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간계(離間計) -
이 무렵 장안(長安)의 정세는 매우 어지러웠다.
동탁(董卓) 사후(死後), 그의 수하였던 이각(李傕)과 곽사(郭汜)는 정권을 잡고 나자, 이각(李傕)은 스스로가 대사마(大司馬)가 되었고, 곽사(郭汜) 역시 스스로 대장군(大將軍)이 되어 동탁 못지않은 횡포를 일삼으며 사리사욕(私利私慾)을 채우고 있었다.
백성들은 그러한 폭정에다 메뚜기 떼로부터의 극심한 피해가 겹쳐 흉년이 계속되자 굶주림의 고통 속에서 나날을 보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러나 이각(李傕)과 곽사(郭汜)는 그런 사정은 안중에도 없었다.
인간의 욕심이란 한도 끝도 없는 것이어서, 오로지 자신만이 장안과 조정을 독차지하고 싶어진 그들은 점차 자신의 욕심을 실행에 옮길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이런 가운데 태위 양표(太尉 楊彪)는 그들의 행태를 보다 못해 하루는 헌제(獻帝)에게 이렇게 품하였다.
"조조(曹操)가 지금 산동 지방에 이십만의 병력과 수십 명의 걸출한 무장과 모사들을 거느리고 있다고 하옵니다. 하오니 조조(曹操)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어 조정의 간당배(奸黨輩)들을 제거케 하여 나라를 바로잡도록 명하시옵소서."
헌제(獻帝)는 그 소리를 듣고 크게 한숨을 쉬며 말한다.
"내 일찍이 제위(帝位)에 오르기 전인 어린 시절에는 선제(先帝)의 주변에는 십상시(十常侍)들이 있어 나라를 주물러 왔었소. 그 후 하진(何進)과 동탁(董卓)을 거쳐 오늘날에는 이각(李傕)과 곽사(郭汜)에게 조정(朝廷)의 실권(實權)을 빼앗기고 보니 그 어떤 사람이 구국(求國)을 핑계로 봉기(蜂起)하더라도 그 피해(被害)는 수많은 백성들에게로 갈 뿐 또 다른 도둑에게 나라를 맡기는 격이 될까 두렵소."
양표(楊彪)가 머리를 조아리며 다시 품한다.
"이각(李傕)과 곽사(郭汜)는 본시(本是) 미천(微賤)한 출신(出身)으로 출세(出世)를 한 인물(人物)이오나 조조(曹操)의 경우는 승상(丞相) 조참(曺參)의 후예(後裔)로서 명문거족(名門巨族) 출신(出身)이옵고 그 자신(自身)도 선제(先帝) 때부터 지금까지 관작(官爵)을 받아온 터인지라 그의 충성도(忠誠度)는 여타의 다른 자들에 비하여 믿음이 가옵니다. 하오니 지금의 혼란(混亂)을 수습(收拾)할 인물(人物)로는 조조(曹操)가 적당(適當)할 것으로 아옵니다."
"무지막지한 이각(李傕)과 곽사(郭汜)의 무리를 물리칠 수만 있으면 얼마나 기쁘리오. 그러나 조조(曹操)가 대군을 일으켜 장안으로 온다면 또다시 큰 싸움이 벌어지지 않겠소?"
헌제는 백성들의 안위는 물론이고 전쟁으로 자신이 겪어야 할 참화가 끔찍한 듯이 몸을 떨며 말하였다.
그러자 양표는,
"이각(李傕)과 곽사(郭汜) 간의 이간계(離間計)를 써서 그들 간에 서로 반목하고 다투게 만들어 힘을 빼게 만들고 그 틈을 이용하여 조조(曹操)가 장안으로 진격해 온다면 가장 적은 피해로서 이각(李傕), 곽사(郭汜)의 무리를 물리칠 수가 있을 것이옵니다."
"그러면 그 이간책(離間策)을 말해 보오."
