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내로 들어가면서 천불천탑이 너브러져 ....
며칠이 있으면 설명절이 다가 온다.
매년 다가오는 설이지만 ,유독히 올해는 더 반가웁다.
건강이 더 좋아져서 그러나......
아니면 나이가 더 들어가니 그러나? 아니면 고향에 오서 설명절을 지내니
그러나? 좌우 간 즐겁다.
무등산 자락의 아늑한 화순의 품안에서 멀리는 내 고향 나주의 금성산을 부르고
손짖을 하고 있다. 그 앞으로는 무등산 자락에서 한 방울 두 방 울 떨어지는 낙수(落水)에서
영산강이 삼백오십리의 여정(旅程)으로 흐르고 있다.
무등산자락에서 남쪽으로 아담하게 화순을 감아 주면서 '물연정(勿 染 亭)'의 정자가
있고 방랑의 시인인 김삿갓의 시비를 위주로 해서 문인 묵객들의 주고 받은 시(詩)들이
즐비하게 펼쳐지고 있으며 ,망향정을 비롯하여 적벽의 산수가 펼쳐지고 그 야말로
산자수명(山紫 水明)한 선비의 고장이 펼쳐진다.
요소요소에는 무등산자락에서 떨어지는 낙수들이 이루어져 '지석천'의 강을 이루고
영산강으로 모여들고 있으며, 풍광이 좋은 곳에서는 정자들이 있어 과연 선비들이
놀기가 좋은 고장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런지 화순에는 향교가 3 개나 있다
'동복향교가 그렇고, 화순향교, 능주의 향교가 왕년에는 '목사골'이라고 자랑을
한다. 그러니 교육의 도시요 인재가 많이 배출 되었다고 하는 곳이기도하다.
광주에서 화순으로 넘어 오는데 '너릿재'라는 고개를 넘어야 화순으로 접어 든다
이 너릿재는 그 이름에서 보듯이 사람이 죽으면 "널판" 죽으면 들어가는 관(棺)에서
찾을수가 있다.
옛날에는 이 너릿재를 넘어 가다가 시체로 되어 관속으로 들어 갔다고 해서 너릿재
였으며, 옛날에는 한양으로 과거를 보려가는 유생들이 이곳을 지나 주막에 들려
쉬어 갔다고 하니, 지금도 으시시 하다.
화순의 능주에 들어서며 '영벽정'(映碧亭)이라는 정자가 있어 목사골의 걸 맞게 지석천의
강변에 있어 연주산의 위로 비추는 달빛에 아름다운 자태를 보이고 있어 ,중국의 시성(詩聖)
이백의 '월하 독작(月下獨酌)'을 노래했지만 이곳도 달(月)하고 놀면서 시를 지을만 하기도....
조선 중중은 어찌하여 한 때는 자기의 심복으로 사림세력의 거두 '정암' 조광조선생을 측근에
두 어 국정을 펼칠려고 하였다가, 이곳 화순으로 귀향을 보내어 일 개 월 만에 사사를 시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하였는가? 그 역사의 현장이 고스란히 남아 역사의 고장으로
손색이 없다.
조금 더 멀리 도암면이라는 곳에는 천불산 계곡에 ;와불'(臥佛)을 세워서 백제민들이 나라를 잃은
서름을 달레려고 하였는가? 아니먄면 우리 민초들의 삶을 보듬어 주고 달레 주는 '불국정토'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였는가? 천불산 계곡에는 천불천탑들이 불교 예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으니
나 같은 둔재라도 글을 쓰고 있으니 , 원형다층탑이니 ,석조불감이니 국보급 불교문화재가 즐비하니
그 아니 아름답지 않는가? 우리 선대들의 정신문화가 .....
강화도 그리고 전북 고창과 함께 고인돌이 많아 옛 선사시대의 묘지의 모습을 그대로 볼수가 있어
우리는 마치 선사시대에 살고 있는가? 그,래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지 않는가?
여타 요소요소에 정자들이 있어 산수와 어울어진 천혜의 아름다움을 과시하는 고장이기도 하며
임진왜란시에 그의 삼형제와 조카들까지 임진왜란시에 의병장으로 국난을 이겨 낸 '최경회와
논개'의 애틋한 사랑과 저 진주의 남강에 투신되어 영혼한 혼(魂)으로 남지 않는가....
그 이의 유적은 진주에 남아 있으며 화순의 최경회 사당안에 있는 '삼장사시비' 에서 찾아 볼 수가
있다.
한양에서 나의 삶은 한 때의 남가일몽이요 , 화순의 역사와 충절의 고장에서 나의 노후의 삶을
보내면서 설을 맞이하고 있으니 ,그 아니 즐거운가?
서쪽 산등성에 '와불' , 이 부처님이 일어서는 날에는 .....
첫댓글 만장봉님의 박학다식과 유려한 필치가
화순을 빛나게 합니다.
중종 임금이 혁신가 조광조님을 화순에서
죽였군요.
