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다녀간 공무원, 교사, 선원 등이 있는 가운데 목회자도
그 분들 중엔 현존 하신 분들도 있고 이미 작고하신 분들도
다음 글은 2010년 12월 19일 고향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올렸던 글이다. 다양한 모습으로 고향에서 한 시대를 사셨던 분들이 꽤 많다. 공무원, 교사, 선원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목회자도 있다. 그리고 그 가족으로 살다 고향을 떠나 가신 분들도 많다. 현존 하신 분들도 있고 이미 작고하신 분들도 있다. 19일(일) 새벽에 서금애 사모님이 부르심을 받고 하늘나라로 가셨다는 별세 소식을 접했다. 장례식 일시는 12월 21일 오전 7시라고 한다.
필자가 서금애 사모님을 만나 본 것은 2008년 8월 3일 승선을 위한 매표를 마치고 금오 고속 페리에 오른 배양희 씨와 친정 어머니 서금애 여사의 생전 모습, 같은 해 8월 6일 고향 홈에 게제 했던, 어쩜 그때 고향 방문을 끝으로 영영 우리 곁을 떠나가신 서금애 여사 관련 글이다. <배양희 씨 부부 서금애 모친과 연도 찾아>-제2의 고향 같은 소리도를 찾는 사람들-고향 소리도 여객선 페리 호에는 특별한,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몸을 싣는 경우도 있다.
70년대에 연도에 왔던 그 가족들이 기억이란 더듬이로 야간운전의 고생스러움도 마다하고 내려왔다. 주인공은 서금애 여사(배진수 목사, 작고)와 둘째 딸 양희 씨(24회, 사진) 부부다. 지난 3일(일) 아침 첫 배를 타고 내려가 만날 사람들을 만나고 정을 나눈다. 그분들은 연도만 아니라 백야, 관기, 금천, 낙포, 역포 등에서 맡겨진 일을 했다. 어떤 곳은 두, 세 번 가서 사역한 곳도 있다.
화양면 서촌이 고향인 양희 씨 부친은 일본에서 수학을 했고, 교사가 되어 여수중학교 교사로 재직한 바 있다. 여수 중 재직 시에 제자 중에 최선재 씨(목사, 서문)가 있다. 여순반란(14연대반란) 시 사직하고, 베옷을 입고, 수염을 기르며, 칩거에 들어간 일화도 유명하다. 무안 청계에서 은행원으로 일하던 서금애 씨와 결혼하여 준석, 정희, 양희, 말희, 등로, 민호 등 3남 3녀를 두었다. 그 가족들이 기억하는 고향 소리도와 여수에서의 얘기는 결코 짧지 않았다는 것이다.
양희 씨 부친이 연도에서 일을 볼 때 매일 한 차례씩 비지랑 꼴 굴을 찾은 일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고향 소리도 여객선 페리 호에는 오늘도 특별한,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 몸을 싣는 여객들이 있을 것이며, 앞으로는 더욱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사진은 지난 7월 6일 우학리교회 행사를 마치고 여천항에서 배를 타고 신기항을 오는 중에 화태대교를 지나 금오 수로를 통과하고 있는 고향 소리도(역포)를 향하고 있는 금오 고속페리 호의 모습이다. 페리 호는 오전 6시 20분과 오후 2시 30분 두 차례 오르내리고 있다. 2024 하계 피서객들을 위한 특별수송 기간을 갖게 될 것이다. /여수=정우평 목사, 010-2279-8728 【교계소식/25데스크】문서선교후원계좌 우체국 500314-02-264196 정우평 yjjwp@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