"듣자옵건데 곽사(郭汜)의 처가 투기(妬忌)가 매우 심한 여자라고 하옵니다. 그러므로 그 점을 이용해서 이각(李傕)과 곽사(郭汜)를 이간(離間)하도록 만들고, 조조(曹操)로 하여금 두 사람을 치게 하면 반드시 성공할 줄로 믿사옵니다."
"그렇다면 조조(曹操)뿐만 아니라 형주 유표(邢州 劉標 ), 기주 원소(冀州 袁紹), 남양 원술(南陽 袁術)에게도 밀서를 보내도록 하오. 그들도 한실(漢室)의 녹(祿)을 대대로 먹은 사람들이 아니오?"
천자는 밀서(密書)를 써서 양표(楊彪)에게 주었다. 양표(楊彪)는 은밀히 사람을 시켜 형주(邢州), 기주(冀州), 남양(南陽)을 비롯하여 연주(兖州)의 조조(曹操)에까지 밀서(密書)를 보내고 난 뒤, 집으로 돌아와 아내를 불러 조금 전에 조정(朝廷)에서 모의(謀議)한 계책(計策)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당신이 나라를 위해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곽사(郭汜)의 부인이 맹렬한 질투를 일으키도록 해줘야겠소."
하고 말하였다.
"알겠어요.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면!"
이뜯날 양표(楊彪)의 부인은 곽사(郭汜)의 마누라를 찾아가서 이렇게 말하였다.
"요사이 항간에 은밀히 떠도는 말을 들으니 곽 장군께서 이사마(李司馬) 댁 부인과 가깝게 지내신다고 하는데 만약 이 일을 이사마께서 아시면 큰일일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큰 망신이 될 것입니다. 하오니 부인께서는 아무쪼록 유념하셔서 앞으로의 왕래를 삼가시는 것이 좋을 것이옵니다." 말릏 듣고 나자, 곽사 부인의 눈에서는 불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우리 집 양반이 요사이 가끔 자고 들어오기에 어쩐지 이상하다 했더니 그런 일이 있었던가요? 아무튼 부인께서 이렇게 알려 주시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소."
곽 부인은 그날부터 남편의 행동 하나하나에 은밀한 감시를 시작하였다.
그로부터 며칠 후에 공교롭게도 이각(李傕)의 집에서 곽사(郭汜)를 초대하는 기별이 왔다.
그리하여 남편이 옷을 갈아입고 나가려 하자 곽 부인은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이사마(李司馬)가 당신을 없애고 혼자 세도를 잡으려는 야심이 있다 하는데 만약 당신이 그 댁에 초대에 응했다가 독약(毒藥)을 든 음식을 내어 놓으면 어떡합니까? 그러니 당신은 절대로 그 댁에 가셔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어디서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듣고 걱정을 하오. 이각(李傕)은 결코 그런 사람이 아니오."
"내가 어젯밤에 꿈자리가 하도 사나웠으니 어쨌든 오늘만은 가지 마세요." 이렇게 되어 이날 곽사(郭汜)는 이각(李傕)의 초대에 가지 못하게 되었다.
이뜯날, 이각(李傕)의 집에서는 어젯밤에 차렸던 음식을 곽사(郭汜)의 집에 보내왔다.
질투심에 불타는 곽사(郭汜) 부인은 남몰래 음식에 독을 섞어 가지고 남편 앞에 들고 나왔다.
"응? 이사마 댁에서 보내온 음식인가?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가는군!"
곽사(郭汜)가 음식을 집어먹으려 하자 부인이 황급히 만류하면서,
"그 집에서 보내온 음식을 함부로 드시면 어떡하오. 우선 시험 삼아 개에게 먹여 봅시다." 하고 음식 한 덩이를 뜰에 있는 개에게 던져 주었다.
개는 그 음식을 순식간에 먹어치우더니 즉석에서 비명을 지르며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것이었다.
곽사(郭汜)는 그 모양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음 .... 이각(李傕)이란 놈이 그런 놈이었던가?" 이로부터 곽사(郭汜)는 사사건건 이각(李傕)을 의심하게 되었다.