세상 인심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왕이나 일반인이나 인심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것이 인간의
마음일 것입니다.
조선시대 중종 임금 때 조광조 사건을
보면서 느낍니다.
주초위왕 사건으로 죽인 것 같습니다.
좋은 글입니다.
감사합니다
과찬입니다 한번 신임을 하였다면 계속해서 그 정책을 밀고가야지 .....
노론세력에 밀려 다시 조광조의 신진세력을 꺽어야 하는지...?
기묘사화로인해 호남의 사림세력들이 모두꺽이게되고 호남의 산수가좋은데로
낙향을 하게되고 ,저의 16대조 김식할아버지도 성균과유생으로 한양에서 나주까지 도보로 시위를 하며
나주의 유생들이 한꺼번에 상소문을 올리고 ,영산강변에 유유자적하게 지내고 있었던 사실이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산세수려한 문학과 예술의 고장에서 나고 자라신 만장봉님은 역시 다르십니다.
글만 보아도 화순이 한눈에 들어오고 정감이 느껴집니다.
언젠가 남쪽여행에서 그 고장을 한바퀴 꼭 둘러볼 생각입니다.
만장봉님의 글을 약도삼아서요.
감사합니다 과찬을 하심니다 그냥 노후에 심심해서 해보는 짓입니다
언제 남도를 오실때 답사를 하여봄이 ......
감사합니다
화순에 대해서 많은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역사나 유적들이 참 많은곳 이로군요
조광조가 그뜻을 펼쳤으면 역사가 바뀌였을텐데~
조광조의신진 사림세력들이 계속해서 개혁과
그 정책들을 이끌었다면 역사는 더 발전하게 되었겠지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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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불은 부처님의 입멸에서 찾을수 있다고 합니다
부부 부처로 나란히 누워있는 모습에서 농경사회의 다산(多産)의 기원을 찾을수 있다고
쓰여지고 있습니다
너릿재의 옛길로 오셨다면 상당히 오래전에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지이나 불자님들이 많이 오시더군요 언젠가 찾아갔을때도 많은 분들이
오시더라고요 예전에 화순의 운주사에 대하여 서울시 문학지에다 화순문학지,그리고 화순군민 신문에
기고하였습니다 여기 카페 불교방과 전라방에도 올렸습니다 참고하시기를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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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에서 사업을 하시는군요
지역사회의 발전을 위하여 수고가 많으십니다
화순의 문화와 역사에도 관심을 가져주시기 바람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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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산자수명한 화순을 자주 찾아주시고 삶의 여유를 가지시기 바람니다
저도 화순으로 정착함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역사도 배우고 화순의 절경도 구경하고
모두 공짜로 보고 배웠으니 이 노릇을 ㅎㅎ 답례를 뭘로 해얄지 ..
아이구 감사합니다
그냥 알게 되었다고 하시니 ,글을 쓴보람이 있습니다
오늘도 최경회 선생님의 사당을 다녀왔는데...
매화꽃이 눈속에서 그모습을 보여주고 있더군요
봄이 오고있슴이 ,설을 잘지내시고요
여건이 되신다면 강릉에 허균과 허난설헌 문학관과 생가를 소개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제가 강릉을 그렇게 놀려다녔건만 , 그곳을 다녀오지를 못해서 몹시 아쉽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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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주사의 경내는 아주 좋지요
적벽도 개방하고 있습니다 광주시민의 상수도 공급지로 다소 통제는
합니만 ...........
저는 지금 물도 상수도 물을 먹고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서깊은 역사사적이 많은 고장에서 문인들이
많이 배출되는것 같읍니다.
천지사방이 논 뿐인 우리고향에선
시인..무명가수조차도 배출이 되지 않네요.
산의흐름과 물의 흐름이 어울리는곳에서
문인의 기량이 다듬어 지는것 같읍니다.
화순도 그러한 곳이지요~~
감사합니다
꼭 그렇게는 생각하지믄 않지만 ,
산수가 좋은곳에서 인재가 배출된다고 하지요
풍광이 좋은곳에서 많은 정서가 함량되는 지도 모르겠네요
감사합니다
님 글 덕분에 남도 특히 전남지방 잘 봅니다.
그쪽엔, 소쇄원 죽녹원 정도만 가봤기에 요.
직원들도 강진 해남 담양 화순 다양합니다만
기회가 찬스가 잘 아니 오니..
향후로도 자주 향토정보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카페서는 이러한 향토작인 글은 좋아하지 않는것 같더군요
저야 우리호남을 알리는 차원에서 자주 올리고 싶지마요
감사합니다
남도 기행을 많이 다녔지만 화순에 대해 세세히 적어 소개하시니 도움이 많이 됩니다.
날이 따뜻해지면 전남쪽으로 다녀볼 참이었는데 화순은 반드시 들러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화순의 소개가 도움이 되셨다니,내가사는 고장이기에 그냥 느낀데로
역사의 현장을 소개한것뿐인데.....
저도 답사를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해서 써본것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