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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우리는 흔적 없이 사라졌다
태어나는 순간 어머니와 떨어졌고
낯선 땅으로 보내졌다
이 책은 산산이 부서진 우리의 첫 번째 목소리다
저자 소개
한분영
1974년에 태어났다. 생후 3개월경 덴마크로 입양돼 작은 도시에서 사랑하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자랐다. 스포츠를 좋아해 고등학생 때 태권도 국가대표로 선발되었다. 당시 태권도 코치인 고태정 사범을 통해 한국을 처음 접했다. 2002년 한국에 왔고, 현재 서울대에서 사회복지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한국 입양인들을 위해 일한 공로로 YWCA 제21회 한국여성지도자상 특별상을 수상했고, 덴마크한국인 진상규명 그룹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페테르 묄레르
1974년에 태어났고, 생후 6개월경 덴마크로 입양됐다. 입양 서류상 국내 입양이 되어야 했지만 해외로 보내졌다. 또한 서류에는 고아로 표기돼 있으나 한국에 친어머니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입양 서사가 각색된 수천 명의 입양아와 동일한 서류를 공유하고 있다. 현직 변호사로서 한국의 입양 기관들이 해외로 입양 보낸 1500건 이상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입양인들이 한국의 가족을 찾는 일을 돕고 있다. 또한 전 세계가 지지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 ‘알 권리’를 확보하고자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 덴마크한국인 진상규명 그룹 공동 대표이자 뿌리의집 공동 대표다.
제인 마이달
1976년에 태어났고 생후 9개월경 덴마크로 입양됐다. 코펜하겐대학에서 사회인류학을 전공했고, 룬드대학에서 아시아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경영 컨설팅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해왔다. 첫딸을 낳은 후 입양이 자기 삶에 미친 영향을 깨닫고 한국에서의 국가 간 입양의 역사를 조사하며 입양인 운동에 뛰어들었다. 현재 코펜하겐에서 남편, 세 딸과 함께 살면서 덴마크한국인 진상규명 그룹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황미영
1974년에 태어났다. 한국에서 덴마크로 입양된 얀 리와 결혼했다. 현재 덴마크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고 덴마크한국인 진상규명 그룹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첫 번째. 입양인이 목숨을 던질 때 대한민국 사람은 아무도 통곡하지 않았어_김 톰슨
두 번째. 진실 앞에서 무너지거나 흔들리지 말 것_크리스틴 몰비크 보튼마르크
세 번째. “네 장애 때문에 너를 데리고 휴가 가는 건 너무 힘들어”_니아 토프타게르
네 번째. 한 인간에게 닥친 비자발적 장애와 같은 것_안 안데르센
다섯 번째. 맥락 없는 삶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_에리카 블릭만
여섯 번째. 유괴되어 입양됐다가 35년 만에 친가족을 만나다_미아 리 쇠렌센
일곱 번째. 제 아내는 열세 살에 입양됐습니다_신광복
여덟 번째. 저는 아시아 최고의 여성 먹기 대회 챔피언입니다_메리 바워스
