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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회 평창 동계 올림픽
30여 년 전, 1년 넘게 서울 올림픽 성공을 위해 분위기 조성에 열정 넘치던 시절, 오리엔티어링 및 산악 레포츠 등
저변 확대에 온 심혈을 기울이며 팔공산 등지에서 분기별 레저 스쿨을 열었다.
한강 이남에서 최초로 패러글라이더 비행 교육을 서울에서 이수하고 노곡동 앞산 등지에서 무동력으로 대구 하늘을
새처럼 비행하던 시절..서울 올림픽 개최 전 마지막 겨울, 진부령 알프스 리조트 내 난이도가 가장 높은 챔피언 코스 스키를 타고
30여 m를 활강 후,속도에 탄력을 받아 어깨에 짊어진 패러글라이더를 활짝 펼치면서 눈보라 속 스키장 하늘을 수놓았다.
한국에서 최초로 시도하여 열정 하나로 한번에 성공할 수가 있었다. 서울 올림픽 성공적 개최를 위한 스포츠 분위기 조성에
당시 스포츠인들과 레포츠인 등이 함께 힘을 모으며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당시 서울 올림픽은 국격을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킨 대성공적 서울 올림픽이었다.
바람같은 세월 어느새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지구인들의 겨울 축제 '23회 동계 올림픽' 경기가 강원도 평창에서 2월 9일
열리게 된다.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이 만들어졌고, 분단 이후 가장 많은 북녘 동포 선수단 및 응원단이 휴전선을 넘어오고
남북이 함께하는 평창 동계 올림픽을 계기로 친일부패 사기보수 세력들의 안보팔이로 단절시켜 놓은 남북 문제...
다시 통일의 불씨를 살려 내고 평창 동계 올림픽 성공과 함께 반민 특위 해체 후 70여 년 만에 찾아 온
친일부패 사기보수 적폐세력들의 대청소를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친일적폐 청산의 선두에 선 현 정권의 대성공을 기원하면서 민주세력의 정당인으로, 또 깨시민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자.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적 개최에 또다시 한 알의 밀 알이 되자
연길에서 마지막 날을 보내고 이제 용정으로 가야 한다. 용정역까지 택시로 10여 분이지만 의미가 없을 것 같다. 터미널에서
버스로 떠나기로 한다. 7.000리 북간도 열차 둘레길 중 유일하게 연길서 용정까지 19km만이 열차길이 연결되어 있지 않다.
용정까지 버스 요금은 5원. 24인승 정도의 마이크로버스는 10시에 출발한다. 연길 시가지를 빠져나오는데 5회 이상 정차하고
손님을 태우며 반 이상 시간을 허비 한다. 모아산 근처에서 또 2회 정도 정차를 하면서 택배 물량까지 싣는다. 잠시면 용정시에
접어들지만 또 용정시 곳곳에 사람과 택배를 내려준 후...
버스에는 마지막, 혼자 남는다.
용정역을 간다고 하자 용정역 광장 대합실 문 앞까지 태워준다. 참 친절한 기사다. 연길서 여기까지 30분 정도 소요되었고
용정역 대합실로 들자 문이 잠겨 있고 우측 매표소로 가 12시18분 발 서백두 송강하행 열차 티켓팅을 부탁하나
1년 전 이용한 12시 18분 열차는 없어졌다고 한다. 이도백하~송강하를 거쳐 심양역을 종착역으로 하는 용정역서 출발하는 열차는
15 : 50분 발 하루 1회가 전부다며 안내를 한다. 단동까지 운행되던 열차도 없어졌다고 한다. 중국 주요 도시 대부분 연결된
고속철의 영향으로 보인다.
90년대 우리도 비둘기호 및 통일호 완행열차가 사라지듯...
많은 시간이 남았다. 12시가 가까워진다.
용정서 맛집으로 유명한 순대 국밥집을 찾아 식당으로 들어서나 식당 내부에서는 식사를 할 수 없고, 비닐봉지에 음식을 싸담아
집으로 가서 먹어야 한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 싸들고 가고 있었다. 참 재미나는 맛집이다.
집이 없는 사람은 어디에 가서 먹냐며 주인장게 묻자 우측으로 도로 길을 따라 잠시 내려가면 전주 비빔밥집 밥 맛이 괜찮다며
친절히 안내해준다. 우측 편 도로 길을 따라 잠시면 전주 비빔밥 집이다. 돌솥비빔밥을 하나 시켜 천천히 먹으나 그래도 아직 많은
시간이 남는다. 아까운 북간도 시간.
주인장에 윤동주 생가 명동촌을 현지어로 적어 달라고 부탁하자 자신은 모른다며 앞쪽 테이블에 앉아 식사 중인 젊은 친구들에게
물어보라고 한다. 테이블로 다가가 부탁을 하자 윤동주 생가 '명동촌'을 적어 준다.
