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17~26 / 두 지도자의 만남
(행 21:17) 예루살렘에 이르니 형제들이 우리를 기꺼이 영접하거늘
(행 21:18) 그 이튿날 바울이 우리와 함께 야고보에게로 들어가니 장로들도 다 있더라
(행 21:19) 바울이 문안하고 하나님이 자기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이방 가운데서 하신 일을 낱낱이 말하니
(행 21:20) 그들이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바울더러 이르되 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다 율법에 열성을 가진 자라
(행 21:21) 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말고 또 관습을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그들이 들었도다
(행 21:22) 그러면 어찌할꼬 그들이 필연 그대가 온 것을 들으리니
(행 21:23)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 서원한 네 사람이 우리에게 있으니
(행 21:24) 그들을 데리고 함께 결례를 행하고 그들을 위하여 비용을 내어 머리를 깎게 하라 그러면 모든 사람이 그대에 대하여 들은 것이 사실이 아니고 그대도 율법을 지켜 행하는 줄로 알 것이라
(행 21:25) 주를 믿는 이방인에게는 우리가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피할 것을 결의하고 편지하였느니라 하니
(행 21:26) 바울이 이 사람들을 데리고 이튿날 그들과 함께 결례를 행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각 사람을 위하여 제사 드릴 때까지의 결례 기간이 만기된 것을 신고하니라
바울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옵니다. 예언자들의 예언대로 바울은 예루살렘에서 로마사람에게 잡힙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가 로마로 가는 끈이 됩니다.
총독과 왕에게 복음을 전하는 계기가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신비롭습니다.
17~18절 바울은 드디어 예루살렘에 올라가니 형제들이 기꺼이 영접해 주었습니다.
가이사랴에서 함께 한 성도들을 포함한 바울 일행이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그들을 기꺼이 환영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거기서 야고보와 장로들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울은 먼저 예루살렘 교회의 최고 지도자하고 할 수 있는 야고보를 방문하였습니다. 야고보는 예루살렘 공동체의 수장(首長)으로서 교회 공동체를 지혜롭게 잘 지도했을 뿐 아니라 예루살렘의 일반 유대인들로부터도 큰 존경을 받았다고 합니다.
19절 바울은 그들에게 인사를 하고, 하나님께서 그의 선교로 이방인들에게 행하신 일을 낱낱이 들려주었습니다. 즉 선교 보고를 한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사도로서뿐만 아니라 교회와 사람들에 대한 봉사자로서 역할도 수행하였음을 시사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이방 가운데서 사역한 일들을 세세히 증언하고 있는데, 그는 그 모든 일들의 주체가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20~21절 야고보와 일행은 바울의 보고를 듣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야고보는 유대인 가운데 예수를 믿는 수만 명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들은 율법에 열심히 있는 자라고 합니다. 누가는 야고보의 무리들이 바울의 이야기를 듣고 기쁨에 넘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바울에 대해 율법을 부정하거나 무시한다는 의구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눈길들이 많음을 말합니다(22절).
그러나 바울이 율법을 배반했다는 것은 악의에 찬 허위 사실이었습니다.
바울은 율법 자체를 부정한 바 없으며 오히려 그는 율법을 신령한 것으로 보았고, 율법의 긍정적인 역할도 인정하였습니다. 오히려 율법으로 의롭게 되거나 구원받으려고 하는 자들이 비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이 오해를 해소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구약의 안식일 법이나 음식에 대한 율법을 다 지키지 않고 할례를 하지 않아도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형성된 그들의 자존심을 무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습니다.
바울은 이들을 깊이 알고 이해했습니다.
22~24절 그러면 어찌할 것인가 묻습니다. 야고보 및 그와 함께 있던 사람들은 바울의 신변에 대한 문제로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실은 이제 곧 다른 교인들에게 알려질 것이며 바울에 대해 오해하고 있는 자들이 거센 공격조로 나올 것은 불을 보듯 환한 일이었습니다. 유대인 신자들을 얻기 위해서는 이들에게는 율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은 것입니다.
야고보는 바울이 이를 위해서 서원한 네 사람과 결례를 행하고 돈을 드려서 머리를 깎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단순한 소원을 넘어 하나님께 대한 일종의 서약이기 때문에 매우 엄숙한 것임을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바울에게 이런 일을 하라는 것은 그의 재력으로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환심을 사라는 말이 아니라 그가 율법을 부정하지 않고 지키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주어 그들의 오해와 노여움을 풀기 위함이었습니다. 즉 유대인을 얻기 위해서는 잠시 유대인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5절 야고보는 신도가 된 이방 사람들에게는,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삼가야 한다는 것을, 우리가 결정해서 써 보냈다고 합니다.
26절 이튿날, 바울은 그 사람들과 함께 정결 의식을 행하였습니다.
그런 뒤에 그는 성전 뜰로 가서 정결 의식이 끝나는 날짜와 그날에 각 사람을 위해 예물을 바칠 날짜를 신고했습니다.
바울은 그의 선교 전략 즉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에게는, 자신은 율법의 지배 아래 있지 아니하지만, 율법의 지배 아래 있는 자같이 된다는 원칙을 따라 행동하였습니다.
우리가 복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지만 한 영혼의 구원을 위해 자신만의 틀, 스타일, 생각은 버릴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 것만 고집하다가 양들에게 상처 주고 교회의 화평을 깨고 구원 역사를 막아서는 안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