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제자가 분노하며 상기된 얼굴로 찾아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동네 청년들이 대낮 거리에서 여자들을 희롱하는데 어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내 탓이네!”
“아랫마을 푸줏간 일꾼이 저울을 속여 파는데 그런 도둑놈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탓이네!”
“윗마을에 사는 세리가 돈을 떼어 먹는데 그런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탓이네!”
“선생님, 어찌 선생님 탓이라고만 말씀하시는지 저는 영문을 모르겠습니다!”
“내 탓이지. 자네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어찌 내 탓이 아니겠는가!”
이 마지막 말에야 제자는 크게 깨달았습니다.
“나의 탓이었구나!”
-펌-
“열매는 백 배가 되었다.”(마태 13,1-9)
벗님의 가슴은 밭입니다.
콩을 심을 수도 있고, 벼를 심을 수도 있고, 감자나 고구마를 심을 수도 있고,
상추나 배추 혹은 무 따위 채소도 심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심던 밭은 가꾸어야 합니다.
쟁기질을 하지 않아서 길바닥처럼 딱딱하게 굳어버린 밭, 자갈과 돌멩이로 가득 찬 밭,
잡초 무성하고 가시나무까지 자라고 있는 밭에서 어떤 소출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수고로움 없이 밭을 가꿀 수 없습니다.
쟁기질을 하면 파이고 뒤집어지는 아픔이 있습니다.
돌멩이들을 집어내고 잡초를 뽑으려면 땀 흘리는 노고와 끊어질듯 아픈 허리통증도 참아내야 합니다.
예수님은 잘 가꾸어진 당신 가슴에 말씀의 씨앗을 뿌리고 싶어 합니다.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습니다(히브리4,12).
그러나 무관심으로 딱딱하게 굳어버린 밭,
미움과 증오, 원한과 원망, 시기질투의 돌멩이 가득한 밭,
돈과 재물에 대한 탐욕과 권력과 향락을 탐닉하는 욕망의 가시덤불 가득한 밭 에서는 하느님의 말씀도 별수 없이 시들어버립니다.
한 여름 더위를 마다하지 않고 부지런히 논밭을 가꾸는 농부가 풍성한 수확을 얻습니다.
벗님께서도 부지런히 마음 밭을 가꾸어 백 배, 예순 배, 서른 배 열매 맺으시길 기도드립니다.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