식당을 나서 도로변 택시를 기다리던 중 글을 적어준 젊은 친구가 나오더니 잠시 기다릴 수 있냐고 한다. 식사를 끝내고 자신들도 그쪽 방향으로 가는 길이라며 자신들의 차로 명동촌까지 태워주겠다고 한다.
잠시 기다리자 식사를 끝내고 나온 젊은 커플이 밖으로 나와 차 뒤쪽 소파를 정리한 뒤 타라고 권한다. 4륜 구동 밴형으로
좋은 차다. 북간도의 추위 속에 염치없이 뒤 칸을 혼자 차지한다.
용정에서 두만강 가는 길은 두 갈래 길이 있다. 용정시를 중심으로 북쪽으로 길이 난 두만강변 도시 '개산툰'가는길이며,
남쪽 아래로 난 길이 두만강변 도시 삼합 가는 길이다. 이곳 길 중간쯤 우측 도로변에 윤동주 생가 '명동촌'이 자리 하고 길은
삼합까지 이어진다.
이곳 지형을 쉽게 설명하면 연길서 도문시까지 51km, 도문시 두만강 국경 전망대서 두만강 상류를 따라 31km면 펄프 공업도시
개산툰이다. 개산툰에 조금 못 미쳐 두만강변 길 삼거리서 우회전하면 용정 가는 길로 용정까지 32km 거리이다. 용정서 다시
연길시까지는 19km로 연길에서 시계 도는 방향으로 원을 그리며 도문시. 개산툰. 용정시 다시 연길까지 한바퀴 돌아 나온다고
이해하면 된다. 한 바퀴 총거리는 133km로 길들이 참 재미나는 것은 연길서 도문까지를 제외하고는 가는 길 내내 교차로 등이
없다. 직진 길 한 길밖에 없으며. 앞만 보고 달리면 된다. 차량 소통은 거의 없다.
개산툰에서 다시 두만강 상류를 따라 오르면 삼합진 삼합에서는 두만강 건너 함경도 회령시가 한눈에 들어오고 계속 거슬러 오르면
함경도 무산(남평)을 지나 백두산과 두만강 발원지가 나온다.
일제 강점기 이곳 함경도 회령서 두만강 건너 용정까지 두만강에서 이곳 길이 다리와 철길이 가장 먼저 놓여졌고 이때부터
회령역은 북간도 이주 전진 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후 접근성이 용이해진 용정시는 많은 함경도 사람들의 유입으로
그 당시 북간도 내 가장 발전된 최초의 도시로 변모하는 계기가 되었고 지금도 연변 조선족 사회 구성원 90% 이상이
함경도 사람들의 후예들이다.
두 곳 길 모두 산세가 험하지 않으며 대부분 나지막한 구릉지로 청나라 봉금제가 해체된 1881년부터 초창기 이주 사람들로 인해
자연적 오솔길이 만들어졌고 다시 달구지 길로 발전되면서 길 양사이드 구릉지는 더 넓은 논밭으로 개간이 되고 길을 따라
수십 호씩 조선인 집단 촌락이 들어서 두 곳 길은 다 같이 용정까지 이어진다.
베이징 올림픽 이후 중국의 성장과 함께 초창기 이주 길 역사를 가진 두 곳 길이 얼마전 왕복 2차선으로 전구간 대부분 말끔히
포장이 되어있다. 포장길을 따라 도로변에는 조선족 작은 촌락들이 군데군데 보인다. 깨끗이 정돈된 마을 앞으로 시냇물이
흐르는 정겨운 풍경들. 언제 한번 이곳에 들어 마당에 뛰노는 씨암탉을 잡아 며칠을 두고 묵고 싶은 마을들로 금년에 한번
기회를 만들 것이다.
1917년 윤동주 시인이 태어난 명동촌 생가 표지석 뒤편 도로변이 윤동주 생가이나 북간도의 차가운 겨울 생가 대문은 굵은
자물쇠로 굳게 채워져 있었고 마을에는 인적이 보이지 않는다.
젊은 커플이 가는 길에 태워 주는구나 생각하고 다시 나오는 길은 간간이 지나는 차량을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이들 커플은
다시 용정까지 태워 주겠다고 나선다. 본디 이 친구들은 가는 길목이 아니었던 것 같고 처음부터 북간도 노객을 위해 왕복을
자처하고 나선 것으로 보이는 고마운 친구들로서 세월의 격세지감이다.
1992년 한중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초기 연변 조선족 사회서는 정치 사회 경제 등 모든 것이 열악하고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조선족
몇몇 소수들이 한국을 왕래하며 불법 입국 체류 등으로 헝클어진 한국 바닥 문화와 충돌이 일어난다.
2004년 참여 정부 당시 노무현 대통령께서 선구자 후예들을 더 이상 방치 할수 없다며 특단의 조치를 내리고 조선족 동포
모국 방문법을 새롭게 개정한다. 이후 동포들은 급속히 발전된 선조들의 모국을 자유롭게 방문하면서 이들은 어느새 자본사회
순기능에 동화 되어 버리고 지금 연길시는 서울을 그대로 벤치마킹 하면서 억센 함경도 사투리까지 사라져 간다.
