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7장 1절에서 15절을 보면 바울과 실라는 데살로니가에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복음이 전파될 때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의 많은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밤에 베뢰아로 떠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일로 지금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서 바울과 실라를 실패한 전도자로 폄하하는 일이 생겼습니다. 그 일을 기억하면서 바울은 왜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지에 대해서 2장에서 쓰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그들에게 자신과 실라가 무엇을 전했으며, 그리고 어떤 자세로 전했는지를 회상해 보라고 합니다. 그리고 바울 일행의 권면과 가르침은 간사한 것이나 잘못된 것으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께 옳다고 여김을 입어 복음을 전할 것을 부탁 받아서 한 것입니다. 여기서 “옳다고 여김을 받다”는 말은 주화의 진위를 시험할 때 쓰는 말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테스트를 거쳐서 ‘진품’으로 확인을 받아 합격한 일꾼으로서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1-4).
바울은 결코 사람들의 귀와 마음만 즐겁게 해주는 이야기꾼이 아니였다는 것을 하나님은 아십니다(5). 또 사도라는 이유로 존경을 받아 사람에게 영광을 구하지도 않는다고 합니다. 사도로서 마땅히 재정 후원과 같은 정당한 권리를 내세울 수 있었지만, 유순한 자로서 유모처럼 데살로니가 교회를 돌보았습니다(6-7). 바울에게서 당시 거짓 교사들의 교만과 위선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를 위해서 목숨도 내어 줄 만큼 그 교회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또 갓 생겨난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9). 바울은 아버지가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때로는 엄격한 훈련과 연단을 했는데, 그렇게 한 목적은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으로 부르신 하나님께 합당하게 행하기 위함이었습니다(10-12).
이어서 바울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하는데, 데살로니가 교회가 말씀을 받을 때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기 때문입니다(13). 그들은 복음 속에 있는 신적 기원과 능력을 믿었고, 지금 받고 있는 이방인으로부터의 고난을 잘 견딤으로 유대인에게 고난을 받고 있는 예루살렘교회에 본이 되었습니다(14). 유대인들은 예수님과 선지자들을 죽였을 뿐만 아니라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파함을 방해하여 초대 교회에 큰 어려움을 주었습니다(15).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에도 유대인들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복음 전파를 방해 했고, 베뢰아까지 따라와 바울과 일행의 복음 전파를 방해했습니다.
바울은 이런 위협과 박해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데살로니가 교회를 떠난 것이고, 떠난 것은 얼굴이지 마음을 아니라고 합니다.또 한 두 번 데살로니가 교회에 가려고 했지만 사탄의 방해로 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바울에게 병이 생겼거나 직접적으로 환경과 상황을 통해서 바울이 느낄 때 사탄이 방해를 한다고 느낄 정도의 방해 공작이 있었을 것입니다. 바울과 동역자들의 기쁨과 소망과 자랑의 면류관은 박해 속에서 신앙의 성장과 성숙을 이루고 타인의 모범이되며 구제와 사랑의 봉사에 적극적인 데살로니가 교회 자체입니다(17-20).
목회자의 자랑과 기쁨은 교회가 어려운 가운데서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교회 답게 서 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비단 목회자의 기쁨과 자랑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기쁨이기도 합니다. 목회자는 교회를 위해 바울과 같은 헌신과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고, 교회는 어려움 속에서도 받은 복음과 은혜로 성장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 아인트호벤 사랑의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어 주님이 다시 오실 때 기쁨이 되고 칭찬받는 교회가 됩시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