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이냐 노무현이냐… 두 후보 진영에서 사활을 건 변수들은 무엇인가
사진/ (주간사진공동취재단)
올 한해를 달구어온 16대 대선이 드디어 12월19일 결승점으로 치닫고 있다. 판세는 양강구도의 살얼음판이다. 대선을 열흘 앞두고 단순 지지율에서는 노무현 민주당 후보가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를 조금 앞섰다는 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견해가 일치한다. 하지만 투표율과 무응답층 성향 등을 고려한 종합적인 판별분석에선 큰 차이가 없다. 여론조사 전문가들 사이에선 1~2%의 아주 적은 표차로 승부가 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수많은 요인들이 선거 승패를 좌우하는 변수로 떠올랐다. 나비의 날갯짓이 폭풍을 부르듯, 사소한 것처럼 보이는 변수들이 어떻게 작용하느냐에 따라 ‘이회창 대통령’이냐 ‘노무현 대통령’이냐의 운명을 가르게 돼 있다.
<한겨레21>은 선거 승패를 판가름할 막판 주요 변수로 △반미문제 △40대의 선택 △PK민심 △충청민심 △경제정책 △민노당 득표율 등을 꼽아 요모조모 살펴봤다. 두 후보 진영에서 노심초사하며 사활을 걸고 달려드는 문제들이다. 그만큼 판세에 끼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얘기다. 양쪽은 이들 문제를 다루면서, 마치 녹기 시작한 저수지 얼음판 위를 걷듯 한발 한발 떼는 것이 조심스럽다. 까딱 잘못했다간 판세를 영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이여, 이제 판단은 당신 몫이다. 편집자
“부산에서 지면 끝장이다”
노무현의 지지율 25%냐 51%냐… 막판 변수는 정몽준의 움직임
사진/ 민주당과 한나라당 모두 저마다 승기를 잡았다는 부산. 그러나 아직도 민심은 안개속이다.
이번 대선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부산 민심이 안개 속이다. 한나라당은 단일화로 불기 시작한 초반의 노풍을 잡았다지만 민주당은 바람이 수그러들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기싸움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것일까. 다른 곳에선 두 당의 판세분석이 일치하지만 부산에선 평가가 정반대다.
선거 초반 ‘단풍’으로 부산바닥이 들썩이자 한나라당은 비상체제에 돌입했다. 부산에 지역구를 둔 17명 전원을 급히 부산에 투입했다. 권철현 후보 비서실장과 김무성·김진재 의원 등 중앙당 선거운동을 진두지휘한 중진 의원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후보 부인 한인옥씨도 부산에 상주하다시피 했다. 권철현 의원은 “후보가 한 차례 내려오고 의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바람은 이제 완전히 수그러들었다. 노 후보가 33%까지 치고 올라왔는데 이제 26%로 떨어졌다. 25% 이하로 묶어두는 것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바람이 그들을 데려가리라…
12월5일 오전 한나라당 부산시지부 회의실. 선거중반 판세를 점검하는 회의가 열렸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의 초반 상승세를 꺾었다는 분석이 대종을 이뤘다. 유흥수 부산선대위원장은 사상과 사하을 지구당 등 취약지에 대한 분발을 촉구했다. 급한 불은 껐지만 안심하긴 이르다는 것이었다.
부산에서도 한나라당의 전략은 대세론 확산을 노린 몸집 부풀리기였다. 공천을 거부했던 무소속 구청장을 입당시켰고, 전직 구청장 2명도 영입했다. 민국당으로 출마했던 김광일 전 의원의 입당도 같은 맥락이었다. 선대위 부대변인을 맡고 있는 부산시지부 윤태경 사무부처장은 “연애와 결혼은 다르다”는 논리로 이 후보의 큰 우위를 점쳤다. “연애시절엔 이 사람도 만나고 저 사람에게도 맘을 준다. 그러나 막상 결혼을 생각하면 굉장히 신중해진다. 선거도 마찬가지다. 연애기간엔 잠깐 노풍에 맘을 빼앗겼지만 막상 결혼을 생각하고 투표소에 들어가면 맘이 변한다. 붓두껍 찍을 땐 생각이 달라지는 기라.”
12월 6일 저녁 7시, 부산 구덕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민주당 부산시지부 후원회. 사회자가 “부산의 분위기가 확 달라져서 ‘디비자’(뒤집자)의 깃발을 들어주실 분들이 오셨다”며 한나라당을 탈당한 사상구와 북구의 구의원 6명을 소개했다. 손뼉소리가 요란했다.