이제 말씨도 대부분 서울 말씨를 구사 하면서 지금 연길시는 북간도의 작은 서울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 등 외부에서 유입되는 많은 자본들이 이들의 생활을 더욱 윤택하게 만들었고 발전에 가속도가 붙고 이제 여유와 함께
심성까지 본래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모 하고 있다.
오늘 좋은 친구들을 만나 긴 여정 길 달려온 노객의 피로를 확 달아나게 하고 있다.
지구인들의 평화 축제 '23회 평창 동계 올림픽' 기념지폐 세트를 감사의 마음을 담아 전달한다.
북간도 조선족 동포사회에 평창 동계 올림픽 많이 알려 달라..
커플이 함께 평창 홧팅을 외친다.
이들은 다시 용정으로 가 역 광장까지 태워 주면서 즐거운 여행 되라면서 훈훈한 인사를 건네고 떠난다.
멋진 친구들 다시 만나길 기대한다.
7.000리가 넘는 북간도 열차 둘레길 안중근 의사가 순국한 대련시에서 출발. 대련서 18시 50분 발 밤 열차를 타고 대 장정의 첫발을
딛는다. 심양, 장춘, 길림, 돈화, 안도현을 거쳐 북간도의 중심도시 연길서 용정까지는 열차길이 없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여 용정을 간 후, 다시 열차를 타고 화룡, 이도백하, 송강하, 백산시, 퉁화, 심양, 단동에서 다시 대련으로 돌아오는
북간도 열차길을 한 바퀴 돌면서 평창 올림픽 민간 홍보대사를 자처한다. 2월 9일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일 북백두 천문봉에
올라 천지 건너 북녘땅 장군봉을 바라보며 백두대간의 모든 氣를 평창으로 모아 달라고 현 정부의 대 성공을 기원하며 요들을
크게 외칠 것이다. 출발이다.
긴 시간 달린 열차는 다음날 새벽 장춘에 도착하고, 오후 1시경 연길역에 도착하나 시장기가 많다. 유경호텔 부근에 즐겨 찾던
연길시 맛집 우리 식 곰탕집으로 가 넉넉히 도가니탕으로 시장기를 해결하고 유경호텔에 들어서자 호텔 프런트에서 인사를 건넨다.
평양 미인들이다. 프런트 뒤쪽 커피숍으로 들어서자
더 넓은 홀 전체가 텅 비어 있었고 바텐더에서 평양 미인들 2명이 반긴다. 설렁한 분위기 속에 평양 미녀들의 위축된 모습들이
UN 대북 제재가 여기까지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텅 빈 홀에서 커피 한 잔 시켜 놓고 연변대 김강일 교수에게 전화를 넣는다. 주변 호텔에서 저녁 식사를 약속하고
다시, 내일 도문에서 두만강 상류를 따라 간평 개산툰 인근 봉오동 전투장으로 함게 갈 미리 예약 해둔 택시 기사에게 전화를 넣는다.
자신은 현재 사업상 급한 일로 상해에 와 있다며 자신은 가지 못하나 대신 여행사를 경영하는 사장께 부탁을 해두었다며
전화번호를 하나 불러 준다. 전화를 넣자 여자가 받는다. 미리 연락을 받았다며 내일 아침 10시 유경호텔 커피숍에서 만나
자신의 자가용으로 함께 가기로 약속을 잡는다.
한반도 둘레길 1, 2, 3, 4, 5차 당시 꾸준히 이용한 택시 기사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모습이 연변 조선족 사회 정신적 성장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아주 괜찮다.
아직 김교수와 약속시간이 2시간여 남았다. 커피값을 지불하고 나오나 홀 내 지금껏 손님 한 사람 보이지 않는다.
택시를 이용하여 장백로 동북아 터미널 등지로 다니며 버스 시간표 등을 영상에 담는다. 그새 약속 시간이 다가온다.
호텔 1층 식당으로 들어서자 식당 한편에 김교수와 동료 교수 한 사람이 술잔을 기울이며 기다리고 있다.
선약이 잡혀있어 함께 자리를 만들었다며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자 동료 교수를 소개한다.
건네받은 명함에는 '연변대학 조선반도연구원 동북아물류 연구원 원장 경제학박사 교수 B모 교수'라고 적혀있다.
조선반도는 한반도의 북한식 용어이고 동북아물류 역시 북한과 조선족 사회서 사용하는 용어로 경제학으로 이해하면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에서 건너 온 연변대 우리 한국인 교수라 더욱 반갑다.
현지 술의 독주를 주고 받으며 취기가 오른다. 김교수 그새 더 젊어진 것 같다. 덕담을 건네자 주당 예찬론을 펼친다.
김교수와 나는 20년 지기로 같은 애주가다.
