神風) 楊秀淸, 雲師 馮雲山, 雨師 蕭朝貴, 雷師 韋昌輝, 電師 石達開를 대군왕으로 하고 그 각자의 산하에 소군왕을 두었다.(태평천국의 종교사상/조선대학교출판부,최진규 P53) 포접조직의 전시 비상 군사, 정치 조직이다. 삼국유사 /을유문화사 P36~37 ’환웅이 무리 삼천명을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 신단수 아래로 내려왔다. 이곳을 신시라 하고 이분을 한웅천왕이라 한다.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곡식, 생명, 질병, 형벌, 선악 등(8조) 인간세상의 360여가지 일을 주관하여 세상을 다스려 교화하였다.’
태평천국군대는 1850년 금전기의를 하여, 천왕 풍백(성신풍) 운사 우사 뇌사 전사와 함께 광서성 호남성 호북성 강서성 강소성을 휩쓸고 강도(현 남경)에 내려와 신시(천경)를 건설할 때는 이미 군대의 무리의 숫자가 3백만명을 능가하는 아무도 막을 수 없는 대군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대사회에서는 무리 3천명으로 천왕이 되어 천하를 장악할 수 있었지만,
이미 제국주의화한 산업자본과 8개국연합군대와 그 뒷잡이 *일본과 그 앞잡이 **왜와 그리고 이들과 결탁한 조선천지내의 약탈상업자본과 서안(혹은 북경)으로 옮겨온 근세조선의 중앙조정(대원군-공친왕 조정)과 갈갈이 찢겨진 조선은 3백만명이 아니라, 4000만명이 죽어서도 천하를 장악할 수 없었다. 현대식 기관단총과 소총과 대포와 군함은 몇억의 군대도 살상할 능력과 준비와 의지와 基地까지를 다 갖추고 있었다. 그리고 보라! 아더 맥아더의 인류역사상 최악의 악마 출정식의 출사표도 던져졌다.
*일본 - 복건중심의 명치유신파
**왜 - 중체서용파 - 태평천국 문서에는 滿淸(실제는 蠻淸), 동학 문서에는 왜, (되놈, 청국인, 만주인) - 현 중국어를 사용하던 대륙 동쪽 세력 - 서북쪽의 조선인들의 대거 유입[객가]으로 위기감을 느끼면서 단련(團練)을 조직하거나 湘軍(湘勇) 淮軍(淮勇)에 대거 투신, 이후 군벌의 기반이 됨. 지도자는 상군측의 증국번과 좌종당, 회군측의 리홍장과 원세계
이 태평천국의 주체는 결단코 현 중국의 전신인 청국인 만주인 되놈이 아니다. 태평천국은 바로 동학천도의 나라인 것이다. 조선사와 조선인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는 신시배달국의 建國史話 그대로 움직이고 있던 태평천국을 어떻게 되놈이라고 이해할 수 있는가? 東學天道의 太平天王은 *천왕 한웅(대웅, 한바토르, 대불 혹은 대부처-현재 절의 본당인 대웅전의 주인공, 그러니까 전세계의 모든 절의 본당 대웅전에 모신 부처는 석가모니부처가 아니라 대웅부처 한웅부처 미륵부처 아미타부처다.
바미얀대불과 같은 전세계의 대불은 아미타부처다. 석굴암의 본존불도 당연히 아미타불이다. 수천년간 모든 본존불은 당연히 한웅부처다. 불상의 手印을 보면 석가부처인지 아미타부처인지 확인할 수 있단다. 공부해야할 부분이다.)의 후예로서 6000년만의 한웅부처의 재현, 미륵부처의 출현이었던 것이다. (많은 전승에 한웅부처가 미래불인 미륵부처로 다시 오신다는 민중신앙이 많이 남아 있다.)
태평천국은 동학천도의 나라다. 태평천국군은 동학천도군이다. 동학천도의 천왕은 태평천왕 홍수전이다. 동학천도의 천경은 태평천국의 천경인 현 남경이었다. 바로 배달(박달 밝달 백두)조선의 神市다.
그래서 결국 1850~1864의 태평천국의 난에서만도 4000만명이 학살당하고(에드가스노 자서전/김영사, 에드가 스노 P33 ’중국에서 태평천국의 난이 4 , 0 0 0 만명의 희생을 치른 채 진압된... 중국에서 4,000만명이 학살당한 이 사건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 20세기 최고의 저널리스트 에드가 스노는 당연히 최소한의 숫자를 얘기했을 것이다. 150년 전의 感으로는 반란이 일어나면 책임자 몇명이 장두로 지목되거나 자수하면, 그 몇명이 죽는 반란의 감각으로는 사 천 만 명의 죽음은 하 늘 이 무 너 진 것이었다.),
그 사이에 인도의 세포이난으로 번져간 동학천도는 그 죽음의 수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대륙전체로 번져간 동학천도의 광대무변의 저항은 그(1864년) 뒤로 동학천도의 2차봉기가 일어나 일본의 간섭군 진압군이 들어 오는 1895년까지 그 사천만명보다 훨씬 더 많은 죽임을 불러 왔을 것이다. 20세기 초기까지의 기관총과 소총과 대포의 발전을 상상해보라. 그 뒤의 1902년 미의회 청문회에서의 아더 맥아더의 발언을 상기해 보자. 아니다. 아예 다시 인용해 보자.
