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후에 '세종문화회관'으로 갔다.
그곳에서 '장사익 공연'을 관람했었는데 그 이후 오랜만에 그곳을 다시 찾았다.
이번엔 연극이었다.
작금 대한민국 공연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작품이 있었다.
바로 '세일즈맨의 죽음'이었다.
본디 이 작품은 미국의 유명한 극작가 '아서 밀러'(1915-2005)가 1949년에 발표한 희곡이었다.
미국에서 초연 이후에 전 세계적인 반향과 극찬을 불러일으켰던 뛰어난 작품이었다.
'퓰리처상', '토니상', '뉴욕 연극 비평가상' 등 연극계 주요 3대 상을 단번에 휩쓸었던 걸작이었다.
대공황 직후 미국의 상황은 모든 면에서 그리 녹록치 않았다.
평생 동안 세일즈맨으로 일하며 성실과 열정으로 젊은 날을 멋지게 장식했던 '윌리 로먼'(박근형)은 유능한 비즈니스맨이었고 헌신적인 가장이었다.
그의 가족은 현숙한 아내 '린다 로먼'(손숙), 아직도 방황하고 있는 큰 아들 '비프 로먼'(박은석), 좌충우돌 바람둥이 둘째 아들 '해피 로먼'(김보현)으로 이루어진 다복한 가정이었다.
그러나 세월 앞에서 영원한 장사는 없었다.
나이가 들어가자 '윌리'의 실적도, 모습도, 언행도 점점 초라해 지기 시작했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인생의 과정이었다.
'윌리'는 나날이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했다.
끝내 평생을 바쳤던 회사에서도 해고되는 수모를 당했다.
가정 경제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장성한 두 아들도 제자리를 잡지 못한 채 걷돌고 있었다.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고 있었다.
청년들은 아버지의 높은 기대치와 척박한 현실 속에서 자꾸만 헛발질을 해대기 일쑤였다.
노력하면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며 '아메리칸 드림'을 외쳐대는 아버지.
아무리 노력해도 현실이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라며 아버지를 꼰대 취급하는 두 청년들.
그리고 부자 사이에서 안타까움을 호소하며 가족들을 진심으로 아껴주고 위로해 주는 어진 엄마.
이 네 가족들의 열연이 무대를 감동으로 흥건하게 적셨다.
각 장면마다 가족간의 가치관이 심각하게 충돌했고 갈등의 골이 깊어 졌다.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남녀노소 모든 세대의 관객들이 깊게 공감할 수 있는 흔한 소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수많은 관객들 만큼이나 이 작품을 각기 다르게 해석하며 내재화 했던, 현실감 넘치는 주제였고 모든 가정에서 얼마든지 벌어질 수 있는 통속적인 컨텐츠였다.
그래서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다.
공연 시간이 상당히 길었다.
중간에 인터미션 15분을 포함해 장장 3시간 동아이나 관객들의 감성을 쥐락펴락했다.
놀라운 열연이자 집중력이었다.
아버지의 헌신과 기대 속에서 방황할 수밖에 없었던 청년들의 고뇌와 번민, 성공의 의미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딜레마, 진정한 행복에 대한 묵직하고 예리한 질문들을 관객들의 심장에 과감하게 꽂아버리는 메시지였다.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왔다.
공연의 배경과 시대상은 달랐으나 현재를 살아가는 바로 우리 자신의 이야기였고 우리네 평범한 가족들의 진솔한 단면이었다.
그래서 '세일즈맨의 죽음'은 20세기 최고의 드라마로 호평받았고 시공을 초월한 걸작으로 자리잡았다.
끔과 현실의 괴리, 피도 눈물도 없는 자본주의의 세태 속에서 성공과 인간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 인간의 고독과 소외를 적나라하게 조명했던 뛰어난 퍼포먼스였다.
아버지의 꿈과 소망의 결정체였던 큰 아들 '비프'.
그에게 유산으로 보험금을 남기고자 자동차 사고를 일으켜 스스로 삶을 마감했던 영원한 세일즈맨 '윌리 로먼'.
때론 고집불통이었고 때론 지극한 부정으로 관객들의 심금을 울려댔다.
'비프'의 솔직한 고백, 아버지에 대한 격한 애증의 표현 그리고 감사와 미안함이 절절하게 녹아 흘렀다.
남편의 부재에 대한 상실과 애틋함으로 울부짖던 '린다'의 절규에도 관객들은 한마음으로 울었다.
성대한 공연이 막을 내렸다.
깊은 사유를 하면서 '세종문화회관'을 나섰다.
이 작품이 관객들의 등 뒤에 하나의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행복은 무엇이고 가족은 무엇으로 사는가".
"인간의 존재, 그 본연의 가치와 의미는 과연 무엇인가"
사람마다 해석은 다양할 수 있고 실제적으로도 '십인십색'이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물질적 성공'과 '세상적 기준'이 '존재의 기반'은 아니며 '행복의 전제'도 아니라는 점이다.
같이 관람한 우리 6부부 12명에게 일일이 물어보진 않았지만 아무튼 나의 생각과 느낌표는 그랬다.
분명했다.
가족들의 새하얀 미소와 새까만 눈동자 속에서 원초적인 사랑과 감사가 맑게 샘솟고 있는 지를 다시 한번 가만히 들여다 보았으면 좋겠다.
'진정한 행복은 무엇이고 가족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생각하면서, 그윽한 눈빛으로 말이다.
86세인 박근형 성생님,
82세인 손숙 선생님.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청년들 못지 않은 뜨거운 정열과 남다른 예술혼으로 무대를 온전하게 빛내주신 두 분께 이 지면을 빌려 깊은 오마주를 드리고 싶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
진짜다.
이 공연을 감상하면서 몇 번이고 절감했던 생각이었다.
진정으로 뜻 깊은 시간이었다.
두 분께 깊은 존경과 감사를 드린다.
언제까지나 건강하시고 평안하시길 기도한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