식사와 함께 술자리가 무륵 익는다. 김교수 더 취하기 전에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해 '평창 홧팅'을 한 번 외치자
평창 올림픽 기념 주화를 선물로 전달하고,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을 위하여 '홧팅'을 외친다.
술잔이 오간다. 이때, B교수가 난데없이 '지금 문재인 정부의 정책은 박근혜 정부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며 비아냥 거리는
어투가 전형적 수꼴이다.
술이 번쩍 깬다. 지금 70% 넘게 우리 국민들로부터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는 고국의 대통령과 정치 얘기들을 술상에
올리고 있다. '어떤 정책들이 그렇게 보이느냐?'는 질문에 별 답이 없다. 더 이상 논하면 내 입이 거칠것 같다. 술자리서
정치 이야기는 하지 않는게 좋겠다며 서둘러 자리를 마무리 하고 김교수와 다시 유경호로 자리를 옮기나 1층 공연장과
2층 식당들이 다 문이 잠겨져 있었고 평양 미녀들이 달려와 술이나 식사는 커피숍에서 주문하여 드시면 된다고 한다.
들쭉술과 과일 한 접시를 시킨다..
술의 향기가 변함없이 좋다 머리가 혼란스럽다.
선구자들의 수많은 피와 땀의 대가로 일구어 놓은 북간도.. 독립운동의 성지인 이곳에도 수꼴들이 기생하고,
조선반도(한반도) 연구원이라는 국적없는 가면을 쓰고 역사관이 결여된 이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우리 조선족 동포 사회??
참으로 역사의 아이러니다.
역사를 잊으면 미래가 없다.
다음날 아침 유경호텔 커피숍으로 가 조식을 시킨다. 이곳에서 20여년 넘게 조식 때 즐겨 찾는곳으로 지금도 변함없는 맛 이다.
조식을 마치고 10시 약속 시간이지만 예약한 차는 오지 않는다. 전화를 넣자 유경호텔 커피숍에 지금 기다린다고 한다.
내가 지금 유경호텔인데 홀 내 나밖에 없다고 하자 자신도 그곳이라고 한다. 얼른 스치는게 있다.
유경호텔이 맞는지 주변을 한 번 둘러보라고 하자 그때야 호텔이 아니라 유경 식당이라고 한다 . 한바탕 개그를 벌이고 잠시 후,
모습을 드러낸다. 1년 전 용정 일송정을 갈 때 한번 대면한 구면으로 커피를 한 잔씩 들고 11시가 다 되어 출발할 수가 있었다.
화이트 색상의 깔끔한 승용차는 자신의 자가용 승용차라고 한다.
도문시 국경 전망대까지 50km 시가지를 벗어나 연길 훈춘 간 고속도로에 진입하고, 운전 3년 차라지만 아직은 미숙한 듯 시속 60km로 안전 운행을 하고 있다. 12시경 도문시 두만강 국경 전망대에 도착을 하나 국경 전망대는 입구에서부터 폐쇄가 되어있고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UN 대북 제재가 이곳까지 미치고 있다..
이곳에서부터 두만강 상류를 따라 거슬러 올라야 한다. 상류 강변길에는 식당들이 없다.
도문에서 중식을 해결하기로 하고 도문 시내로 접어들어 먼저 역으로 가 열차 시간표를 영상에 담고 대합실을 빠져나오나
역 주변에 그 많던 식당들이 하나 보이지 않는다.
1996년 도문시를 처음 접할때 역 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고 택시, 자전거, 인력거 등이 뒤엉켜 왁자지껄하던 기억이
새록한데 지금 한산한 역광장이 을씨년스럽기까지 하다. 다 어디로 갔을까?? 이곳도 국경도시로 대북제재의 영향일까??
한국으로 다 빠져나갔을까?
자그마한 도시 중심지와 외곽을 한 바퀴 돌아도 먹을 만한 식당이나 호텔 등이 보이지 않는다. 한 곳에 '한국관'이라는 간판이 보이고
1층은 민들레 식당이다. 한글이 정겨워 들어가 돌솥비빔밥 두 그릇을 시켜 간략히 중식을 마친다.
다시 국경 전망대 입구에서 남쪽 도로 길이 두만강 상류길이다. 잠시면 우측으로 도문 시민들의 휴식 공간 일광산을 지나고
두만강이 모습을 드러낸다. 하얗게 꽁꽁 얼어붙은 두만강을 중심으로 강 건너 북녘땅은 험준한 산비탈로 마을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중국쪽은 더 넓은 평야를 중심으로 많은 촌락들이 형성되어 있으나 강건너 북녘땅에는 촌락이 거의 없다.
압록강과는 정반대의 현상이다.
두만강과 도로길 사이 넓은 평야를 바라보며 30km여를 달려 처음 삼거리 교차로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회전을 하면 용정 가는 길로
용정까지는 30km남짓 도문에서 지금까지 달린 거리와 비슷한 거리며 좌회전을 하면 개산툰 가는길이다.
상류로 올라 갈수록 중국 측의 들녘들이 좁아지고 도로길과 두만강이 더 가까워진다.