’수천년 전에 우리 아리아인 선조들은 양을 키우고, 언어를 만들고, 많은 숫자로 불어나서, 여러 지역으로 퍼져 나가게 되었다. 서쪽으로의 적절한 과정의 확장을 통해서 유럽을 차지하고, 예술과 과학을 발전시키고, 위대한 문명과 인류 진보의 일차적 기초들을 창조했다. 그 문명은 수도 없는 지류로 나누어져, 지구를 훌륭한 혈통과 사상들로 충만시키고 자양분을 공급했다. 그러다 보니 대서양을 건너고, 이 반구를 개간하고 식민지화하고 문명화했다. 이 모든 경이로운 현상의 배후에 광범하게 작동하는 법칙들이 가차없는 활력으로 여전히 작동하여, 최근에는 이 위대한 아리아인들의 한 지류가 태평양을 넘어 가도록 강제하고 있는데, - 말하자면, 이 족속의 요람으로 되돌아 가는 격이다. - 그래서 진보적 사회 진화의 새로운 한 단계가 시작되고 있다. 당연히 그것은 인류의 통합과 인류의 형제애를 위해서 실질적인 기여를 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내가 필리핀의 군정총독으로 부임하기 위해 마닐라로 돌아 왔을 때, 우리는 자연발생적 진화의 과정에 의해서 그 직책을 떠맡게 된 것처럼 보였다.... 권리, 정의, 자유, 그리고 개인적 자유라는 우리의 개념은 몇세기에 걸친 투쟁의 귀중한 성과물인 것처럼 보였다.
이 점에 관해서는 우리 선조들로부터 많은 것을 물려 받았고, 우리 자신들도 세계의 행복에 많은 것을 더하였고, 과거의 수혜자로서 그리고 미래의 진보적인 발전의 도구들로서 우리는 자신을 단순히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서’라는 불멸의 사상의 보호자로 간주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보였다.... 그런 경우가 발생하면(우리가 태평양을 넘어 우리 요람으로 되돌아 가기 위해서 정복전을 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 우리가 (우리의 행위가) 이 세상 모두에게, 우리 헌법의 원리에 구현되어 있는 진정한 인간성의 메시지(의 표현)이라고 선언해야만 되는 그런 도덕적이고 지성적인 높이에 우리는 다다라 있다고 느꼈다.’
’필리핀 군도는 아마 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섬들의 그룹일 것이다. 그것의 전략적 위치는 지구상 어떤 다른 위치보다 더 훌륭하다. 중국해는 대륙으로부터 필리핀을 거의 750마일이나 갈라 놓고 있기 때문에 딱 안전 해자가 되어 준다. 그것은 말하자면 수천마일의 해안선의 옆구리에 위치해 있으며, 바로 그 해안선의 중심에 위치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은 전략적으로 볼 때 일본보다 상대적으로 더 좋은 위치에 있다. 일본도 옆구리에 위치해 있긴 하지만, 수천마일의 해안선의 다른 끝 지점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마찬가지로, 인도도 (일본과 똑같이) 또 다른 옆구리에 위치해 있다.(다른 끝 지점으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런 위치로 볼 때, 필리핀은 그 중심에 위치해 있다. 그것은 미국의 이익을 보호하는 (가장 좋은) 수단을 제공해 준다. 그 수단은 최소한의 물리적 힘의 사용으로 적대적 행동을 저지하는 데 그 자체가 최고도의 위치라는 효과를 주는 것이다.’
-이제 9성급 프리메이슨 아더 맥아더가 ’추상적이고 이상주의적인 그러나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 발언’을 한 문맥이 생생하게 핏줄이 울뚝불뚝거리면서 피가 돌아가는 현실적인 모습이 보이고 느껴진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누구와 대결해 왔는지? 이제 누구와 대결할려는지? 어떤 전략으로 대결하려 하는지? 도대체 왜 그래쌌는지가 보인다.
