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지금은 남한에 살고 있지만 북한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으로서 솔직히 나는 북한의 좋지 않은 일들이 보도되는 것이 정말로 싫다. 그런 것이 보도되면 남한 사람들이 북한 사람들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을 것 같고 북한 출신으로서 부끄럽기 때문이다. 내가 태어난 땅을 욕하는데 그것을 즐겁게 들을 사람이 누가 있겠나. 그래도 밝힐 것은 밝히고 알릴 것은 알려서 북한을 변화시키는 것이 내가 태어나 자란 땅을 진정으로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에 북한의 공개총살에 대해 증언한다.
96~97년 쉴 새 없이 총성 울려
내가 공개총살을 직접 본 것은 1996년 겨울이다. 총알에 머리가 흔적도 없이 날아가고 피가 사방에 튀는 잔혹한 총살장면을 본 이후로는 공개총살이 있다 해도 나가보지 않아, 직접 목격한 것은 그날이 유일하다. 그러나 공개총살이 있다는 소식은 수도 없이 들었다. 1996~1997년 사이 북한에서는 쉴 새 없이 총성이 울렸다. 사회에 범죄가 많아지니까 엄격히 다스리라는 김정일의 지시(북한에서는 이것을 ‘1호 비준’이라고 한다)에 따라 ‘시범케이스’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때 애매한 죄명으로 죽은 사람이 정말 많았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감옥에서 몇 년 정도 살면 되는 죄를 짓고도 ‘시범기간’에 잘못 걸려 죽은 것이다. 내가 본 공개총살 현장에서 죽은 사람도 국가식량창고에서 콩 몇 백 킬로그램을 훔친 죄로 죽었다. 그것은 누가 봐도 그냥 절도죄이고, 죽일 만한 죄가 아닌데도 죽였다.
죄인은 두 명이었다. 그들은 군복을 입고 국가식량창고에 밤에 침입, 지키고 있던 경비를 묶고 콩 자루를 훔쳐가지고 나왔다 한다. 그러다 잡혀서 보안서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집으로 갔다. 그런데 풀어준 날 밤에 갑자기 집에 들이닥쳐 다시 잡아간 다음에, 이튿날 공개재판을 받고 총살당했다.
판사가 ‘사형’ 외치면 곧바로 처형
재판은 보통 1시간 정도 걸린다. 남한에서처럼 북한의 재판도 판사, 검사, 변호사가 다 나온다. 그런데 변호사가 뭘 하는 사람인지 나는 남한에 와서야 알았다. 남한의 영화나 드라마 같은 데서 보는 것처럼 변호사가 죄인을 두둔해주고, 어떻게든 벌을 깎아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북한에서는 볼 수 없다. 검사가 죄인의 죄를 쭉 부르면 변호사는 “네 맞습니다” 하고 확인해 주는 사람이다.
재판의 내용은 방송차량을 통해 스피커로 군중들이 다 들을 수 있다. 군중들은 보통 1천~2천 명 정도가 모인다. 남한이나 다른 나라들에서는 판사와 검사가 검정색 옷을 입고 나오던데 북한에서는 그냥 인민복이나 군복을 입고 나온다.
판사가 사형을 외치면 바로 집행이 된다. 죄인 두 명 중에 한 명은 울면서 살려달라고 소리쳤고, 다른 한 명은 무덤덤했다. 판사가 “네 과오를 앞으로 고칠 수 있겠느냐” 하고 물으니 둘 다 “고치겠다”고 했다. 그런데 판사가 하는 말이 “그럼 저승에 가서 고쳐라”라고 했다.
천막 안에서 이미 초죽음 상태
공개재판장에는 흰 천으로 사면을 둘러친 천막이 한 켠에 있다. 총살이 결정되면 사형수를 이 천막 안으로 끌고 들어간다. 10분 정도 있다가 사형수가 나오는데 입에 재갈이 물려있고 몸은 반죽음 상태로 축 늘어져 질질 끌려나온다. 천막의 용도는 사형수가 반항하지 못하도록 그 안으로 데리고 들어가 두들겨 패는 장소인 것이다.
끌려 나온 사형수의 가슴과 배, 다리 부분을 말뚝에 끈으로 묶고 사격수들이 앞에 나가 조준을 한다. “사격준비, 쐇!”이라는 구령이 떨어지면 머리, 가슴, 배 순서로 총알이 날아가는데 그때 머리가 형체도 없이 사라지거나 묶어두었던 끈이 끊어지면서 시체가 앞으로 거꾸러진다. 그럼 다리에 묶어둔 끈만 남는데, 앞으로 기울어 있는 시체에 포대기를 뒤집어 씌운 후 묶어둔 끈을 잘라내면 시체가 그 안에 들어간다. 시체는 야산이나 길가에 아무렇게나 파묻어버린다고 한다.
총성이 울리는 순간 피가 팍팍 튀는 잔혹한 모습은 직접 보지 않은 사람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걸 보고 며칠 동안은 밥을 먹지 못했다. 끔찍한 이런 공개총살 제도는 반드시 철폐되어야 한다.
ex)사형수의 머리에 총을 쏘는 것은 90년대 이전에는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몸을 묶은 끈을 끊음과 함께 사망하게끔 몸과 허리 등에 총을 쏘았습니다. 그러나 90년대에 북한주민들에게 공포심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사형수들의 머리에 총을 쏘는 잔인한 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첫댓글 변호사 왈: 네!맞습니다.그리구 판사왈: “네 과오를 앞으로 고칠 수 있겠느냐?"둘 다 “고치겠다” 그런데 판사가 하는 말: "그럼 저승에 가서 고쳐라” =>참 어이가 없군여.죽을 사람 약올리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