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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 전성수(개성고 2학년)
식구들 간의 사랑이란 무엇일까? 서로 챙겨주는 것? 걱정해 주는 것? 힘들 때 서로 기대어 의지하는 것?
맞는 말이다.
그럼 효도란 무엇일까?
나쁜 짓 하지 않고 부모님 속 안 썩이는 것? 건강하게 잘 커 주는 것? 이것도 다 맞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사랑과 효도는 다르다.
중학교 때 아버지가 하던 사업이 망해서 우리 집은 아주 가난하고 힘겨웠다. 제대로 된 옷, 신발 하나도 못 사주는 아빠가 싫었고 원망도 많이 했다. 아빠에 대해 반감을 갖게 되고 반항도 심해졌다. 가난한 집이 싫었고 이렇게 된 원인인 아빠가 싫었다.
고등학교를 와서 여러 가지 아르바이트를 했다. 용돈도 내가 벌어 쓰고 학비도 내고 집안까지 책임져야 할 정도로 우리 집에서 나의 비중이 커졌다. 아빠는 사업에 실패하고 몇 년 간 일을 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내가 우리 집의 가장인 양 그렇게 되어 버렸다. 아빠, 가장의 권위를 무시하고. 내가 왕인 것처럼.
내가 일하면서 학교 공부도 하고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많이 쌓였고 그 화살을 아빠에게 돌렸다. 날마다 짜증내고 투덜거리고 대놓고 아빠를 무시하기도 했다. 아빠가 나에게 부탁을 하면 실컷 짜증내고 욕하고 난 뒤 그 부탁을 들어주기도 하고 그랬다.
고3이 다 되어 가면서 공부를 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들었고 아르바이트를 그만두게 되었다. 내가 일을 그만두면 집에 돈줄이 끊기기에 아빠보고 제발 일 좀 하라고 윽박질렀다. 그럴 때마다 아빠는 아무 말도 안 하고 벼룩시장만 들여다보았다. 그런 모습이 더 짜증이 났다.
하루는 아침에 눈을 떴는데 아빠가 안 보인다. 아침부터 어딜 나갔는지 짜증이 났다. 아침을 먹으려고 식탁에 앉았는데 웬 쪽지가 눈에 들어온다.
“성수야, 아빠 일하러 가니까 밥 먹고 학교가거라.”
아빠가 드디어 일하러 간다는 말에 기분이 좋았다. 기쁘게 학교로 갔는데 한 시간, 두, 시간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 한구석이 불안해졌다. 혹시 다치지는 않았는지, 밥은 먹었는지, 추운데 옷은 따듯하게 입었는지. 한 번도 이런 걱정 해본 적 없는데 그날따라 이상했다.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잽싸게 달려왔다. 집 앞 대문에 서니 썰렁한 느낌을 받았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니 찬바람이 휑하니 분다. ‘아 내가 어딜 다녀왔을 때 나를 반겨줄 사람이 없는 게 이런 착잡한 기분이구나.’ 생각했다.
저녁도 먹지 않고 아빠를 기다렸다. 밤늦게 아빠가 돌아왔다. 무척 피곤해 보이는 얼굴로.
“어디 갔다 왔노?”
“노가다 하러.”
“할만 하드나?”
아무 말 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밥 먹었나?”
“……”
말없이 누워 있는 아빠.
“안 먹을 끼가?”
“아빠 아프다. 말 걸지 마라.”
“알았다.”
방문을 닫고 나가려는데
“밥 챙겨 먹고 어디 나가지 마라.”
아빠의 힘없는 목소리다. 문을 닫고 내방으로 와서 주섬주섬 옷을 입는다. 큰방으로 가서 아빠에게 물었다.
“약 사올까?”
“됐다. 빵이랑 우유나 사다 도.”
바로 슈퍼로 뛰어갔다. 너무 길게 느껴졌다.
빵과 우유를 사들고 집으로 왔다. 잠든 듯한 아빠. 아빠를 깨워서 빵이랑 우유 먹으라고 한 뒤 나는 집을 나섰다.