말 하 자 면 , 얼마나 많은 사상자가 나오더라도 東學天道의 조선을, 그 천하의 誠敬信의, 반만년의 순결한 천인합일의 전통을 지켜온 태평천국의 백성을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모자라서 제거했다는 사실조차도 완전히 삭제해버려서, 제거당한 놈이나 제거한 놈이나 아무도 인식하고 기억하지 못하도록 완전범죄를 하기 위해서 역사조작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개석을 대만으로 밀어내고 모택동을 대륙 역사조작의 적임자로 낙점하는 것이다. 그것만이 아니라 2대째 9성급인 더글라스 맥아더조차도 그 흐름을 감도 못 잡아서 오히려 토사구팽당해서 은퇴선언을 해야할 정도로, 그 렇 게 완벽하게 그리고 철저하게 마지막 한점의 의혹이나 저항도 없이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게 감쪽같이 말끔하게 청소를 해낸 것이다.
’세계의 행복을 위해서, 인류의 보편적 이익을 위해서라는 불멸의 사상, 그들의 권리, 정의, 자유, 그리고 개인적 자유라는 헌법의 원리에 구현되어 있는 불멸의 사상을 보호하기 위해서, 진정한 인간성의 표현을 선언하는 도덕과 지성의 이름으로’
천하의 큰 운이 이 길로 다 돌아온다고 자부하는 지상신선들의 태평천국을, 동학천도를 흔적도 없이 다 제거했던 것이다. 타고 남은 잿더미만 남아서 이따끔 불티가 일기도 한다. 이렇게 남아 있는 이 잿더미에서 미련하고 무식하고 어리석어서 눈치도 볼 줄 모르는 이 내가 그 님들을 잊을 수 없어서, ’해 저문 벌판에서 돌아가는 길을 잃고 헤매는 어린 양이 기루어서’(님의 침묵의 서시) 차마 돌아설 수가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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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 잘 읽었습니다. 아마 95년도에 참전계경을 한문으로 필사했습니다. 그 전에는 366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이 두가지가 거의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억에 남은 것은 誠과 敬입니다. 유교 경전을 보아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역시 성과 경입니다. 우파니샤드 역시 읽어본 적이 있는데, 현재 기억에 남는 것은 없습니다. 위 내용을 보면 동학 태평천국은 기독교(천주교)를 섞어넣은 것이 아닙니다.
태평천국은 기독교를 섞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은 중요한 문제입니다. 이것을 규명하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입니다. 여러 종교를 섞어서 만들면 邪敎(사교)가 됩니다. 그런데 한선생님의 글을 보면 태평천국 동학은 원래부터 있던 것을 새롭게 전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 들어와 있는 소위 민족 신흥 종교들을 보면 매우 부정적입니다. 역사도 왜곡되었는데 사상 종교 역시 왜곡되어 우리나라에 들어왔을 것입니다.
자기 정신의 혈통을 규명하는 것은 선생님 말씀대로 가장 중대한 문제입니다. 우리 주체와 정신이 죽느냐 혹은 사느냐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까딱 잘못하여 이것을 가려내지 못하면, 조작세력이 심어 놓은 환부역조의, 그래서 스스로 사생아의 길을 갈 수도 있읍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온 심혈을 기울였읍니다. 아마도 평생 숙제라고 생각하고 살아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도 동학과 다산학의 규명에 평생을 바치고 싶기도 합니다. 선생님이 알아 주시니 여한이 없읍니다. 감사합니다.
책을 읽기만 해도 소주천 대주천이 통하는 것이 있습니다. 힘들게 단전호흡, 가부좌, 명상을 하지 않고도 책만 읽었는데도 "성명쌍수" 수련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다르고, 또는 분명히 소주천이 통했는데도 알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나중에 어렴풋이 짐작하는 방법이 있는데, 병이 낫는다든가, 손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든가, 등산할 때 몸이 가볍다든가 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러한 효험이 있다고 하여 소주천이 통했다고 결정할 수 없으며, 정도를 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참전계경"은 기억하기로는 좋은 내용으로만 가득차 있습니다. 주로 심성 수련에 해당됩니다.
일단 동학 천도는 자신을 심학이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다음 연재분에 간단한 언급이 나올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성명쌍수도 수련도 모릅니다. 이선생님의 많은 가르침을 기다립니다. 차차 좋은 기회가 많이 올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한선생님 부탁 하신대로 내 생각을 정리 하여 육필원고를 어제 끝 마쳤습니다 동학이 성명쌍수 라는 것이 윗 글에도 나옵니다 그렇습니다 성명쌍수 하는 사람들은 야훼를 신봉하지 않습니다 인내천을 알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한선생님과 나의 시각차는 이겁니다 나는 백과사전을 따릅니다 홍수전은 서세의 하수인 입니다 동양의 정신을 파괴 한 사람 입니다 홍수전에 자극 받아서 최제우의 동학 이 일어난 겁니다 한선생님은 동학이 태평천국의 내용이 되고 따라서 최제우 가 가공인물이라는 주장인데 나는 둘 다 지나남부에서 실재 한 역사 로 봅니다 빠른 시일 내 글을 기고 하겠습니다 요즈음 컴 때문에 건강이 안 좋습니다
최선생님, 감사합니다. 몸도 편찮으신데, 제가 괜한 부탁을 했나 봅니다. 선생님, 그런데 참 한심한 생각이 듭니다. 40년을 넘게 도가에 계신 선생님과 동학의 정체를 놓고 설왕설래를 해야할 정도로 우리의 판단 근거인 모든 정보가 흐트러져 있다는 것입니다. 그 와중에 자료비판을 통해 제 나름껏 한번 추스려 보겠읍니다. 선생님의 글이 어서 올라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읍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동학이 성명쌍수": 최선생님 이 부분에 대하여 더 자세한 글 부탁합니다.