삼거리 교차로에서 잠시면 개산툰진 초입에 접어들고 국경 수비대 초소 군인들이 나와 차량을 세우고 검문을 시작한다.
신분증을 요구한다.
여권을 내밀자 초소로 가져 들어간다. 차에서 내리자 또 카메라 영상물 확인을 요청한다. 조금 전 올라 오면서 북녘땅을 찰영한
영상물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카메라 메모리 뒤쪽으로 작동 시켜 보여주기 시작한다.
수 천장 사진들 뒤편에서부터 수 백 장을 보여주자 더 이상 보지 않아도 된다며 ok 사인이다. 차가운 날씨다.
다시 차내에 들어가 기다리자
한참 후, 책임 장교가 여권을 가져 나와서 기자냐고 묻는다. '여행객이다.'라고 하자 이곳에서부터는 도로길이 북녘과 바로 마주하고
한국인은 위험한 지역이니 들어갈 수가 없다고 한다. 따지고 싶었지만 한가한 시간이 없다. 장백현서 언제 한번 경험을 했지만
이들은 여행객들을 잡고 이유도 없이 많은 시간을 허비한다. 현지법을 따르겠다. 차를 돌린다.
아쉽지만 방법이 없다.
다시 삼거리 교차로까지는 2~3분여 거리며 삼거리서 용정까지는 두만강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로 30km 남짓하다.
1881년 청나라 봉금제가 해제되고 함경도에 큰 흉년이 들어 기근에 허덕이던 백성들이 부패한 탐관오리들의 폭정에 견디지 못한
함경도 민초들이 가장 먼저 두만강을 건너 강변을 일구며 평야를 만들었고 점차 내륙 깊숙이 길을 내면서 양사이드 구릉지를 일구며촌락들이 들어서고 용정까지 길이 만들어지면서 용정 용두레를 중심으로 북간도 최초의 도시가 만들어졌다.
이 길은 한반도 초창기 선구자들의 피와 땀.. 한이 묻어나는 북간도 최초의 길이다. 충분한 보존 가치도 있다.
보통 10여 분을 달리면 도로변 좌우로 조선족 촌락들이 형성이 되어 있고 도로길 차량은 거의 없다.
잠시 차를 세우고 한 집을 들러 보기로 한다.. 팔작지붕의 마당에 들어서자 많은 닭들이 흩어져 모이를 찾고 있으며 문을
두드리자 주인장은 아무런 경계없이 문을 열어준다.
냉수 한잔 부탁하자 깔끔한 유리컵에 가득 부어 준다. 우리 농촌의 촌락들은 대부분 팔작지붕에 위채 아래채가 있고 큰방,
작은방, 사랑채 등 외양간으로 나누어진 복잡한 구조지만 이곳의 집 외형은 우리 농촌의 팔작 지붕과 똑 같다. 단출한 한 채의 가옥
내부에 들어서면 원룸 형태로 부엌과 아궁이가 내부에 함께 들어 있다. 원룸식 큰방 하나에 온 가족이 함께 부대끼면서 북간도의
긴 겨울 추위를 나기 위해 변형된 형태로 한족 가옥과 혼합된 주택 문화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묵을 수가 있냐.'라고 묻자 언제든 오라고 한다. 감사합니다. 용정 가는 길 내내 도로변 좌우는 서편제에
등장하는 남도길 문화 그대로 한이 묻어 난다..
개산툰서 30여분이면 용정 우회 도로길에 접어들어 혜란강을 건너면 바로 모아산 아래로 연결이 되고 연길시에 금세 도착한다.
어느새 해가 기웃거린다.
오늘 하루 수고 많이 하셨고, 작은 선물이다. 23회 평창 동계 올림픽을 연변 조선족 동포 사회에 많이 알려달라
올림픽 기념지폐를 선물로 전하고 평창 동계 올림픽 홧팅을 외친다.
저녁 식사는 며칠 전 친구가 한국식 식당을 오픈했다며 그곳으로 안내 하겠다고 한다.
호텔 주변에 자리한 서시장은 이전되었고, 연길서 마지막 날 특별히 가볼만 한 곳이 없다.
호텔 프런트맨이 동시장을 추천한다. 안내 할 아르바이트생까지 연결해준다.
북경 모 공과대 4학년에 재학중 이며 졸업후 엔지니어로 북경 현대 자동차 입사가 목표라고 한다. 곧 방학이 끝나고 북경으로 다시
간다고 한다. 택시를 함께 타고 동시장으로 간다. 동시장도 생각 이상으로 범위가 꽤나 크다
갖가지 싱싱한 야채부터 없는 것이 없다. 추위 속이지만 갖가지 노점상들이 열려 있었고 많은 사람들로 붐비면서
역동감이 넘치고 볼 거리도 많다. 사람사는세상이 우리나 이곳이나 별다른 바가 없다. 먹거리는 순이 냉면집을 추천한다.
이곳에서 걸어 잠시다며 동시장을 벗어나 걷는다.