아홉 번째. 우리는 두 번이나 만났는데, 왜 엄마는 더 이상 연락을 받지 않는 걸까요_레나테 판 헤일
열 번째. “이 여자 아기는 많이 웁니다”_리브 마리 멜비
열한 번째. 외조부모가 딸의 동의 없이 해외로 두 손자를 입양시키다_황미정
열두 번째. 평생 외국인 취급을 받는 데 지쳤습니다_앨리스 안데르센
열세 번째. 우리에게 DNA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한 이유_에바 란 호프만
열네 번째. 잘 지내고 있다고 안심시켜드리고 싶습니다_미에 슐리히터
열다섯 번째. 서양으로 입양된 것은 행운일 수가 없습니다_잉에르-토네 우엘란 신
열여섯 번째. 생명을 갖고 노는 것은 쓰레기 같은 일이에요_마야, 로라, 클라라
열일곱 번째. 양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시작된 친가족 찾기_루이스 힐레루프 한센
열여덟 번째. 우리가 입양한 게 올바른 일이 아님을 본능적으로 깨달았습니다_벤트 쇠렌센, 릴리안 쇠렌센
열아홉 번째. 가짜 친부모와 재회하다_미카엘라 디츠
스무 번째. 내 이야기는 산산이 부서졌다_말레네 베스테르고르
스물한 번째. 친어머니가 저를 버린 이유에 대해 많이 생각해봤습니다_안야 케르 콜
스물두 번째. 우리는 속았습니다_비타 케르 콜, 아이네르 케르 콜
스물세 번째. 성북동 골목을 돌아다니며 어머니를 떠올리다_제인 마이달
스물네 번째. 엄마를 찾지 못하는 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에요_카렌 필리프 아르베센
스물다섯 번째. 26년이 지난 지금 우울감과 무력감이 밀려옵니다_요안 랑
스물여섯 번째. 제 몸과 영혼은 항상 당신을 기억하고 사랑할 것입니다_보르 베눔
스물일곱 번째. 저는 제 트라우마를 방치하지 않을 겁니다_마리 로에
스물여덟 번째. 쉰 살인 저는 한국어로 제 이름도 못 쓰는 ‘문맹’입니다_마리안네 옥 닐센
스물아홉 번째. 공범자가 된 양아버지는 무너지셨다_영 피런스
서른 번째. 가족을 잃고 산다는 것은_신지원
서른한 번째. 할머니 집에 간다던 딸을 수십 년 뒤 미국에서 찾았습니다_한태순
서른두 번째. 불안하고 조급한 나의 결핍을 메워줄 나라_신서빈
서른세 번째. 포기와 거래_마리 루이스 왕
서른네 번째. 양부모의 학대를 잊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했습니다_수산나 킴 페데르센
서른다섯 번째.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은 공허함을 떨치지 못합니다_요아킴 베른
서른여섯 번째. 저는 아기 사냥의 희생자일까요?_메이브리트 코드
서른일곱 번째. 신의 선물이 겪은 어둠_크리스티나 호펜시트 닐센
서른여덟 번째. 사랑하는 아버지께_김동희
서른아홉 번째. 입양은 모든 아이를 비통에 빠뜨린다_앨리스 플릭베이르트
마흔 번째. 입양인의 자녀도 자기 인생의 이야기를 완성 못 합니다_마이테 민 탐 마음 장놀랭
마흔한 번째. 여자는 어머니에게 안아달라 말 못 하는 자신에게 화가 난다_마야 리 랑그바드
마흔두 번째. 법적 고립을 넘어서_한분영
마흔세 번째. 알 권리는 왜 중요한가?_페테르 묄레르
맺음말
책 속으로
너한테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 미아를 입양 보낸 기관에서 그녀가 자살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그 책임을 그녀를 입양한 가정과 그녀가 처한 환경, 트라우마, 정신 건강 문제,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 자신 탓으로 돌릴 거라는 점이야. 미아가 삶의 끈을 놔버리고 이 세상을 떠난 모든 ‘이유’의 근본 원인이 그들 자신에게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하지 않을 거야.