며칠이 지난 뒤 곽사(郭汜)는 이각(李傕)의 간청에 못 이겨 그의 집에 끌려가 술을 마시고 밤늦게 집에 돌아왔다.
"어디서 이렇게 취하셨어요?"
"이사마 댁에서 한잔 마셨어."
"아니 내가 그만큼이나 조심하시라고 일렀는데 그 집에 가셨단 말이오?"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 야단이야?"
"그때 개가 즉사하는 것을 당신 눈으로 보시고도 그런 말씀을 하시오?"
"글쎄, 괜찮다니까 그래!" 곽사(郭汜)는 마누라와 시비를 하며 옷을 갈아입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지기 시작하였다.
"응? 배가 아파지니 웬일일까?"
"그것 보세요. 그냥 계시다가는 큰일 날 테니 빨리 해독 약(解毒藥)을 잡숴야 해요."
곽 부인은 맑은 똥물을 떠다가 꿀을 섞어 약이라 속여 가지고 들어왔다.
"숨도 쉬지 마시고 한 번에 드세요."
곽사(郭汜)는 부인이 가져온 해독 약(解毒藥)을 단숨에 들이키곤 기어코 구역질이 나서 먹었던 음식을 모조리 토하였다. 그러고 나서야 속이 편안해졌다.
"그것 보세요. 잡수신 음식을 토하고 나니 속이 편해지시지 않아요? 이번에도 음식 속에 필시 독이 들어 있었어요."
"음... 나와 더불어 대사를 도모했던 이각(李傕)이 내게 이럴 줄은 몰랐는걸! 그렇다면 내가 더 당하기 전에 선수를 쳐서 그놈을 없애 버려야겠군!" 곽사(郭汜)는 그길로 군사를 일으켜 이각(李傕)을 처치하려고 하였다.
이각(李傕)이 그 소식을 듣고,
"곽사(郭汜).란 놈이 나를 없애고 권세를 혼자 휘郭汜둘러 보겠다고? 그렇다면 나도 생각이 있다." 하고 크게 화를 내며 즉시 군사를 동원하여 곽사(郭汜)를 치게 하였다.
이리하여 한밤중에 도성인 장안에서는 군사가 두 패로 나뉘어 치열하게 싸우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이각(李傕)의 조카 이섬(李暹)이 말한다.
"황제를 우리 편으로 모셔와야 합니다. 황제를 등에 업은 쪽이 관군이 되고 황제에게 대항하는 쪽은 역적이 되는 법입니다. 그러면 제후들도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 옳은 생각이다. 그러면 당장 황제를 끌어내 미오성으로 데려가라."
이각(李傕)은 조카에게 명하였다.
"이각의 조카 이섬(李暹)이 천자를 납치해 갔다!"
부하한테서 그런 소식을 듣고 크게 놀란 사람은 곽사(郭汜).였다.
"뭐라고? 천자를 빼앗기다니! 이래 가지고서야 내 입장이 뭐가 되는가!"
곽사(郭汜).가 부하를 이끌고 부랴부랴 후제문(後帝門)으로 달려가 보니 이각(李傕)의 군사들이 천자를 모시고 미오성 방향으로 달려가는 것이 아닌가?
"앗! 저기 간다. 저놈들을 제압하고 황제를 빼앗아라!"
곽사(郭汜).는 호통을 치며 부하들을 독려하여 공격을 가했으나 적의 반격이 예상보다 커서 많은 군사만 죽이고 곽사(郭汜).는 무참하게 퇴각하고 말았다.
"아아, 저놈들한테 이런 일을 당하다니!"
곽사(郭汜).는 절치부심(切齒腐心)하면서 대궐로 들어와 이번에는 화풀이로 조신(朝臣) 들과 궁녀(宮女)들을 닥치는 대로 죽이고 대궐에는 불까지 질러 버렸다.
삼국지 - 73회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