전신주에 붙은 현수막 등에는 부국 강성 민주 등의 글귀가 시야에 들어온다.
학생에게 묻는다. 공산당 일당 체재에서 민주란? 어떤 것 이냐? 중국 공산당은 인민을 주인으로 섬기며 잘 살게 하고 인민의 뜻을
따르는 것이라며 서슴없이 답을 내놓는다. 정답이다. 그러나 다당 체재에서도 쉽지 않은 민주가 중국 공산당 1당 독재에서
지금 그게 가능한지 되묻자 머뭇거리면서 가능할 것이다라고 한다. 지금 북경 대학생의 지적 민낯을 그대로 보면서
아직 중국 인민들은 갈 길이 멀다. 어느새 순이 냉면 맛집이다.
오후 1시가 조금 넘는 시간이지만 홀 내부는 어수선한 분위기 한산하다. 냉면 두 그릇이 나오고 맛은 괜찮으나 위생 상태는
청결하지 못하다. 다시 호텔로 돌아온다. 안내해 준 학생에게 방학이 끝나고 북경으로 돌아가면 대한민국 평창에서 열리는 23회
동계 올림픽을 많이 알려 달라며 2.000원권 2매 세트를 선물로 건네고 평창 홧팅을 외친다.
차기 24회 동계올림픽은 베이징이다.
기분 좋은 용정 일정을 마치고 15 : 50분 발 백두산 열차에 몸을 싣는다. 북만주 열차길이다. 대부분 좌석은 반 이상
채우지 못하고 있다. 용정서 1시간이 걸리지 않아 화룡시다. 김좌진 장군의 청산리 전투로 유명한 도시나 2004년도
청산리 전투 기념비를 둘러보고 홍범도 장군과 공적이 뒤바뀐 왜곡된 역사의 현장이라는 것을 느끼고
이후 별 관심이 없다.(필자의 청산리 전투 참조)
친일 후예들의 집단인 옛 새누리당 국회의원 김을동이 김좌진 장군의 손녀이며 아버지가 일제 강점기 협객으로 불린 건달 두목
김두한이다. 할아버지는 일본군을 잡는 대한 독립군이며 독립군 아버지를 둔 그의 아버지 김두한은 보살피는 이 하나 없이
청계천 다리 밑 거지가 되고 조선 최고의 주먹이 된다. 이후 의 딸 김을동은 친일의 후예 집단인 새누리당 국회의원이 된다.
더 없는 역사의 코미디고 가족사의 비극이다.
열차는 6시 45분 북백두 전진 기지 이도백하에 도착하고. 다시 백두산 밀림길을 2시간여 더 달려 20시 40분에
송강하역에 도착한다. 출구를 빠져 나오자 눈으로 둘러싸인 송강하 역 넓은 광장 가로등이 정겹다.
송강하역 바로 좌측에 3층 건물이 하나 있고 아래층은 열차 손님을 상대로 영업을 하는 식당들이 나란히 여섯 집이나 있다.
열차 나그네들의 많은 낙서 속에 한반도 둘레길 시그널을 3년여 걸어둔 네 번째 집을 찾아들자 문이 닫혀있다.
많이 섭섭하다.
택시를 집어타고 5년 넘게 송강하서 이용하는 호텔에 투숙하고, 백두산 깊은 산골의 추위를 녹인다.
송강하역광장은 많은눈이 쌓여 있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일찍 끝내고 호텔에서 호출한 택시를 타고 북백두 이도백하로 달린다. 오늘은 강원도 평창에서
23회 동계올림픽 개막식이 열리는 기쁜 날. 천문봉 천지 도착 10시경에 평창 동계 올림픽 개막식을 축복이나 하듯
천지는 맑게 열려 있다.
2015. 8월 당시 서백두 북백두 양일간 비구름 운무에 가려져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었던 당시를 제외하고는
20여 년 넘게 매번 열어주는 천지...또 한번 벅찬 감동이 밀려온다.
살짝 당겨본다.
장군봉은 더욱 선명하게 다가온다. 평창 동계 올림픽 성공을 위해 백두대간의 모든 氣를 평창으로 모아 달라는 소망을
담아 크게 요들을 친다. 대한민국 홧팅..
백두대간이란???
천지 건너 장군봉은 백두대간의 어미산으로 장군봉에서 발원되어 하나의 큰 산줄기는 함경도 두류산을 거쳐 금강산에서
휴전선을 넘고 향로봉에서 다시 진부령, 설악산, 오대산, 한계령, 대관령을 거쳐 강원도 평창을 지나 두타산, 매봉산, 소백산,
덕유산을 거쳐 한반도 최남단 지리산 천왕봉까지 4.000리나 뻗어내린 하나의 큰 산줄기를 말한다.(필자의 백두대간이란??글 참조)
천지 건너 우측 봉우리가 장군봉
백두산 산문 내 하나 남은 작은 노상온천 호텔 백두폭포와 불과 1km 남짓 우측편 v 형태가 백두폭포이며 소천지와는 마주하고 있다.