한국의 입양 기관에서는 아마 이렇게 말할 거야. “가끔” “나쁜” 입양 가정을 골라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그건 “극히 드문” 일이라고. 그들은 입양인이 비입양인보다 자살 시도를 하거나 자살할 확률이 네 배나 높다는 잘 알려진 통계는 모른 척하거나 묵살해버릴 거야. 자신들은 미아가 겪었던 정신 건강 문제에 대해 책임이 없고, 그녀가 더 적극적으로 필요한 도움을 받았어야 했다고 말할 거야._13~14쪽
그렇다. 우리가 믿고 있는 이야기가 무너지고 입양 가정으로서의 자아상이 흔들리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하지만 부모로서 우리는 공동의 책임에서 쉽게 벗어날 수 없다. 우리는 아이를 한 번 입양했지만, 아이들은 자신이 입양되었다는 사실을 평생 지니고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물학적 가족은 괴로움을 당했을 수도 있다. 입양 가정으로서 우리는 결코 인권 침해를 정당화할 수 없다._23쪽
저는 항상 뭔가 더 나은 것이나 다른 어떤 것들을 추구해왔습니다. 하지만 2019년 서울에 첫발을 디뎠을 때 바로 깨달았습니다. 저는 서울이나 인천 출신이 아닌데도 인천공항에 내리자마자 집에 돌아온 느낌을 받았어요. 지금까지도 그때 느꼈던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때의 기분을 “이상했다”라고 할 수밖에 없는데, 저로서는 굉장히 절제한 표현입니다. 당시 저는 막 울음을 터뜨릴 것만 같았어요._27쪽
해외 입양인으로서의 삶은 이중성으로 가득합니다. 입양된 나라에서는 아시아인의 외모 탓에 늘 그들과는 다른 사람 취급을 받고, 한국에서는 언어나 문화적 행동 능력의 부족 탓에 또 다른 이방인 취급을 받습니다. 어느 한쪽에 100퍼센트 온전하게 속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으로 사는 것은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는 지금 한국어를 배운 지 거의 2년이 됐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며 땀과 눈물을 쏟아부었습니다. 하지만 제게 한국어는 삼키기에 너무 쓴 약과 같습니다. 이번 생에는 결코 한국어를 유창하게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_35쪽
사람들이 제게 감사하냐고 물으면 저는 무엇에 대한 감사냐고 되묻습니다. 한국에서 팔려 이곳에 왔다는 것에 대해서요? 한국의 뿌리, 가족, 정체성을 잃은 것에 대해서요? 아니면 당신에게 감사할까요?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다음 생에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입양인이 되는 것만은 절대 고르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만약 제가 직접 나라를 선택할 수 있다면, 저는 한국을 고를 것입니다._38쪽
당신과 달리 나는 온갖 노력에도 불구하고 친부모를 찾지 못했습니다. 생물학적 가족을 찾았다고 해서 자동으로 답이 나오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때론 회의감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당신이 떠난 지금, 내 생물학적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다시 불타오르고 있습니다. 몇 년 동안 닫아두었던 챕터가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어요. 뿌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뿌리를 아는 것은 중요합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고, 누구와 닮았으며, 어떤 성격을 물려받았는지, 가족사가 어떻기에 나를 포기했는지 등의 맥락이 나한테는 절실합니다. 내가 부모가 되면서 더욱 그렇습니다._44쪽
제가 태어나던 날, 어머니는 저를 낳기 위해 가까운 병원을 찾아갔습니다. 겨우 25주차, 그러니까 임신 6개월째로 접어들던 때였습니다. 어머니는 출산과 동시에 정신을 잃으셨고, 깨어났을 때는 제가 사산되어 의사들이 데려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는 의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아버지는 출타 중이었던 터라 어머니와 함께 병원에 가시지도, 자발적으로 입양을 허락하지도 않으셨다고 합니다. (…) 그로부터 수십 년이 지났고, 친가족과 상봉한 뒤에 우리는 입양 기관과 고아원, 탐욕스러운 의사 등이 꾸민 끝없는 거짓말의 흐름을 발견한 것입니다. 이 잔인한 행동에 대한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까요?_52쪽
