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평 재래 시장이 한 블럭 뒤에 있기는 하나,
시골에서 보는 그런 왁자하고 정이 넘치는 곳도 아닌 것 같고,
동네 수퍼는 봉지 콩나물에 진공포장 두부에
오이며 파 등 간단한 것 몇 나부랭이가 있는 정도이고,
조금 더 나가면 일명 '마트'라고 불리는,
품목이 조금은 다양한 대형수퍼켓이 있지만
곧잘 무시하고 만다.
어쩐지 침침하고 어리숙해 보이는 것이
영 정이 들질 않아서다.
그래서
지가 언제 적부터 대도시 사람이라고
가까운 백화점이나 외국계 할인매장이나
내로라하는 대형매장으로 장보러 가곤한다.
대형매장이라는 것이 뻔해서 이름과 마찬가지로
소형은 드물고 뭐든 대형이 많다.
한 두가지나 몇 개면 될 것을,
쓸 데 없이 많이 사게되면
할인매장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바가지를 쓰는 꼴이 되고 만다.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야채며 청과의 색깔이 조명 때문인 지 사지 않고는 못 베기게 유혹을 하고 만다.
동네보다 훨씬 비싸다는 것을 알면서도
휘황한 그 대열에 끼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카터를 밀고
이것저것 집어넣는다.
각 코너에서
깔끔한 머리수건에 앞치마를 두른 직원들의 정중한 인사에
거드름을 피우며 시장을 보게 된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으응~ 다들 수고한다.'
그렇지만,그 대가는 엄청난 카드 값이 대신한다.
그런데
엊그제 그 총각을 만났다.
동네 마트에는 생선 코너와 정육코너도 있지만
이사와서 몇 달이 지나도록
한 번도 그곳에 눈길을 줘 본 적이 없었다.
갑자기 딸들이 탕수육을 하자는 말에
사다놓은 고기도 없고 백화점에 나가려고 하니 시간이 마땅치 않아
울며겨자 먹기로 그 정육점을 들르게 되었다.
그 총각이 가끔씩 신문을 보고 있거나
책을 뒤적거리는 것을 본 적은 있어도
직접 만나기는 처음이었다.
"탕수육 거리 한 근 주세요"
(손이 저울인 것은 확실하다. 딱 605그램이다)
"좀 적지 않을래나요? "
-"썰면 아주 많습니다. 네 가족이 드실 게 아닌가요? "-
- "적당히 사세요" -
"그러네요. 그냥 주세요"
(실은 더 사고 싶었다)
백화점에서는 한 근 만 주라고 해도
반 근쯤 더 올려놓고 괜찮으시냐고 묻는
멀끔한 아주머니들 앞에서
넉넉한 척,
못마땅해도 그냥 들고 왔는데...
더 달라는 데도 적당히 사라고 권하는
이런 어리숙한 총각을 만나게 되다니....
그러고 보니
근래에 나는 이런 걸 한참을 잊었다.
속은 곪고 있어도 겉만 반질거리는
그런 것을 삶의 질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꾸밈없는 마음이 사람을 얼마나 따뜻하게 하는 지
잠시 잊고 있었다.
의자를 빼주는 웨이터에 홀려
욕쟁이 할머니의 청국장을 잊었고,
고속도로를 달리느라
오솔길에서 솔방울 줍는 것을 잊었고,
입안에서 녹는 생크림 때문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박시루떡을 잊었다.
내가 이 작은 정육점의 총각을 잊는 동안에
외환위기가 왔고 카드빚이 생겼고
대출통지서가 날아왔는지도 모른다.
다시 좀 챙겨봐야겠다.
뒷 동네 재래시장도, 앞 골목 청과점도 문구점도 다들 안녕하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