호텔 내 노상 온천에 몸을 녹이며 수천 리 길을 달려온 산중 나그네의 따뜻한 휴식처다.
호텔 앞 육교를 건너 100여m를 오르면 소천지다.
데크길 우측 노상 온천은 70년 대까지만 해도 60도 조금 넘던 수온이 반세기도 채 안돼 현재 수온은
83도까지 상승하고 있다.
수온 상승이 백두산 화산 폭발 징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북백두서 다시 택시로 서백두를 거쳐 송강하 도착 백두산 깊은 산골에 해도 어느새 기웃거린다. 간단히 석식을 마치고 송강하
역으로 간다. 택시가 역 광장으로 접어들자 어제 문이 닫혀 있던 식당 간판이 불을 밝히고 있다.
문을 밀치고 들어서자 주방에서 주방장인 듯 홀로 나온다. 우측 벽면 열차 나그네들의 낙서란에 한반도 둘레길
시그널이 주인을 반긴다.
노바이를 찾자 소통이 되지 않는다.
작년 해돋이 당시 카메라에 담아간 수십 장의 사진을 내놓자 그때서 주방에서 노바이가 나오면서 환한 미소로 반긴다.
튀김류를 하나 시켜 베낭에 남은 들쭉술로 술잔을 기울인다.
마른 명태 한 마리를 내놓으며 맥주를 박스 째 들고 온다, 서비스라며 밤새 마시자고 한다. 내일 새벽 심양행 열차를 타라면서
남편과 영상통화를 바꾸어 준다. 반갑다, 기다렸다, 이런 뜻으로 이해가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열차 시간이 다가온다. 용정 명동촌 인연의 젊은 커플에게 전화를 넣는다. 시그널을 잘 보관해 준 노바이에게
감사를 표한다. 23회 평창 동계올림픽 기념 지폐를 선물로 남긴다. 한국 평창을 이곳에서도 열차 나그네들에게 많이 홍보해달라
내년에 다시 보자 거듭 감사를 표한다. 통역을 부탁 하면서 전화를 노바이에게 건넨다. 노바이와 주방장은 스피커폰으로 열어두고
함께 들으면서 활짝 웃는다.
하나의 작은 선물에도 너무도 좋아하는 모습들 백두산 산골 나그네의 피로를 풀어주고 있다.
시간이 없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자 마른 명태를 한 마리 더 갖고 오더니 베낭 사이드 주머니에 꾹 찔러준다.
열차에서 먹으라는 손짓을 하며 따라 나온다. 검색대도 자유롭게 통과하더니 대합실까지 따라와 다음에 또 기다린다면서
작별 인사를 건네고 손을 흔들며 다시 검색대를 빠져 나간다.
더 넓은 역광장을 빠져 나가면서도 몇 번인가 뒤돌아 보면서 손을 흔든다.
국적은 달라도 백두산 산골의 순박한 산 사람들.. 찡한 울림이 온다.
밤새 달린 열차는 백산 퉁화시를 거쳐 다음날 8시 30분 심양역에 도착을 한다.
심양역에서 내려 조식 시간이 없다. 9시 17분 발 단동행 고속철에 몸을 실어야 한다.
단동까지는 1시간 50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단동에서 호텔을 잡아 배낭을 풀고 조선의 거리를 찾는다. 이곳에서도
맛집을 찾아 조식 겸 중식을 만깔나게 해결 하고 평양 아주마이 식당을 찾았지만 여기도 문이 잠겨 있다.
바로 옆 평화 떡집으로 들러 평양 아주마이를 찾자 얼마 전 평양으로 들어갔고 언제 돌아올지 모른다고 한다.
다시 압록강변으로 나가 압록강 건너 신의주를 바라보는 송도원 식당으로 들어서자 평양 미녀들이 막아선다. 남조선 사람은
들어 올 수가 없다고 한다. 내부에는 손님이 한 사람도 없는데 왜 못 들어 가냐고?? 지금 다 예약이 되어 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하는 거짓말들이 측은하기까지 하다.
어둠이 깔리고 다시 압록강변으로 나간다. 압록강 단교다. 다리 상하 훤하게 불을 밝힌 곳이 중국령이고 붉은 불이 끝난
지점에서 뒤편 하얀 불빛 사이가 끊어진 단교 자리며 압록강 북한령이다.
작은 하얀 불빛은 신의주 관세청이나 압록강 철교 국경 검문소로 보이고 하얀 불빛 우측 전체가 신의주 도심의 중심지나
불빛 한 점 없는 암흑 그대로다.
저들의 전력난이 얼마나 심각한지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넘치는 중국측 불빛들.. 강하나 사이로 천당과 지옥이다.