당신의 딸로서 이 편지를 쓰고 싶어요. 아직도 어머니께 드릴 말씀이 많아요. 제게는 어머니를 만날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지요. 제 남편과 아이들도 만나셨잖아요. 그 순간들이 제 인생에서 가장 특별했어요. 그런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우리는 더 이상 서로 연락하지 않고 있죠. 왜 그렇게 됐는지 저는 알 수 없어요. 어머니는 더 이상 제 메시지에 답하지 않습니다. 몇 달 전에는 한국에 갔는데, 어머니와 연락이 닿지 않았어요. 제 여동생도, 오빠도 아무 말이 없어요. 이런 일이 재회한 입양인들에게 심심찮게 일어난다고는 들었어요. 이를 ‘이차 거부’라고 부른다네요. 가슴이 아프고, 몸도 아프고, 마치 고통 속에서 죽어버릴 것만 같아요._69쪽
제 가족을 찾으려는 노력은 있었는지, 혹은 저를 돕던 사람은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전혀 모릅니다. 저는 생후 첫 몇 주 사이에 커다란 상처를 입었던 것 같지만 어떤 사고였는지, 그리고 어떤 치료를 받았는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해외 입양이 저에게 최선이었고 또 적합한 선택이었는지도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사실 저는 어느 날 갑자기 마법처럼 해외로 보내질 환경에 놓인 것 같습니다. 제가 버려진 아이로 분류되어 한 인간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채 해외 입양되었다는 사실에 저는 여전히 슬픔을 느낍니다._79쪽
출판사 서평
‘없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을 입증하다
이 책에는 마흔세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한 목숨, 한 생애가 손바닥만 한 지면에 담겼다. 세상에 태어났지만 결과적으로 친부모에게, 가족에게, 국가와 사회에게 없는 사람이 된 이들은 존재를 스스로 입증하며 살아야 했다. 이 책의 제목이 ‘자기 자신의 목격자들’인 이유다.
다행인 것은 이들 해외 입양인이 자기 서사를 엮어낼 만큼의 세월을 통과해왔다는 사실이다(첫 번째 이야기의 주인공만 제외하고. 그녀는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뿌리, 정체성, 땅에 발 딛고 있다는 감각이 이들에게는 결여되어 있다. “뿌리가 없으면 아무것도 성장할 수 없기 때문에 뿌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면서 이들이 한국 땅을 찾는 이유다. 하지만 손에 쥐어지는 정보는 거의 없고 여태 간직해온 환상만이 산산이 부서진다. 당신의 친어머니는 당신을 너무 사랑해서 해외로 입양시킨 게 아니며, 당신은 고아도 아니고 납치되거나 거래된 상품이었을지 모른다는 팩트를 접하면서 이들의 세계는 무너진다. 이들이 아기 때 출국하며 몸에 지녔던 서류는 대부분 조작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해외 입양된 사람들, 집단으로 입을 열다
『자기 자신의 목격자들』은 생후 몇 개월 혹은 몇 년 만에 해외로 입양된 이들이 쓴 에세이 모음집이다. 해외 입양은 국내 입양과 달리 언어, 관습, 문화, 정체성에서 극심한 차이를 겪게 하고 인종차별에 노출시킨다. 이 책에는 덴마크 입양인 21명, 노르웨이 입양인 5명, 네덜란드 입양인 4명, 미국 입양인 3명, 벨기에 입양인 2명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이 중 친부모와 재회한 이는 4명이다(미아 리, 레나테 판 헤일, 에바 란 호프만, 김동휘). 다른 사람들은 수없이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부모와 만나지 못했거나 혹은 서류가 잘못되어 찾아나설 수 없는 상태다.
입양은 입양 당사자만의 서사가 아니다. 입양 부모, 친생 부모, 입양인과 결혼한 배우자, 입양인에게서 태어난 자녀들의 삶까지 바꿔놓는다. 이 책은 입양으로부터 영향받는 모든 이의 삶을 아우르고자 양부모, 친부모, 형제, 배우자, 자녀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입양에 대해서도 논하고 있다. 책에서 저자들은 자기 삶을 직접 증언한다. 이들의 생애 전체가 몇 페이지 안 되는 짧은 글을 통해 드러나고, 이어서 그들이 입양됐을 때의 사진과 현재 모습이 같이 실려 있다. 사진을 보면 입양 당시의 그들은 여느 아기들처럼 천진난만하다. 그리고 옆에 어른이 된 그들의 모습이 병치되어 있다. 그 수십 년의 간극에서 독자들은 이들의 삶을 상상해볼 수 있다. 행간에 숨어 있는 사랑, 돌봄, 배척, 신체적·정서적·성적 학대, 인종차별 등 수많은 상실감이 저절로 읽힌다. 각 글 마지막에는 글쓴이의 출생 연도, 입양 시 나이, 한국의 입양 기관, 입양 동의서 포함 여부, 사회적 경력을 기록했다. 이 기록들 가운데 문장 하나가 계속 반복된다. “입양 동의서나 경찰 신고서가 입양 서류에 포함되지 않았다.” 즉 모두 불법 입양이었던 것이다.
