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흑인들이 제대로 권리를 누리려면 무장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던 '블랙 팬서' 운동 지도자 H. 랩 브라운이 조지아주 보안관 부관을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살다 교도소 병원에서 82년의 삶을 접었다고 CNN 방송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브라운은 나중에 이름을 자밀 압둘라 알아민으로 바꿨는데, 전날 노스캐롤라이나주 버트너의 연방 의료센터에서 숨을 거뒀다고 미망인 카리마 알아민이 이날 언론에 밝혔다. 사망 원인은 즉시 공개되지 않았으나, 카리마는 AP 통신에 남편이 암으로 고통받고 있었으며 2014년 콜로라도주 연방 교도소에서 이 의료시설로 이송됐다고 말했다.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의 인종혼란 시기에 더 투쟁적인 흑인 지도자들과 조직가들처럼, 브라운은 흑인 공동체에 강경한 경찰 단속을 규탄했다. 그는 한때 폭력이 "체리파이만큼 미국적"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1967년 기자회견에서 "폭력은 미국 문화의 일부"라며 “미국은 흑인들에게 폭력적으로 행동하도록 가르쳤다. 필요하다면 그 폭력을 통해 억압에서 벗어날 것이다. 우리는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밝혔다.
브라운은 강력한 시민권 단체인 학생비폭력조정위원회의 의장을 맡았으며, 1968년에는 블랙 팬서 당의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3년 뒤, 그는 뉴욕 경찰과의 총격전으로 끝난 강도 사건으로 체포됐다. 이 사건으로 5년형을 복역 중이던 브라운은 다르울 이슬람 운동으로 개종하고 이름을 바꿨다. 석방 후 1976년 애틀랜타로 이주해 식료품점과 건강식품점을 열었고, 지역 무슬림들의 영적 지도자인 이맘이 됐다.
그는 1998년 미주리주 캔자스시티에서 한 청중에게 "내가 한 일에 불만 없다"면서도 "이슬람은 상황을 더 명확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그것은 하나님께 복종하고 의식을 고양하는 것을 통해 나온다"고 말했다.
2000년 3월 16일, 풀턴 카운티 부보안관 리키 킨첸과 부보안관 올드라논 잉글리시는 애틀랜타 자택 밖에서 전 블랙 팬서 지도자를 만난 후 총격을 받았다. 부관들은 한 해 전 교통단속 중 도난 차량 운전과 경찰관 사칭 혐의에 대해 법정에 출석하지 않은 영장을 집행하려고 했다. 잉글리시는 재판에서 부관들이 브라운을 체포하려하자 고위력 돌격소총을 발사했다고 증언했다. 검찰은 그 뒤 브라운이 부상 당해 거리에 누워 있던 킨첸의 사타구니에 권총을 세 발 쏘았다고 밝혔다. 킨첸은 결국 사망했다.
검찰은 브라운을 고의적인 살인자로 묘사한 반면, 변호인들은 그를 평화로운 공동체이자 빈곤 지역 재생에 기여한 종교 지도자로 묘사했다. 이들은 그가 무장 활동 시절부터 이어져 온 정부 음모의 일원으로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다. 브라운은 무죄를 주장했으나 2002년에 유죄 판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19년에 재판 도중 자신의 헌법적 권리가 침해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항소해 미국 순회항소법원에서 이 사건이 진행됐다. 2020년, 미국 대법원은 이 사건을 기각했다.
그의 가족은 이날 성명을 통해 "수십 년 동안 그의 재판 공정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돼 왔다"며 "새로 발견된 증거들, 이전에 공개되지 않았던 연방수사국(FBI) 감시 파일, 목격자 진술의 불일치, 제3자 자백은 이맘 알아민이 헌법에 보장된 공정한 재판을 받지 못했다는 심각한 우려를 제기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