민주당은 애초부터 부산을 ‘영남의 교두보’로 삼았다. 부산에서 바람을 일으켜 울산·경남과 대구·경북으로 확산시키는 전략이었다. 국회의원 한명 없는 형편에서 오로지 노 후보의 바람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12월2일치 <부산일보> 1면엔 ‘부산이 키운사자, 노무현!’이라는 큼직한 제목의 노 후보 광고가 실렸다. 부산이 세번이나 떨어뜨린 덕분에 강한 사자가 되어 돌아왔으니 제대로 키워달라는 내용이었다. 민주당 선대본부가 있는 초량동 국제오피스텔엔 ‘부산사람 노무현, 국민통합 대통령’이라고 적은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부산일보>의 한 간부는 “‘노무현이가 그래도 고향사람 아이가’라고 말하는 사람이 상당히 있다”며 “한나라당 사람들이 노무현이 뜨는 것을 잘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정동영·신기남·추미애 의원 등 쇄신운동에 앞장섰던 의원들도 부산에 머물며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 희석에 일조했다.
한나라 “몽 움직이면 울산이 걱정”
사진/ 노 후보가 국회의원과 시장에 도전한 세 차례의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35% 안팎이었다. 부산의 남포동 거리.
민주당 부산선대본부는 40%로 잡았던 노 후보 득표율을 선거운동 돌입 이후 51%로 올렸다. 투표율이 80%일 때 114만표를 득표하겠다는 계획이다. 바람을 탔다는 판단에서였다. 정동수 기획팀장은 “해운대와 사상, 북구에서 승기를 잡았다”며 “주민들을 가까이 접촉해 여론의 흐름을 몸으로 아는 구의원들이 움직였다는 게 그 증거”라고 말했다.
부산지역 언론사의 한 간부는 “한나라당의 아성인 옛 여권조직 일부에서 노 후보쪽에 도박을 거는 분위기가 감지된다”고 전했다. 한나라당을 적극적으로 돕지 않은 채 노 후보쪽에도 한 다리를 걸치거나 아예 노 후보쪽으로 이동하는 현상이 하부조직 일부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현상을 “한나라당 조직 안에서는 더 이상 도약을 기대하기 어려운 인사들이 당첨확률은 적지만 ‘배당금’이 큰 노 후보쪽에 베팅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한나라당이 관계가 소원해진 공천탈락 인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하는 것도 이들이 노 후보쪽으로 이동하는 것을 막자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부산 표심의 막판 변수는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의 움직임이다. 정 의원이 정치적 고향인 울산에서 적극적인 지원유세에 나설 경우 바람이 부산과 경남지역으로 번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에서도 이 부분을 상당히 경계하고 있다. 한나라당 부산선대본부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연대를 ‘DJP 야합’과 연결지어 공격하는 게 최선의 방책이지만 울산이 걱정”이라고 염려를 나타냈다.
이 후보와 노 후보는 부산에서 실제로 얼마나 얻을 수 있을까. 노 후보를 25% 이하로 묶을 수 있다는 한나라당과 과반인 51%를 자신하는 민주당 주장의 차이는 ‘하늘과 땅’이지만 여러 통계지표를 뜯어보면 유추해석은 가능하다.
<한겨레21>이 지난 7월11일 영남지역만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부산에서 노 후보는 27.1%, 이 후보는 54.4%를 기록했다. 지방선거 참패 이후 후보교체론 등으로 노 후보가 죽을 쑤던 시절이었으므로 이 정도를 노 후보 지지도의 하한선이라고 볼 수 있다. <한겨레>의 12월7일 여론조사 결과, 부산사람의 43.2%는 “부산 출신인 노무현 후보가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가 된 이상 민주당이 더 이상 호남당이나 DJ당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45.4%는 “민주당은 여전히 호남당이고 DJ당”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노 후보의 영남득표력과 관련해 눈여겨볼 대목이다. 노 후보가 국회의원과 시장에 도전한 세 차례의 선거에서 얻은 득표율은 35% 안팎이었다. 중·동구와 북강서을은 노 후보가 지구당위원장을 했던 지역구이기도 하다. 노 후보쪽에선 이런 점을 들어 아무리 못해도 40%는 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 후보의 정무특보인 이강래 의원은 “부산에서 40%를 얻으면 PK 전체를 통틀어 35%가 나오고, 그러면 TK에선 25%대를 기록하게 돼 노 후보가 승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 DJ의 15대 대선 부산지역 득표율은 15.07%였다.
민노당의 표 잠식 기대하는 한나라당
한나라당쪽 셈법은 다르다. 권철현 의원은 “부산에서 70%가 목표지만 최하 65%는 얻어야 전국에서 이길 수 있다”며 “방심했던 초반과 달리 지역구 의원들이 바짝 죄고 나서면 노 후보를 25%로 묶을 수 있다”고 말했다. 92년 YS의 부산지역 득표율은 72%였다. 윤태경 부대변인은 “이 후보 지지세가 약한 젊은층에서는 민노당의 권 후보가 약진해 노 후보의 지지율을 잠식할 것”이라며 “결국 선거 막바지에 이르면 한나라당 고정표가 응집하게 돼 있고, 어느 한쪽으로 표가 쏠리게 마련인 양강구도의 성격상 노 후보가 30%를 넘기는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부산=글 임석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