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수 막걸리
팔월이 한복판에 든 광복절이다. 정부에서는 지난 달 국경일 공휴일제를 일요일과 겹치면 다음 날을 하루 휴무로 변경시켰다. 코로나 백신 물량이 부족해 나라 체면이 말이 아닌 가운데 교직원들과 가을에 수능을 봐야하는 고3은 방학 중 두 차례 접종을 마쳤다. 코로나 백신 접종 관계로 당초 정한 학사 일정에서 한 주 미루어 지난 월요일 개학하려던 2학기가 광복절 후로 밀려졌다.
주중은 거제 연사와실에 지내다 내 교직 생애 마지막인 여름방학을 맞아 4주간 창원에 머물 수 있는 여유를 가졌다. 짧은 장마가 물러가고 연일 폭염경보와 열대야가 지속되었다. 그럼에도 아랑곳 않고 나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나절 산행을 나서 숲속에서 영지버섯을 찾아내고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나왔다. 때로는 나만이 알고 있는 물웅덩이에서 알탕을 즐기며 더위를 식혔다.
지나간 입추부터 더위 기세는 꺾이기 시작해 되돌릴 수 없는 절기는 처서를 앞두었다. 개학을 며칠 앞둔 엊그제부터는 산행을 대신한 산책을 나섰다. 여름 끝자락에 북면 외산리 들녘과 명촌 강가를 걸어봤다. 북면 수변공원에서는 풀밭에서 어미 품을 처음 벗어난 새끼 고라니를 만나기도 했다. 녀석은 상위 포식자가 누구인지 아직 식별이 안 되어 나를 겁내지 않고 곁으로 다가왔다.
그제는 날이 덜 밝아온 새벽에 집에서부터 걸어 창원천 천변으로 나가봤다. 개학이 임박해 근무지 시차 적응을 위해 무리하지 않으려는 뜻이었다. 생태 하천으로 복원된 천변 산책로는 이른 시간임에도 인근 주택에 사는 사람들이 산책을 나왔다. 명곡교차로와 창원대로를 건너 천변 공단 배후도로를 따라 봉암갯벌이 바라보인 곳까지 내려갔다. 귀로는 삼동교에서 충혼탑을 거쳐 왔다.
어제는 음력 칠월 칠석이었다. 견우와 직녀의 해후와 이별을 뜻하는 눈물같은 비가 내렸다. 올여름 소나기가 귀해 흡족하게 내려도 좋으련만 감질나서 아쉬웠다. 나는 그 칠석비를 논개의 눈물로 받아들였다.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이 함락되자 장수 최경회 소실 논개는 왜장을 껴안고 강물로 뛰어들었다. 왜군은 칠석날 촉석루에서 열린 승전 축하 연회 기생으로 가장해 참석한 논개였다.
아침나절 부슬부슬 비가 내려 산책을 나가지 않았더랬다. 오후가 되니 몸이 근질근질해 아파트 뜰로 내려가 고향 친구가 가꾸는 꽃밭을 둘러봤다. 한여름에도 족두리꽃을 비롯한 여러 화초들이 어울려 꽃을 피웠다. 내가 거제 근무지 교정으로 옮겨 키우도록 친구가 준비해둔 맨드라미 모종을 확인해 놓았다. 이후 이번 여름으로 정년을 맞는 예전 근무지 동료를 만나 맑은 술잔을 비웠다.
광복절은 일요일이었다. 대체 공휴일제가 아니었다면 점심나절 거제로 건너가야 하는 날인데 여유가 생겨 내일 가도 되었다. 개학을 앞둔 운기조신으로 산행이나 산책을 나갈 생각이 없었다. 점심나절에 아파트단지 건너편 상가 이발관으로 나가 이발을 할 참이었다. 나는 머리숱이 적어 이발은 일 년에 두 차례로 끝내 번거로움을 들어주어 좋다. 대머리다보니 염색할 필요도 없다.
지난 겨울방학 끄트머리 이발을 하고 설날을 보냈다. 2학기 개학을 앞둔 여름방학 끝자락 다시 이발관을 찾았다. 이십여 년째 단골로 다니는 이발관이다. 한때 ‘못 생겨서 죄송합니다.’로 인기를 누렸던 코미디언이 있었다. 나는 이발관으로 들어서면서 ‘자주 못 와 미안합니다.’로 인사를 건넸다. 주인이 손님에게 감사해야하는 법인데, 나는 이발관을 찾는 손님으로 주인한테 미안해했다.
이발을 끝내고 상가 아래층에서는 통발에 든 물고기처럼 자리가 예정된 지기 둘을 접선했다. 같은 아파트단지 사는 초등 친구와 수 년 전 퇴직한 예전 근무지 동료였다. 친구는 연전 도청에서 퇴직해 자유로운 영혼으로 셋은 가끔 곡차를 비우는 사이다. 옷 수선 가게 테이블에서 지장수로 빚었다는 곡차를 족발과 같이 들었다. 나는 남은 한 학기를 무난히 보내고 돌아오마고 했다. 21.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