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첫주 연휴 동안 'DMZ 평화의 길'을 걸었다.
3월 1일엔 2-3코스 25K, 2일엔 4코스 15K 였다.
드디어 '강화도', '김포반도'를 통과했고 '고양시'로 접어들었다.
세상만사, 시작이 반이다.
나는 늘 그런 생각을 갖고 살았다.
평화의 길은 총 34개 구간인데 이제 4개 구간이 끝났으니 앞으로 30개 구간이 남았다.
이건 팩트다.
"아직도 갈 길이 까마득하게 많이 남았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주사위를 던졌으면 이미 오부 능선은 넘은 것이다.
지금까지 무수한 길들이 그랬다.
지리산 둘레길도, 해파랑길도, 제주 올레길도, 치악산 둘레길과 서울 둘레길도, 알프스 TMB도, 동티벳의 차마고도도, 텐산 트레일과 록키의 밴프, 요호, 재스퍼도 그랬다.
광활한 몽골의 트레일도 다르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착수하기까지 고려할 변수들이 많았고 이 과정에서 시간이 다소 걸렸다.
그러나 일단 계획을 수립하고 과감하게 출사표를 던졌다면 이미 오할은 끝난 것이나 진배 없었다.
육십 년 이상 나의 수많은 경험을 반추해 보더라도 예외는 없었다.
항상 그랬다.
이틀째 트레킹에서 처제의 발바닥에 탈이 나기 시작했다.
기존 신발이 아니라 새로 구입한 트레킹화가 화근이었다.
물집이 점점 커졌다.
극심한 고통이 밀려들 게 뻔했다.
나는 누구보다도 경험이 많았기에 '쩍하면 입맛'이었다.
둘쨋날 '피니시라인'을 불과 2K 정도 남겨둔 지점에서 드디어 물집이 터졌고 피가 흘렀다.
양말까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더 이상의 전진은 불가능했다.
길가 벤치에 두 여성을 남겨놓고 서둘러 목적지까지 갔다.
그곳에 우리의 자동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인생의 길에서 숱한 경험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그게 배움이고 성장이었다.
또한 나의 경우엔 수행의 일환이었다.
"편함을 구치 말고 안온한 소파에서 일어나라"
"멀고 험한 길을 향해 신발끈을 단디 조인 채 과감하게 떠나라"
늘 스스로에게 그렇게 일렀다.
순례자의 몸가짐, 구도자의 마음가짐으로 한 발 한 발 걸어가고자 했다.
그게 삶이자 인생이라 생각했다.
혼자라면 뛰는 게 좋았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갈수록 혼자가 아니라 여러 사람들과 동행하게 되었다.
자연스런 변화였다.
둘이 갈 때도, 넷이 갈 때도, 열이나 스물이 갈 때도 있었다.
그래서 싸목싸목 다 함께 걸었다.
즐겁게 수다를 떨면서 같이 갔다.
나는 맨 뒤에서 대오를 챙기며 갔다.
예배를 꼭 법당이나 예배당에서만 드려야 하는 건 아니다.
조용한 카페에서만 소통과 공감이 잘 되는 것도 아니었다.
자신에 맞는 스타일대로 다양한 방법과 장소에서 추억을 엮고 공감을 쌓아가면 그것으로 족했다.
사랑하는 사람일수록, 가까운 사이일수록 더 부대끼고 진솔하게 교류하는 것이 삶의 핵심이라고 믿으며 살았다.
각자의 건강증진을 도모하고, 우리 강토의 향기를 더 자주 체감할 수 있다면 이 또한 얼마나 큰 행복이며 덤같은 축복이겠는가.
극장도 좋고, 레스토랑도 좋지만 나는 자연속에서의 진솔한 부대낌과 솔직한 소통이 더 좋았다.
그래서 여행은 곧 삶의 이정표였고 나침반이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느낄 수 있고 바라볼 수 있어서 그랬다.
치장과 포장이 필요 없는 땀과 순수함의 대지, 그런 환경 속에선 서로의 깊은 내면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었고, 보여줄 수 있어서 감사했다.
그래서 한몸, 한뜻으로 발전했고 종국엔 가족같은 원팀으로 깊어졌다.
520K를 완주할 때까지 즐겁고 행복하게 우리만의 스토리텔링을 엮어가려 한다.
배려와 감사가 씨실과 날실이 되었고 그렇게 작동했다.
그저 고마웠고 시종일관 미소가 훌렀다.
모두의 건승을 기원하며.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발바닥의 고통이 우리의 삶을 더욱 성장시켜주리라 믿습니다.
기회가 되면 그 멋진 행렬에 잠시라도 함께 하고 싶네요.
늘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