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희 낭송가의 낭송입니다.
별이 빛나는 밤*
고흐, 그는
밤의 한가운데를 유성으로 가로질렀다
별들이 휘몰아쳐 떠나가도 잡지 못했다
가래 섞인 한숨을 어둠 속에서 토해냈다
늘 숨죽였으므로
검푸른 소용돌이가 그 밤의 밑그림이었다
숨구멍을 향한 간절한 소망의 회오리였으리라
고흐, 그는
어둠을 헤쳐오는 별들과
시퍼런 눈물을 쏟는 인생과
검붉은 유혹에 헤매는 젊음들이
제자리를 맴맴맴 맴돌고 있을 때도
북극성 네거리에서
어깨 웅크린 채 서성이고 있었다
나도
해 뜨지 않는 창가일지라도
머리를 들어 하늘을 쳐다본다
캄캄할수록 또렷한 염소의 눈으로
별을 보고 있다
*고흐의 그림
박숙이 시인의 낭독입니다
항복
깎깎 우짖던 직박구리와 눈 마주쳤다
짝을 불러들여, 둘이 합심해서
나를 향해 꺄꺆꺄꺆 고함지른다
오래 비워두었지만 내 집이다 집을 지을 때 4층까지 흙 짊어지고 올려. 정원을 만든 사람도 나다 쥐똥나무도 심었고 해마다 거름 주고 전지하며 이쁘게 키운 것도 나이므로 소유권은 내게 있다 둥지는 너희들이 지었다고 하지만 그건 내 허락받아야 하는 거야
보증금을 내라거나 월세를 내라거나 집을 뜯으라는 것도 아니고, 이사하라는 것도 아닌데 웬 난리냐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눈에 띄기만 하면 쫓아내지 못해 안달하는 모습에 나 커튼도 못 열고, 햇빛도 못 보고, 창문도 못 열고, 청소도 못 하는 이게 뭐야
나무에 물도 못 주게 하고, 너의 시야에 얼씬도 못 하게 하면 우리는 어떻게 같이 살겠니
금 그어 놓고 같이 살면 안 되겠니? 깎
그러면 소송하자. 꺆꺆
그래! 알았다! 깎
네가 산모니까 내가 참을게
네 눈에 안 뜨이게 숨어 살게
반말도 안할 게...
요
까---ㄲ
초대시인 안윤하시인님과, 김형범 시인의 대담입니다.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김미선 시인의 낭독입니다.
불붙은 재봉틀
─여자의 삶은 소설책 열두 권이다
‘남문시장에 불났다!’ 어머니와 언니는 미친 듯이 뛰어나가고 11살인 나도 같이 뛰었어요. 시장 안 양장점에는 작은언니가 자고 있었지요. 양장점은 우리 가족의 목숨줄이었어요. 작은언니를 깨워 높이 걸려있는 옷감들을 당겨 둘둘 말아 안기며 ‘소전 가에 맡겨두고 빨리 돌아온나!’ 언니는 고함질렀어요. 그리고 나의 손목을 꽉 잡고, 불 속으로 뛰어 들어갔어요. 불구덩이보다 더 처절한 아우성으로 불의 아귀를 틀어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지요. 불붙은 재봉틀을 언니와 둘이 맞잡고 구해왔지요. 재봉틀의 발에 밟혀 발등이 짓이겨진 것도 몰랐고 내복만 입고도 추운 줄 몰랐으며 불구덩이의 뜨거움도 몰랐어요. 다만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에 우리는 가슴이 데었지요. 아버지 돌아가시고, 연탄 두 장을 외상 달라던 어머니에게 아버지의 친구인 연탄집 아저씨가 큰소리로 면박 주어, 냉골에서 자던 날 일어난 불이었지요. 몹시 추워서 더 뜨거운 날이었어요.
노종섭 낭송가의 낭독입니다.
검은 손*
석탄을 캐느라 검어진 게 아니라
속이 타서 시커멓다
갱도에서 떨어지는 침출수 한 방울에도
온몸의 신경들이 곤두서고
탄가루를 들이마시며
불안을 꿀꺽 삼키다 보니
막장의 폐포는 공포로 가득 차고
검은 몸에서 배어 나오는 땀도 검다
주검들이 굳어진 바위, 석탄을 캐는 일은
주검의 옆구리에 해머 드릴 칼날을 쑤셔 넣는 일
석탄의 갈비뼈에 쩍쩍 금이 가면
탄광은 몸부림치며 고함지른다.
‘아파! 나를 그냥 놔둬! 쩡!
갱도를 무너뜨릴 거야! 쩡!쩡!’
손을 씻어도, 얼굴을 닦아도 쩡!
귀를 막아도 귀바퀴를 맴도는 쩡---!
갱도가 무너져 죽은 손이 되더라도
당장 입에 풀칠해야 하는 삶이
밀린 학사금에 어깨 쳐진 삶이
보리밥 한 숟가락이라도 더 먹여야 하는
애비의 삶이
오도 갈 데 없어 속이 시커멓게 타는
막장의 손이다
*문경의 석탄박물관에 걸려있는 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