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안국역' 부근에서 고교 선후배들의 모임이 있었다.
모임 결성 20주년을 자축하는 식사모임 이었다.
내 위로 4년 선배부터 아래로 8년 후배까지 총 12개 기수가 함께 하는 모임이었다.
각 기수에서 몇 명씩 회원으로 추천했고 가입했다.
2005년에 결성했는데 어느새 20주년이 되었다.
시간은 언제나 번개 같다.
인간세상이 늘 그렇듯 좋은 일과 멋진 추억도 많았지만 일부분 갈등과 분열도 있었다.
사람의 인생여정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는가.
싸우고 탈퇴한 사람도 있었고 나갔다 다시 들어온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형제들의 관계는 더욱 단단해 졌고 신뢰와 우애도 깊어 졌다.
10여 년이 지난 이후엔 결국 뿌리 깊은 재목들만 남게 되었다.
땅이 단단해진 다음 모임 안에서 서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현재 대부분 서울 경인 지역에 살고 있지만 은퇴 후 지방으로 간 사람들도 꽤 있었다.
일부는 고향으로 갔고 또 일부는 자연을 찾아 떠났다.
그랬던 형제들이 KTX와 고속버스를 타고 상경했다.
반가움이 더 클 수밖에 없었다.
상호간의 안부를 확인하느라 식사시간 내내 시끌벅적했고 유쾌했다.
식사 후엔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안국역' 부근이라 당근 '어니언'으로 가자 했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들이 제일로 방문하고 싶어하는 한국 카페 넘버 원, '어니언'.
그 중에서도 '어니언 안국'은 버킷리스트 맨 상단에 위치할 만큼 명성이 자자한 '전통 한옥 카페'였다.
식당과 지근거리에 있었기에 우리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그건 예의가 아니었다.
과연 전통한옥의 단아함과 우아함 그리고 고즈넉함이 진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은은한 커피향과 맛깔스런 베이커리가 손님들의 옷소매를 부드럽게 잡아 끌고 있었다.
식사를 조금 전에 마쳤는데도 침이 괴기 시작했다.
"허허".
나도 모르게 헤실헤실 웃음이 흘렀다.
실내에 들어가 보니 과연 외국인들이 많았다.
25명이 한 자리에 동석할 수는 없었다.
여성들은 한 테이블에 따로 읹았고, 남성들도 세 그룹으로 나눠서 각자 자리를 잡았다.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났지만 자리는 좀처럼 여유가 생기지 않았다.
예서제서 다양한 언어들이 들려왔다.
국제 스트리트의 국제 카페 같았다.
우리나라를 방문한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멋진 추억들을 많이 엮어가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선후배들이 커피를 마시며 정겨운 담소를 나눴다.
66세인 큰 형들부터 50대 중반인 아우들까지 대화의 소재는 주로 '건강'과 '인생 2막'에 대한 것이었다.
각자의 계획과 생각들을 공유했고 깊게 공감했다.
저마다 가는 길은 달랐으나 건강, 봉사, 삶의 의미, 신뢰에 대한 얘기는 동일했다.
시종일관 살갑고 감사했다.
나는, 모임 초기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우리 형제들의 애경사는 물론이고 기념일과 생일을 챙겼다.
수많은 세월 동안 기념일을 챙기다보니 형수님들과 제수씨들이 더 좋아했고 고마워 했다.
모임 유지발전에 큰 기여를 했다며 형제들도 감사의 박수를 보내주었다.
칭찬이 싫지는 않았으나 박수를 받자고 한 일은 아니었다.
나는 모임이 많은 편이다.
어떤 커뮤니티든지 그 안에서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찾고자 했고, 한번 결심이 섰으면 묵묵하게 그 역할을 했다.
10년이든, 20년이든, 40년이든, 그 이상이든 나에게 건강이 허락되는 한은 흔들림 없이 내 길을 갔다.
나만의 '이익'이 아니라 모두를 위한 '유익'이라면 싫어하는 사람이 없었다.
인생을 '프라핏'이 아니라 '베네핏'으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며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왔다.
'아전인수'가 아니라 들판 전체를 생각하며 수로를 넓게 파고 물을 대는 일이라면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모두가 웃음을 건넸고 신뢰와 감사를 전했다.
나도 환갑을 넘기고 보니 헌신과 땀에도 '체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물론 정신력도 중요하고 기도도 필요했다.
그러나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상만사가 체력에 기반하고 있음을 수시로 느낀다.
힘이 딸리거나 몸이 아프면 제 아무리 기도와 수행에 힘쓸지라도 귀차니즘과 해태로 흐르기 쉽다.
열정과 성실이 태만과 게으름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인지상정'이다.
그러므로 매일 밥을 먹고 잠을 자듯이,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하고 운동에 정진하는 삶은 배려와 헌신을 위한 필요조건이자 장구한 인생길의 '기초공사'임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
체력이 있어야 일도 하고 사랑도 하며 봉사도 할 수 있는 법이다.
감사 전화 한 통도, 감사 커피 한 잔도 열의가 있어야 하며 심신의 에너지가 충만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몇 살까지 살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사는 날 동안 어떻게 살았느냐'가 삶의 핵심이 아니던가.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있다.
오늘은 2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새벽에 출근해 밴드에 사진을 정리해 올렸고 함께 했던 형제들에게 감사문자를 보냈다.
지금까지 20년이 흘렀지만 앞으로의 새로운 20년을 위해 내가 기여할 수 있는 영역을 더 발굴해 보고 싶다.
모두가 함께 웃으며 감사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만드는데 미력하나마 더 일조하고 싶다.
특히, 4년 후에 '칠순'이 되는 큰 형님들과 형수님들의 건강을 위해 한번 더 기도하는 아침이다.
점점 나이가 들어가는 형님들의 모습에 때론 내 가슴도 저릿해 진다.
형제들 모두에게 사랑과 깊은 감사를 전한다.
부디 건승하시길.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멋진 선후배들의 만남이네요.
좋은 곳에서
향기로운 시간을 보내셨네요.
축복합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