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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조성만 열사 35주기 추모 미사가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30주기였던 2018년 서울대교구 ‘사회적 약자를 위한 미사’로 명동대성당에서 추모 미사를 봉헌한 바 있지만, 그의 기일에 이곳에서 봉헌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조성만 열사(당시 23살)는 1988년 5월 15일 명동대성당 교육관 옥상에서 ‘한반도 통일, 미군 철수, 군사정권 반대, 올림픽 남북 공동 개최’를 외치며 할복 투신해 세상을 떠났다. 서울대 화학과 학생이던 그는 명동 성당 청년단체연합회 소속 가톨릭민속연구회에서 활동했다. 1987년 6월 항쟁 시기에 반독재 투쟁에 참여했고, 그해 12월 대선에서 부정선거 논란이 있었던 구로구청에서 투표함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까지 저항했다.
문정현 신부의 삶에 영향을 받아 사제가 꿈이었던 그는 ‘성부와 성자와 성신의 이름으로 아멘. 척박한 땅, 한반도에서 태어나 인간을 사랑하고자 했던 한 인간이 조국 통일을 염원하며 이 글을 드립니다’로 시작하는 유서를 남겼다.
5월 15일 조성만 열사 35주기 추모 미사가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됐다. ⓒ배선영 기자
이날 미사는 조성만 열사가 투신할 당시 명동대성당 보좌신부로 있으면서 청년들을 담당했던 김민수 신부(서울대교구)와 사제 12명이 공동 집전하고, 300여 명이 함께했다.
강론에서 김민수 신부는 “1988년 당시 5월 15일은 주일이었고, 명동청년단체연합회가 주최한 오월제 행사 중 하나로 달리기 대회가 있었다. 회원들이 명동 마당에서 몸풀기 체조를 한 뒤 출발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때 조성만 군은 성당 교육관 4층 옥상에서 하얀 농민 복을 입은 채 정권 규탄과 조국 통일을 외치며 투신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조성만 형제의 죽음은 교회를 비롯해 사회, 정권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당시 가톨릭 운동 전체에 충격과 감동을 주었고,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에게도 영향을 끼쳐 이들이 통일 문제를 고민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김 신부는 “과거 교회는 매우 도그마적이고 폐쇄적이었다. 35년 전 교회는 조성만 형제의 장례미사조차 거부했다. 그러나 지금 이곳 명동 성당에서 조성만 요셉 형제의 추모 미사를 공개적으로 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당시 조성만은 자살했다는 이유로 천주교 장례미사 대신 명동 성당 앞에서 고별식을 거행했다.
또 “미사를 시작으로 광주 순례와 추모 공연 등이 있을 예정인데, 이는 고 조성만 요셉 형제를 과거 인물이 아닌 끊임없이 현재화하는 ‘기억매체’가 될 것”이라며, “그가 남겨준 정신을 이어받아 저마다 삶의 현장에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일꾼으로 살아가길 바란다”고 맺었다.
미사가 끝나고 조성만을 기억하는 이들은 열사가 투신한 곳을 둘러싸고 추모 기도회를 진행했다. ⓒ배선영 기자
미사 뒤에 이어진 발언에서 조성만 열사의 아버지 조찬배 씨는 추모 미사에 함께한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고, “사람을 구별하지 않았던 성만이”처럼 서로 사랑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랑 때문이다. 내가 현재 존재하는 가장 큰 밑받침은 인간을 사랑하려는 못난 인간의 한 가닥 희망 때문이다. 이 땅의 민중이 해방되고 이 땅의 허리가 이어지고 이 땅에 사람이 사는 세상이 되게 하기 위한 알량한 희망, 사랑 때문이다.”(1988년 3월 조성만 열사 일기 중에서)
추모 발언에서 김지현 이사장((사)저스피스)은 “조성만 형제가 그리던 평화의 세상과 지금의 현실은 멀리 있다. 국민을 품어 줘야 할 정치는 사라지고, 서민과 농민, 노동자들이 가난과 죽음의 길로 내몰리고 있다”며, “평화의 세상을 위해 삶에서 실천하며 살겠다는 결심은 그가 우리에게 남겨준 과제”라고 말했다.
미사가 끝난 뒤에는 조성만 열사가 떨어졌던 교육관 옆에 그의 영정을 세워 두고 추모 기도회를 진행했다.
이번 추모 미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가톨릭평화공동체 등 18개 단체가 함께했다.
한편, 추모 행사는 5월 20일 조성만 열사가 묻힌 광주 망월동 묘지를 참배하는 광주 순례로 이어진다. 6월 3일에는 그의 추모곡인 ‘한 입의 아우성으로’ 음원 발표회를 온라인으로 연다. 6.10민주항쟁 기념일인 6월 10일에는 명동대성당 꼬스트홀에서 그의 유언이었던 한반도의 평화를 이야기하는 취지로 ‘민주주의와 한반도 평화 콘서트’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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