입양은 아이의 삶만 뒤흔들지 않는다. 내가 키운 아이가 알고 보니 불법 입양된 것이었다면 양부모는 죽을 때까지 ‘아이 도둑’이 된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영 피런스의 양아버지가 그런 수치심 속에서 움츠러든 어깨를 펴지 못한 채 돌아가셨다. 입양인 부모를 둔 자녀들 역시 다른 삶을 산다. 덴마크로 입양된 니아 토프타게르의 딸 마야는 “어른들이 아이들의 생명을 갖고 놀았다는 점에서 입양은 쓰레기 같은 일이에요”라고 한다.
“너는 왜 맨날 분노에 차 있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봐.” “너가 서양에서 자란 건 정말 행운이야. 네 삶이 훨씬 더 나아졌으니까.” 생후 5~7개월경 덴마크로 입양돼 매사에 감사하라는 요구를 받은 메이브리트 코드는 되묻는다. “우리가 한국에서 자랐다면 삶이 힘들었을 거라고요? 대신 새로운 부모를 만나고 덴마크의 사회보장번호도 받았으니 만족하라고요? 정말 어이가 없습니다.”
여기 글을 쓴 입양인들은 현재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갖고 있다(물론 입양인들은 일반인보다 우울증, 자살충동, 약물 남용을 더 많이 겪는다). 그건 덴마크, 노르웨이, 네덜란드, 벨기에, 미국 등 한국에 비해 더 선진화된 국가에서 자란 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입양인으로서 이들의 생존 전략이 그렇게 만든 면도 있다. 이들은 자라면서 늘 최고가 되려고 노력했다. “돌이켜보면 모든 면에서 최고가 되어야 아무도 저를 괴롭히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하지만 늘 최고가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저는 지쳤습니다.”
생의 기본값은 불안
최고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다
이 책에는 극단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저자들이 어두운 내면을 드러내며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자기 삶의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서다. 그 절박한 목소리를 하나하나 들어보자.
1968년생 니아 토프타게르는 뇌성마비를 앓았다. 다섯 살경 그녀는 벨기에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그 가정에는 이미 네 명의 자녀가 있었지만 장애를 가진 니아가 다른 데서 입양을 거부당하자 그의 양부모가 맡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니아에게 어떤 애정도, 소속감도 주지 않았다. 가족여행 때 그녀를 다른 곳에 맡기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장애 때문에 너를 데리고 휴가 가는 것은 너무 힘들고 귀찮아.” 열여섯 살 때 미아는 부모님께 집을 떠나라는 말을 들었다. 미아의 고된 삶은 그러나 결혼 후 낳은 딸 마야로 인해 위로받는다. 현재 중학생인 마야는 엄마의 삶을 부정하지 않고 엄마의 한국 가족과 진짜 정체성을 찾길 온 마음으로 지지한다. “엄마한테 장애가 없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우리 삶은 정말 멋져요. 엄마가 우리한테 한국어를 좀더 가르쳐주시면 좋겠어요.” 마야는 입양에 대해 뼈 있는 말도 한다. “엄마는 입양 가족들에게 인형이라 불렸어요. 제 입양 이모가 생일 선물로 살아 있는 인형을 받은 셈이죠.”