너무 멋지십니다... 최두환님. 최남석님. 한헌석님. 이태수님등..저도 13년정에 참전계경 읽어봤는데.. 오늘을 위해서 읽혀졌나 봅니다. 지면으로나마 많이 배우기를 청합니다..
한선생님의 글을 종합해보면: 동학과 태평천국의 연원은 고조선의 밝도이고 유불선 3교의 근원이 됩니다. 즉 이 도에서 모든 종교와 수련법이 파생되어 나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유교의 뿌리는 도교 또는 선교입니다. 선교와 도교의 경전을 道藏(도장)이라고 하는데, 도장을 보면 유교는 그 경지가 아래임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단군조선의 도에는 성명쌍수가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흔적이 조식(숨을 고르는 것)이 있으며, 단전호흡이 민간으로 유전되어 내려오고 있습니다. 중국의 도교는 사실 조선의 도교입니다. 도교 중에서 내단 계통은 직접적인 명을 닦는 수련법입니다.
불교와 도교(선교)가 자체적으로 하나의 계통에 속하던 때는 고조선 단군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문제가 매우 중대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불교를 수행하면서 동시에 도교의 성명쌍수 수련을 하게 되면 코드가 맞지 않아 편차가 생깁니다. 수련에 혼란이 생기며 집중이 되지 않고,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러나 하나의 수련법이 애초부터 불교와 도교를 내포하고 있던 것이라면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그래서 수련은 전일해야 하고, 한가지 수련법을 선택해서 수련을 해야 문제가 발생하지 않습니다. 불교 내에서도 여러가지 수련법이 있는데 그 중에서 오직 한가지만을 선택해야 하는 것입니다.
불교는 심성 문제가 뛰어나고, 도교는 명을 닦는 수련법이 뛰어납니다. 그래서 위 두 가지를 종합해서 수련을 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것은 안 되는 것입니다. 특히 성명쌍수는 반드시 고대부터 맥이 내려오는 스승으로부터 수련법을 전수받아야 합니다. 스승을 만나기 어려우므로 불교와 도교를 합쳐서 수련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은 안되는 것입니다. 최근에 누가 불교와 도교를 합쳐서 새로운 수련법을 창안하는 자가 있는데, 무슨 생체실험을 하려는가? 안되는 것입니다. 수련은 반드시 상고시대부터 내려오는 뿌리가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창안은 안 되는 것입니다.
유교의 선비가 수양하는 방법은 주역을 가지고 합니다. 이것을 道學이라하고 도교와는 다른 것입니다. 그러나 조선의 유생들이 모른 것이 있는데 주역은 도교의 성명쌍수 수련책입니다. 이것을 설명한 책에는 "참동계"가 있습니다. 조선의 유생들은 양반다리 자세를 하고 책을 읽습니다. 이 자세 자체가 성명쌍수에 속합니다. 사실 유교는 도교와 같은 것인데, 몰지각한 주희의 설을 따른 조선시대 유생들이 유교를 망쳤습니다. 주자학은 매우 천박한 것으로 도교와 유학의 깊은 이치를 모르고 낮은 경지로 끌어내린 것입니다. 성인의 글을 이해하기 어렵기 때문에 알기 쉽게 설명을 하다가 경지가 뚝 떨어진 것입니다.
한 선생님도 수련을 하시는 모양이군요. 절로 가슴이 벌렁거릴 정도로 충격적인 동학의 실체를 보게 됐습니다. 정말 감사드리며, 수련을 어떻게 하시는지 모르지만 체계적으로 하시길 권장합니다. 좋은 결실 있길 바라며 계속적으로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서양의 헤겔이 18세기 후반에 어떻게 천부경과 참전계경을 구했는지..... 헤겔의 사상은 정약용과 동학의 사상과 판박이입니다. 정약용과 동시대 사람인 데, 천부경과 참전계경을 소스로 자기류로 해석한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 퍼져있던 도교와 불교사상만으로는 자연은 이성의 외화라는 일원론이 나오질 않죠. 결국 서양의 모든 정신문명은 자기류가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