슈퍼에 들려서 소주 한 병을 사들고 놀이터로 갔다. 마음이 이상했다. 아빠가 아픈 건데 내가 왜이래 아픈지.
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내가 괜히 일하러 가라고 해서 아픈 거라며 죄책감을 느꼈다. 아빠도 내가 아팠을 때 이랬을까. 능력 없는 자신을 원망했겠지. 내가 지금 이런데 아빠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을까. 가슴이 찢어졌다.
정말 태어나서 처음으로 이런 식으로의 아픔을 겪었다. 아무 생각 없이 눈물만 흘렀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효자라고 생각했다. 돈 벌어다주고 공부 열심히 하고 착하게 살아온 게 효도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짜 효도는 부모님을 진심으로 공경하고 위할 줄 아는 게 효도이자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9월 16일)
자라온 이야기 / 전성수
어렸을 때, 내가 여섯 살 때 우리 식구는 풍족하지는 않지만 화목하게 지냈던 것 같다. 우리 식구가 불행을 맞이하게 된 건 형이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인 것 같다. 어머니는 나와 형에게 남들보다 더 좋은 옷, 더 좋은 음식, 우리가 가지고 싶은 것을 다 해 주려고 하셨다. 그러다보니 메이커 옷도 사 주시고 외식도 자주 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적은 수입에 돈은 많이 나가게 되고 그것 때문에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갈등이 생겼다.
그 일은 서로 양보해서 좋게 끝났지만 우리 형이 초등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또 두 분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우리 형 학교생활을 편히 하고 불편한 점을 없애 주려고 그랬는지 어머니가 형 담임선생님에게 흰 봉투를 몇 번 가져다주신 적이 있었다. 그걸 아버지가 아시게 된 것이다. 의처증이 심하셨던 아버지는 어머니가 학교 선생과 바람을 핀다고 생각하고 어머니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때는 나와 형이 아직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리면 방에 들어가 구석에서 울기만 했다.
그렇게 어머니는 몇 년 동안 이어지는 폭력을 견디지 못하시고 내가 초등하교 2학년이 되던 해 집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집을 나서기 전에 나를 끌어안고 한참을 우셨던 게 기억난다. 지금도 그날만 생각하면 죽을 듯이 가슴이 미어진다. 어머니가 집을 떠나고 난 뒤 아버지는 우리 두 형제에게 굉장히 무관심하게 되었다. 내가 아파도 병원에 간 적이 없고 학교 일에도 일체 무관심이었다.
아버지가 우리에게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도둑질을 하다가 학교 선생님에게 잡히면서부터인 것 같다. 아버지가 하루에 용돈을 5백 원씩 주시고 가셨는데 날마다 우리 형이 내 걸 뺏어가서 나는 항상 돈이 없었다. 그 나이 땐 과자도 먹고 싶고, 친구들과 오락실도 가고 싶은데, 돈이 없어서 못하니 도둑질을 배우게 된 것이다. 학교 친구들 돈을 굉장히 많이 훔쳤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결국 담임선생님에게 들키고 말았고, 아버지가 학교에 오시게 된 것이다. 집에 가서 호되게 혼날 것이라 겁먹고 있었는데 집에 오자 아버지가 나를 불러 앉혀놓고 먼저 미안하다고 하셨다. 못난 아버지 잘못이라고 나를 끌어안아 주셨다. 그때는 어려서 혼나지 않았다는 사실에 기뻐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눈물이 핑 돈다. 그 후부터는 관심을 많이 가져 주시고 애정도 많이 쏟으신 것 같다.
그러고 나는 순탄히 중학생이 되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사춘기라서 그런지 반항도 많이 하게 되고, 무엇보다 풍족하지 못한 우리 집이 너무 싫어졌다. 어머니도 많이 원망했고 아버지도 미웠다. 돈 없는 게 싫어서, 엄마 없는 자식이라는 소리 듣기 싫어서 혼자서도 뭐든지 열심히 했다. 중2 때부터는 아르바이트도 했다. 항상 힘이 들 때마다 아버지와 어머니 원망만 했다.