압록강변도로에서 바로 뒷거리를 가면 평양 고려식당이 나온다. 모자를 벗어 카메라와 함게 파카 속으로 품고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대로 고려 식당으로 들어간다. 낮에 송도원 식당 학습 효과다. 식당으로 들자 식당 내 전체가 텅 비어 있으나
평양 미녀들이 막아서며 한국인이냐고 묻는다. 아니라우 나 연변서 와시우라고 하자, 그래도 못내 의심의 눈길을 거두지 않는다.
일 없시우라며 밀고 들어가 한 곳에 앉자 카운터 옆으로 앉으라고 한다. 카운터에는 평양 미녀들 셋이나 함께 앉아 있다.
옆에서 몰카 등을 감시할 목적으로 느껴진다. 차림표를 요구하자 갖고 온다. 차림표 가장 위에 송이 해물탕과 민물 장어 구이가 있다.
장어 한 접시와 들쭉술을 요구하자 들쭉술은 지금 없다고 한다. 평양 소주를 찾자 그것도 없다고 한다.
자신들이 추천한다며 조국의 좋은 술이라며 한 병을 들고 와 맥주잔 크기의 글라스에 가득 붓는다. 술맛은 괜찮으나 평양 소주나
들쭉술에 비해 술맛이 떨어진다. 장어구이는 우리와 별다른 바 없이 맛이 좋다. 가득 채운 술잔을 들자 평양 미녀들이 쫓아와
또 부어준다. '왜 이곳에 남조선 사람은 못 들어오게 하느냐.'고 묻자 그런 질문은 하지 말아 달라고 한다.
어제 한국에서 평창 동계 올림픽이 열린 자리에 남쪽 대통령과 김여정이 함께 참석을 하고 문재인 대통령을 평양에 초청을 했다.
또 아이스하키 남북 단일팀이 만들어져 지금 한국 평창에서는 남북 응원단이 함께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하고 있다.
왜 이곳에서는 남쪽 사람들을 못 오게 하는지 이해가 안된다. 하자 자신들은 그런 사실들을 전혀 모른다며 그리고 김여정을 칭할 때는
김여정 동지라고 불러달라며 다시 한국인이 맞다며 나가 달라고 한다.
이제 쓴웃음이 다 나온다. 또 한 잔을 마시자 남은 반 잔 정도를 또 부어 준다. 카메라와 올림픽 기념 지폐는 꺼내지도 못하고 마지막 술잔을 비우고 계산을 한다. 350원으로 우리 사회에 비해 술은 비싸고 장어는 싼 편이다.
연길 유경 호텔에서는 출입은 막지 않았으나 이곳에서는 출입 자체를 막고 있었으며 어디든 손님 한 사람 없이 텅빈 홀이며 사진
찰영에는 다같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다음날 아침 호텔 인근 안동 하회 마을이라는 한국식 맛집에 들러 조식을 맛있게 들고 또다시 압록강변으로 나간다
압록강 길목에 평양 아주마이 식당이 있다. 그런데 평양 갔다던 아주마이 식당이 신기하게도 나를 기다리는 듯 문이 열려 있었고
문을 밀치고 들어가자 평양 아주마이가 반긴다. 평양 들어 갔다고 하던데??
어제 오후 평양서 열차편으로 왔다고 한다. 다행이다. 선물을 못 주고 갈 뻔 했다. 평양 돈주가 되었나 얼굴이 더 이쁘졌다고
덕담을 건네자 자신은 평양 돈주 근처에도 못 간다면서 지금 평양에는 돈주들의 횡포가 심하다고 한다. 술상을 한상 차리기 앞서
먼저 남남북녀가 함께 평창 동계 올림픽 홧팅을 외치자 2015년도 1월 처음 만날 때와 달리 카메라에 이제 별 부담이 없다.
많이 변화된 느낌이다.
다음날 아침 조식을 일찍 끝내고 단동역으로 간다. 역광장 모택동 동상이 이채롭다.
북간도 한 바퀴를 도는 7.000리 열차길 단동발 10 : 48분발 대련행 고속철을 타야 한다 이제 마지막 열차길..
단동에서 열차가 출발하고, 잠시 시가지를 벗어나면 좌우 남만주 벌판이 끝없이 펼쳐진다.
정확히 13 : 10분 대련역을 기점으로 무사히 열흘만에 원점으로 다시 돌아온다. 7.000리 북간도 열차길 내내 북녘동포 조선족동포
한족들을 만나 작은 것을 주고 너무 많은 것을 얻어 간다.
인연을 만들어 주신 북간도 모든 분께 감사드리고 다시 만나길 기대 합니다.
감사 합니다.
다음날 아침 망망대해 황해서는 대한민국 23회 평창 동계 올림픽을 축복이나 하듯 밝은 아침해가 올라온다.
이 정우
무술년 정월 팔공산 자락에서
첫댓글 디비라 선생님 방가요ᆢ
잘읽고 갑니다ᆞ
오래 묵은 썪은 적폐야 하루 아침에
다 할수 있나요ᆞ
계속 쭈욱 이어져 반드시 해야지요ᆞ
잘읽고갑니다 신림동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