신광복의 아내 김정아는 1964년생(혹은 1965년생)이다. 1966년에 보육원 안양의집에 입소했다가 12년 뒤 노르웨이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열네 살쯤의 일이다. 문제는 양부모와의 나이 차가 41세나 났다는 것이다(아버지와 어머니 각각 55세와 54세였다). 이는 불법인데, 입양 부모와 자녀 사이의 나이 차는 40세를 넘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중학교까지 다니다가 입양된 그녀는 노르웨이에서 지옥 같은 삶을 살았다. 부유한 집안에서 그녀는 양아버지에게 폭행과 성폭행을 당했다. 양어머니는 그녀에게 허드렛일을 시켰다.
김정아씨는 불안한 지난날을 털어놓는다. “저는 제가 부족하다고 생각했고, 집 안의 골동품과 예술품을 깨뜨리거나 망가뜨릴까봐 두려웠습니다. 양어머니가 제 다리를 보고 너무 짧다고 말했을 때 이 집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양어머니는 제가 키를 늘이는 수술을 받길 원했어요.” 김정아씨처럼 입양인들은 끊임없이 자기 자신이 모자라다고 여겨 매사에 최선을 다한다. 그러면 자기 존재가 정당화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아시아 최고의 여성 먹기 대회 챔피언인 메리 바워스(미국으로 입양됨) 역시 자신이 뛰어나면 비인간적 대우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여기며 살아왔다.
덴마크로 입양된 김선아씨는 양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당하고, 양어머니에게는 신체적·정신적 학대를 당했다. 문제는 양부모가 모두 김선아씨의 학교 교사여서 한순간도 그들에게서 놓여날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어린 시절과 십대를 “뒤에서 누가 덮칠지도 모른다고 느끼면서 앞으로 달려온” 삶으로 비유했다. 현재 있는 곳에서 벗어나고자 끊임없이 시도했지만 결국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았던 세월이라고 회상한다.
김선아씨는 학대가 잘못됐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기에 여섯 살 때부터의 기억을 빠짐없이 머릿속에 새겨두었다. “학대를 잊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녀는 열여덟 살에 집에서 나왔고 이후 파양 신청을 했다.
덴마크에 입양되었던 요아킴 베른은 좋은 양부모를 만났지만 성인이 되어서도 애착 문제를 겪었다. 누군가는 생물학적 혈연관계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요아킴 베른은 이런 견해에 반박한다. “친부모와의 인연이 끊어지면서 제 인생에는 공백이 생겼습니다.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것처럼 정체성이 사라졌어요. 저는 겉으로는 복지국가에서 특권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마음속에는 늘 공허함이 있습니다. 누군가 제 이야기를 빼앗아갔는데, ‘당신이 내 목숨을 구해줬으니 감사하겠다’는 식으로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두 살 때 덴마크로 입양된 크리스티나 닐센은 앞면이 반짝반짝 빛나는 반면 뒷면은 얼룩덜룩한 삶을 살았다. “저는 양어머니한테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어른이 돼서도, 아이들 아빠랑 헤어졌을 때도 양어머니는 저를 안아주거나 저한테 위로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휴가 때면 가끔 한국을 찾아 거리를 걸으면서 생각한다. ‘저 사람이 혹시 내 어머니 아닐까? 내 아버지나 형제 아닐까? 아니면 할아버지나 할머니?’ 그리고 한국의 가족이 지금도 그녀를 찾고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를 품는다.
***
저자들은 성인이 된 후 아무 연고도 없는 한국 땅을 찾곤 한다. 직장을 다니다 휴가를 내 한국에 잠시 와 머물다 간다. 이들은 난생처음 안도감을 느낀다. 한국 여행이 이들에게 치유의 감정을 주기 때문이다. 여행의 고정 코스 중 하나는 입양 기관 방문이다. 이들은 백지 상태의 서류를 마주한다. 혹은 조금 두꺼운 서류를 들춰보다가 허위 기재임을 깨닫는다. 그런 서류가 버려지다보면 서류철은 점점 더 얇아진다. 지금까지 해외 입양의 서사는 입양 부모의 시선에서 구성되어왔다. 저자들은 진실된 서사를 재구축하고 싶어 함께 글을 썼다. 이제는 비밀과 거짓말과 모호함에서 벗어나는 삶을 찾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