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서비스 방식 대변혁 일으키는 '빅 데이터'
포드, 차량 400만대에 센서 달아 주행·운전 습관 등 정보 활용
마일리지·포인트카드 정보 분석 고객 맞춤형 서비스 가능해져
세계 최대 스포츠용품 회사인 나이키는 올 9월 골프채에 센서를 달아 수집한 데이터를 이용, 골프 경기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특허를 미국 특허청에 등록했다. 나이키가 만든 골프채의 헤드 뒷면에는 작은 스크린이 달려 있어 스윙 동작을 분석한다. 회사 측은 "고객의 스윙에 적합한 맞춤형 골프채로 빠르고 정확한 스윙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나이키는 앞서 일일 운동량을 확인할 수 있는 손목 밴드, 센서가 달린 신발 등도 내놓았다. 스포츠용품에 디지털기술을 결합하는 나이키의 이런 노력은 고객 데이터를 수집·활용해 제품력과 서비스를 높이는 최신 기업 흐름을 보여준다.경쟁 기업을 앞지를 수 있는 통찰력과 정보를 얻기 위해 기업들이 '데이터 총력 활용 전쟁'에 나서고 있다. 시장과 경쟁사, 고객의 모든 움직임이 IT인프라를 통해 데이터로 모아지는 점을 겨냥한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이나 직관에 의존해 의사결정을 내리던 기업 최고경영자(CEO)들도 데이터를 참고해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이런 현상은 기업의 공략 대상인 소비자들이 인터넷·모바일기기를 이용, 해외 기업의 상품 정보를 안방에서 조회하는 등 점점 똑똑해지면서 가속화하고 있다. "데이터가 모든 산업의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세상"(버지니아 로메티·IBM CEO)이 열리고 있는 것이다.
- ▲ 포드 연구원들이 가상의 운전자에게 각종 데이터를 적용해 차량 안전에 문제가 없는지 점검하고 있다. / 포드 제공
자동차 기업들은 데이터 분석·연구를 통해 고객 서비스·마케팅에 대혁신을 꾀하고 있다. 자동차는 고객의 운전 습관이나 용도에 따라 수명이 달라진다. 하지만 고가(高價)의 제품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옵션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소비자가 기성복처럼 대량생산된 비슷한 조건의 제품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한계에서 벗어나 고객의 운전 습관이나 주행정보를 실시간으로 파악, 개별 고객에 맞는 새로운 서비스가 추진되고 있다.
올 6월 미국 실리콘밸리에 차량과 관련된 데이터를 분석·연구하는 연구소를 세운 포드가 대표적이다. 포드는 센서와 원격 소프트웨어를 사용, 400만대에 이르는 차량의 데이터를 수집 중이다. 이렇게 모아진 데이터는 주행 환경부터 전자기적 힘이 차량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엔지니어가 파악할 수 있게 도움을 준다. 운전자에게는 주행조건과 안전 관련된 정보도 실시간으로 알려준다.
◇소비자 패턴 읽어 상품가치 높인다
통신·식품·항공·금융 등 많은 기업이 고객에게 제공하는 '마일리지 제도'는 고객에게만 혜택을 주는 것이 아니다. 바로 기업에는 자세한 고객 데이터를 접촉하고 활용하는 중요한 원천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고객의 마일리지 카드 사용 행태는 상권 분석이나 신규 점포개설에 유용하다.
식품전문기업 SPC그룹이 운영하는 '해피포인트카드'는 구매금액의 5%를 적립해주는 마일리지 카드다. 2000년 8월 시작된 이 카드의 회원 수는 1200만명이다. SPC그룹 계열 브랜드인 파리바게뜨, 던킨도너츠 등의 전국 5500여 가맹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해피포인트카드에서는 어느 연령대 고객이 어떤 제품을 선호하는지 알 수 있다. 또 주변 매장과 비교해 어느 매장으로 고객 쏠림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한눈에 분석된다. 가령 30~40대 여성 고객이 많은 매장이라면 그들에 맞는 상품을 진열하는 것이 매출을 높이는 데 효과적이다. 서울 시내에 신규 점포를 세울 때도 해피포인트카드 이용 빈도가 높은 곳에 입지를 선택할 수 있게 된다. SPC그룹은 마일리지 제도를 바탕으로 한 과학적인 프랜차이즈 매장 운영으로 식품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1% 미만 폐점률'이라는 성과를 거두고 있다.
기업 활동에 데이터 분석이 확산되자 고객관계관리(CRM)부터 전사적 자원관리(ERP), 공급망 관리(SCM) 등 마케팅·서비스와 관련된 요소에도 변화가 생겼다. 일관성 있고 예측 가능한 수준의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준비하고 비즈니스 프로세스를 설계할 수 있게 된 것이다.
IBM은 소비자 중심 시대에 커머스와 관련된 기업 활동의 혁신을 의미하는 '스마터 커머스(Smarter Commerce)'라는 개념을 강조한다. 데이터를 이용해 고객을 이해하고 구매·마케팅·판매·서비스로 구성되는 가치 사슬을 혁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소비자의 요구를 실시간으로 기업 경영에 반영, 차별화한 상품을 출시하고 서비스 정책과 브랜드 전략에도 변화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통신서비스 기업이라면 고객들을 특성에 따라 세분화해 계약 만료일이 다가올 때마다 통화이력, 거래정보 등을 기반으로 고객이 좋아할 만한 혜택을 제공하는 식이다. 이를 통해 고객이탈을 방지한다.
샘 랜스보덤 보스턴대 교수(정보시스템학부)는 "온라인 사이트에서 고객들의 구매행태를 분석해 어떤 제품은 구입하고 어떤 제품은 검색만 하고 지나치는지를 알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며 "정교한 데이터는 기업들의 상품과 고객서비스에 차별점을 제공하는 엄청난 기회 요인이 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