중3이 되던 해 아버지와 어머니에 대한 원망과 미움이 모두 사라졌다.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가 망해서 집이 아주 어렵게 되었다. 나는 항상 아버지한테 짜증내고 투정부리고 해도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쓴웃음만 지으셨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어느 날 아버지가 밤늦은 시각까지 집에 들어오시지 않았다. 나는 ‘어디선가 또 술 처먹고 있겠지’ 생각하고 먼저 자려고 잠자리에 누웠는데 이상하게 잠이 오질 않았다. 새벽 한 시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 나가보니, 비를 쫄딱 맞아 거지꼴을 한 아버지가 들어왔다. 술을 많이 먹었는지 몸도 가누질 못하였다. 그런 아버지를 부축해서 식탁에 앉혔다. 아버지는 한동안 멍하니 허공만 바라보다가 소리 없이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하셨다.
괜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으니 내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서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미안하다며 내가 원하는 것 다 들어주고 싶은데 아버지가 능력이 없어 그러질 못한다고 용서해 달라고. 한참을 그렇게 똑같은 말을 반복하셨다. 그때 아버지가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때부터 나는 아버지에게 마음을 열었고 지금에 와서는 반말하면서 거의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지내고 있다. 지금도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하루하루 느끼면서 살아간다.
어머니와 일도 있었다. 중3 여름방학 때 어머니가 살고 있는 집에 가서 며칠 밤을 지내게 되었다. 그때 형과 내가 어머니 앞에서 주먹질을 하며 싸웠다. 어머니가 우리를 말리시면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해 주셨다. 왜 집을 나가야 했는지, 나가고 나서 생활이 어떠했는지, 우리 생각에 몇 번이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아버지 때문에 차마 그럴 수 없었다는 이야기. 정말 그 얘기를 들을 때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머니가 이렇게 살고 있는데 나는 지금까지 어떠했는지, 뭘 하고 있었는지 후회가 되고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날 어머니와 우리 두 형제는 평생 울 거 다 울었던 것 같다. 그 후로 나는 철이 들었던 것 같고 부모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 그 깊은 속을 다 알지는 못하지만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도 어머니랑은 자주 전화도 하고 만나기도 하면서 어릴 때 느끼지 못했던 어머니의 정을 새삼스레 느끼고 있다.
그 뒤로도 힘들었던 일들이 많았지만 잘 이겨나가고 있다. 이젠 항상 부모님에게 죄송스런 마음으로 살아간다. 가끔 짜증날 때도 있지만.
나는 내 미래를 위해서보다 아버지, 어머니에게 보답하려고 공부를 하고 한다. 내 인생에 가장 큰 목표는 어머니, 아버지 두 분 다 멋들어지게 호강시켜 드리는 것이다. 항상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 오늘이라도 가서 이 말은 꼭 해야겠다.
“엄마, 아빠 고맙고 사랑한대이.” (4월 11일)
식구 / 전성수
집에 도착하면 11시 형은 아르바이트를 가고 집에 없고 아빠는 홀로 집을 지키고 있다. 씻고 공부하려고 식탁 앞에 앉으면 아빠의 한숨 섞인 푸념소리가 내 귀를 울린다. “아침부터 니 형이 열 받게 하던데…”로 시작해서 이런저런 욕들이 끝이 없다. 듣고 있으면 짜증이 치밀어 올라서 “그만하고 그냥 자라!” 이렇게 아버지에게 고함을 지른다. 그럼 아빠는 나에게 싸가지 없는 새끼라고 투덜거리며 방으로 들어간다.
새벽 2시쯤 넘으면 형이 온다. 형에게
“아침에 아빠랑 싸웠나?”
물어봤더니
“있다이가”로 시작해서 끝이 없다.
또 짜증이 나서
“아! 됐다. 닥치고 자라.” 이렇게 쏘아붙이고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와서 담배 하나 물고 조용한 새벽 동네를 돌아다닌다.
걸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한다. 도대체가 하루에 얼굴 보는 시간이 한 시간 될까 말까 한데 그 짧은 시간에 날마다 그렇게 다툴 수가 있을까?
문제점을 생각해본다.
우선 형.
내가 우리 식구 중에서 제일 싫어하고 증오하는 인간이다. 어릴 때부터 나를 많이 때려서 싫었고 지금은 존재 그 자체로 싫다.
여름에 땀 흘리고 와서 씻지도 않고 냄새나고 살은 디룩디룩 쪄 있고. 아르바이트 해서 번 돈으로 날마다 술이나 처먹고 다니고. 내 옷을 지 것처럼 입고 다니고. 내가 먹을 거 사다놓으면 지가 다 처먹고. 다 말하자면 너무 길다. 하여튼 싫다.
그리고 아빠.
답답하다. 보고 있으면 형이랑 똑같다. 맨날 형보고 “저 새끼는 누굴 닮아서 저러는지.” 이 말을 들으면 어이가 없다. 내가 볼 땐 부전자전이다.
날마다 알바일하고 밤늦게까지 공부해야 하고 안 그래도 지금 내 스트레스는 장난이 아닌데. 식구들까지 저 모양이니 참 살맛 안 난다. (9월 16일)
비 오는 밤 / 전성수
하루가 끝나는 시간
비 오는 밤
나는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선다.
힘없는 걸음으로 집 근처 육교에 올라
하늘을 바라본다.
불빛 한 점 없는 하늘
아주 작은 빛도 보이지 않는 하늘
빛을 찾으려 해도
빗방울이 방해를 놓는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
늦은 밤 학원을 다녀온 아들과
마중 나와 함께 들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보인다.
나는 홀로 어두컴컴한 대문으로 들어선다.
(5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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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와 아버지가 이혼하고, 그 뒤로 아버지와 형, 세 식구로 살아왔다.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 성수가 교무실로 내려왔다.
“선생님 오늘 야간자습 좀 빼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왜? 무슨 일 있나?”
“아니, 엄마한테 가 볼려고요.”
“엄마한테? 만나기로 했나?”
“아뇨. 엄마 집에 갔다 올려고요.”
“엄마 어디 사시는데?”
“기장에 사시는데, 가도 만나지는 못해요.”
“그런데 왜 가려고?”
“엄마가 일하고 늦게 와서 만나보지는 못해도 그냥 꽃한송이 방에 넣어 놓고 올려고요.”
이 시를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성수는 늦은 시간, 비 오는 밤에 우산을 들고 나왔다. 그냥 무작정 동네 한바퀴 도는 게, 이제는 견딜 수 없을 때 하는 버릇처럼 되었겠지. 밤늦게 공부하고 돌아가면 대문 앞에 마중 나와 있는 엄마가 얼마나 그리웠을까.
첫댓글 성수가 쓴 다른 글도 올려 놓았습니다. <비 오는 밤>이란 시는 전에도 우리 카페에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다들 바쁠 텐데 이렇게 긴 글 올려 미안합니다. 맨 앞에 <아버지>만 읽고 나머지는 시간 날 때 읽어보세요^^
아! 성수... 성수가 어버이날 빈 방에 놓아 두고 간 꽃 한 송이. 밤늦게 돌아와 방에 들어서서 그 꽃을 본 성수 어머니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선생님, 지난 번 모임에 빠지면서 마음이 안 편했습니다. 그러니 술 한잔 들어가서는...... 허허.
아침에 바보같이 눈에 들어온 글쓰기회보 읽다가 열받아서 집어던지고는 여기에 들어왔거든. 길어도 길어도 또 읽고 싶고 읽으면 읽을수록 따뜻해지는 글... 글이란 이래야 된다. 말꼬리 잡고 지잘났다고 우기는 기 아이고.